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실은 독도는 대마도 대신에 침략한 섬

타케시마(독도)가 강도될 때까지의 경위를 보면, 사실은 대마도를 강탈할 예정이 단념해 독도로 변경한 것을 안다



1949년 1월 8일 - 이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 요구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수립 직후의 1949년 1월, 신년 기자 회견에서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1949 매년 1월 23일 - 대마도 근해에서 어선 제 12 만에환이 한국군으로부터 총격 받아 일본인 선원 1명 사망.


1949 매년 2월 1일 - 대마도 근해에서 한국군으로부터 총격 받아 어선 제 6· 제8 유타카 동그라미로도 일본인 어부가 1명 사망.


1949 매년 5월 4일 - 대마도 근해에서 한국군으로부터 총격 받아 어선대번 동그라미로도 일본인 어부가 1명 사망.


1951년 3월~4월 - 한국군함에 의한 일본해에서의 일본 어선의 나포가 다발.2개월간에 30척이 나포되었다.


1951년 4월 27일 -한국이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
한국은 미국무성에 보낸 문서속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의 「영토」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한국은 정의가 영구적 평화의 유일한 기반이라고 하는 견고한 신뢰로 대마도의 영토적 지위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하는 것을 요청한다」라고 해, 「역사적으로 이 섬은 한국 영토였지만 일본에 의해서 강제적, 불법적으로 점령되었다」라고 했다.그러나, 미국측은 「대마도는 일본이 수세기에 걸쳐 완전하게 통치하고 있어, 평화 조약은 대마도의 현재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1951년 7월 12일 - 한국은 미국에 대해서, 일본이 대마도에 대할 권리를 방폐하는 것 등을 포함한 10항목의 각서를 보낸다


1951년 7월 18일 - 한국은 재차, 미국에 대해서 5항목의 요구를 실시해, 「독도·대마도·(파란섬/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섬)」를 한국령에 포함하도록(듯이) 요구했다.


1951년 7월 19일 - (얀·유체) 주미 한국 대사로부터 Acheson 미국무장관앞의 서간을 통지
미국과 영국 양국에 의한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초안 내용을 안 한국은, 주미 한국 대사로부터 Acheson 미국무장관앞의 서간을 제출했다.그 내용은, 「우리 정부는, 제2조 a항의 「방폐한다」라고 하는 말을 「일본이 조선 및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및(파란섬/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섬, 후에 리어도(이오드 /Socotra Rock)에 파란섬의 이름을 붙여 역사를 수정)를 포함한 일본에 의한 조선의 병합전에 조선의 일부에서 만난 섬들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1945년 8월 9일에 방폐한 것을 확인한다.」(으)로 변경하는 것을 요망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1951년 7월 26일 - 한국 정부는 세번째의 수정 요구를 제출한다.
새로운 한일 어업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막카서·라인」이 존속하도록(듯이) 요청했다.


1951년 8월 10일 - 「Rusk documents」로 한국의 영토의 요구(대마도·독도)를 각하 했다.


1951년 9월 8일 -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조약에 조인.


1952년 1월 18일 - 미국의 결정을 불복으로 한 이승만 대통령의 해양 주권 선언(이승만 리인 선언)


1952년 2월 11일 - 어선 제 3석보환이 한국군에게 총격 되어 일본인 선원 1명 사망.


1953년 2월 4일 - 어선 제1 대국환, 제2 대국환이 한국군의 총격을 받아 세토중시로 어로장이 사살된다.


1955년 2월 14일 - 어선 제 6 여명환이 한국군함에 추돌되어 침몰·선원 21명이 사망.이 때, 한국군은 국제법으로 정해진 인명 구조도 실시하지 않고, 빠져 가는 어부를 전원 죽게 내버려 둠으로 했다.


1955년 11월 17일 - 한국 통합 참모본부가, 「이승만 리인에의 침범선을 격침」이라고 발표


1952년부터 1964년까지의 사이에, 한국에 의해서 나포된 어선은 232척, 2784명.나포때의 총격으로 5명의 어부가 사망한 것 외 억류중에 수용소에서 상당수의 어부가 사망해 있다.


1965년 5월 - 한국이 미의 일한 공동 관리 제안 거부
박정희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러스크 미국무장관이 일한 공동으로 등대를 건설해 관리해, 영유권 싸움을 하지 않게 재촉했지만, 한국측이 거부




덧붙여서 한국 전쟁 개시 직전에, 이승만은 후쿠오카 침략도 계획하고 있어, 일설에 의하면 큐슈 상륙을 향한 준비를 위해서, 전전력을 남하시켜 북부가 허술하게 된 틈을 북한에 찰지되어 북한군의 진입을 허락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対馬が貰えないから竹島(独島)を侵略

実は独島は対馬の代わりに侵略した島

竹島(独島)が強盗されるまでの経緯を見れば、本当は対馬を強奪する予定が諦めて独島に変更したことが分かる



1949年1月8日 - 李大統領が対馬返還要求
李承晩大統領は政府樹立直後の1949年1月、新年記者会見で日本に対馬島返還を要求した


1949年年1月23日 - 対馬近海で漁船 第12 万栄丸が韓国軍から銃撃うけ、日本人船員1人死亡。


1949年年2月1日 - 対馬近海で韓国軍から銃撃うけ、漁船 第6・第8ゆたか丸でも日本人漁師が1人死亡。


1949年年5月 4日 - 対馬近海で韓国軍から銃撃うけ、漁船 大繁丸でも日本人漁師が1人死亡。


1951年3月〜4月 - 韓国軍艦による日本海での日本漁船の拿捕が多発。2カ月間で30隻が拿捕された。


1951年4月27日 - 韓国が対馬の領有権を主張
韓国は米国務省に送った文書の中で、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草案の「領土」部分に対して言及しながら、「韓国は正義が永久的平和の唯一の基盤という堅固な信頼で対馬島の領土的地位に対する完全な検討をすることを要請する」とし、「歴史的にこの島は韓国領土だったが日本によって 強制的、不法的に占領された」と言った。しかし、米国側は「対馬は日本が数世紀にわたり完全に統治しており、平和条約は対馬の現在の地位に影響を及ぼさない」と答え、韓国の要求を拒否した。


1951年7月12日 - 韓国はアメリカに対して、日本が対馬に対する権利を放棄することなどを含めた10項目の覚書を送る


1951年7月18日 - 韓国は再度、アメリカに対して5項目の要求を行い、「独島・対馬島・파랑도(パラン島/存在しない架空の島)」を韓国領に含めるように求めた。


1951年7月19日 - 양유찬(ヤン・ユチャン)駐米韓国大使からAcheson米国務長官宛の書簡を通達
米英両国による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草案内容を承知した韓国は、양유찬 駐米韓国大使からAcheson米国務長官宛の書簡を提出した。その内容は、「我が政府は、第2条a項の「放棄する」という語を「日本国が朝鮮並びに済州島、巨文島、鬱陵島、独島及び파랑도(パラン島/存在しない架空の島、後に離於島(イオド/Socotra Rock)にパラン島の名前を付けて歴史を修正)を含む日本による朝鮮の併合前に朝鮮の一部であった島々に対するすべての権利、権原及び請求権を1945年8月9日に放棄したことを確認する。」に変更することを要望する。」というものであった。


1951年7月26日 - 韓国政府は三度目の修正要求を提出する。
新たな日韓漁業協定が締結されるまで「マッカーサー・ライン」が存続するように要請した。


1951年8月10日 - 「Rusk documents」で韓国の領土の要求(対馬・独島)を却下した。


1951年9月8日 - 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条約に調印。


1952年1月18日 - 米国の決定を不服とした李承晩大統領の海洋主権宣言(李承晩ライン宣言)


1952年2月11日 - 漁船 第3石宝丸が韓国軍に銃撃され、日本人船員1人死亡。


1953年2月4日 - 漁船 第1大邦丸、第2大邦丸が韓国軍の銃撃をうけ、瀬戸重四郎漁労長が射殺される。


1955年2月14日 - 漁船 第6あけぼの丸が韓国軍艦に追突され沈没・船員21人が死亡。この時、韓国軍は国際法で定められた人命救助も行わず、溺れていく漁師を全員見殺しにした。


1955年11月17日 - 韓国統合参謀本部が、「李承晩ラインへの侵犯船を撃沈」と発表


1952年から1964年までの間に、韓国によってだ捕された漁船は232隻、2784人。拿捕の際の銃撃で5人の漁師が死亡したほか抑留中に収容所で相当数の漁師が死亡している。


1965年5月 - 韓国が米の日韓共同管理提案拒否
朴正煕大統領がワシントンを訪問した際、ラスク米国務長官が日韓共同で灯台を建設して管理し、領有権争いをしないよう促したものの、韓国側が拒否




ちなみに朝鮮戦争開始直前に、李承晩は福岡侵略も計画しており、一説によると九州上陸に向けての準備のために、全戦力を南下させて北部が手薄になった隙を北朝鮮に察知され、北朝鮮軍の進入を許したとの話も有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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