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韓永愚 서울대 명예 敎授

 

韓永愚(76) 서울대 敎授는 조선시대 科擧制度에 대해 “개천에서 龍을 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능력을  존중하는 試驗 制度인 科擧로 부단하게 계층의 순환을 이어 갔고, 문벌 獨占과 횡포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世界史에서 유례없는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韓永愚 敎授는 그 근거를 정리한 서적 [科擧, 출세의 사다리]를 최근 완간했다.

 

 

 

 

 

4권으로 낸 책은 韓 敎授가 지난 5년간 조선시대 文科 及第者 1만 4615명을 분석하고, 200자 원고지 1만 20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원고로 추려 내놓은 역작이다. 1권은 太祖~宣祖, 2권은 광해군부터 英祖, 3권은 正祖~哲宗, 4권은 高宗 시대를 照明한다.

‘榜目’에는 及第者의 이름, 前歷, 벼슬, 內外 4代祖(직계 3代祖와 外祖), 本貫이 적혀 있다. 及第者의 일부만 기록한 데다  이것도 자세히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료로서 한계가 크다. 보통 本貫에 따라 양반과 中人, 平民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를 及第者의 출신으로  적용하기에는 위험하다. 高官大爵에 올랐다가도 王代가 바뀌면서 平民으로 轉落하기도 하고, 中人 가문에서 文科 及第者를 輩出한 경우 스스로를  양반이라고 自處했기 때문이다.

韓 敎授는 及第者들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實錄’과 ‘族譜’, 庶孼의 역사를 기록한 葵史, 鄕吏 역사를 담은 ‘緣曹龜鑑’,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靑邱氏譜’와 ‘萬成大同譜’,  全州李氏大同宗約院이 낸 ‘全州李氏科擧及第者總覽’까지 살폈다.

연구 결과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이 낮은 及第者의 비율이 전체의  40~50%에 이르렀다. 16세기 후반 이후부터 양반의 벼슬 世襲이 굳어졌지만, 18세기 중반 이후 平民 출신들의 及第 비율이 다시 높아져  正祖 53.02%, 純祖 54.05%, 憲宗 50.98%, 哲宗 48.19%를 보였다. 高宗 代에는 이 비율이 58.61%에 달했다. 양반이라는  특권층이 권력과 富를 世襲的으로 獨占하고 평민과 노비를 지배했다는 通念을 뒤집는 자료다.

“조선 사회는 폐쇄성과 탄력성, 개방성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사회였고, 이는 科擧 制度로 가능했다”는 韓 敎授는 “科擧 制度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韓永愚의 功力은 ‘개천에서 龍 난다’는 말이 옛말이 돼 버린 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출처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121021003


朝鮮時代 科挙 及第者 の中で 平民 の割合は 40‾50%

韓永愚 ソウル大名誉 教授

 

韓永愚(76) ソウル大 教授は朝鮮時代 科挙制度に対して “小川で 竜を出すことができる最高の機会”と主張した. 朝鮮は能力を尊重する 試験 制度である 科挙で絶え間なく階層の循環を引き続いたし, 門閥 独占と横暴を牽制する役目をしたから 世界史で類例ない 500年王朝を維持す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話だ. 韓永愚 教授はその根拠を整理した 書籍 [科挙, 出世の 梯子]を最近完刊した.

 

 

 

 

 

4冊で出した本は 韓 教授が去る 5年間朝鮮時代 文科 及第者 1万 4615人を分析して, 200字原稿紙 1万 2000余枚に至る膨大な分量の原稿に選って出した力作だ. 1冊は 太祖‾宣祖, 2冊は光海君から 英祖, 3冊は 正祖‾哲宗, 4冊は 高宗 時代を 照明する.

‘榜目’には 及第者の 名前, 前歴, 官職, 内外 4代祖(直系 3代祖と 外祖), 本貫が書かれている. 及第者の一部だけ記録したうえにこれも詳らかに 記録したのではなく資料として限界が大きい. 普通 本貫によって両班と 中人, 平民を区分したりするが, これを 及第者の出身で適用するには危ない. 高官大爵に上がったとしても 王代が変わりながら 平民で 転落したり, 中人 家門で 文科 及第者を 輩出一場合自らを両班だと 自処したからだ.

韓 教授は 及第者らをもうちょっと細密に分析するため ‘実録’と ‘族譜’, 庶〓の歴史を記録した 葵史, 郷吏 歴史を盛った ‘縁曹亀鑑’, 日帝強制占領期間に編纂された ‘青邱氏譜’と ‘万成大同譜’,  全州李氏大同宗約院が出した ‘全州李氏科挙及第者総覧’まで察した.

研究結果朝鮮初期だけでも身分が低い 及第者の割合が全体の 40‾50%にのぼった. 16世紀後半以後から両班の官職 世襲が固まったが, 18世紀中盤以後 平民 出身たちの 及第 の割合がまた高くなって  正祖 53.02%, 純祖 54.05%, 憲宗 50.98%, 哲宗 48.19%を見せた. 高宗 代にはこの割合が 58.61%に達した. 両班という特権層が権力と 富を 世襲的に 独占と平民と奴婢を支配したという 通念を覆す資料だ.

“朝鮮社会は閉鎖性と弾力性, 開放性が交差する二重的な社会だったし, これは 科挙 制度で可能だった”は 韓 教授は “科挙 制度は勉強さえ熱心にすれば政丞と 板書に上が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夢と希望を投げた”と 評価した. 韓永愚の 功力は ‘小川で 竜 出る’と言う言葉が古語になってしまった時に重たい質問を投げる. 

催女警察記者 cyk@seoul.co.kr

 

出処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1210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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