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朝鮮과 일본의 강화도 조약 이후 朝鮮과 수교를 맺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의 열강들이 조선에 들어 오고 있었다
초기에는 정치인 외교관 선교사들이 주로 들어 왔으나 후기에는 기자 여행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 왔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만큼 그들의 朝鮮에 대한 평가도 다양했다
당시 朝鮮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朝鮮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쓴 서적이 있고 그림이나 사진도 있다
19세기 후반
동양보다 근대화에 먼저 성공한 서양은 서구적 관점에서 서구 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는 근대화
하지 못한 야만으로 보았다 朝鮮에 왔던 서양인 중에는 처음에는 朝鮮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朝鮮에 오래 머무르면서 호의적으로 바뀐 사례도 있었다 이것은 낯선 외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구한말 당시 朝鮮에서 촬영된 영상이나 사진에는 그 촬영한 사람의 목적이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고 있다
朝鮮을 비하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은 쪽은 서구의 나라들 보다 일본이 더 많았고 악랄했다
사진관에서 찍은 여성의 사진
연출된 사진이다
위에 사진의 여성과 같은 장소의 동일 인물의 여성 사진이다
같은 장소에서 한번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고 또 한번은 다림질을 하고 있다
연출된 사진이 틀림없다
이 사진 역시 동일 장소의 동일 인물이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다가
그 물동이에 요강을 씻고 있다
연출된 사진이 틀림없다
위에 여성의 3개의 사진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스튜디오 .실내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2번째 다림질 정도겠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거나 요강을 씻는 일은 실내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이런 연출 사진을 찍었을까?
일제
1911년 朝鮮 총독부가 제작한 <朝鮮 풍속 풍경 사진첩>에는
가슴을 완전히 노출한 여성 .기생 ,가난한 사람. 굶주린 아이들 ,무기력하고 게으른 남성. 죄수 등
인물이나 낙후되고 더러운 장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또 이러한 사진은 엽서로 제작되어 유럽 여러 나라들에 팔려 나갔다고 한다
또 朝鮮의 낙후된 장소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朝鮮의 근대화된 일본인 거주지의 사진을
비교하며 일본에 의한 병합 前後 사진이라고 선전하면서 日帝의 조선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하는데 이용했다
日帝 총독부에 의해 제작된 사진 엽서 중에 여성에 관한 사진은 더 악랄했다
가슴을 완전히 노출하는 것이 朝鮮의 일반적 문화라고 왜곡하였고
기생을 글 그림 악기 연주 춤 노래 등 기예를 갖춘 예술인이 아니라 매춘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으로 전락시켜 놓았다
심지어 한반도 地圖 모양을 춤을 추는 기생으로 형상화한 엽서도 있다
이렇게 가슴을 완전히 노출한 여성 사진은 일제강점기 사진이다
朝鮮시대 그림에서도 찾기 어렵다
日帝에 의해 촬영된 가슴 노출 사진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은 아니다
사진관 또는 거리에서 모델로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日帝강점기 때에 朝鮮에 왔던 서양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여성들이 저고리가 짧아 家事노동을 할 때 가슴이 조금 보이는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진 역시 인위적으로 연출한 느낌이다
목에 칼을 쓰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남자 죄수 3명과 맨발의 소녀가 있다
이 죄수들은 감옥에 있지 않고 어째서 뜰에 앉아 있는 것일까?
사진의 진실은 죄수가 아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또 이런 사진을 엽서로 제작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뜨린 日帝의 의도가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1876年 朝鮮と日本の江華島条約以後 朝鮮と修交を結ぶためにアメリカイギリスフランスドイツなど
世界の列強たちが朝鮮に入って来ていた
初期には政治家外交官宣教師たちが主に入って来たが後期には記者旅行行って事業家など
多様な職業を持った人々が入って来た
多様な職業を持っただけ彼らの 朝鮮に対する評価も多様だった
当時 朝鮮を訪問した外国人たちが 朝鮮で経験して感じたことを書いた書籍があって絵や写真もある
19世紀後半
東洋より近代化に先に成功した西洋は西欧的観点で西欧文化と対比される文化は近代化
できない野党だけで見た 朝鮮に来た西洋人の中には初めには 朝鮮に対する評価が好意的であって
なかったが 朝鮮に長居をしながら好意的に変わった事例もあったこれは不慣れな外国の文化を
理解しようとする努力があったからだと考えられる
旧韓国末当時 朝鮮で撮影された映像や写真にはその撮影した人の目的や意図が何か
よく現われている
朝鮮を卑下じる目的に写真を撮った方は西欧の国々より日本がもっと多かったし悪辣だった
写真館で取った女性の写真
演出された写真だ
上に写真の女性のような場所の同一人物の女性写真だ
同じ場所で一度はムルドングイを頭に載せているしもう一度はアイロンをかけている
演出された写真が間違いない
が写真も同一場所の同一人物だ
ムルドングイを頭に載せている途中
そのムルドングイに要綱を洗っている
演出された写真が間違いない
上に女性の 3個の写真は同じ場所で撮った写真だ
場所はスタジオ .室内だ
室内でできる仕事は 2番目プレス位だろう
ムルドングイを頭に載せているとか要綱を洗う事は室内ではできない事だ
どうしてこんな演出写真を撮っただろうか?
日製
1911年 朝鮮 総督府が製作した <朝鮮 風俗風景写真帖>には
胸を完全に露出した女性 .芸者 ,貧しい人. 飢えた子供達 ,無気力で怠けな男性. 罪囚など
人物や立ち後れされて汚い場所などが一緒に収録されている
またこのような写真ははがきに製作されてヨーロッパ多くの国々に売れて行ったと言う
また 朝鮮の立ち後れされた場所や貧しい人々の姿と ,朝鮮の近代化された日本人居住地の写真を
比べて日本による併合 前後 写真だと宣伝しながら 日帝の朝鮮侵略や植民地支配を
正当化するのに利用した
日帝 総督府によって製作された写真はがきの中に女性に関する写真はもっと悪辣だった
胸を完全に露出するのが 朝鮮の一般的文化と歪曲したし
女性で転落させておいた
甚だしくは韓半島 地図 模様をダンスをする芸者で形象化したはがき島ある
こんなに胸を完全に露出した女性写真は日帝強制占領期間写真だ
朝鮮時代絵でも捜しにくい
日帝によって撮影された胸露出写真は生活の中に自然に撮った写真ではない
写真館または通りでモデルとしてカメラを見つめている姿だ
日帝強点期の時に 朝鮮に来た西洋人たちの証言によれば
女性たちがチョゴリが短くて 家事労動をする時胸が少し見える位だったと言う
この写真も人為的に演出した感じだ
首に刀を使ってカメラを見つめている男罪囚 3人と素足の少女がいる
が罪囚たちは監獄にないでどうして庭に座っていることだろう?
写真の真実は罪囚ではない
が写真を撮影した人の意図が何か
研究しなければなら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