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더한 사람을 떠올리며 자심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렇게라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는 이도 있겠지만...
삶은 포기하기란 참 쉬운 것 같기도 하면서 어려운 것 같다.
나는 6살때 처음 죽음을 접했다.
5살때 아버지의 죽음..그러나 그것은 아직 죽음이란 의미를 몰랐을때였다.
“아빠어디갔어?” 라고 내가 물을때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약간 얼버무리면서 “외국에 돈벌러 갔단다..” 하시거나 눈물을 떨구었다.
그러다가 한 순간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오열을 보면서 그것이 죽음..더이상 내겐 나를 사랑해주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묘”와 “죽음”의 의미를 어린나이에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른들은 어머니옆에서 울고 있던 내가 왜그리도 서럽게 울었는지를 아무도 알지를 못했다.
아마 어머니가 그렇게 우셨기에 놀래서 우는 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 눈물은 어린나이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죽음을 이해해야만 했던 내 자신이 서러워서였다.
그 뒤로 난 겉은 어리지만 속은 어른처럼 되어버린 애늙은이가 되었다.
아이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던..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너무도 같이 공유하기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나는 나만이 이렇게 힘든지 알았다. 그리고 하늘에대고 수없이 되내었다.
왜 내가 이래야만 되냐고...
그러던 중,
어머니의 친구분 이야기를 몰래 엿듣게 되었다.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그날 그것을 안 어머니께 무지하게 맞고 야단을 맞아야만 되었다.
그러나 난 초등학교 5학년때의 자살시도를 멈출 수 있었다.
나만이 힘든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친구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윗집에 살던 노처녀였다. 어머니는 그때 두 아이에 엄마였지만 그녀는 술집을 경영하는 잘 나가는 마담이셨다.
예쁜 외모와 지적인 행동과 나긋하신 목소리..정말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나이가 겨우 3살정도였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녀의 남자친구와 그녀의 행복해 하던 모습들이..
그러나..언젠가 그녀와 우리가족의 만남의 자리에선 그녀의 남자친구는 바뀌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남매..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달라졌다.
난 묻고 싶었다...그 아저씨는 어디있어요..
그녀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왜 그랬는지는 어머니께 엿들은 이야기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친구분과 행복한 나날은 보내셨다고 했다. 그 분은 돈 많은 사업가였고 그녀와는 약혼까지 했었다.
그 분은 아이를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꼭 모임이 있으면 우리가족을 함께 초대 할 정도로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이를 사랑했다고 한다.
약혼식을 올린 후 곧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그 두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셨을때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어느날..그녀가 우리어머니께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를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던 두분은 그녀의 불임진단으로 파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끝내는 아내를 구타하거나 구박이 잦았으며..외박까지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혼을 하라고 했고 그녀는 싫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그를 사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행복하지는 않았을텐데..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지..
그녀의 남자는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여자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두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접한 그녀는 자살을 기도하셨고..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셨다.
그 뒤에 그녀는 이혼에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은 보고 그렇게 좋아하던 그 남자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며..
그 뒤에 그녀는 다시 술집에 정열을 쏟으셨고 애가 둘이나 있는 이혼남과 재혼을 하셨다. 그것도 아주 빨리..어머니까 말릴 틈도 없이..
아마 그 남자를 잊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그러나 그 결혼은 앞이 빤히 보이는 재혼이었다.
그녀는 그 남자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외로울 때 힘들 때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한 논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는 그때 마땅한 직업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애가 둘이나 있었다고 하니..어머니의 말로는 그녀가 아이둘을 보고 재혼을 했다고도 한다.
그때 그 남자의 집에서 울고 있는 아이 둘을 보고 애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금방 아이들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애들에게 엄마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셨다고.
그렇게 재혼한 그녀는 몇달도 가지않아 새남편의 술만 먹으면 행해지는 자신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구타로 점점 생활은 파경으로 치닫고 거기다가 남편의 무능력과 집안의 생계를 자신이 꾸려나가야 되는 집안일과 바깥일로 그녀는 2배로 힘이 들고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 같다고 한다.
지금 그녀는 예전과 다름 없다.
아이들은 이제 성장을 했고 그남매 중에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친모가 아님을 알고 가출도 하며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가 자신이 배아파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그 남매생각에 자신이 떠날 수도 있었지만 못 떠났음을 알고 그들은 어머니께 더없이 잘 하고있다고 한다.
그녀에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요 며칠 전..난 그녀를 찾아 뵈었다.
그녀가 경영하는 호프집에.
“행복하세요?”
란 뜬끔없는 질문에 그녀는 약간의 옅은 미소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행복이란 것은 자신이 만들어 나가기 마련이란다..지금 나는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행복한거지..”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그녀가 준 음료수를 말없이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가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더한 사람을 떠올리며 자심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렇게라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는 이도 있겠지만...
삶은 포기하기란 참 쉬운 것 같기도 하면서 어려운 것 같다.
나는 6살때 처음 죽음을 접했다.
5살때 아버지의 죽음..그러나 그것은 아직 죽음이란 의미를 몰랐을때였다.
"아빠어디갔어?" 라고 내가 물을때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약간 얼버무리면서 "외국에 돈벌러 갔단다.." 하시거나 눈물을 떨구었다.
그러다가 한 순간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오열을 보면서 그것이 죽음..더이상 내겐 나를 사랑해주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묘"와 "죽음"의 의미를 어린나이에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른들은 어머니옆에서 울고 있던 내가 왜그리도 서럽게 울었는지를 아무도 알지를 못했다.
아마 어머니가 그렇게 우셨기에 놀래서 우는 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 눈물은 어린나이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죽음을 이해해야만 했던 내 자신이 서러워서였다.
그 뒤로 난 겉은 어리지만 속은 어른처럼 되어버린 애늙은이가 되었다.
아이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던..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너무도 같이 공유하기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나는 나만이 이렇게 힘든지 알았다. 그리고 하늘에대고 수없이 되내었다.
왜 내가 이래야만 되냐고...
그러던 중,
어머니의 친구분 이야기를 몰래 엿듣게 되었다.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그날 그것을 안 어머니께 무지하게 맞고 야단을 맞아야만 되었다.
그러나 난 초등학교 5학년때의 자살시도를 멈출 수 있었다.
나만이 힘든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친구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윗집에 살던 노처녀였다. 어머니는 그때 두 아이에 엄마였지만 그녀는 술집을 경영하는 잘 나가는 마담이셨다.
예쁜 외모와 지적인 행동과 나긋하신 목소리..정말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나이가 겨우 3살정도였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녀의 남자친구와 그녀의 행복해 하던 모습들이..
그러나..언젠가 그녀와 우리가족의 만남의 자리에선 그녀의 남자친구는 바뀌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남매..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달라졌다.
난 묻고 싶었다...그 아저씨는 어디있어요..
그녀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왜 그랬는지는 어머니께 엿들은 이야기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친구분과 행복한 나날은 보내셨다고 했다. 그 분은 돈 많은 사업가였고 그녀와는 약혼까지 했었다.
그 분은 아이를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꼭 모임이 있으면 우리가족을 함께 초대 할 정도로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이를 사랑했다고 한다.
약혼식을 올린 후 곧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그 두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셨을때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어느날..그녀가 우리어머니께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를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던 두분은 그녀의 불임진단으로 파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끝내는 아내를 구타하거나 구박이 잦았으며..외박까지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혼을 하라고 했고 그녀는 싫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그를 사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행복하지는 않았을텐데..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지..
그녀의 남자는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여자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두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접한 그녀는 자살을 기도하셨고..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셨다.
그 뒤에 그녀는 이혼에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은 보고 그렇게 좋아하던 그 남자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며..
그 뒤에 그녀는 다시 술집에 정열을 쏟으셨고 애가 둘이나 있는 이혼남과 재혼을 하셨다. 그것도 아주 빨리..어머니까 말릴 틈도 없이..
아마 그 남자를 잊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그러나 그 결혼은 앞이 빤히 보이는 재혼이었다.
그녀는 그 남자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외로울 때 힘들 때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한 논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는 그때 마땅한 직업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애가 둘이나 있었다고 하니..어머니의 말로는 그녀가 아이둘을 보고 재혼을 했다고도 한다.
그때 그 남자의 집에서 울고 있는 아이 둘을 보고 애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금방 아이들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애들에게 엄마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셨다고.
그렇게 재혼한 그녀는 몇달도 가지않아 새남편의 술만 먹으면 행해지는 자신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구타로 점점 생활은 파경으로 치닫고 거기다가 남편의 무능력과 집안의 생계를 자신이 꾸려나가야 되는 집안일과 바깥일로 그녀는 2배로 힘이 들고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 같다고 한다.
지금 그녀는 예전과 다름 없다.
아이들은 이제 성장을 했고 그남매 중에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친모가 아님을 알고 가출도 하며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가 자신이 배아파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그 남매생각에 자신이 떠날 수도 있었지만 못 떠났음을 알고 그들은 어머니께 더없이 잘 하고있다고 한다.
그녀에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요 며칠 전..난 그녀를 찾아 뵈었다.
그녀가 경영하는 호프집에.
"행복하세요?"
란 뜬끔없는 질문에 그녀는 약간의 옅은 미소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행복이란 것은 자신이 만들어 나가기 마련이란다..지금 나는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행복한거지.."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그녀가 준 음료수를 말없이 마실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