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능은, 나라시대에 중국에서 도래한 「중국에서 도래한 마술, 곡예, 익(산악)」이라고 하는 예능을 원류로 하고 있습니다.나라시대에는, 우스꽝스러운 재주나 흉내, 곡예, 기술 등 대중 예능인 「중국에서 도래한 마술, 곡예, 익」이라고, 장엄한 무용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아악」이, 중국에서 건너 왔습니다.아악은, 궁중이나 귀족의 의식 시에 연기할 수 있는 식 락이 되어, 중국에서 도래한 마술, 곡예, 익은, 지샤의 여흥으로서 서민의 사이에 퍼져서 갔습니다.

그 후, 중국에서 도래한 마술, 곡예, 익은 무수한 변천을 거치면서, 능과 희극의 요소를 가지는 「옛 예술제」에 집약되어 갑니다.평안·카마쿠라로부터 에도시대까지는, 능은 「옛 예술제(옛 예술제)」혹은 「옛 예술제의 능」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능」이라고 하는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옛부터 연극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던 것 같습니다.남북조로부터 무로마치 시대에는, 능은 대체로 「옛 예술제능」과「두부산적(나오지 않는 금액) 능」의 2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옛 예술제의 능은, 얼마나 그 역할을 닮아 다투는지, 라고 하는 흉내를 중심으로 하는 재주였는데 대해, 두부산적의 능은 춤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흉내낸다고 하는 것보다는 상징적으로 연기하는 것이었습니다.두부산적의 능은, 귀족 사회에서도 받아 들여져 도로 유행했습니다만, 옛 예술제의 능은 도에서는 받지 않고, 오오미, 탄바, 이세 등 주변지역이 중심이었습니다.

 

옛 예술제, 두부산적 모두, 당시는, 「옛 예술제의 자리」 「두부산적의 자리」라고 하는 자리 조가 있어, 단장인 동량을 받은 예능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습니다.특히, 옛 예술제가 번성했던 다이와의 나라에서는, 야마토 사좌라고 하는 유자키(하고 말이야 나무) 좌, 사카토(혐의) 좌, 소토야마(날아) 좌, 원만정(염라대왕 있어) 좌가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이 4좌는, 유자키좌가 칸세이류에, 사카토좌가 금강류에, 소토야마좌가 호우쇼류에게, 원만정좌가 금춘류에와 각각 능의 유파의 의식의 주춧돌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각각의 자리는, 도에 올라, 활약하는 것을 비원으로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개최되고 있던 「입회능(들아 있어 )」이라고 하는 예능 경기에 참가해, 싸워 이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싸워 이길 수 있으면 상당한 우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스스로의 예풍을 인정받기 위해서,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자리의 존속과 발전을 걸고, 일좌를 통괄하는 동량은, 다양한 예술적 지혜를 짰습니다.제아미가 「풍자화전」이라고 하는 예술론을 남겼던 것도, 자신이 체득한 예술성을 후계자에게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야마토 사좌의 하나, 유자키좌의 창립자, 간아미(관그물)는, 지금까지의 흉내재주인 옛 예술제에, 곡무(버릇 매)와 이야기의 음곡의 무용을 도입한, 새로운 예능을 만들었습니다.현재에도 유명한 사장곡 「소토바코마치(토바 미인)」 「자연 거사(글자군요 비집어 틀어)」는, 간아미의 대표작입니다.

간아미의 아이·제아미는, 아버지의 예능을 계승한 능의 대성자입니다.무로마치 막부의 3 대장군아시카가의만이나 니죠 요시모토등시의 권력자들의 백업을 얻은 제아미는, 라이벌의 재주를 도입하면서, 유현의 미학에 의한 「복식 몽환능」의 양식을 확립해, 대표작의 「우물 주위의 낮은 울」을 시작해 50곡 이상의 작품을 창작했습니다.이것들은, 지금도 거의 당시 인 채의 문구로 상연되고 있습니다.

제아미의 사후도, 생·음 아미, 사위·곤파루 젠치쿠등에 의해, 능은 발전을 계속합니다만, 오닌의 란에 의한 도의 황폐와 함께 쇠퇴해 갈 것입니다.다시 능에 빛을 쬔 것은, 전국시대에 활약한 무장들이었습니다.그 중에서도 천하 통일을 완수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삼스럽게 능에 흥미를 느껴 금봄대부를 중용 해 능을 깊게 배워, 스스로도 춤추어, 자신의 공적을 테마로 한 능까지 만들게 했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계속 되는 토쿠가와막부도, 능을 보호했습니다.2 대장군도쿠가와 기데타다는, 능과 희극을 막부의 식 락이라고 정해 야마토 예능4좌와 희다류가 공인되었습니다.이것에 의해, 능의 사회적 지위가 확립된 것입니다만, 능은 서민의 사이에서도 뿌리 깊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한편, 식 락으로서 공인된 것으로, 능은 예술적에 의해 세련된 것이 되었지만, 중세기와 같은 창작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져 갔습니다.

토쿠가와막부의 와해와 함께 붕괴의 위기를 맞이한 능입니다만, 메이지기에는, 새롭게 재벌이나 정부 요인의 백업도 얻고, 일반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예능으로서 만회합니다.당주 제도의 도입, 능과 희극을 맞추어 「노가쿠」라고 한 것, 노 무대를 옥내에 짜넣는 능악당이라고 하는 무대 형태의 확립은, 메이지기 이후에 된 것입니다.현재는, 근대적으로 다시 태어난 당주 제도의 아래, 능은 「농악의 가사」나 「끝」의 배울 것이라고 해도, 저변을 펼치고 있습니다.

 

 


伝統芸能「能(noh)」を楽しみましょう

 

 

 

 

 

 

 

 

 

 

能は、奈良時代に中国から渡来した「散楽(さんがく)」という芸能を源流としています。奈良時代には、こっけいな芸や物まね、曲芸、奇術など大衆芸能であった「散楽」と、荘厳な舞や音楽を奏でる「雅楽」が、中国から渡ってきました。雅楽は、宮中や貴族の儀式の際に演じられる式楽となり、散楽は、寺社の余興として庶民の間に広まっていきました。

その後、散楽は幾多の変遷を経ながら、能と狂言の要素をもつ「猿楽」に集約されてゆきます。平安・鎌倉から江戸時代までは、能は「猿楽(さるがく)」あるいは「猿楽の能」と呼ばれていました。

 

 

「能」という言葉がいつから出てきたのかは、はっきりしませんが、古くから芝居のことを示す言葉として使われていたようです。南北朝から室町時代には、能は概ね「猿楽能」と「田楽(でんがく)能」の2種類に分かれていました。猿楽の能は、いかにその役柄に似せるか、という物まねを中心とする芸だったのに対し、田楽の能は舞いを中心としており、まねるというよりは象徴的に演じるものでした。田楽の能は、貴族社会でも受け入れられ、都で流行しましたが、猿楽の能は都では受けず、近江、丹波、伊勢など周辺地域が中心でした。

 

猿楽、田楽ともに、当時は、「猿楽の座」「田楽の座」という座組みがあり、座頭である棟梁を頂いた芸能の共同体ができていました。特に、猿楽が盛んだった大和の国では、大和四座といわれる結崎(ゆうさき)座、坂戸(さかど)座、外山(とび)座、円満井(えんまい)座が力をもっていました。この四座は、結崎座が観世流に、坂戸座が金剛流に、外山座が宝生流に、円満井座が金春流にと、それぞれ能の流儀の礎となり、現在に至っています。

それぞれの座は、都に上り、活躍することを悲願としていたようです。そのためには、当時開催されていた「立合能(たちあいのう)」という芸能競技に参加し、勝ち残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勝ち残れれば相当な優遇が期待できます。自分たちの芸風を認めてもらうために、熾烈な戦いがあったのです。座の存続と発展を賭けて、一座を統べる棟梁は、さまざまな芸術的知恵を絞りました。世阿弥が『風姿花伝』という芸術論を残したのも、自身が体得した芸術性を後継者へ残したかったからだといえるのかもしれません。

 

 

大和四座のひとつ、結崎座の創立者、観阿弥(かんあみ)は、それまでの物まね芸であった猿楽に、曲舞(くせまい)と語りの音曲の舞を導入した、新しい芸能を創りました。現在でも有名な謡曲「卒都婆小町(そとばこまち)」「自然居士(じねんこじ)」は、観阿弥の代表作です。

観阿弥の子・世阿弥は、父の芸能を受け継いだ能の大成者です。室町幕府の3代将軍足利義満や二条良基ら時の権力者たちのバックアップを得た世阿弥は、ライバルの芸を取り入れながら、幽玄の美学による「複式夢幻能」の様式を確立し、代表作の「井筒」をはじめ、50曲以上の作品を創作しました。これらは、今でもほぼ当時のままの詞章で上演されています。

世阿弥の没後も、甥・音阿弥、娘婿・金春禅竹などにより、能は発展を続けますが、応仁の乱による都の荒廃とともに衰退していきます。再び能に光を当てたのは、戦国時代に活躍した武将たちでした。なかでも天下統一を果たした豊臣秀吉はことさら能に興じ、金春大夫を重用して能を深く学び、自らも舞い、自分の功績をテーマにした能まで作らせたと記録されています。

 

 

続く徳川幕府も、能を保護しました。2代将軍徳川秀忠は、能と狂言を幕府の式楽と定め、大和猿楽四座と喜多流が公認されました。これにより、能の社会的地位が確立されたわけですが、能は庶民の間でも根強い人気を持っていました。一方、式楽として公認されたことで、能は芸術的により洗練されたものとなったものの、中世期のような創作力を発揮する機会が失われてゆきました。

徳川幕府の瓦解とともに崩壊の危機を迎えた能ですが、明治期には、新たに財閥や政府要人のバックアップも得て、一般の人びとが楽しめる芸能として、盛り返します。家元制度の導入、能と狂言を合わせて「能楽」としたこと、能舞台を屋内に組み込む能楽堂という舞台形態の確立は、明治期以降になされたものです。現在では、近代的に生まれ変わった家元制度のもと、能は「謡」や「仕舞」のお稽古事としても、裾野を広げ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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