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광주비엔날레 주제로 설정된 ”人+間”은 사람 ”人”과 사이”間”을 해
체해서 재구성한 일종의 造語다.
인간과 사회, 인간과 성,인간과 권력, 인간과 환경 등 종횡으로 걸쳐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인간이라는 본연의 문제로 돌아가 새 문화적 비전을 보
여주자는 의도를 2000광주비엔날레 주제는 담고 있다. 즉 각각 다른 지역,
조건, 상황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참된 의미에 대한 예술의 풍부한 발언을
“人+間”이라는 주제를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기말 세기초의 과도적 시점인 2000년은 과거의 반성과 미래의 전망이
교차한다.따라서 오는 2000년 3월에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에 가해졌던 모든 모순 구조를 파헤쳐 극복해 가자는 취
지를 선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즉 미래의 인간이 유지할 보편적 삶의 조건을 보다 건강하게가다듬기위
하여 인간에 대한 재해석, 재조명, 재종합을 함축하는 주제 ”人+間” 을
2000광주비엔날레 슬로건으로 내건 것이다.
한자어로 표기된 ”人間”이라는 용어 자체가 동양적 사상을 충분히 내포하
고 있듯이 2000광주비엔날레는 동양정신을 바탕에 깔면서인간 자신의 문
제를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 개인과 지역세계 등을 바라보자는 의도를미
술의 어법으로 펼쳐 보일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人+間”은 인간이란 글자를 해체해서 재구성한 것
이다. 人은 사람이며 間은 사이이다.
人의 자의적 해석은 직립된 사람의 걸어가는 옆모습을 걷잡은 것이라고
도 하고, 두 개의 획이 서로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즉 남자
와 여자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間”은 문(門) 틈으로 스며드는 햇빛(日)을 의미한다. ”間”은 공간상의 간
격일 수도 시간상의 거리일수도 있다 . 따라서 ”人+間”엔 단순한 사람만이
아닌 사람과 주변, 사람과 상황, 사람과 그 조건 등 복합적인 의미가 함축
되어 있다.
그냥 인간이라고 했을 때는 이런 복합적인 의미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
를 해체했을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두 글자를 해체하고 재결합한 것은 두
글자를 대립항으로 만들어 더욱 그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간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주제설정에서 먼저 생각된 것은 1회와 2회 비엔날레와 연계되는 정신적
공유성을 획득할 것, 광주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할 것, 한국, 아시아
라는 입지적 조건을 염두에 둘 것,2000년이란 새로운천년의 문턱에 이르
렀다는 시점을 고려할 것 등이었다.
3회 비엔날레의*주제
人+間(man+space)
제 3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人 + 間>이다. 인간이란 글자를 해체하여 결합한 것이다. 원래의 인간과는 다른 함의를지닌 신조어이다. 인(人)은 글자그대로 사람이라면, 간(間)은 사람을 에워싸워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단순한 물리적 의미의 공간이기보다는 사람이 처한상황, 또는 조건 등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된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우리자신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이는 곧 생각을 하는 주체에 대한 존재의 물음이지 않을 수 없다. 대전환의 시점을 맞는 주체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의 존재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원래의 인간(人間)이란 말속에는 이 같은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오랜 사용의 관습에 의해 인간은 단순한 사람이란 의미로만 익숙해져왔다. 원래의 언어 속에 함축되어 있는 관계의 의미를 환기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 다름 아닌 人+間이다.
제1전시장 *유럽”아프리카
엄밀한 의미에서 새 천년의 정확한 시작은 2001년 1월 1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2000년이 되면 우리는 20세기도 21세기도 아닌 중간 지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2000년에 우리가 세기와 세기의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완결된 20세기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21세기의 사이인 것이다.이러한 시간적 기준과 접점을 근거로 할 때 2000년 전체는 지난 세기에 대한 회고와 다음 세기에 대한 조망의 표상으로 상징화된다. 이 때 우리는 ‘人+間’이라는 비엔날레의 주제 하에 한 순간을 머물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회고와 전망 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본질의 공간(間) 속의 변화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철학자 와 신학자들에 의한 미래의 예견과 통찰처럼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의 예언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예술가들이 이 추상적이고도 난해한 ‘변화’의 개념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특정 서방세계와 문화적으로 소외된 채로 남아 있었던 다수의 비 서방세계의 반응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여기에 광주비엔날레를 통한 흥 미 있는 시도가 있을 것인데, 그 내용은 ‘人+間’의 관계(상황)와 ‘사이’로서의 2000년이라는 시간적 의미 가 결합된 함축적인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북아메리카
토마스 핀켈펄은 2000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인+간”을 이 시대의 인간의 의미를 조명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북미 지역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즉 자화상으로 전시를 구성하고자 한다.
그는 자화상을 서구의 개인적 성향을 대표하는 장르로 보고 이것이 한국이라는 공간-이질적인 맥락에서 보여질 때 새롭게 해석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화상은 최근 수년간 북미 작가들의 주요한 테마로서 사회적, 인종적, 성 정체성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접근되어 왔다.
핀켈펄은 광범위한 계층의 관람객이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 없이도 흥미 있게 비엔날레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전시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전시된 작품 사이사이에 각종 책자에서 발췌한 인용 구, 즉 모호하지 않은 일상적인 언어를 영문과 한글로 부착하여 한국과 북미의 문화적 경험을 교차시키 고자 한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한국의 관람자를 고려하고 있으며 아울러 전세계인들에게 개인의 정체성 이라는 이슈를 던지게 될 것이다.
제2전시장*중남미
이그조티카 인코그니타는 창조와 이산, 그리고 대륙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라틴아메리카가 지니는 정체성과 형식, 그리고 공간을 내외부적으로 어떻게 연출되고 재창조되는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다소 한정적 의미인 "사우스 아메리카"보다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를 선택한 이유는 대륙의 역사적 문화적 실체, 그리고 아메리카 전반에 걸친 이산문제를 감안할때 본질적으로 내재된 정치적 모순관계를 보다 극명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이그조티카 인코그니타는 과거 유럽/미국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무자비한 식민지화, 토착인 일소화 과정과 병행하여 현재까지 남미와의 유지되고 있는 정치적 문화는 절충관계속에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국적 취향을 근본으로 배태된 의도적 오해와 편견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원래 "라틴"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인들에 의해 그레코-로마 전통을 토대로 이상화된 서구문화를 표기하기위해 사용되어졌으나, 그이후 북미자신들이 아메리카라고 주장한이래, 사우스아메리카와 구별하기 위해 남유럽 세력에 의해서 사용되어졌다.
"아메리카"의 접두사로서 "라틴"이란 용어는 이 지역에 대한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식민지적 소유권을 뜻하며, 역사적, 문화적 실체로서 아프리카인, 토착인들을 말살하고 배제한 이상적 "라틴"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특정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는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스페인인, 포루투칼인, 네덜란드인, 아프리카인 혹은 토착 인디언-간의 이질적 문화의 모순과 혼돈이라는 긴장관계로 규정된다. 이렇게 인위적인 합성과정을 거쳐 형성된 복합문화가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며 식민지적 하부구조와 제국주의적 지배하에서 5세기 넘도록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공동체의 상황적 관계에 대해 질문해 보고자한다.
문화, 언어, 정치, 경제가 서로 교차된 대륙, 인간과 문화가 재배치되고 다시 형성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아마도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응축된 모델인지도 모른다. 유럽/미국의 서구모더니즘은 제국주의에 입각해 타문화를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등성을 부정해왔고 그로인해,보편적으로 국제주의의 미학으로 불리워지고있는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모더니즘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안고있는 내외부적 모순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스스로 표출하고 있다.
서구지역을 제외한 동양, 아프리카, 토착인들의 문화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서구에 의해 편협하게 비교되고 종속되어 왔으며, 다른 문화를 약탈했다는 사실은 편리한대로 망각함으로서 서구중심의 예술이 최고인 것처럼 기만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태평양지역의 현대미술은 그 지역적 문화의 기원은 물론, 기반이 결여되었으며 오히려 서구 모더니즘의 형태와 언어를 복제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서구의 문화적 유산은 아프리카, 오리엔트, 아시아 그리고 퍼시픽의 문화 유물과 아이디어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통상항로와 식민지주의에 의해 가속화된 이러한 문화적 동화는 서구 모더니즘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고갱, 피카소, 프랭크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당시의 작가와 건축가들의 작품으로도 입증된다고 하겠다. 서구모더니즘이 비서구국가들로부터의 식민지문화에 "근거"한 것임을 상기해 볼때, 오늘날 작가와 문화
예술관계자들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타자(他者)" 문화의 유래를 다시
들추어내어 재평가하는 작업을 새로이 시도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식민지 경험이라는 특별한 성격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갈등과 이들 지역간 문화적 유출입으로 인해 이같은 문제들이 혼합적이며 복잡성을 내포한다. 북미에서 청교도주의가 유럽과 아프리카, 토착인디언의 인종적 격리를 이루어낸 반면, 남미에서는 "백색화"과정을 통해 토착인과 아프리카인들을 점진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으리라는 계산하에 이종족간 혼인이 장려되었다. 남미대륙중 특히 브라질인들은 수세기 동안에 걸쳐 자신이 토착원주민이나 아프리카혈통임을 자주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순백의 정도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백인계 "라틴"유럽
인의 문화적 이상주의라고 간주해 왔다.
헐리우드의 이국적 취향과 "라틴"이란 용어의 혼돈으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유럽 및 미국인들이 이러한 편견과 미망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헐리우드의 시각에서 라틴아메리카란 종교적, 사회적, 인종적 몰이해를 바탕으로 유럽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과거 3만여년간 발전되어온 이들 토착문화가 체계적으로 파괴된 대륙, 그들에게 유리하게 과장되어 포장된 라틴아메리카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환상적 시각은 미국/유럽인들에게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과 착취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일으켜 주었다.
실제로 헐리우드는 자신들의 시각과는 대조적인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해 맹렬히 반대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그것은 1942년 올슨 웰스의 미완성필름 "그모든 진실"이다. RK0 스튜디오 (과거 라틴아메리카에서 나치의 선전,선동에 반대하는 내용의 필름제작이 위탁되었던 스튜디오임)에서 웰스는 객관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적인 입장에서 브라질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의 필름을 제작하기 시작 하였다. 장가데이로스(인디언/아프리카인으로 혼합된 토착 흑인인 뗏목사공)들이 바가스대통령에게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1,650마일를 여행하면서 겪는 여정을 그린 영화로 아프리카/ 브라질문화와 음악을 즐기는 리오 데자네이로의 파벨라스(마을)의 실체적 상황을 그린 인생드라마이다. RKO와 록팰러 위원회(미 국내문제조정자)와 같은 기관들은 이종족간 혼인과 흑인적 요소가 강조된 부분, 특히 흑인과 백인간의 일상적인 대화가 들어있다는 점을 들어 이 필름이 북미관객들에게 모독이 된다며 웰즈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필름제작자로서 지속적으로 반인종차별운동가였던 웰스는 이같은 압력에 대해 저항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자"라는 이름표가 붙었지만 필름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헐리우드의 고질화된 편견에 대해서 웰스는 "헐리우드 방식대로 낯설은 이국의 전통장면들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내가 굳이 미국을 떠날 필요성 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웰스는 비록 비평가들로부터 "원주민으로 돌아가라"고 비난을 받았지만 헐리우드의 편견에 가득찬 전문가들보다는 브라질인들로부터 직접 필림제작과 관련된 도움을 받았고 그들의 원자료를 토대로 주제를 탐구함으로서, 헐리우드가 일반적으로 외국문화를 소개하던 방식과는라틴아메리카의 현대미술은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계급, 억압받은 아프리카인, 원주민들간의 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된 혼합주의문화라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열강,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압력에 대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연속된 군사적, 정치적 독재에 의한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이들 역학구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교묘히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문화 자체가 갖는 복잡성과 창조성을 통해 혁명적이면서도 난해한 형식을 빌어 개인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슈들이 시적(詩的)으로 그러나 절제된 표현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지적 정체성의 발전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라틴아메리카 현대 미술과 관련된 비평에서 여전히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운동은 브라질의 "식인"운동이다. 특히 1928년 오스발도 데 안드라데의 저서 "카니발리스트 매니페스토(식인선언)", 그리고 같은해 마리오 데 안드라데가 쓴 "마쿠나이마"를 들 수 있다.
이운동은 모더니스트의 유럽중심주의와 유럽의 데카당 (피카소, 브란쿠치, 클리, 고갱) 이 도입 했던 "원시적"요소,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퍼시픽문화를 이국적 풍물화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서 오스발도 데 안드라데는 외국인에대한 저항으로서 변신을 위한 합성화를 강조하였다. 다시말해서, 유럽문화의 테크닉과 아이디어를 통채로 먹어 삼키자는 식인풍습법을 제안하였다. 브라질 식인주의 운동자들은 유럽인들에 대한 식인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투피남바 인디언들의 편을 들어 소위, 유럽 낭만주의자들이 일컫는 "문명에 때묻지 않는 원시인"이란 용어를 경멸했다. 그리하여 지성인들에게 당신은 "식인종인가", 아니면 유럽/
미국의 지배하에서의 "문화적 소외자"인가를 외치는 "투피 혹은 투피가 아닌"이란 상징적인 슬로건이 구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저자는 라틴아메리칸 미술이 모두 정치적 색채를 띄거나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가 직접적인 메시지를 기대해야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명시해둔다.
하지만 각 나라의 유산과 라틴아메리카의 이산은 식민지주의자와 제국주의자라는 틀속에서 특히, 해외정부로부터 조종된 군사적 독재 정권하에서의 혹독한 탄압과
폭력, 그리고 해외의 대중적 미디아들의 상업주의적으로 의도된 정치와 문화에 대한 편견과 왜곡 등이 서로 혼합되어 역동되어 온 것만은 사실이다. 후식민지적 문화
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는 인종, 성, 계급 그리고 권력이 적용된 "타자(他者)"의 복잡한 메카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탐구를 의미하며, 이론적으로는 모더니즘,
모더너티, 아방가르드의 삼위일체적인 개념을 깨트린 재해석의 시도가 요구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러한 비판적 자세는 명령지시 삼권부인 정부, 교회, 그리고
군대에 대해 냉소적이고 불신의 확장을 초래한다.
20세기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그들의 영역내에서 조차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데 있어서 엄청난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국제적 무대에서의 활동이란 두말할 나위
도 없다. 복종이 강요될 때 표현의 자유란 그권리를 위해 저항하는 본성으로 파괴성의 의미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독재정권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을
참지못해 파괴의 첫 대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최근 몇 세기동안 일어났던 각나라의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미국 CIA의 옹호로 1973년 알랜데의 민주적 선거를 뒤덮은 쿠데타를 통해 군부독재를 이끈 피노
체장군은 17여년간 수천명의 작가, 음악가들을 고문, 살해하였다; 1964년 브라질의 쿠데타이후 "5회 인스트튜셔널 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지성인들이 학대, 살인, 고문
당했으며 그 이후 여러해동안 유배생활이 강요되었다; 1970년-1985년 "아르헨티나 혁명"으로 집권한 군부독재의 친위부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함으로써 "사라
짐"이란 용어로 기록되고 있다; 콜롬비아의 "라 비오렌시아(폭력)"는 정부의 오래된 특권으로 1980년이래 정부와 마약마피아 집단 양자를 위해 일하던 공수부대에
의해 수많은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폭압속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지적 운동이란 근본적으로 정치성을 띄게 마련이다. 억압된 정치적 통치하에서 역사적 현실문제를 탐구하고 그들의 언어를 표
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함축적이고 복잡한 표현방식을 빌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호체계가 적용됨으로서 전반적으로 의미가 모호성을 띄게되나 장소에 대한 특이한
공명성을 내포함으로서 동질문화의 개념 테두리내에서는 예리하고 의미있는 요소들을 함축하게된다.
광주비엔날레 2000의 전반적인 주제인 "인간과 공간"은 구성적 보편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식민지적 시각으로부터 "공간"이 이해되고 백인으로
서 "인간"의 용어가 해석되는 서구모더니스트의 자만성을 내포한다고 하겠다. 현재 계속 다루어지는 담론으로서 "지구촌 문화"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점은 모든 사
람들이 하이퍼 미디어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복합문화의 가치를 서로 분배하면서 함께 참여한 공간, 즉 우주적 공간의 "무장소(non-location)"란 개념의 세계에 몰입
한다는데 있다.실제로 지구촌 문화를 조성하고 과속화시키는 것은 인터넷이며 다양하고 대립적 특성을 지닌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세계를 움직이는 유럽/미국 경
제국가와 하이-테크 산업 단지의 지지로 인하여 "세계적 시각"이란 용어로 부각되었고 여기서 주도권을 가진 국제중심의 모더니스트가 담당했던 역할과 유사함을 발
견할 수 있다. "타자(他者)"문화가 고속화된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국적"이고 "원시적"이던 이들 문화에 대한 탐구열이 식어가면서 천천히 서구식 가치체제로 흡수되
어간다는데 그문제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한공간에서 다른공간으로 전달되는 아이디어의 전달성과 두공간사이에서 일어나는 연쇄반응에 대한 문제이다. 예를들어 큐레이터는 무역상인들처
럼 아이디어와 가치를 한공간에서 다른장소로 이동하며 그공간사이에서 유발되는 역동적 에너지를 함유하는 전달인이라고 할수있다. 이러한 유동적 흐름은 결코 단
순히 일반통행 일수가 없다. 그것은 주는자와 받는자의 물물교환에 의해 서로 전염되어 영향을 입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란 문화의 원래의 개념과 지배권이
사라진 돛을 내릴수 없는 "장소"와 집결되어 비유되며, 나아가서 지구촌 문화란 "가치저하의 진행과정"으로 타국과의 전후상황 관계에서 제거되고 걸러진 의미의
시스템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를 정의 내리자면 외부(타국)와의 전후상황 관계에서의 "전이" 라고 단정 내릴수가 있는데,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아프리칸 노예,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대륙내의 원주민, "대륙"에 대한 서구유럽인들의 편견으로 인해, "장소"가 지닌 특이한 저항력들이 문화적 토대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라틴아메리카 미술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자면 유럽/미국의 서구적 사고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들이 자신에 대한 재평가와 가치에 대해 검
증을 가지는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전시를 통해서 설명되는 "세계적 시각"이란 서구식 관점의 세계적 시각이 아닌, 그역행으로 조명해주는 "세계적 시각"이기 때
문이다.
*아시아
2000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주제 ‘人+間’을 바탕으로, 아시아 섹션은 [보이지 않는
경계 - 변모하는 아시아 미술 (Invisible Boundary: Metamorphosed Asian Art]이라는
타이틀을 정하였다.
현대 아시아 작가들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아시아 근대사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
고, 역사 및 현대의 사실과 현상을 반성의 눈으로 보며, 더욱 더 자기의 표현을 기점
으로 21세기를 향해 무수한 물음을 계속해서 발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스스로 향유한 아시아로의 물음임과 동시에, 아시아 이외의 세계로 관
철하는 21세기의 과제가 될 것이다.
아시아 11개국에서 선정한 20명의 작가들은 현대 아시아를 대표 하는 작가들이며,
그들은 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이 들어있는 내년 봄, 광주에 집결한다. 그 깊은 사색과
고발에 가득 찬 메시지는 광주와 한국인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그들 중 다음 두 명의 작가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1946년 카라치에서 출생한 나리니 마라니(Nalini Malani, 인도)는 인도가 독립하기
한해 전, 캘커타로 이 주, 문바이에서 미술 공부를 한 후, 프랑스 정부 급비생으로
파리에서 유학했다. 회화, 드로잉, 설치 및 다채로운 표현을 구사하는 그녀는 이번
광주에서는 영상을 이용한 최근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난민이 사용한 12개의 트렁
크에는 모니터가 내장되어, 킬트천을 걷어내면 화상이 나타난다. 그 화상은 보시니
아 전쟁, 비키니환초에서의 원폭실험장면, 그에 의해 기형아로 태어난 사람들의 영
상이다. 그러한 오늘날의 지구를 덮는 어리석음에 대한 고발은, 나리니 마라니가 스
스로를 난민의 시선으로 볼 때 한층 현실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현대인들에게 반성을 추구하는 어떠한 ”신화”가 숨겨져 있다.
1955년 상하이 출생인 구웬다 Gu Wenda (谷文達, 중국)는 상하이 아트스쿨, 중국 아
트 아카데미에서 공 부한 후, 1987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
고 있다. 머리카락을 사용하여 설치를 하며 머리카락으로 한자도 만든다. 한자는 중
국사람들의 혼이며, 그것과 인류의 보편적인 머리카락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깜짝
놀라게 한다. 머리카락은 영혼을 품고 있다. 죽은 자의 유품으로서 가장보편적인 커
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된다. 또한 여성에게는 생명만큼이나 귀중한 것이다. 이번 프
로젝트는 약 10평방미 터의 벽에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아
본전시 <한국·오세아니아> 지역은 주제 ”人+間”에 천착하기보다는 인간에 관계되는 비판적 제 이슈들을 광범위하게 다루어 봄으로써 현대미술이 시사하는 정치적
의미를 재고하고 이를 통해 양국 미술의 현황과 정체 성을 가늠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인간이 주제이면서도 그것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즉 ”인간이 부각되지 않는 인간전”이라는 기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직설적인 리얼리즘을 탈피한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인 형상화, 인간적 요소가 배제 된 듯한 개념적인 작품 또는 추상 작업에서도 인간적 관계항이 찾아질 수 있다.
간접적인 소통방식으로 관객 의 참여도를 높이는 전체적으로 ”쿨(cool)”한 매체처럼, 메시지가 간접적이고 전달 방식이 소극적인 비사실적, 비설명적 작품을 통해 관객
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한다.
호주(오세아니아)의 경우는 자국의 지역적, 문화적 차이를 대변하면서 단일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의 습 관, 전통, 정신을 표출한다.
원주민 미술은 정체성과 관련하여 호주미술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인데 여느 지역 주의 미술과 다르게 새로운 시각에서 생산, 해석, 인정되는 지역주의 미술의 새로운
표본이다. 호주미술은 또한 서구적인 현대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문화 가치의 이슈를 다루는 원주민 미술과 함께 역동적인 현대사 회를 투사하고 있는데 현 호주 문명사회에 대한 문명비판적이고 자기고백적인 작업들이 이번
전시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는 하나의 주제아래 여러 지역이 통합되는 형식을 띠고 있기 때 문에 그만큼 주제에 대한 밀도가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인+간, 즉 인간과 그 상황, 인간 과 그 조건이란 주제는 해석에 따라 그 범주가 엄청나게 넓어질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각 커미셔너의 한결같은 해석을 바란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전체에 이른다는 계 획이었고 그럼으로써 다양한 가운데 통일된 성과를 거두려
고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각 공간을 연결시켜주고 주제를 환기시켜주는 장치가 필요함을 느꼈다. 다시 말하면, 특별코너는 여러 공간에 흩어져 있으면서 각 공간을 이어주
고 주제를 다시 금 생각케 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특별코너는 각 지역의 공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각 지역 공간과 전체 공간의 일체화란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특별코너 는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전체적
인 특수한 성격을 띄게 된다.
특별코너는 다시 세분하여 회 고의 공간, 명상의 공간, 창조의 공간으로 성격화했다.
회고의 공간은 역사 속의 인간상, 역사의 틀 속에 인간의 조건과 상황은 어떤 것이었나를 살펴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과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반추해 보는 것이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대가 아니라 오늘, 내일 과 연결되어 있는 어느 한 순간이다.
오늘과 내일에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과거는 살아 있는 시간 속에 놓이게 된다.
명상의 공간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과 그 조건은 무엇 인가, 인간과 그 상황은 어떤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다시 금 생각해 본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와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 대한 명상 은 언제나 근원성을 지니고 있다. 즉 자신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창조의 공간은 미래의 인간상, 미래의 인간조건은 무엇인가를 예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래는 불확정의 시간대다. 그러나 인간은 바람직한 미래의 공간, 이상적인 공간을 꿈꾼다. 미래가 이상적인 꿈을 예시해주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
을 것이다. 미래 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항상 창조의 공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영상
영상 주제:” 상처(scar)”
사람은 자신의 삶의 길이와 깊이만큼 몸 어느 구석엔가 상처를 갖고 살기마련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상처로 덮여진 몸뚱아리를 갖고 살아가는 특이한 정치, 경제,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지혜
를 배우기도 했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의 아린 기억들을 쉽게 지우거나, 추억으로 만
들지 않는 강한 자의식을 체험적으로 배워 오기도 했다.
20세기가 마지막이라고 아우성이지만, 화해를 통해 핑크빛 미래를 공유하자고 쉽
게 떠들어대지만 봉합된 피부 쪼가리 안에 아직도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우리는 저
마다 가슴에 품고 산다. ”상처”에 대한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치유방
식에서 공공적 노력이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
명함을 배태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공동체에서 그리고 개인으로 살아남기를 거듭 시도하지만 모
든 노력들이 칼끝에 베인 상처처럼 기억 속에 또렷할 뿐 베인 자국들은 새살로 채워
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광주비엔날레 영상부문 프로그램들을 통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회귀적으로 더듬거나 구체적 사실로부터 흩어진 상흔을 모아 지역적 특수
성에 덧붙이는 또 하나의 도돌이표가 아니라 현재의 제 조건들을 지금 있는 곳으로
부터 문제를 확인하고 제기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상처를 드러내고자 한다.
민주적 소통방식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매체를 갖고 2000광주비엔날레에서 우리 는
그 상처들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상처를 보며 우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
고 있는지 영상물에 담아 내고자 한다.
상처는 공유되지 않는다. 상처에 대한 기억들은 더구나 공유할 수 없다. 상처에 대
한 두려움과 상처를 이겨낸 자신은 누구와 견주어 높낮이를 가늠할 수 없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굳이 이 ”상처”를 되뇌이게 하는 것은 제 각각 품고 있을 상처 들을 꺼
내어 보이고 핥아내어 똑같이 상처를 너와 내가 나누어 몸에 지니지 않기 를 바라
기 때문이다.
구성 프로그램
전시
“광주에서 25시간”
음악과 이미지, 개김이방,
사진 (광주에서 살기)
강좌
“영상으로 세상 읽기”
시민강좌, 영상워크샵,
심포지움 및 세미나
웹
”가상의 진실”
웹아트,
멀티미디어 방식의 시각예술품
상영
“보고, 읽고, 생각하기”
영상기록물과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Access
Channel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소!
비디오저널
*미술전시관 소개
-중외공원 관리사무소에 접해있는 북한관 - 전경중외공원 중심부에 세워진 교육홍보관은 비엔날레의 대외홍보와 각종 교육, 전시등을 위한 시설이다.
2000광주비엔날레 행사내용
특별전 -인간과 성
축제행사-국제미술의상전
한일 친선교류2000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은 사라져 가는 민속자료를 수집, 전시함으로써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깨치고 우리문화의 원형을 후손들에게 전승하고자 1987년 국내최대의 시
립박물관으로 개관 하였다.
상설전시실의 1층은 물질문화 전시실로 의식주, 생업, 민속공예를, 2층은 정신문화 전시실로 한 사람의 일생을 중심주제로 하여 민속놀이, 세시풍속, 민간신앙등을 체
계적으로 전시하여 이지역의 민속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전시에 있어서는 실물, 모형, 마네킹, 미니어쳐, 디오라마등 다양한 전시기법을 이용하여 생동감있게
전시하였다.
민족고유의 명절때 야외놀이 마당에서 그네뛰기, 돌독들기, 널뛰기, 윷놀이, 줄넘기, 제기차기, 닭싸움, 도롱태굴리기, 팔씨름, 투호등 민속놀이를 실시하고 있다.
http://window.kisc.net/museum/
2000광주비엔날레 행사내용
영상행사
⑴전시-광주에서의 25시간
⑵웹 -가상의 진실
⑶상영-보고, 읽고, 생각하기
-중외공원에는 비엔날레관을 중심으로 북
한관, 교육홍보관, 야외전시장 등의 전시
실과 축구, 테니스, 야구, 수영장 등의 체
육시설과, 민속박물관, 생활과학관, 역 사
관, 문화관, 토산품 전시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입 장 료 - 무료(단 놀이시설은 별도)
개장시간 -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
주차시설 - 1,700 평방미터
편의시설 - 야외운동장,야외음악당,야외
공연장
2000광주비엔날레 행사내용
⑴의식행사-개막제/폐막제
⑵공연행사-해외예술단체 초청공연
-국내예술단체 공연
⑶특별행사-한일친선교류2000
-꽃으로 만나는 광주비엔날레
-문학과 미술의 만남
⑷특별전-인간의 숲, 회화의 숲
-2000 비엔날레가 치러질 본전시관의 모습.
3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세계각국의 작가들이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2000광주비엔날레 행사내용
본전시-6개 권역별 전시
특별전-예술과 인권
-이상으로..막내(mini)의..광주 비엔날레에 대해서 이였습니다.-
아 글구....제가 찍은 사진은 나중에 알려드리게 씁니다
2000광주비엔날레 주제로 설정된 "人+間"은 사람 "人"과 사이"間"을 해
체해서 재구성한 일종의 造語다.
인간과 사회, 인간과 성,인간과 권력, 인간과 환경 등 종횡으로 걸쳐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인간이라는 본연의 문제로 돌아가 새 문화적 비전을 보
여주자는 의도를 2000광주비엔날레 주제는 담고 있다. 즉 각각 다른 지역,
조건, 상황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참된 의미에 대한 예술의 풍부한 발언을
"人+間"이라는 주제를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기말 세기초의 과도적 시점인 2000년은 과거의 반성과 미래의 전망이
교차한다.따라서 오는 2000년 3월에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에 가해졌던 모든 모순 구조를 파헤쳐 극복해 가자는 취
지를 선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즉 미래의 인간이 유지할 보편적 삶의 조건을 보다 건강하게가다듬기위
하여 인간에 대한 재해석, 재조명, 재종합을 함축하는 주제 "人+間" 을
2000광주비엔날레 슬로건으로 내건 것이다.
한자어로 표기된 "人間"이라는 용어 자체가 동양적 사상을 충분히 내포하
고 있듯이 2000광주비엔날레는 동양정신을 바탕에 깔면서인간 자신의 문
제를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 개인과 지역세계 등을 바라보자는 의도를미
술의 어법으로 펼쳐 보일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人+間"은 인간이란 글자를 해체해서 재구성한 것
이다. 人은 사람이며 間은 사이이다.
人의 자의적 해석은 직립된 사람의 걸어가는 옆모습을 걷잡은 것이라고
도 하고, 두 개의 획이 서로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즉 남자
와 여자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間"은 문(門) 틈으로 스며드는 햇빛(日)을 의미한다. "間"은 공간상의 간
격일 수도 시간상의 거리일수도 있다 . 따라서 "人+間"엔 단순한 사람만이
아닌 사람과 주변, 사람과 상황, 사람과 그 조건 등 복합적인 의미가 함축
되어 있다.
그냥 인간이라고 했을 때는 이런 복합적인 의미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
를 해체했을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두 글자를 해체하고 재결합한 것은 두
글자를 대립항으로 만들어 더욱 그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간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주제설정에서 먼저 생각된 것은 1회와 2회 비엔날레와 연계되는 정신적
공유성을 획득할 것, 광주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할 것, 한국, 아시아
라는 입지적 조건을 염두에 둘 것,2000년이란 새로운천년의 문턱에 이르
렀다는 시점을 고려할 것 등이었다.
3회 비엔날레의*주제
人+間(man+space)
제 3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人 + 間>이다. 인간이란 글자를 해체하여 결합한 것이다. 원래의 인간과는 다른 함의를지닌 신조어이다. 인(人)은 글자그대로 사람이라면, 간(間)은 사람을 에워싸워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단순한 물리적 의미의 공간이기보다는 사람이 처한상황, 또는 조건 등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된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우리자신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이는 곧 생각을 하는 주체에 대한 존재의 물음이지 않을 수 없다. 대전환의 시점을 맞는 주체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의 존재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원래의 인간(人間)이란 말속에는 이 같은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오랜 사용의 관습에 의해 인간은 단순한 사람이란 의미로만 익숙해져왔다. 원래의 언어 속에 함축되어 있는 관계의 의미를 환기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 다름 아닌 人+間이다.
제1전시장 *유럽"아프리카
엄밀한 의미에서 새 천년의 정확한 시작은 2001년 1월 1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2000년이 되면 우리는 20세기도 21세기도 아닌 중간 지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2000년에 우리가 세기와 세기의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완결된 20세기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21세기의 사이인 것이다.이러한 시간적 기준과 접점을 근거로 할 때 2000년 전체는 지난 세기에 대한 회고와 다음 세기에 대한 조망의 표상으로 상징화된다. 이 때 우리는 ‘人+間’이라는 비엔날레의 주제 하에 한 순간을 머물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회고와 전망 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본질의 공간(間) 속의 변화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철학자 와 신학자들에 의한 미래의 예견과 통찰처럼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의 예언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예술가들이 이 추상적이고도 난해한 ‘변화’의 개념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특정 서방세계와 문화적으로 소외된 채로 남아 있었던 다수의 비 서방세계의 반응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여기에 광주비엔날레를 통한 흥 미 있는 시도가 있을 것인데, 그 내용은 ‘人+間’의 관계(상황)와 ‘사이’로서의 2000년이라는 시간적 의미 가 결합된 함축적인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북아메리카
토마스 핀켈펄은 2000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인+간"을 이 시대의 인간의 의미를 조명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북미 지역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즉 자화상으로 전시를 구성하고자 한다.
그는 자화상을 서구의 개인적 성향을 대표하는 장르로 보고 이것이 한국이라는 공간-이질적인 맥락에서 보여질 때 새롭게 해석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화상은 최근 수년간 북미 작가들의 주요한 테마로서 사회적, 인종적, 성 정체성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접근되어 왔다.
핀켈펄은 광범위한 계층의 관람객이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 없이도 흥미 있게 비엔날레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전시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전시된 작품 사이사이에 각종 책자에서 발췌한 인용 구, 즉 모호하지 않은 일상적인 언어를 영문과 한글로 부착하여 한국과 북미의 문화적 경험을 교차시키 고자 한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한국의 관람자를 고려하고 있으며 아울러 전세계인들에게 개인의 정체성 이라는 이슈를 던지게 될 것이다.
제2전시장*중남미
이그조티카 인코그니타는 창조와 이산, 그리고 대륙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라틴아메리카가 지니는 정체성과 형식, 그리고 공간을 내외부적으로 어떻게 연출되고 재창조되는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다소 한정적 의미인 "사우스 아메리카"보다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를 선택한 이유는 대륙의 역사적 문화적 실체, 그리고 아메리카 전반에 걸친 이산문제를 감안할때 본질적으로 내재된 정치적 모순관계를 보다 극명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이그조티카 인코그니타는 과거 유럽/미국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무자비한 식민지화, 토착인 일소화 과정과 병행하여 현재까지 남미와의 유지되고 있는 정치적 문화는 절충관계속에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국적 취향을 근본으로 배태된 의도적 오해와 편견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원래 "라틴"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인들에 의해 그레코-로마 전통을 토대로 이상화된 서구문화를 표기하기위해 사용되어졌으나, 그이후 북미자신들이 아메리카라고 주장한이래, 사우스아메리카와 구별하기 위해 남유럽 세력에 의해서 사용되어졌다.
"아메리카"의 접두사로서 "라틴"이란 용어는 이 지역에 대한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식민지적 소유권을 뜻하며, 역사적, 문화적 실체로서 아프리카인, 토착인들을 말살하고 배제한 이상적 "라틴"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특정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는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스페인인, 포루투칼인, 네덜란드인, 아프리카인 혹은 토착 인디언-간의 이질적 문화의 모순과 혼돈이라는 긴장관계로 규정된다. 이렇게 인위적인 합성과정을 거쳐 형성된 복합문화가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며 식민지적 하부구조와 제국주의적 지배하에서 5세기 넘도록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공동체의 상황적 관계에 대해 질문해 보고자한다.
문화, 언어, 정치, 경제가 서로 교차된 대륙, 인간과 문화가 재배치되고 다시 형성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아마도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응축된 모델인지도 모른다. 유럽/미국의 서구모더니즘은 제국주의에 입각해 타문화를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등성을 부정해왔고 그로인해,보편적으로 국제주의의 미학으로 불리워지고있는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모더니즘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안고있는 내외부적 모순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스스로 표출하고 있다.
서구지역을 제외한 동양, 아프리카, 토착인들의 문화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서구에 의해 편협하게 비교되고 종속되어 왔으며, 다른 문화를 약탈했다는 사실은 편리한대로 망각함으로서 서구중심의 예술이 최고인 것처럼 기만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태평양지역의 현대미술은 그 지역적 문화의 기원은 물론, 기반이 결여되었으며 오히려 서구 모더니즘의 형태와 언어를 복제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서구의 문화적 유산은 아프리카, 오리엔트, 아시아 그리고 퍼시픽의 문화 유물과 아이디어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통상항로와 식민지주의에 의해 가속화된 이러한 문화적 동화는 서구 모더니즘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고갱, 피카소, 프랭크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당시의 작가와 건축가들의 작품으로도 입증된다고 하겠다. 서구모더니즘이 비서구국가들로부터의 식민지문화에 "근거"한 것임을 상기해 볼때, 오늘날 작가와 문화
예술관계자들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타자(他者)" 문화의 유래를 다시
들추어내어 재평가하는 작업을 새로이 시도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식민지 경험이라는 특별한 성격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갈등과 이들 지역간 문화적 유출입으로 인해 이같은 문제들이 혼합적이며 복잡성을 내포한다. 북미에서 청교도주의가 유럽과 아프리카, 토착인디언의 인종적 격리를 이루어낸 반면, 남미에서는 "백색화"과정을 통해 토착인과 아프리카인들을 점진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으리라는 계산하에 이종족간 혼인이 장려되었다. 남미대륙중 특히 브라질인들은 수세기 동안에 걸쳐 자신이 토착원주민이나 아프리카혈통임을 자주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순백의 정도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백인계 "라틴"유럽
인의 문화적 이상주의라고 간주해 왔다.
헐리우드의 이국적 취향과 "라틴"이란 용어의 혼돈으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유럽 및 미국인들이 이러한 편견과 미망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헐리우드의 시각에서 라틴아메리카란 종교적, 사회적, 인종적 몰이해를 바탕으로 유럽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과거 3만여년간 발전되어온 이들 토착문화가 체계적으로 파괴된 대륙, 그들에게 유리하게 과장되어 포장된 라틴아메리카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환상적 시각은 미국/유럽인들에게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과 착취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일으켜 주었다.
실제로 헐리우드는 자신들의 시각과는 대조적인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해 맹렬히 반대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그것은 1942년 올슨 웰스의 미완성필름 "그모든 진실"이다. RK0 스튜디오 (과거 라틴아메리카에서 나치의 선전,선동에 반대하는 내용의 필름제작이 위탁되었던 스튜디오임)에서 웰스는 객관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적인 입장에서 브라질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의 필름을 제작하기 시작 하였다. 장가데이로스(인디언/아프리카인으로 혼합된 토착 흑인인 뗏목사공)들이 바가스대통령에게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1,650마일를 여행하면서 겪는 여정을 그린 영화로 아프리카/ 브라질문화와 음악을 즐기는 리오 데자네이로의 파벨라스(마을)의 실체적 상황을 그린 인생드라마이다. RKO와 록팰러 위원회(미 국내문제조정자)와 같은 기관들은 이종족간 혼인과 흑인적 요소가 강조된 부분, 특히 흑인과 백인간의 일상적인 대화가 들어있다는 점을 들어 이 필름이 북미관객들에게 모독이 된다며 웰즈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필름제작자로서 지속적으로 반인종차별운동가였던 웰스는 이같은 압력에 대해 저항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자"라는 이름표가 붙었지만 필름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헐리우드의 고질화된 편견에 대해서 웰스는 "헐리우드 방식대로 낯설은 이국의 전통장면들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내가 굳이 미국을 떠날 필요성 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웰스는 비록 비평가들로부터 "원주민으로 돌아가라"고 비난을 받았지만 헐리우드의 편견에 가득찬 전문가들보다는 브라질인들로부터 직접 필림제작과 관련된 도움을 받았고 그들의 원자료를 토대로 주제를 탐구함으로서, 헐리우드가 일반적으로 외국문화를 소개하던 방식과는라틴아메리카의 현대미술은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계급, 억압받은 아프리카인, 원주민들간의 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된 혼합주의문화라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열강,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압력에 대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연속된 군사적, 정치적 독재에 의한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이들 역학구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교묘히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문화 자체가 갖는 복잡성과 창조성을 통해 혁명적이면서도 난해한 형식을 빌어 개인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슈들이 시적(詩的)으로 그러나 절제된 표현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지적 정체성의 발전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라틴아메리카 현대 미술과 관련된 비평에서 여전히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운동은 브라질의 "식인"운동이다. 특히 1928년 오스발도 데 안드라데의 저서 "카니발리스트 매니페스토(식인선언)", 그리고 같은해 마리오 데 안드라데가 쓴 "마쿠나이마"를 들 수 있다.
이운동은 모더니스트의 유럽중심주의와 유럽의 데카당 (피카소, 브란쿠치, 클리, 고갱) 이 도입 했던 "원시적"요소,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퍼시픽문화를 이국적 풍물화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서 오스발도 데 안드라데는 외국인에대한 저항으로서 변신을 위한 합성화를 강조하였다. 다시말해서, 유럽문화의 테크닉과 아이디어를 통채로 먹어 삼키자는 식인풍습법을 제안하였다. 브라질 식인주의 운동자들은 유럽인들에 대한 식인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투피남바 인디언들의 편을 들어 소위, 유럽 낭만주의자들이 일컫는 "문명에 때묻지 않는 원시인"이란 용어를 경멸했다. 그리하여 지성인들에게 당신은 "식인종인가", 아니면 유럽/
미국의 지배하에서의 "문화적 소외자"인가를 외치는 "투피 혹은 투피가 아닌"이란 상징적인 슬로건이 구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저자는 라틴아메리칸 미술이 모두 정치적 색채를 띄거나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가 직접적인 메시지를 기대해야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명시해둔다.
하지만 각 나라의 유산과 라틴아메리카의 이산은 식민지주의자와 제국주의자라는 틀속에서 특히, 해외정부로부터 조종된 군사적 독재 정권하에서의 혹독한 탄압과
폭력, 그리고 해외의 대중적 미디아들의 상업주의적으로 의도된 정치와 문화에 대한 편견과 왜곡 등이 서로 혼합되어 역동되어 온 것만은 사실이다. 후식민지적 문화
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는 인종, 성, 계급 그리고 권력이 적용된 "타자(他者)"의 복잡한 메카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탐구를 의미하며, 이론적으로는 모더니즘,
모더너티, 아방가르드의 삼위일체적인 개념을 깨트린 재해석의 시도가 요구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러한 비판적 자세는 명령지시 삼권부인 정부, 교회, 그리고
군대에 대해 냉소적이고 불신의 확장을 초래한다.
20세기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그들의 영역내에서 조차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데 있어서 엄청난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국제적 무대에서의 활동이란 두말할 나위
도 없다. 복종이 강요될 때 표현의 자유란 그권리를 위해 저항하는 본성으로 파괴성의 의미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독재정권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을
참지못해 파괴의 첫 대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최근 몇 세기동안 일어났던 각나라의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미국 CIA의 옹호로 1973년 알랜데의 민주적 선거를 뒤덮은 쿠데타를 통해 군부독재를 이끈 피노
체장군은 17여년간 수천명의 작가, 음악가들을 고문, 살해하였다; 1964년 브라질의 쿠데타이후 "5회 인스트튜셔널 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지성인들이 학대, 살인, 고문
당했으며 그 이후 여러해동안 유배생활이 강요되었다; 1970년-1985년 "아르헨티나 혁명"으로 집권한 군부독재의 친위부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함으로써 "사라
짐"이란 용어로 기록되고 있다; 콜롬비아의 "라 비오렌시아(폭력)"는 정부의 오래된 특권으로 1980년이래 정부와 마약마피아 집단 양자를 위해 일하던 공수부대에
의해 수많은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폭압속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지적 운동이란 근본적으로 정치성을 띄게 마련이다. 억압된 정치적 통치하에서 역사적 현실문제를 탐구하고 그들의 언어를 표
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함축적이고 복잡한 표현방식을 빌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호체계가 적용됨으로서 전반적으로 의미가 모호성을 띄게되나 장소에 대한 특이한
공명성을 내포함으로서 동질문화의 개념 테두리내에서는 예리하고 의미있는 요소들을 함축하게된다.
광주비엔날레 2000의 전반적인 주제인 "인간과 공간"은 구성적 보편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식민지적 시각으로부터 "공간"이 이해되고 백인으로
서 "인간"의 용어가 해석되는 서구모더니스트의 자만성을 내포한다고 하겠다. 현재 계속 다루어지는 담론으로서 "지구촌 문화"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점은 모든 사
람들이 하이퍼 미디어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복합문화의 가치를 서로 분배하면서 함께 참여한 공간, 즉 우주적 공간의 "무장소(non-location)"란 개념의 세계에 몰입
한다는데 있다.실제로 지구촌 문화를 조성하고 과속화시키는 것은 인터넷이며 다양하고 대립적 특성을 지닌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세계를 움직이는 유럽/미국 경
제국가와 하이-테크 산업 단지의 지지로 인하여 "세계적 시각"이란 용어로 부각되었고 여기서 주도권을 가진 국제중심의 모더니스트가 담당했던 역할과 유사함을 발
견할 수 있다. "타자(他者)"문화가 고속화된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국적"이고 "원시적"이던 이들 문화에 대한 탐구열이 식어가면서 천천히 서구식 가치체제로 흡수되
어간다는데 그문제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한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