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3편입니다..
<성균관>
고려시대의 교육기관입니다..이곳은 고려 성종 시대에 “성균관”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고,계속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이었던 향교로 쓰였으나,명칭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다만,임진왜란 도중에,불타서 없어졌고,임진왜란 직후에 선조~광해군 시절에 다시 건축되었습니다.
현재는, 개성시에 남아 있는 옛날에는 있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대 사찰들의 터에 있는 석탑들을 비롯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모아서 “고려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으로써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로 전시되고 있습니다..건물 내부에는 유물들이..ex)고려청자
<공민왕릉&왕건릉>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고려의 태조이며,공민왕은 몽골군과의 39년간의 긴 전쟁 끝에 패배한 고려가 몽골에 의해 많은 억압과 고통을 받고 있던 시기,개혁을 추진하여 몽골군을 몰아내고,왕권을 강화하려 하였던 개혁군주(왕)입니다..
-왕건릉-
-공민왕릉-
<관음사>
고려시대의 사찰로써,사진 속의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다시 지어진 건물입니다.석탑과 관음보살은 고려시대.1부에서 소개했던 박연폭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입니다.
-관음사 관음보살—
이어서 4부에서 계속됩니다..Mata Asita씨,조언 고맙습니다.^^
なので 3編です..
<成均館>
高麗時代の教育機関です..こちらは高麗 成宗時代に ¥"成均館¥"という名称に変わって,ずっと教育機関の役目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朝鮮時代には朝鮮時代の教育機関だった郷校で使われたが,名称はそのまま残りました. ただ,壬辰の乱途中に,燃えて消えたし,壬辰の乱直後に先祖‾光海君時代にまた建築されました.
現在は, 開城市に残っている昔にはあったがこれ以上存在しない巨大査察たちのところにある石塔たちを含めた発掘された多くの遺物たちを集めて ¥"高麗博物館¥"という名前で博物館として利用されています.
このような形態に展示されています..建物内部には遺物たちが..ex)高麗青磁
<公民王陵&ワングゴンルング>
王健は高麗を建国した高麗の太祖で,恭愍王はモンゴル君との 39年間の長い戦争あげく敗れた高麗がモンゴルによって多い抑圧と苦痛を受けていた時期,改革を推進してモンゴル君を追い出して,王権を強化しようと思った改革君主(王)です..
-ワングゴンルング-
-公民王陵-
<観音寺>
高麗時代のお寺として,写真の中の大雄殿は朝鮮時代にまた建てられた建物です.石塔と観音菩薩は高麗時代.1部で紹介した朴淵たきにある高麗時代お寺です.
-観音寺観音菩薩--
なので 4部で続きます..Mata Asitaさん,助言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