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암반에 세운 망대(望臺)
경상북도기념물 제53호
산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한 테뫼식 산성으로, 견훤이 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삼국시대의 산성이며, 충청북도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과 축성방법이 비슷하다. 넓은 분지에
자리한 우뚝한 봉우리 주위에 석축을 쌓아 성곽을 만들었는데,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이다.
성벽은 안팎을 할석(割石)으로 쌓은 내외협축(內外夾築)이며, 성벽 둘레는 650m, 계곡을 이룬 곳은
높이 쌓아 성벽의 높이가 15m 이상이며 자연암석 위에 쌓은 지점은 4~5m로,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
용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너비는 4~6m인데, 완전한 벽면이 6m인 것으로 미루어 당초에는
6m 내외로 축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을 고르게 쌓아 올려 벽면 안팎이 평평하다.
성벽의 네 모퉁이는 천연암석에 의지하여 쌓았으며, 동쪽과 서쪽의 남북 끝 부분에 둘레 33m, 너비
5m, 높이 9~10m로 말굽형의 돌출된 망대(望臺)를 설치하였다. 현재 동쪽의 두 곳은 원형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서쪽의 두 곳은 파손되었으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성안은 굴곡이 많고 넓직한 대지도 있으며, 현재도 기와나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한 구석에서 샘이
솟는 점으로 미루어 당시 건물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지금의 문경시 가은읍(加恩邑) 출신인 까닭에 상주지역의 옛
성들과 자주 연관되어 언급되는데, 현지에서는 견훤이 이곳에 웅거하며 북쪽 지방에서 경주로 향하
는 공납물을 모두 거두어들였다고 구전된다.
화서면 하송리(下松里)에 있는 대궐터에서 청계사 계곡까지 연결되는 성산산성(城山山城)을 합쳐
서 견훤성이라고도 하는데, 하송리 대궐 터는 견훤이 처음 축조한 성지로 전해지며 지금은 극락정
사라는 절이 있다.
自然岩盤に 立てた 望台(望台)
慶尚北道記念物第53号
山の頂上部に付いて逐造した山頂式酸性で, ギョンフォンが築城したと伝わる. 国内で珍しい
三国時代の酸性であり, 忠清北道報恩の三年三省(三年山城)と築城方法が似ている. 広い盆地に
位置したにょっきりした峰周りに石垣を積んで城郭を作ったが, 全体的に正四角形だ.
城壁は内外をハルソック(割石)で積んだネウェヒョブツック(内外夾築)で, 城壁まわりは 650m, 谷を成した所は
高く積んで城壁の高さが 15m 以上で自然岩石上に積んだ地点は 4‾5mで, 自然地形を最大限これ
うまかった. 現在残っている城壁の幅は 4‾6mのに, 完全な壁面が 6mであるので延ばして最初には
6m 内外に築城したことと見える. お影石を選ぶように積んで上げて壁面内外が平たい.
城壁の君の角は天然岩石に頼って積んだし, 東と西の方の南北終り部分にまわり 33m, 幅
5m, 高さ 9‾10mで蹄型の突き出された望台(望台)を設置した. 現在東の二所は原型がほとんど
完全に保存していて, 西の方の二所は破損されたが跡が明らかに残っている.
城中は屈曲が多くてノブジックしたつけるのもあり, 現在も瓦や土器切れが発見されてした隅で漏れることが
湧く点で推して当時建物が立てられたことに推定される.
ギョンフォンと彼のお父さん牙子ヶ(阿慈介)は今の聞慶市加恩邑(加恩邑) 出身であるわけに尚州地域の昔の
性たちとよく連関されて言及されるのに, 現地ではギョンフォンがこちらに雄拠して北地方から競走で向下
は貢納物を皆取り入れたと口伝される.
花序なら下送里(下松里)にあるデグォルトで清渓社谷まで繋がれる成算酸性(城山山城)を合わせ
でギョンフォン性とも言うのに, 下送里大闕敷地はギョンフォンが初めて逐造した聖地で伝わって今はグックラックゾング
買いなさいというお寺が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