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서양에서 입수한 조총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맹장 가토는
함경도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의병대가 길주를 함락시키고 정문부가
조선 왕자를 가토에게 넘겨준 국세필 국경인의 목을 자르고 가토를 위협하였다 결국 진군을 멈추었다
함경도에서 대기중이던 당시 일본군에는 종군승려가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콩과 콩 삶은 물만 먹었다 하늘과 땅은 온통 빙항의 세계였다 2월 11일 함흥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데 쌓인 눈에 무릎까지 빠져 진군할수가 없었다 금강산을 지나는데
산인지 눈인지 알수없었고 사람과 말이 모두 얼어죽었다 이런 사정으로 당초 2만2000명이었던
가토의 제 2군은(1군은 고니시 유키나가) 1만 3000여명만 서울에 돌아왔다 두명중
1명만 살아 돌아온 셈이다 정문부등 의병대에 의한 손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조선의 동장군에 의한 손실이었다 조선 북부지방의 혹도한 추위와 굶주림은 가토의
군대를 사정없이 몰아쳤다 -일본 종군승 세타쿠의 기록-
이순신이 7년전쟁동안 격침시킨 倭船
513척...
반면에 이순신이 잃어버린 戰船은 2척
그것도 倭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운행중에 전복된 것이라 한다...
日本は西洋で手に入れた弔銃で朝鮮を侵攻こんにちはだったそして日本の盲膓加藤は
咸境道まで進軍こんにちはだったしかし朝鮮の義兵台がギルズを陷落させて正門部が
朝鮮王子を加藤に渡してやったグックセピル国境人の首を首をして加藤を脅威した結局進軍を止めた
咸境道で待機中だった当時日本軍には従軍僧侶があったが彼はこのような記録を残した
豆科豆ゆでた水だけ飲んだ空と地はいちめんビングハングの世界だった 2月 11日咸興を発って
ソウルに向けるのに積もった雪に膝まで抜けて進軍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金鋼山を通るのに
山なのか目なのか分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人と言葉が皆オルオズックオッダこんな事情で 最初 2万2000人だった
加藤の第 2群は(1群は小西ユキナが) 1万 3000人余りだけソウルに戻って来た二名中
1人だけ住んで帰って来たわけだ 正門部義兵台による損失もあったが大多数は
朝鮮の冬将軍による損失だった朝鮮北部地方のホックドした寒さと飢えは加藤の
軍隊を監査なしに急きまくった -日本ゾンググンスングセーター区の記録-
李舜臣が 7年戦争の間撃沈させた 倭船
513尺...
一方に李舜臣の忘れてしまった 戦船は 2尺
それも 倭にあったのではなく運行中に転覆したものと言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