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옹관묘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무덤 방식이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신이나 뼈를 묻은 토기를 말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로 甕棺은 어떠한 형태를 갖추고 있든지 흙으로 빚어 구운 것에 시신을 묻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뼈를 추려서 묻은 것은  骨壺

집이나 신발 등 네모 형태의 것은   土棺이라고 부르고  있어 좁은 의미의 甕棺과 구별한다

 

벼농사 농경 등으로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되는 신석기 시대가 되면 생활용기로 토기를 생산하게 되면서 시신을 묻는 것에

토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四川省 河北省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周나라 漢나라 시대 이후에 甕棺 사용이 쇠퇴하여 소멸해 버린다

6세기 宋書에는 甕棺은 東湖의 풍습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 河北省  黃驊市 유적지

2.300년전 어린이 甕棺葬

甕棺葬은 어린이를 항아리나 대야에 담아 묻는 형식이다

성인의 것은 비교적 큰 2개나 3개의  도기를 합쳐서 사용했으며 대부분 주거 지역이나 가옥 근처 지하 실내에 묻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옹관묘는 청동기 시대이다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시대 유적으로 평안남도 강서 台城里 황해도 安岳  伏獅里  충청남도 公主 南山里

전라도 광주 新昌洞  경상남도 김해 會峴里  등 있다

 

 

북한 지역 평양 삼석구역 湖南里에 위치해 있는  南京 유적에서 옹관묘 9개를 발견했다   

사진은 기원전 3세기의 북한 평양 湖南里 南京유적에서 발굴한 옹관묘  

 

이 湖南里 유적에서 9호 옹관묘를 제외하면  모두 청동기 시대 집터 퇴적층 위에 놓여 있었다

甕棺의 질그릇은 높이 0.3m 내외 아가리 직경 0.2m에서 0.3m정도의 갈색의 화분형 질그릇이다

기원전 3세기의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다  

 

초기 철기시대에 새로이 등장하는 이음식 (合口式)옹관묘는 외부로 부터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고

자주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시대의 옹관묘는 대채로 2개 토기를 맞대어 붙이거나 삽입시킨 이음식 (合口式)과  主甕에 결합시킨

合蓋式이 많지만 하나의 토기를 옆으로 눕혀서 시신을 넣고 돌로 아가리를 막은 외독 무덤도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3개의 토기를 이어 붙인  옹관 (甕棺)이 발견된다  

 

 

경남 김해  池內洞 옹관묘  (초기 철기시대 )

아가리를 맞대어 이어 무덤을 만들었다 옆에는 부장품으로 붉은간토기 (紅陶)가 놓여 있다

 

원삼국시대에 되면 철기가 많이 보급되고 농경이 발달하면서 밀폐된 가마에서 구운 토기가 만들어지고 묘제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고인돌 (支石墓)나 石棺墓가 사라지고

木棺墓 木槨墓가 나타나고 있다

 

옹관묘는 거대한 규모의  분구를 갖춘 고분이  축조되는 삼국시대에도 이루어지는데

榮山江 유역의 경우 고분 자체로 크게  발전한 반면

북방에서는 다른 묘제에 종속되거나  부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전남 무안 태천 유적 옹관묘 5세기

 

2개 옹관이 합해진 合口式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옹관은 3세기에서 6세기에 榮山江 일대에 나타나

6세기 백제에 완전히 편입될 때 까지 이어졌다  

 

 

전남 나주 방주 마을 유적에서 출토된 옹관묘 기원전 4세기

 

전남 나주 방주 마을 유적에서 옹관묘 3개가 발굴되었는데 그 중 2호기 옹관묘의 내면에는  주칠 흔적과

옹관 내부에서  인골편 치아 3개와 구슬 옥 등 발굴되었다

이 옹관묘 매장 방법은 榮山江 유역의 甕棺 고분의   葬法 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왼쪽  토기는 부장품을 담은  토기이다 회청색 경질 토기인데 토기 위에 완형의 뚜껑이 있다

 

특히 榮山江 유역의 옹관묘는 다른 지방의 옹관묘와 비교하면 독자성이 뚜렷한데  

고도로 발달된 토기 제작 기술로 만든 특수한 대형 전용 甕棺을 주된 매장시설로 하고 있어 

백제의 지방 세력 및 馬韓의 토착 세력 집단과 관련해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榮山江유역의 무덤  양식은 백제의 무덤 양식과 다르다

역사적으로 보면 백제 시대에 해당되지만 백제의 힘이 미치지 못하던 榮山江 유역에 馬韓의 세력이

독자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크기는  50cm으로  작은 것 부터  3m에 이르는 큰 것 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옹관묘는 불교가 들어와

일반에 확산되면서   묘제에 火葬의  풍습으로 火葬骨壺가  널리 쓰이고 이후에는

어린 아이의 시신을 移葬하는데 부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 규슈 야요이 시대 옹관묘

 

일본 규슈 

옹관묘

 

베트남 옹관묘  

 

 

 

 

 

 

 

 

 

 

 


東アジア甕棺墓

甕棺墓は世界各地で発見される墓方式だ

地域や時代によって多様な姿を見せていて一般的に死体や骨を埋めた土器を言うことで

広い意味で 甕棺はどんな形態を取り揃えていようが土でもたらして焼いたことに死体を埋めることを言う

ところで骨を選って埋めたことは 骨壷

家や履き物など四角形態の物は 土棺だと呼んでいて狭い意味の 甕棺と区別する

稲作農耕などで人類が定着生活をするようになる新石器時代になれば生活勇気で土器を生産するようになりながら死体を埋めることに

土器を使ったように見える

中国では 四川省 河北省 等地で発見されているのに

周国 漢奈良時代以後に 甕棺 使用が衰退して消滅してしまう

6世紀 宋書には 甕棺は 東湖の風習だと書いている

中国 河北省 黄?市 遺跡地

2.300年前子供 甕棺葬

甕棺葬は子供をかめやたらいに盛って問う形式だ

大人の物は比較的大きい 2個や 3個の陶器を合して使ったし大部分住居地域や家屋近く地下室内に埋めた

韓国で一番古い甕棺墓は青銅器時代だ

青銅器時代と初期鉄器時代遺跡で平安南道江西 台城里 黄海道 安岳 伏獅里 忠清南道 公主 南山里

全羅道光州 新昌洞 慶尚南道金海 会〓里 などある

北朝鮮地域平壌サムソックグヨック 湖南里に位している 南京 遺跡で甕棺墓 9個を見つけた

写真はB.C. 3世紀の北朝鮮平壌 湖南里 南京遺跡で掘り出した甕棺墓

が 湖南里 遺跡で 9号甕棺墓を除けば皆青銅器時代家の跡地堆積層の上に置かれていた

甕棺の土焼きは高さ 0.3m 内外口直径 0.2mで 0.3m程度の茶色の植木鉢型土焼きだ

B.C. 3世紀の売場風習が分かる

初期鉄器時代に新たに登場する異音式 (合口式)甕棺墓は外部から流入された可能性があって

自主的に発生した可能性もある

この時代の甕棺墓は大のまま 2個土器を突き合わせて付けるとか挿入させた異音式 (合口式)と 主甕に結合させた

合蓋式が多いが一つの土器を横で横たえて死体を入れて石で口を阻んだウェドック墓もあり一部地域では

3個の土器を引き継いで付けた甕棺 (甕棺)が発見される

慶南金海 池内洞 甕棺墓 (初期鉄器時代 )

口を突き合わせて引き続き墓を作った横には副葬品でブックウンガントギ (紅陶)が置かれている

元三国時代になれば鉄器がたくさん普及されて農耕が発達しながら密閉されたお御輿で焼いた土器が作られて墓祭りに大きい変化が

起きるドルメン (支石墓)や 石棺墓が消えて

木棺墓 木槨墓が現われている

甕棺墓は巨大な規模の分区を取り揃えた古墳が築造される三国時代にも成り立つのに

栄山江 流域の場合古墳自体で大きく発展した一方

北方では他の墓祭りに属するとか付随的に使われるようになった

全南務安テチォン遺跡甕棺墓 5世紀

2個甕棺が合わせられた 合口式で成り立っているのにこんな甕棺は 3世紀から 6世紀に 栄山江 一帯に現われて

6世紀百済に完全に編入される時までつながった

全南羅州方柱村遺跡で出土された甕棺墓B.C. 4世紀

全南羅州方柱村遺跡で甕棺墓 3個が発掘されたがその中 2号基甕棺墓の内面には主治を跡と

甕棺内部で人骨の方歯牙 3個と玉玉など発掘された

が甕棺墓売場方法は 栄山江 流域の 甕棺 古墳の 葬法 変化様相を察することができる

左側土器は副葬品を盛った土器だ灰青色更迭土器なのに土器の上に完全な形のふたがある

特に 栄山江 流域の甕棺墓は他の地方の甕棺墓と比べると独自性が明らかなのに

高度に発達された土器製作技術で作った特殊な大型専用甕棺を主な売場施設にしていて

百済の地方勢力及び 馬韓の土着勢力集団と係わって売場風習が分かる重要な資料だ

栄山江流域の墓様式は百済の墓様式と違う

歴史的に見れば百済時代に当たるが百済の力が及ぶことができなかった 栄山江 流域に 馬韓の勢力が

独自的に存在したことを見せてくれる大きさは 50cmで小さなことから 3mに至る大きいことまで多様だ

しかし甕棺墓は仏教が入って来て

一般に拡散しながら墓祭りに 火葬の風習で 火葬骨壷が広く使われて以後には

幼い子供の死体を 移葬するのに部分的に使うようになった

日本九州彌生時代甕棺墓

日本九州

甕棺墓

ベトナム甕棺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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