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말하려면 조리 도구가 뒷받침해야 되겠지요.생선을 간장이나 식초에 찍어 먹었다는 것은 요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겠지요.
생선을 날 것으로 먹는 것 자체는 요리가 아니지만 생선회라는 것은 요리의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생선을 칼로 잘라서 간장에 찍어 먹으면 단순한 음식이지만 와사비를 곁들이거나 식초를 부가하거나 하는 것은 요리의 범주에 들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料理を言おうとすれば料理道具が裏付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ね.魚を醤油や酢につけて食べたということは料理の範疇に入らないですね.
魚を 生食べること自体は料理ではないが御刺身というのは料理の範疇に入って行くようになります.魚を刀で切って醤油につけて食べれば単純な食べ物だがわさびを添えるとか酢を付け加えるとかすることは料理の範疇に入って行くことではないですか
일본 요리하면 떠 오르는 두가지 메밀국수와 생선회
여기에는 무 갈은 것과 와사비 갈은 것이 있습니다.그러면 무와 와사비는 무엇으로 갈 수 있습니까?
日本料理すれば浮び上がる二つのそばと御刺身ここには大根おろしと わさびおろがあります.
それでは大根とわさびは何におろし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
바로 강판이지요.
한일 양국의 강판을 살펴 보고 요리의 품격을 느껴 봅시다.
すぐ薑板ですね.
韓日両国の薑板をよく見る料理の品格を感じる見ましょう.
강판이 생겨난 시기는 조선시대의 약소주(藥燒酒)의 하나인 이강고(梨薑膏)를 만들 때만 해도 생강과 배의 즙을 낼 때 기왓장 위에서 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후대의 일이라 생각된다.
薑板のできた時期は朝鮮時代の薬焼酒のひとつの梨薑膏を作る時だけしても生姜と梨の汁を出す時瓦屋根の上でのおろしで推測して見れば後代の仕事と考えられる.
강판을 용도에 따라서 분류해보면, 과일 따위를 갈아서 즙을 낼 때에는 이가 작은 것을 사용하였고, 김치를 만들 때 소로 쓸 무나 당근 등을 갈 때는 이가 크고 거칠게 만든 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강판의 재질에 따라 갈 재료를 구분해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사과처럼 산미(酸味)가 강한 재료는 도제 강판을 사용하였다.
薑板を用途によって分類して見れば, 果物なんかを磨って汁を出す時には齒が小さなことを使う, キムチを作る時薬味で大根やにんじんなどを行く時は齒が大きい荒くしたことを使った. そして薑板の材質に付いて下ろす 材料を区分して使ったが, 例えばりんごのように酸味の強い材料は陶製薑板を使った.
이 <동제강판>은 사다리꼴 모양의 몸체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모양으로, 몸체가 부식되어 초록색으로 변색된 부분이 조금 있다. 몸체의 앞면 가장자리 부분 중 손잡이와 대칭인 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직각으로 꺾여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 약간의 깊이감을 주고 있다. 앞면의 바닥에는 오돌토돌하게 나온 돌기가 2줄씩 1조로, 10조가 있다. 손잡이는 끝부분을 둥글렸으며, 둥글린 부분의 가운데에 구멍이 한 개 뚫려 있다.
この <銅製薑板>は台形模様の体つきに取っ手が付くある模様で, 体つきが腐食される緑色に変色された部分がのちほど. 体つきの前端部分の中で取っ手と対称である方を除いたすべての部分の端が少しずつ直角で折れる垂直で立てたんですある少しの深み感を与えるある. 前の底にはおうとつに出た突起が 2列ずつ 1組で10組がある. 取っ手は端の部分を丸くしたし, 丸くした部分の中に穴が一つあくある.
廣州 分院里窯産 19세기 작품으로 추정
이 강판은 백자로 만든 것으로 네모 반듯하고 가운데 부분에는 14줄의 톱날을 넣어 생강이나 무우 등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위쪽의 약간 튀어나온 부분에 구멍을 뚫어 끈을 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강판은 무쇠로 만든 강판이다. 양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 한쪽은 톱날이 촘촘하게 있고, 한쪽은 성기게 있어 용도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부채꼴 모양이며 손잡이가 길다. 손잡이 끝에 여의두문 모양의 구멍이 뚫려있고 거기에 끈을 꿰어 사용하였다.
이 강판은 나무판에 상어피(상어 가죽)을 입혀서 만든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사각형판의 판 부분에만 상어피를 입힌 후 측면에 못을 박아 마감하였다. 손잡이를 잡고 판에 대고 무우나 생강을 갈면 사어피의 우둘투둘한 부분에 갈리도록 되어 있다.
この鋼板は木版に鮫皮を加える作ったのだ. 取っ手が付くある四角形板の板部分にだけ鮫皮を加えた後側面にくぎを打ち込んで締め切った. 取っ手を取る板に大根や生姜を磨れば鮫皮のでこ-ぼこした部分に下ろす ようになるある.
江戸時代末期に寿司、蕎麦の食文化が大衆化する頃、山葵は、静岡県天城山より中伊豆、永川峠を超え伊東港まで人夫や馬車で運ばれ、船で江戸、日本橋へ出荷されました。
鮫皮おろしは、町人や料理人が宮大工の木の表面加工に利用していた鮫皮をヒントに山葵を細かくすりおろす道具として作られました。その時代では今のような接着剤はなく、大きな板に鮫皮をなめしそのまま鋲で打ちつけて使用していたようです。
当社の鋲止め鮫皮おろしは、江戸時代の伝統的な道具を忠実に復元させ商品化したものです。
에도시대 말기에 스시, 소바의 식생활 문화가 대중화 하는 무렵, 와사비는, 시즈오카현 아마기산에서(보다) 나카이즈, 영천고개를 추월 이토항까지 인부나 마차로 옮겨져 배로 에도, 니혼바시에 출시되었습니다.
상 어 가죽 내림은, 읍인이나 요리인이 목수의 나무의 표면 가공에 이용하고 있던 상어 가죽을 힌트에 와사비를 세세하게 지는 도구로서 만들어졌습니다.그 시대로는 지금과 같은 접착제는 없고, 큰 판에 상어 가죽을 없는 해 그대로 압정으로 쳐 붙여 사용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당사의 압정 멈춤 상어 가죽 내림은, 에도시대의 전통적인 도구를 충실히 복원시켜 상품화한 것입니다.
残りの2つは何れも四天王寺さんで購入しましたが、右側は土味から信楽では?と考えています。そして左は釉薬の感じから昭和初期ごろの丹波ではないかと推定しています。
当初、おろし皿ってこの形のものは明治だと思っていたのですが、最近買った骨董系のムックに「おろし皿」・・・大正期、丹波産とあったので、ちょっと時代的なものは判らなくなってきました。
중앙의 것이 최초로 오이마츠쵸에서 산 것으로 하고, 아마 세토산과 사 해 기모노가 3천엔(이었)였습니다.
나머지의 2개는 어느 쪽도 시텐노우지씨로 구입했습니다만, 우측은 토미로부터 시가라키에서는?(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왼쪽은 유약의 느낌으로부터 쇼와 초기경의 탄바는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초, 내림접시는 이 형태의 것은 메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최근 산 골동계의 무크에「내림접시」・・・타이쇼기, 탄바산과 있었으므로, 조금 시대적인 물건은 몰라졌습니다.
戦後の物不足の中で、金属製のおろし器も生産されなかった。そうした中で作られたのが、この陶製おろしである。
전후의 물건 부족 중(안)에서, 금속제의 내림기도 생산되지 않았다.그러한 가운데로 만들어진 것이, 이 도제 내림이다.
料理を言おうとすれば料理道具が裏付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ね.魚を醤油や酢につけて食べたということは料理の範疇に入らないですね.
魚を飛ぶことで食べること自体は料理ではないが御刺身というのは料理の範疇に入って行くようになります.魚を刀で切って醤油につけて食べれば単純な食べ物だがわさびを添えるとか酢を付け加えるとかすることは料理の範疇に入って行くことではないですか?
料理を言おうとすれば料理道具が裏付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ね.魚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