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미군 공문서에 기록된 한국군의 베트남대학살

http://shukan.bunshun.jp/articles/-/4952
주간 후미하루 디지털 2015.3.26



 50년대 전반의 한국 전쟁으로 국토가 몹시 황폐해져 세계의 최빈국 레벨에까지 침체되어 있던 한국.63년에 제5대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베트남 전쟁을 부흥을 향한 천재일우의 찬스라고 평가했다.끈질긴 교섭의 결과, 미국 정부로부터 파병 규모에 응한 보조금 지급과 대미 이민범위의 설정을 차지해, 6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군을 투입.남쪽에서는 미군에 뒤잇는 세력이 되는 총계 31만명의 한국병이 베트남에 건넜다.

 미국에는, 국립 공문서 기록 관리국, 통칭「NARA」로 불리는 조직이 있다.정부의 공문서나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 각종 자료를 보관하는 미 정부의 공식 기관으로, 전미 33개소에 공문서 관리 시설을 가져, 40억매의 종이, 30만개의 영상, 500만매의 지도나 통계 자료등을 보관・공개하는 세계 최대의 공문서 관리 조직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남북의 내전 돌입(1960년)으로부터 미군 전면 철퇴(73년)에 이르는, 방대한 공문서나 영상 자료가 보관되고 있다.

 60년대에 본격화한 베트남 전쟁은,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주의 진영이 지원하는 북 베트남측과 미국이나 대만 등 자유주의 진영이 지원하는 남 베트남측이 싸운 일로부터「냉전 미소의 대리 전쟁」로 불렸다.

 베트남 전쟁시의 한국군에 관한 공문서는 전미 각지에 점재하고 있다.나는, 워싱턴 지국장으로서의 나날의 업무의 사이를 꿰매고, 워싱턴 시내나 교외 메릴랜드주의 공문서관, 한층 더 각지의 미군 기지 부속의 도서관이나 자료관을 방문하거나 조사원을 파견하거나 하고, 관련의 문서를 대량으로 카피해, 지국에 가지고 돌아가고는 읽어들이는 작업을 계속했다.

 존・F・케네디 대통령(61〜6삼년)이나 린돈・B・존슨 대통령(63〜69년), 로버트・마크나마라 국방장관(61〜68년) 등 당시의 키맨의 서간으로부터, 각국의 외교관이나 군관계자의 메모까지, 온갖 계층의 여러가지 교환을 기록한 공문서에서는, 교과서나 역사서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당시의 생생한 숨결이 느껴졌다.

 최초로 집중적으로 읽어들인 것은, 백악관이나 국무성등의 외교 문서다.거기로부터 판명된 것은,당시의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 있어서의 한국병의 행장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고 하는 일이었다.한국병의 만행의 기록은, 본격파병 직후의 65년부터 시작되어 있었다.전지에서의 시민의 학살, 강간으로부터, 사이공등의 도시지역에서의 환율 위조, 물자의 부정유출, 마약 밀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범죄 기록이 대량으로 남아 있었다.미군 사령부는 한국군 사령부에 대해서 반복해 서간을 보내, 위반자의 소추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사태는 악화의 일로를 더듬었다.70년에는, 미국 연방 의회 하원의 외교 위원회에서, 한국군에 의한 잔학행위를 추궁하는 특별 조사 팀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발전했다.

 다음에, 한국병의 악행이 문제가 되어 아픈들 , 범죄나 재판의 기록안에 어떠한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14년의 봄부터, 베트남 주둔 미군의 군정부와 군경찰의 범죄 기록에 손을 뻗어, 연대순에 카피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거기에는,외교 문서보다 한층 더 생생한 강간, 폭행, 절도, 상해, 군수 물자의 부정 취득 등, 과주위수의 한국병의 범죄가 여러가지 형태로 기록되고 있었다.

사이공의「한국군 위안소 」

 그리고 7월 25일 심야.아무도 없는 지국의 골방에서, 여느 때처럼 한국군의 방대한 범죄 기록의 공문서를 한 장 한 장 벗기도록(듯이) 읽어들이고 있으면, 한 통의 서간에 맞닥뜨렸다.그 서간은, 사이공(현호치민시)의 미군 사령부로부터, 같은 사이공의 한국군 사령부에 보내진 것이었다.행선지는, 베트남 주둔 한국군 최고 사령관・채명 신(최・물신) 장군이다.이 서간은 69년 1월부터 4월의 사이에 쓰여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서간의 주제는, 한국병이 관여한 경제 사건에 관한 것으로, 부정한 통화를 이용해 미군의 군수 물자가 대량으로 부정유출 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었다.그 일련의 범죄 행위의 무대 중 하나가, 사이공 시중심부에 있었다고 하는 「The TurkishBath」(터키탕)다.

 이「터키탕」에 임해서 서간은, 「매춘 행위를 하고 있고, 베트남인 여성이 일하게되고 있는」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주제인 통화 부정 사건의 수사를 위해서, 미군과 베트남 통관 당국이 공동으로 가택 수색을 실시해서,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었다.

「이 시설은, 한국군에 의한, 한국병 전용의 위안소(Welfare Center)인」(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놀라 몇번이나 다시 읽었지만,미군 사령부가 이 시설을「한국군의 한국병을 위한 위안소」이라고 수사에 근거해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미군 사령부는 한국군의 위안소라고 지적하기에 즈음하고, 두 개의 근거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선, 압수 자료중에서, 한국병의 복리후생을 담당하는 특무부 차장의 임에 있던 한국군 대령의 서명들이의 서류가 발견되어, 그 서류에 한국군에 의한 한국병 전용의 위안소이라고 나타나고 있는 일.

 게다가 가택 수색으로 이 시설로부터 압수된 물자에 대해서, 한국군 간부가 베트남 세관 당국에 대해 반환을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한 사실을, 군간부의 실명을 나타내고 한국측에 들이대고 있었다.

 게다가로 미군 사령부는, 한국군의 최고 사령관・채명신에 대해서, 경제 범죄에 관련된 혐의가 있는 대령이나 중령 등, 한국병 6명의 실명을 통보했다.우군의 사령관에 부하의 범죄 행위를 지적하는 서간인 만큼, 그 문장은 수사와 증거에 근거하고 있어 틈이 없다.

 이번, 미국의 공문서에 의하고 처음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 사이공의「한국군 위안소」란,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고 있 것일까.

 한스 0 fb;이케스씨(70).60년대 후반에 미국의 통신 인프라 회사로부터 사이공에 파견되어 그 후 몇 년간에 걸쳐서 베트남과 미국을 왕복했다고 하는 이케스씨는, 「『터키탕』는, 당시 사이공에 있던 사람의 사이에서는, 『사정 팔러』(Steam and CreamParlor)로 불리고 있었습니다.젊은 베트남인 여성으로부터 성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입니다」라고 증언해 주었다.

 한국군의 위안소 운영에 대해서, 베트남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는 것일까.남 베트남 정부의 전 관료로 현재는 워싱턴 교외에 사는 구엔・곡크・빅 박사는 베트남 전쟁시의 한국군에 의한 학살등의 만행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고 있었지만, 위안소의 일은 몰랐다고 한다.빅 박사는 몸집이 작고 백발의 온후한 신사이지만, 문제의 서간을 읽어 주면 순식간에 얼굴이 어려워졌다.위안소 설치에 대해서, 한국의 국가로서의 의사를 제일 문제시했다.「일부의 불량이 하고 있던 위법행위가 아니고, 한국 정부가 정책으로서 하고 있던 것이라면, 결코 정당화 하는 일은 할 수 없다.베트남인은 애매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http://ch.nicovideo.jp/shukanbunshun/blomaga/ar757648


米軍公文書に記録されたベトナム大虐殺

米軍公文書に記録された韓国軍のベトナム大虐殺

http://shukan.bunshun.jp/articles/-/4952
週刊文春デジタル 2015.3.26



 50年代前半の朝鮮戦争で国土が荒れ果て、世界の最貧国レベルにまで落ち込んでいた韓国。63年に第5代大統領となった朴正熙は、ベトナム戦争を復興に向けた千載一遇のチャンスと位置づけた。粘り強い交渉の結果、アメリカ政府から派兵規模に応じた補助金支給と、対米移民枠の設定を勝ち取り、六五年から本格的に韓国軍を投入。南側では米軍に次ぐ勢力となる延べ31万人の韓国兵がベトナムに渡った。

 アメリカには、国立公文書記録管理局、通称「NARA」と呼ばれる組織がある。政府の公文書や歴史的価値が高いと判断された各種資料を保管する米政府の公式機関で、全米33カ所に公文書管理施設を持ち、40億枚の紙、30万本の映像、500万枚の地図や統計資料などを保管・公開する世界最大の公文書管理組織だ。

 ベトナム戦争についても、南北の内戦突入(1960年)から米軍全面撤退(73年)に至る、膨大な公文書や映像資料が保管されている。

 60年代に本格化したベトナム戦争は、ソ連や中国など共産主義陣営が支援する北ベトナム側と、アメリカや台湾など自由主義陣営が支援する南ベトナム側が戦った事から「冷戦米ソの代理戦争」と呼ばれた。

 ベトナム戦争時の韓国軍に関する公文書は全米各地に点在している。私は、ワシントン支局長としての日々の業務の合間を縫って、ワシントン市内や郊外メリーランド州の公文書館、さらに各地の米軍基地付属の図書館や資料館を訪れたり、リサーチャーを派遣したりして、関連の文書を大量にコピーし、支局に持ち帰っては読み込む作業を続けた。

 ジョン・F・ケネディ大統領(六一〜六三年)やリンドン・B・ジョンソン大統領(六三〜六九年)、ロバート・マクナマラ国防長官(六一〜六八年)など当時のキーマンの書簡から、各国の外交官や軍関係者のメモまで、ありとあらゆる階層の様々なやり取りを記録した公文書からは、教科書や歴史書からは伝わらない、当時の生々しい息遣いが感じられた。

 最初に集中的に読み込んだのは、ホワイトハウスや国務省等の外交文書だ。そこから判明したのは、当時のアメリカ政府がベトナムにおける韓国兵の行状に、相当手を焼いていたという事だった。韓国兵の蛮行の記録は、本格派兵直後の65年から始まっていた。戦地での市民の虐殺、強姦から、サイゴンなどの都市部での為替偽造、物資の横流し、麻薬密売に至るまで、ありとあらゆる犯罪記録が大量に残されていた。米軍司令部は韓国軍司令部に対して繰り返し書簡を送り、違反者の訴追と再発防止を求めたが事態は悪化の一途をたどった。70年には、アメリカ連邦議会下院の外交委員会で、韓国軍による残虐行為を追及する特別調査チームが作られる事態にまで発展した。

 次に、韓国兵の悪行が問題になっていたなら、犯罪や裁判の記録の中に何らかの手がかり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て、14年の春から、ベトナム駐留米軍の軍政部と軍警察の犯罪記録に手を伸ばし、年代順にコピーして片っ端から読み始めた。そこには、外交文書よりもさらに生々しい強姦、暴行、窃盗、傷害、軍需物資の不正取得など、夥しい数の韓国兵の犯罪が様々な形で記録されていた。

サイゴンの「韓国軍慰安所」

 そして7月25日深夜。誰もいない支局の小部屋で、いつものように韓国軍の膨大な犯罪記録の公文書を一枚一枚剥ぐように読み込んでいると、一通の書簡に行き当たった。その書簡は、サイゴン(現ホーチミン市)のアメリカ軍司令部から、同じくサイゴンの韓国軍司令部に送られたものだった。宛先は、ベトナム駐留韓国軍最高司令官・蔡命新(チェ・ミュンシン)将軍だ。この書簡は69年1月から4月の間に書かれたものと推定された。

 書簡の主題は、韓国兵が関与した経済事件に関するもので、不正な通貨を用いて米軍の軍需物資が大量に横流しされていると指摘されていた。その一連の犯罪行為の舞台のうちの一つが、サイゴン市中心部にあったという「The Turkish Bath」(トルコ風呂)だ。

 この「トルコ風呂」について書簡は、「売春行為が行われていて、ベトナム人女性が働かされている」と説明している。
 そして、主題である通貨不正事件の捜査のために、米軍とベトナム通関当局が共同で家宅捜索を行って、その結果を、次のように記していた。

「この施設は、韓国軍による、韓国兵専用の慰安所(Welfare Center)である」(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驚いて何度も読み返したが、米軍司令部がこの施設を「韓国軍の韓国兵のための慰安所」であると捜査に基づいて断定している。

 そして、米軍司令部は韓国軍の慰安所と指摘するにあたって、二つの根拠を示していた。
 まず、押収資料の中から、韓国兵の福利厚生を担当する特務部次長の任にあった韓国軍大佐の署名入りの書類が見つかり、その書類に韓国軍による韓国兵専用の慰安所であると示されている事。

 さらに、家宅捜索でこの施設から押収された物資について、韓国軍幹部がベトナム税関当局に対し返還を求める書類を提出した事実を、軍幹部の実名を示して韓国側に突きつけていた。

 その上で米軍司令部は、韓国軍の最高司令官・蔡命新に対して、経済犯罪に関わった疑いのある大佐や中佐など、韓国兵6名の実名を通報した。友軍の司令官に部下の犯罪行為を指摘する書簡だけに、その文章は捜査と証拠に基づいていて隙がない。

 今回、米国の公文書によって初めてその存在が明らかになった、サイゴンの「韓国軍慰安所」とは、一体どのように運営されていたのだろうか。

 ハンス・イケス氏(70)。60年代後半にアメリカの通信インフラ会社からサイゴンに派遣され、その後数年間にわたってベトナムとアメリカを往復したというイケス氏は、「『トルコ風呂』は、当時サイゴンにいた人の間では、『射精パーラー』(Steam and Cream Parlor)と呼ばれていました。若いベトナム人女性から性的サービスを受けることが出来たからです」と証言してくれた。

 韓国軍の慰安所運営について、ベトナムの人々はどう受け止めるのだろうか。南ベトナム政府の元官僚で現在はワシントン郊外に住むグエン・ゴック・ビック博士はベトナム戦争時の韓国軍による虐殺などの蛮行については詳しく知っていたが、慰安所の事は知らなかったという。ビック博士は小柄で白髪の温厚な紳士だが、問題の書簡を読んでもらうと見る見る顔つきが厳しくなった。慰安所設置について、韓国の国家としての意思を一番問題視した。「一部の不良がやっていた違法行為でなく、韓国政府が政策としてやっていたのなら、決して正当化する事はできない。ベトナム人はうやむやにすることは絶対にできません」と話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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