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80대 중반의 노인께 들은 일제시기에 관한 증언이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 때문에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당시 강제성
이 있었는지 질문하였다. 그 분 말씀이 자신의 부친이 징용 대상자라 일본
관리에게 뇌물을 바쳐 징용을 피하려고 할 때 광복되었다고 했다. 또한 당
시 농촌 지역임에도 일본인 하급 관리들이 처녀들을 데려가려고 하여 일찍
결혼을 하거나 방직 공장에 취업하여 피하였다고 한다. 내가 일본 관리들이
모집에 참여했느냐고 물으니 일본인 경찰, 군인, 행정인 등이 총체적으로
주도해 징용과 위안부를 데려갔다고 분명히 증언하였다.
노인이 계시던 곳이 농촌 지역인데도 담배를 파는 작은 상점도 일본인이
경영하고 대부분의 한국인은 농사를 지었으며 수확의 1/10만 소유하고 대
부분 수탈당해 곡식을 땅에 숨겨서 겨우 먹고 지냈다고 한다. 당시는 한국
인은 소학교 교육도 마치기 힘들었다고 한다. 사실상 고등교육은 받을 수
없었으며 잘해야 상업, 농업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35년간 계속... 대한제국이 더 잘했을 것이다.)
참고로 그 노인분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분으로 일본이 패망했을 때 눈물
을 흘렸다고 한다. 물론 일본의 식민지 교육도 원인이라고 하셨다. 또한 인
근의 일본인과도 잘지내 음식도 함께 나누어 먹을 정도였고, 일본이 일부
근대 시설과 문화를 도입한 것은 인정해도 식민지 시기는 힘든 고통의 시기
로 회상하셨다. 당시는 일본의 국가 범죄가 철저히 은폐, 통제되었으며
경찰과 군대의 탄압이 두려워 전국적으로 자행된 수탈과 동원에 대해 사람
들은 침묵을 한 것이다. 당시 아이들은 경찰이 오면 집에 숨어 있을 정도로
공포감을 가졌었다. 그 시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됬다면 다행이
다. 아래 사진은 일제시기 근로 정신대에 동원된 조선여성
最近おおよそ 80代中盤の年寄りに聞いた日帝時期に関する証言だ.
最近日本政治家たちの発言のため徴用と慰安婦問題に対して当時強制性
が あったのか質問した. その方お話が自分の父親が徴用対象者だと日本
管理に わいろを捧げて徴用を避けようと思う時光復されたと言った. また党
市農村地域にも 日本人下級役人たちが娘たちを連れて行こうと思って早く
結婚をするとか紡織工場に就職して 避けたと言う. 私の仕事をした役人たちが
募集に参加したかと問ったら日本人警察, 軍人, 行政であるなどが総体的に
主導して徴用と慰安婦を連れて行ったと確かに証言こんにちはだった.
年寄りがいらっしゃった所が農村地域なのにタバコを売る小さな商店も日本人が
頃零して 大部分の韓国人は農業をしたし収獲の 1/10万所有して台
部分収奪されて穀食を地に 隠してやっと墨高過ごしたと言う. 当時は韓国
インは小学校教育も終えにくかったと言う. 事実上高等教育は受ける数
なかったしせいぜい商業, 農業学校に進学したと言う.
(35年間引き続き... 大韓帝国がもっとお上手だったろう.)
参照でその掻人前は日本に対して友好的な分で日本が敗亡した時涙
を流したと する. もちろん日本の植民地教育も原因だと言った. またイン
およその日本人ともザルジネ 食べ物も一緒に分けて食べるほどだったし, 日本が一部
近代施設と文化を取り入れたことは認めても 植民地時期は大変な苦痛の時期
で回想した. 当時は日本の国家犯罪が徹底的に隠蔽, 統制されたし
警察と軍隊の弾圧が恐ろしくて 全国的に恣行された収奪と動員に対して人
たちは沈黙をしたのだ. 当時子供達は警察が 来れば家に隠れているほどに
恐怖感を持った. その時代雰囲気を少しでも理解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