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그런데, 호류사.현재 비보전이 개최중으로 다녀 왔습니다.이번에 10번째 정도의 방문.집으로부터 고속을 사용해 30분 미만의 거리에 있으므로 가기 쉽다.

사진의 「남대문」은 호류사의 입구에서 1438년의 재건.

 

 

 

화주목이 떠들썩한 남대문.안쪽에는 중문과 오층탑이 보인다.

 

 

이것은 전회 방문했을 때의 사진.평상시는 이런 슬로프는 없습니다.

 

사이인 가람에 들어간다.유감스럽지만, 여기만의 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보의 회랑으로 나아가, 아저씨에게 표를 끊어 준다.

 

 

 

그런데,사이인 가람.

 

일본 서기에 의하면, 호류사는 서기 670년에 소실했다고 한다.그러나, 절의 기록에는 남지 않고, 금당등의 건축 양식의 낡음으로부터 그것을 부정하는 설도 있었다.그 결과, 이러한 건물이 재건된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지의 논쟁이 메이지 시대부터 쭉 계속 되었다.

그러나, 1939년에 와카쿠사 가람자취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거기가 호류사 창건의 장소였던 일이 판명되면, 소실설이 올바르면 증명되어 일응의 결착을 보았다.

···하지만, 연륜 연대법의 측정을 하면, 이번은 호류사 금당으로부터 670년의 소실 이전의 부재가 발견되어 또 까다롭게 되었다.

 

 

호류사 금당

 

이 건물의 천정판이나 지륜판의 부재는 667년, 668년의 벌채.게다가 650년대말부터 60년대 벌채와 추정되는 재도 몇 점 있다고 한다.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 건축 역사가 스즈키 요시키치씨는, 「이 건물은 원래는 금당은 아니고 묘당이었다」라고 한다.

 

즉, 643년에 구워진 성덕태자의 궁전에 있던 석가 삼존상을 모시기 위해서, 와카쿠사 가람 서방의 땅에, 650년대 후반무렵에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금당으로, 670년의 화재 후, 거의 완성에 가까운 이 건물을 중심으로 절을 재건하게 되어, 그 때문에(위해) 지반을 인하하고 부지를 펼쳐 탑이나 회랑을 세운 것은 아닌지, 라고 한다.

 

 

파일:GUZE Kannon Horyuji.JPG

구세관세음 보살

 

게다가 현재 몽전에 안치되고 있는 구세관세음 보살이지만, 창건 당초는 금당의 서쪽의 사이에 안치되고 있었다고 한다.이것은 니시카와 쿄타로씨가 제창해, 최근 많은 찬동을 얻고 있는 것 같고, 스즈키 요시키치씨도 지지하고 있다.

 

현재서쪽의 사이에는, 가마쿠라 시대 작성의 아미타 여래상이 앉아 있지만, 아래의 대좌는 매우 낡고, 금당 창건 당초의의 것이라고 추정된다.구세관세음 보살은 쇼오토쿠 타이시 등신의 상과 전해진다.그렇다면, 이것이 서쪽이 화해시키고 있으면, 금당은 묘당과 다름없다고, 한다.

또, 동쪽의 사이에는 창건 당초는 천개가 없었던 것 같고, 여기에는 스이코천황의 유품으로 여겨지는 다마무시노즈시가 놓여져 있던 것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실제, 근대 이전에는동의 사이의 안쪽에 다마무시노즈시가 쭉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금당 자체도, naijin의 주위를 불어 발해, 불상을 슈미단의 전방으로 대어 배치하는 등, 통상의 금당으로서는 의심점이 많은 것 같다.

 

파일:Tamamushi Shrine.JPG

다마무시노즈시

 

정리하면, 「현재의 호류사 금당은 650년대 후반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중앙에 석가 삼존, 서쪽의 사이에 구세관세음 보살, 동쪽의 사이에 다마무시노즈시를 안치한 묘당이었지만, 670년의 소실 후 이 묘당을 금당으로 해, 이 건물을 중심으로 호류사가 재건되었다」라고 하는 것이 된다.

뭐, 이것이 완전하게 올바른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런 설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단풍과 국보의 대강당

 

 

중문의 히토시왕씨.꽤의 광등골을 가지고 있고 계(오)신다.

 

 

오층탑.통주목의 중앙에 걸려 있는 판은, 피뢰를 위한 부적 「피뢰부」.예존직필의 것을, 이번 방문으로 볼 수 있었다(호류사 비보전으로 전시되고 있다).

 

 

 

 

사이인 가람으로 그림자의 얇은 존재인 「경장(사진왼쪽·나라시대)」과「종루(사진 오른쪽·헤이안 시대)」.양자는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이 2는 텐표우시대의 건축과 헤이안 시대의 건축의 외관상의 미묘한 차이를 관찰할 수 있어 재미있다.

 

함께 이중홍량와고이지만, 경장의 홍량은 느슨하게 곡선이 젖혀지는데 대해, 종루의 것은 보다 직선적으로 된다.또, 경장은 기둥의 정부를 조금 움츠려 주목의 표면에 세조를 붙이고 있지만, 이것도 텐표우시대의 특징으로 거론된다.

 

주목의 표면에 세조가 있는 왼쪽의 경장, 직선적인 오른쪽의 종루.

(세조의 유무는, 당마사동탑과 서탑도 비교하기 쉽다)

홍량이나 주목에 휘어진 상태를 붙여 부재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도록(듯이) 보이게 하는 텐표우시대 건축과 직선적이고 평이한 구성으로 하고, 제대로 정리된 감각을 내는 헤이안 시대 건축의 차이가,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자.

 

 

마지막

 

 


法隆寺西院伽藍

 

さて、法隆寺。現在秘宝展が開催中で行ってきました。今回で10回目程度の訪問。家から高速を使って30分弱の距離にあるので行き易い。

写真の「南大門」は法隆寺の入口で1438年の再建。

 

 

 

花肘木が賑やかな南大門。奥には中門と五重塔が見える。

 

 

これは前回訪れた時の写真。普段はこんなスロープはありません。

 

西院伽藍に入る。残念ながら、ここだけの券は存在しない。

 

 

国宝の回廊を進み、おじさんに切符を切ってもらう。

 

 

 

さて、西院伽藍

 

日本書紀によると、法隆寺は西暦670年に焼失したという。しかし、寺の記録には残ってないし、金堂などの建築様式の古さからそれを否定する説もあった。その結果、これらの建物が再建されたものか、そうでないのかの論争が明治時代からずっと続いた。

しかし、1939年に若草伽藍跡の発掘調査が進み、そこが法隆寺創建の場所だったことが判明すると、焼失説が正しいと証明され、一応の決着を見た。

・・・が、年輪年代法の測定が行われると、今度は法隆寺金堂から670年の焼失以前の部材が発見され、またややこしいことになった。

 

 

法隆寺金堂

 

この建物の天井板や支輪板の部材は667年、668年の伐採。さらに650年代末から60年代伐採と推定される材も数点あるという。これをどう解釈すべきか。

これに対し、建築史家の鈴木嘉吉氏は、「この建物は元々は金堂ではなく廟堂だった」とする。

 

即ち、643年に焼かれた斑鳩宮にあった釈迦三尊像を祀るために、若草伽藍西方の地に、650年代後半頃に造り始めたのが今の金堂で、670年の火災後、ほぼ完成に近いこの建物を中心に寺を再建することになり、そのために地盤を切り下げて敷地を広げ、塔や回廊を建て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

 

 

ファイル:GUZE Kannon Horyuji.JPG

救世観音

 

さらに、現在夢殿に安置されている救世観音だが、創建当初は金堂の西の間に安置されていたとする。これは西川杏太郎氏が提唱し、最近多くの賛同を得つつあるらしく、鈴木嘉吉氏も支持している。

 

現在西の間には、鎌倉時代作成の阿弥陀如来像が座っているが、下の台座は非常に古く、金堂創建当初のものと推定される。救世観音は聖徳太子等身の像と伝えられる。とすれば、これが西の間に立っていれば、金堂は廟堂に他ならない、という。

また、東の間には創建当初は天蓋が無かったらしく、ここには推古天皇の遺品とされる玉虫厨子が置かれ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実際、近代以前は東の間の奥に玉虫厨子がずっと置かれていた。

そして金堂自体も、naijinの周囲を吹き放ち、仏像を須弥壇の前方に寄せて配置するなど、通常の金堂としては不審点が多いらしい。

 

ファイル:Tamamushi Shrine.JPG

玉虫厨子

 

まとめると、「現在の法隆寺金堂は650年代後半から建てられ始め、中央に釈迦三尊、西の間に救世観音、東の間に玉虫厨子を安置した廟堂だったが、670年の焼失後この廟堂を金堂とし、この建物を中心に法隆寺が再建された」ということになる。

まあ、これが完全に正しいのかどうかは分からないが、こういう説が存在するということだ。

 

 

 

 

 

紅葉と国宝の大講堂

 

 

中門の仁王さん。中々の広背筋をお持ちでいらっしゃる。

 

 

五重塔。通肘木の中央に掛かっている板は、避雷の為の護符「避雷符」。叡尊直筆のものを、今回の訪問で見ることができた(法隆寺秘宝展で展示されている)。

 

 

 

 

西院伽藍で影の薄い存在である「経蔵(写真左・奈良時代)」と「鐘楼(写真右・平安時代)」。両者は似ているが、微妙に異なる。この2つは天平時代の建築と平安時代の建築の外見上の微妙な違いを観察できて面白い。

 

ともに二重虹梁蛙股だが、経蔵の虹梁は緩く曲線が反り上がるのに対し、鐘楼のはより直線的になる。また、経蔵は柱の頂部をわずかに窄め、肘木の上面に笹繰を付けているが、これも天平時代の特徴に挙げられる。

 

肘木の上面に笹繰のある左の経蔵、直線的な右の鐘楼。

(笹繰の有る無しは、当麻寺東塔と西塔も比べやすい)

虹梁や肘木に反りをつけ、部材を安定的に支えるように見せる天平時代建築と、直線的で平明な構成にして、きちんと整理された感覚を出す平安時代建築の違いが、ここに現れていると言えよう。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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