力強い身分制度を土台で両班中心の社会を維持した朝鮮時代に賎民は民取り扱いさえ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しかしその中にはすぐれた能力を発揮して賎出と言う(のは)朱字を脱ぎ捨てて歴史に自分の名前をあざやかに刻んでおいた人々がいる. その中に代表的な人物が世宗時代の科学者張英実だ.
先王太宗の血痕が散り乱れて乱雑な政治安定の基盤の上で即位した 世宗は初期から前提と洗剤の改革という火急な課題とでくわした. 土地の分配と公平無私した税金取り立てこそ安定的な国家経営の根本だからだ. 一所にこんな目的を果たそうとすれば境地堂農業生産性を大幅に進めなければならない. だから世宗は近代的農法を普及して, 私たち実情に相応しい暦法を製作することで時期に当たる種まきと秋収ができるようにした. 農業が国家の中心産業だったその時期に国王の一番重要な役目は ‘チリョックミョングシ(治暦明時)’, すぐ民たちに耕作する最適の時間と季節を知らせてくれることだからだ.
ここで世宗は一足跡一歩進んで農業発展のための科学器機開発に拍車をかけた. 漠然と空の意味によって耕作するのではなく科学の力を借りて自然の変化を係数化することで機会は最大化して危機は最小化するという意味だった. まさにこの地点で身分の壁を飛び越えて朝鮮最高の発明家に生まれかわった張英実の名前が燦然に輝いている.
강력한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양반 중심의 사회를 유지했던 조선 시대에 천민은 백성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천출이란 주홍글씨를 벗어던지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또렷하게 새겨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세종 시대의 과학자 장영실이다.
선왕 태종의 혈흔이 낭자한 정치 안정의 기반 위에서 즉위한 세종은 초기부터 전제와 세제의 개혁이라는 화급한 과제와 마주쳤다. 토지의 분배와 공평무사한 세금 징수야말로 안정적인 국가 경영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경지 당 농업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세종은 근대적 농법을 보급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을 제작함으로써 시기에 맞는 파종과 추수를 가능하게 했다. 농업이 국가의 중심 산업이었던 그 시기에 국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치력명시(治曆明時)’, 곧 백성들에게 농사지을 최적의 시간과 계절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세종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농업 발전을 위한 과학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막연히 하늘의 뜻에 기대어 농사지을 것이 아니라 과학의 힘을 빌려 자연의 변화를 계수화 함으로써 기회는 최대화하고 위기는 최소화하겠다는 뜻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조선 최고의 발명가로 거듭난 장영실의 이름이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