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天命)을 받은 군주는 하늘의 역할을 대신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치를 펼쳐야 했던 바,천문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일은 제왕의 임무였다.그래서 고구려는 이미 서기 1세기 무렵 평양의 위도(약 39도)에 가까운 북위 40도의 지역에서 관측된 것을 토대로 독자적인 천문도를 제작하였으며,이는 조선왕조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로 계승되어 고구려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천명(天命)을 조선이 계승했음을 나타낸다.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새로이 천명(天命)을 받아 출범한 왕조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독자적 세계관이 반영된 훌륭한 천문도를 제작했던 것이다.이는 중국의 천문도가 아닌 고구려의 천문도에 그 기원을 대고 있으며,기존의 천문학 데이터에 새로운 천문데이터를 확보하는 과학활동이 이루어졌다.주극원(週極圓)안의 별들의 위치를 새롭게 측정한 값으로 바꾸거나 주극원의 범위를 한양의 위도에 맞도록 수정했던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국보 제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로123cm,세로201cm의 돌 위에 새겨 놓은 이 천문도에는 1,467개나 되는 별들이 그려져 있다.조선 독자의 별자리를 그려 넣었으며,별의 크기에 따라 굵기를 달리해서 그렸다.일본의 천문도는 이것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미 고구려 시기부터 축적되어 온 천문학 성과에 더하여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기 위한 과학활동의 결과 조선 초기 천문학 수준은 대단히 높아졌으며 세계사적으로도 15세기 조선의 천문학 성과는 유별나서 과학사(科學史)계의 “토인비”라고 불리는 과학사학자 조셉 니덤(J.Needham)은 한국의 전통과학기술에 관심을 두고 1986년 “서운관(書雲觀,조선 태조대에 설치된 관직으로 천문을 담당,나중에 세종대에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이라는 책을 저술했을 정도이다.
한국은 기원전 4세기 전의 고조선 시대에도 이미 왕호(王號)를 사용하고 있었던 유구한 역사의 나라이다.당연히 독자적인 세계관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거란,여진,몽고 등의 북방 제(諸) 민족을 통솔하는 동북아시아의 패자(覇者)로서의 그러한 세계관과 한족 왕조의 세계관의 충돌로 인해 고구려는 그처럼 엄청난 규모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것이다.
千名(天命)を受けた君主は空の役目の大臣と彼に符合する政治を広げ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ころ,天文を観測して記録する事は帝王の任務だった.それで高句麗はもう西紀 1世紀頃平壌の緯度(約 39度)に近い北魏 40道の地域で観測されたことを土台で独自の天文図を製作したし,これは朝鮮王朝の ¥"天上列車分野誌も(天象列次分野之図)¥"に継勝されて高句麗が空から受けた千名(天命)を朝鮮が受け継いだことを現わす.
朝鮮は開国初期から新たに千名(天命)を受けて出帆した王朝が空を敬って民のためだということを確かにするために独自的世界観が反映された立派な天文図を製作したのだ.これは中国の天文図ではない高句麗の天文図にその祈願をつけているし,既存の天文学データに新しい天文データを確保する科学活動が成り立った.ズグックワン(週極円)中の星の位置を新しく測定した値段に変えるとかズグックワンの範囲を漢陽の緯度に当たるように修正したことなどがそういう例だ.
国宝第 228号 ¥"天上列車分野誌も(天象列次分野之図)¥".横123cm,縦201cmの石の上に刻んでおいたこの天文図には 1,467個もなる星が描かれている.朝鮮独自の星座を描いて入れたし,別意大きさによって太いのを異にして描いた.日本の天文図はこれを土台に製作された.
もう高句麗時期から蓄積されて来た天文学成果に加えて新しい天文図を製作するための科学活動の結果朝鮮初期天文学水準はすごく高くなったし世界史蹟でも 15世紀朝鮮の天文学成果は格別で科学社(科学史)係の ¥"トインビー¥"と呼ばれる科学史学者ジョセフニーダム(J.Needham)は韓国の伝統科学技術に関心を置いて 1986年 ¥"書雲観(書雲観,朝鮮太祖台に設置された官職で天文を担当,後で世宗大に観象監(観象監)で改称)¥"という本を著わした位だ.
韓国はB.C. 4世紀の前の古朝鮮時代にももうワングホ(王号)を使っていた悠久な歴史の国だ.当然独自の世界観が登場するしかなかったし,キタイ,搖り返し,モンゴルなどの北方諸(諸) 民族を統率する東北アジアの敗者(覇者)としてのそういう世界観と漢族王朝の世界観の衝突によって高句麗はそれ程おびただしい規模の戦争を経験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