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詩經
詩經은 현존하는 한자로 쓴 문헌 중에 제일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8세기의 중국 춘추시대 민요를
중심으로 엮은 시집이다
내용은 남녀의 사랑 이별 공식연회에서 쓰이는 儀式歌 종묘 제사에 쓰이는 악시 등 이다
2.갑골 문자
殷나라 (기원전 1.600년 기원전 11세기 ) 周나라 때에
龜甲과 獸骨에 새긴 문자이다
殷나라 멸망 이후 갑골 문자는 사라졌고 周나라 宜王때에 갑골 金石文 등 옛 글씨를 정비하고 필획을 늘려
大篆의 서체를 만들었다
3. 한자
전서 (篆書 )
기원전 3세기 秦나라 始皇때에 재상이었던 李斯는 大篆을 간략하게 하여 문자를 만들고
당시 여러 지방에서 쓰이던 각 字體를 정리하여 문자의 통일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을 小篆이라고 하였다
또 獄吏 程邈이 篆書를 간단하게 하여 실무에 편리하게 쓰기 위해 字體를 고쳤는데 이것을 隸書라고 하였다
0. 隸書
漢나라 (기원전 206년 기원후 220년) 때에는 隸書가 상용 문자로 되었는데
이 隸書를 今文이라고 하고
先秦 (기원전 221년 이전 시대 )에 죽간에 쓰이던 蝌蚪문자와 鐘鼎에 쓰인 金石文字를 古文이라고 총칭하게 되었다
0. 楷書
後漢의 王次仲은 漢나라 때의 隸書를 다시 개량하여 楷書를 만들었다
이 楷書를 正體라고 불렀고 후에 표준 字體가 되었다
漢나라 때에 한자의 모양이 완성되었는데 문자로 통용되었던 문자는 약 7.000자 라고 한다
이 시기 漢나라 한자는 현대 기초 한자와 거의 일치한다
한자는 갑골 문자에서 발달한 문자인데 갑골 문자의 주체는 殷나라이다
殷나라는 한족의 왕조인지 분명하지 않고
한족이 독자적으로 만든 문자라고 단언할 수 없다
漢나라는 한족의 왕조이지만 漢나라가 멸망하고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 시대 (304년에서 589년)사이에
중국 북부를 중심으로 5개 유목민 (흉노 渴 鮮卑 氐 羌 )族이 세운 13국과
한족이 세운( 北燕 前凉 西凉)3개 나라의 5호 16국 시대가 있었다
이후 隋나라 (581년 ~619년 ) 唐나라 (618년~907년)가 있었다
이 시기 (後漢에서 唐나라 까지)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신라시대였다
唐나라 여인
4. 거란(契丹) 문자
916년 ~1126년 중국 북부 지역에서 거란족( 契丹族)이 遼나라를 세운다
遼나라 태조 耶律阿保機가 920년에 만든 大字와 그의 동생 耶律迭라가 만든 小字가 있다
耶律阿保機가 만든 大字는 한자와 같이 1문자가 낱말을 표시하는 표의문자였는데 契丹語의 언어가 漢語와
언어체계가 달랐기 때문에 거란의 언어를 표기하는 것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동생 耶律迭라가 위구르 문자를 참고하여 표음문자 성격의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보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契丹族이 한자를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었다
거란(契丹)의 문자는 遼代에 걸쳐 한자와 함께 병용되었으며 遼나라를 멸망시킨 金나라에서 초기까지
거란 문자를 사용하였다
후에 金나라가 칙명으로 거란 문자 사용을 폐지하였다
金나라가 遼代의 거란 문자를 폐지한 후 더 이상 거란 문자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遼나라 거란(契丹) 문자 小字
현재까지 해석 불가능
11세기 중국 허베이성에서 발굴된 거란인 (契丹人)의 벽화
5. 여진 문자
金나라 (1115년~1234년) 여진족이 세운 나라
金 나라는 大字 小字 2종의 문자가 있었다
大字는 1119년 태조의 명령으로 完顔希尹이 만들었고 小字는 1138년 제3대 황제 熙宗이 만든 것인데 1145년 이후
欽定문자로서 金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문자들 역시 완전히 解讀되지 않고 있다
거란의 遼나라 여진족의 金나라와ㅏ 비슷한 시기에
한족의 왕조 宋나라 (960년~1279년)가 있었다
거란족이나 여진족은 한족의 언어와 달랐고 한자의 발음도 한족과 달랐다
6. 몽고 문자
宋나라 멸망 후 한족은 몽골족이 세운 元나라(1271년~1368년)에 지배를 받았다
몽고 문자는 갈릭 문자 또는 칼리카 문자 라고 한다
13세기 위구를 문자를 모체로 형성되었고 티베트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
이 몽고 문자 외에
13세기 후반 라마승 파스파에 의해 파스파 문자가 있고 17세기 중엽 학승 자야반디타가 만든 dodo문자가 있고
17세기 후반 고승 자나반잘이 만든 소욘보 문자 등 3종의 문자가 있다
전통적 몽고 문자는 중국 內 몽고 자치구 몽골인이 사용하고 있고
몽골 인민 공화국의 몽골인은 러시아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7.만주 문자
한족은 元나라 멸망 이후 明나라(1368년~1644년)를 건국하는데 만주족이 세운 淸나라(1644년~1912년)에 의해
멸망하였다
0.만주족의 역사
만주족은 중국의 상고시대 부터 등장한 민족이다
만주족은 시대에 따라 명칭이 변화해 왔다
先秦(기원전 221년 이전 시대)에는 →肅愼
秦漢시대에는 →挹婁
남북조 시대에는 →勿吉
隨 唐시대에는 →靺鞨
金나라 →女眞 등 명칭으로 불렀다
926년 발해를 멸망시킨 遼나라는 발해의 기층 주민으로 구성되었던 粟末靺鞨의 반란을 두려워해
이들을 遼陽일대로 移住시켜 遼나라 호적에 편입시켰다
이후 遼나라 호적에 편입되어 교화된 여진족(女眞族)은 熟女眞이라고 불렀고
黑龍江 중 하류에 살며 遼나라 호적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 黑水靺鞨은 교화를 거부한 女眞族이라는
의미로 生女眞이라고 불렀다
이 生女眞의 일파 完顔部는 여진족(女眞族)의 각 부족을 통합하여 金나라를 건국하였고
1125년 金나라는 遼나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北宋을 멸망시켜 중국의 북부 지방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1153년 金나라는 首都를 燕京(현재의 베이징)으로 옮긴다
이 生女眞族이 오늘날 만주족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다
중국 심양궁의 崇政殿
만주 문자와 한자가 섞여 있다
만주족의 문자는 서기 1599년 後金의 누르하치 통치 시기에 몽고 문자의 字母와 만주어 발음을 기초로
만주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無圈占滿文 또는 老滿文이라고 하고
17세기초 淸 태종 집권 시기에 老滿文을 수정하여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문자를 有圈占滿文 또는
新滿文이라고 한다
만주어와 만주 문자는 淸왕조 집권 시기에 국가의 공식적 언어가 되었다
그런데 만주족은 1644년 이후 중원의 한족과 함께 거주하며 한족의 문화와 언어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淸나라 원년 順治 때 부터 한족 언어를 구사하는 만주족들이 관직에 등용되면서 만주족의
漢語 사용자가 점점 증가하였다
淸나라 중기에는 漢語가 일반적으로 통용되었고 만주어와 만주 문자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었다
중국은 상고시대 부터 여러 종족이 세운 왕조가 있었다
1912년 淸 왕조가 막을 내린 당시에도 각 지역에 구성된 민족 단위로 언어가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중국은 전쟁 인구 이동 등으로 한자 발음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8..그러면 한국의 한자 발음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한국에 한자가 유입된 시기는 기원전 3세기
(고조선이 漢나라와 무역하고 있었으므로 ) 라고 추정된다
고구려 유리왕이 기원전 17년에 한자로 쓴 詩
黃鳥歌가 전해지고 있어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상류층에서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5세기 고분 벽화
고구려 廣開土大王碑文의 탁본
長壽王2년 (414년)에 세워진 비문이다
서체는 隸書體이다
신라 赤城碑
551년 문장은 신라의 吏讀文과 한문이 섞여 있다
서체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楷書體인데 隸書體의 흔적이 보인다
현재 한국의 한자 발음유래에 대해
吳나라 방언 .북방 중국 . 宋나라의 開封. 唐나라 長安 등 있다
한국의 한자 발음의 특징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1 字에 1音이 원칙이다
한국의 漢字音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시대에 따라 한국인의 언어 체계에 맞게
변형되어 왔다
9. 일본의 漢字音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일본의 漢字音은 어디에서 왔을까 ?
일본의 漢字音에는 吳音 唐音 漢音 등 있다
일본의 漢字音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중국의 시대에 따른 한자의 발음 변화를 반영했기 때문에 일본의 漢字音은 1字에 여러 종류의
발음이 있다
吳音(吳나라의 漢字音 기원후 3세기 ~6세기)은 백제에서 전래되었다
唐音은 隨 唐代에 隨 唐과의 교류로 일본으로 전래된 漢字音이고
漢音은 宋 明 淸나라에 의해 일본으로 전래된 漢字音이다
일본의 한자 전래 시기에 대해 한국과 관련된 기록에는
일본의 古事記에는 백제 王仁박사가 서기 285년에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왔다 라는 기록이 있고
일본서기에 따르면 서기405년에 백제 王仁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왔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인들은 古代부터 대부분의 대륙 문화를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중국으로 부터 직접 수입해 왔다 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데
일본 柰良縣 다카이치군 (高市郡) 아스카촌 의 다카마스 (高松塚)의 벽화의 여인들의 복식을
보면 비슷한 시기의 중국 唐과 다르다
고구려의 5세기 벽화의 여인들의 복식과 닮아 있다
1.. 詩経
詩経は現存する漢字で書いた文献の中に一番長くなったことでB.C. 8世紀の中国春秋時代民謡を
中心に編んだ詩集だ
内容は男女の愛別離公式宴会で使われる 儀式歌 宗廟祭祀に使われるアックシなどである
2.甲骨文字
殷国 (B.C. 1.600年B.C. 11世紀 ) 周国の時に
亀甲と 獣骨に刻んだ文字だ
殷国滅亡以後甲骨文字は消えたし 周国 宜王の時に甲骨 金石文 など昔の字を整備して筆画をふやして
大篆の書体を作った
3. 漢字
全書 (篆書 )
B.C. 3世紀 秦国 始皇の時に宰相だった 李斯は 大篆を手短にさせて文字を作って
当時多くの地方で使われた各 字体を整理して文字の統一を完成したがこれを 小篆と言った
また 獄吏 程〓が 篆書を簡単にさせて実務に便利に使うために 字体を直したがこれを 隷書と言った
0. 隷書
漢国 (B.C. 206年紀元後 220年) 時には 隷書が常用文字になったが
が 隷書を 今文と言って
先秦 (B.C. 221年以前時代 )に竹竿に使われた ??文字と 鐘鼎に使われた 金石文字を 古文だと総称するようになった
0. 楷書
後漢の 王次仲は 漢国の時の 隷書をまた改良して 楷書を作った
が 楷書を 正体と呼んだし後に標準 字体になった
漢国の時に漢字の模様が完成されたが文字で通用した文字は約 7.000寝なさいと言う
この時期 漢国漢字は現代基礎漢字とほとんど一致する
漢字は甲骨文字で発達した文字なのに甲骨文字の主体は 殷国だ
殷私という漢族の王朝なのか明らかではなくて
漢族が独自的に作った文字と言い切ることができない
漢私という漢族の王朝だが 漢国が滅亡して三国時代以後南北朝時代 (304年から 589年)の間に
中国北部を中心に 5個遊牧民 (匈奴 渇 鮮卑 ? 羌 )族が立てた 13国と
漢族が立てた( 北燕 前凉 西凉)3個国の 5号 16国時代があった
以後 隋国 (581年 ‾619年 ) 唐国 (618年‾907年)があった
この時期 (後漢で 唐国まで)
韓国では三国時代新羅時代だった
唐国女人
4. キタイ(契丹) 文字
916年 ‾1126年中国北部地域でキタイ族( 契丹族)が 遼国を建てる
遼国太祖 耶律阿保機が 920年に作った 大字と彼の弟(妹) 耶律迭ラーガ作った 小字がある
耶律阿保機の作った 大字は漢字のように 1文字が単語を表示する表意文字だったが 契丹語の言語が 漢語と
言語体系が違ったからキタイの言語を表記するのが不便だった
それで弟(妹) 耶律迭ラーガウィグル文字を参考して音標文字性格の新しい文字を作って普及したことだ
ところで 契丹族が漢字を完全に廃棄したことではなかった
キタイ(契丹)の文字は 遼代にかけて漢字とともに併用されたし遼国を滅亡させた 金国から初期まで
キタイ文字を使った
後に 金国が勅命でキタイ文字使用を廃止した
金国が 遼代のキタイ文字を廃止した後これ以上キタイ文字は使わなくなった
遼国キタイ(契丹) 文字 小字
現在まで解釈不可能
11世紀中国河北省で発掘されたキタイである (契丹人)の壁画
5. 搖り返し文字
金国 (1115年‾1234年) 搖り返し族が立てた国
金 国は 大字 小字 2種の文字があった
大字は 1119年太祖の命令で 完顔希尹が作ったし 小字は 1138年第3台皇帝 煕宗が作ったことなのに 1145年以後
欽定文字として 金国で広く使われた
が文字たちも完全に 解読になっていない
キタイの 遼国搖り返し族の 金国と 似ている時期に
漢族の王朝 宋国 (960年‾1279年)があった
キタイ族や搖り返し族は漢族の言語と違ったし漢字の発音も漢族と違った
6. 蒙古文字
宋国滅亡後漢族はモンゴル族が立てた 元国(1271年‾1368年)に支配を受けた
モンゴル文字はガルリック文字またはカルリカ文字と言う
13世紀ウィグルを文字を母体に形成されたしチベット文字の影響を受けた
がモンゴル文字外に
13世紀後半ラマ僧ファース派によってファース派文字があって 17世紀中葉学僧ザヤバンデ−タが作った dodo文字があって
17世紀後半上人ザナバンザルが作ったソヨンボ文字など 3種の文字がある
伝統的モンゴル文字は中国 内 モンゴル自治区モンゴル人が使っているし
モンゴル人民共和国のモンゴル人はロシア文字を使っている
7.満洲文字
漢族は 元国滅亡以後 明国(1368年‾1644年)を建国するのに満州族が立てた 清国(1644年‾1912年)によって
滅亡した
0.満州族の歴史
満州族は中国の上古時代から登場した民族だ
満州族は時代によって名称が変化して来た
先秦(B.C. 221年以前時代)には →肅愼
秦漢時代には →?婁
南北朝時代には →勿吉
隨 唐時代には →靺鞨
金国 →女真 など名称と呼んだ
926年渤海を滅亡させた 遼国は渤海の基層住民で構成された 粟末靺鞨の反乱を恐れて
これらを 遼陽仕事どおり 移住させて 遼国戸籍に編入させた
以後 遼国戸籍に編入されて教化された搖り返し族(女真族)は 熟女真だと呼んだし
黒竜江 の中で下流に住んで 遼国戸籍に編入されることを拒否した 黒水靺鞨は教化を拒否した 女真族という
意味で 生女真だと呼んだ
が 生女真の一派 完顔部は搖り返し族(女真族)の各不足を統合して 金国を建国したし
1125年 金国は 遼国を滅亡させて
1127年には 北宋を滅亡させて中国の北部地方大部分を占めた
1153年 金国は 首都を 燕京(現在の北京)で移す
が 生女真族が今日満州族の直接的な先祖になる
中国沈陽弓衣 崇政殿
満洲文字と漢字がまじている
満州族の文字は西紀 1599年 後金のヌルハチ統治時期にモンゴル文字の 字母と満洲語発音を基礎で
満洲文字を作ったがこれを 無圏占満文 または 老満文と言って
17世紀初め 清 太宗集権時期に 老満文を修正して文字を作ったが李文子を 有圏占満文 または
新満文と言う
満洲語と満洲文字は 清王朝集権時期に国家の公式的言語になった
ところで満州族は 1644年以後中原の漢族と一緒に居住して漢族の文化と言語に影響を受けていた
清国元年 順治 の時から漢族言語を駆使する満州族たちが官職に登竜されながら満州族の
漢語 使用者がますます増加した
清国中期には 漢語が一般的に通用したし満洲語と満洲文字はますます忘れて行っていた
中国は上古時代から多くの種族の立てた王朝があった
1912年 清 王朝が幕を閉じた当時にも各地域に構成された民族単位で言語が差があった
したがって中国は戦争人口移動などで漢字発音は時代によって変化して来たことが分かる
8..それでは韓国の漢字発音はどこで由来しただろうか?
韓国に漢字が流入された時期はB.C. 3世紀
(古朝鮮が 漢国と貿易していたので ) と推定される
高句麗儒理王がB.C. 17年に漢字で書いた 詩
黄鳥歌が伝わっていてB.C. 1世紀頃には上流層で漢字を使っていたことが分かる
高句麗 5世紀古墳壁画
高句麗 広開土大王碑文の拓本
長寿王2年 (414年)に立てられた碑文だ
書体は 隷書体だ
新羅 赤城碑
551年文章は新羅の 吏読文と漢文がまじている
書体は中国南北朝時代の 楷書体なのに 隷書体の跡が見える
現在韓国の漢字発音来由に対して
呉国方言 .北方中国 . 宋国の 開封. 唐国 長安 などある
韓国の漢字発音の特徴は極めて一部を除けば
1 字に 1音が原則だ
韓国の 漢字音は中国に根を置いているが時代によって韓国人の言語体系に当たるように
変形されて来た
9. 日本の 漢字音はどこで由来しただろうか?
日本の 漢字音はどこから来ただろうか ?
日本の 漢字音には 呉音 唐音 漢音 などある
日本の 漢字音は中国に根を置いているのに
日本の場合
中国の時代による漢字の発音変化を反映したから日本の 漢字音は 1字に多くの種類の
発音がある
呉音(呉国の 漢字音 紀元後 3世紀 ‾6世紀)は百済で伝来された
唐音は 隨 唐代に 隨 唐との交流で日本に伝来された 漢字音で
漢音は 宋 明 清国によって日本に伝来された 漢字音だ
日本の漢字伝来時期に対して韓国と係わる記録には
日本の 古事記には百済 王仁博士が西紀 285年に論語と千字文を持って日本へ来たという記録があって
日本書紀によれば西紀405年に百済 王仁博士が論語と千字文を持って日本へ来たという記録がある
日本人たちは 古代から大部分の大陸文化を韓半島を経らないで中国にから直接輸入して来たと
主張したがるのに
日本 〓良県 ダカー理だね (高市郡) 飛鳥村義ダカーマス (高松塚)の壁画の女人たちの複式を
見れば似ている時期の中国 唐と違う
高句麗の 5世紀壁画の女人たちの複式と似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