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아주 먼 나라
인터넷 기자와 만나다
사건이 있은 후 ,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본인과의 교류는 잠깐 멈춘 상태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바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인터넷 기자였다. 그는 나의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나를 취재하고 싶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일본인의 습성에 대해 이미 파악한 상태이고, 그 기자가 어떤 취재를 하는지도 자세히 몰랐으며, 휴식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너가 잘못되어 있지 않았단 것을 알려 주라고 하며 그를 만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예상외의 사죄
결국 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와 약속 장소를 잡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약속 시간이 지난 후 10분 가량 그를 더 기다렸다. 결국 그가 도착했다. 그는 어눌한 한국어로 나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일본인을 비판하는 칼럼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로 시작한 취재가 끝날 무렵, 그는 갑자기 나에게 사죄하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슨, 그는 일본의 기자로 활동하며, 몇번이나 일본의 비판 기사를 썼고, 그도 나와 같은 “cyber terror” 를 당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본인을 대표해 나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난 그의 사죄에 처음에는 깊은 감동을 느꼈지만, 그가 일본인을 대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게 되었다. 그때에도 나는 수많은 mail을 일본인으로부터 받고 있었고, mail의 내용은 대부분 테러에 가까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는 진실을 전했는가
나는 일본인 기자와 만남을 가진 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일본인을 대표해 사죄한 그는 과연 진실을 전달했을까?` 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그의 기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기사에는 다행히 꾸며낸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스스로가 부른 비극에 번농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역시 `스스로가 부른 비극에 번농` 되었던 것일까? 어쨌든 10개월을 지낸 이국의 땅, 7년을 교류한 일본. 일본은 변함없이 내 안에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feel sorry
한국에서 휴식을 가지는 동안 일본인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mail을 받았다. 그 중에는 나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일본인들의 mail과, 나를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재일교포들의 안부 mail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보며 어쩌면 내가 너무 심한 짓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쩌면 내가 어린 마음으로, 일본인을 도발했던 거였을지도-분명히 도발은 아니었지만-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언제나 처럼 전달되는 혐한 일본인들의 mail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접고는 했다.
[열심히 했어]
10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남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감정을 간파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의 칼럼이 미움 받은 이유는 어쩌면 내가 한국인 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본의 혐한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본에서, 나의 칼럼은 지나치게 당돌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위안하기 시작했다. `너는 열심히 했어. 나쁜 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일본인이다. 너는 일본인의 차별심의 피해자이다.`
다시 일본으로
수많은 경험을 했던 시간동안, 나는 일본에 애정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일본에 가고 싶다. 어린 시절, 내게 “희망”을 전해준 일본에 대해 감사하고, 일본에 미움 받은 나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희망을 꿈꾼다.
3枚とても遠い国
インターネット記者と会う
事件がある後 , 私は韓国に帰って来て平凡な生活をしていた. 日本人との交流はちょっと止めた状態だった. そうする間, ある日一通の電話に出るようになる. すぐ韓国に居住している日本人インターネット記者だった. 彼は私の事件に深い関心を見せて, 私を取材したいと伝えた.
初めにはためらった. 日本人の習性に対してもう把握した状態で, その記者がどんな取材をするかも詳らかに分からなかったし, 休息を行いたかったからだ. しかし, 私の親は好きな機会になることができると言いながら, お前が間違って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知らせてくれなさいと言って彼に会うことを積極的にお勧めした.
案外のお詫び
結局私は彼に会う事にした. 彼と約束場所を取って約束場所で待っていた. 私は約束時間が経った後 10分ほど彼をもっと待った. 結局彼が到着した. 彼はどもる韓国語で私を取材し始めた.
`日本で日本人を批判するコラムを書くようになった理由は何か`という話で始めた取材が終わる頃, 彼は急に私に謝罪し始めた. 理由であるズックスン, 彼は日本の記者に活動して, 何度や日本の批判記事を書いたし, 彼も私のような cyber terror にあったと言うのだった.
それとともに日本人を代表して私に謝罪したいと言った. 私は彼のお詫びに初めには深い感動を感じたが, 彼が日本人を代表できないという事実を早く悟るようになった. あの時にも私は幾多の mailを日本人から受けていたし, mailの内容は大部分テロに近い水準だったからだ.
記事は真実を伝えたのか
私は日本人記者と出会いを持った後疑問だ始めた. `日本人を代表して謝罪した彼は果して真実を伝達しただろうか?` というのだった. 私はインターネットで彼の記事を捜し始めた. 彼の記事には幸いに 作り話はなかった. しかし, 最後の句節で彼はこんな言葉を残した.
自らが呼んだ悲劇にボンノングになったかも知れない.
私はやっぱり `自らが呼んだ悲劇にボンノング` になったことだろう? とにかく 10ヶ月を過ごした異国の地, 7年を交流した日本. 日本は相変わらず私の中では近くて遠い国だった.
feel sorry
韓国で休息を行う間日本人から数えきれないほど多い mailを受けた. その中には私の 感情を理解するという日本人たちの mailと, 私を切ながる幾多の在日韓国人の安否 mailを受けた.
私は彼らを見てもしかしたら私がひどすぎる仕業をしたことかも知れないという考えをしたりした. もしかしたら私が幼い心で, 日本人を挑発したんだったかも-確かに挑発ではなかったが-分からないという考えに捕らわれたりした.
しかし彼と反対に, いつものように伝達する嫌韓日本人たちの mailを見ながら私はそんな考えを折ったりした.
[熱心にしたの]
10ヶ月間日本に滞留しながら残ったことは何だろう? それは `人の感情を看破する能力`というのだ. 日本で私のコラムの憎まれた理由はもしかしたら私が韓国人であったからかも 知れないという考えもするようになった. 日本の 嫌韓類という本がベストセラーになる日本で, 私のコラムはすぎるほど大胆したかも知れない.
結局私は私自分を慰安し始めた. `お前は熱心にしたの. 悪いことはすぎるほど感情的な日本人だ. お前は日本人の差別心の被害者だ.`
また日本で
幾多の経験をした時間の間, 私は日本に愛情をまだたくさん持っている. いつかはまた日本へ行きたい. 小さい頃, 私に ¥"希望¥"を伝えた日本に対して感謝して, 日本に憎まれた私だが, 私はまだその希望を夢見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