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그런데 그런데.

 역사학이라는 것의 한 귀퉁이에 앉게 해 받고 있는 몸으로서는 역사라는 것에 IF를 요구해선 안 되는, 이라고 하는 것은 겹들용서.현실에서는  1900년대에 들어와도 변함 없이 치졸한 양잠을 하고 있어 일본이 공여한「최신」기술은 반도의 습관이나 풍토에 맞지 않고 거의 실패.거기에 큰 돈을 투여한 사람이 웃음 거리에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어, 실제 대단히 한심한 상황입니다.그런데도 총독부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하는 단면을 굳이 밝혀 보겠습니다.


 게다가 1850년대 이후 주로 기술적인 면에서 한반도에 생사 산업을 낳는 것은 가능했던인가?에 붙어 망상예요.있을 수 없는, 이라고 말하는 것을 모르는 기입은 무시.원래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니까.
 물론 이 망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아주 대단한 수의 조건과 넘어야 한다 많은 벽이 있습니다.그렇지만 망상이니까 괜찮다, 문제 없다.


 그런데, 때는 1850년대.이씨 조선에서도 개국의 시비라고 하는 논의는 있었겠지만, 결과 쇄국을 긴축 시킬 방향에 치우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선 데지마 무역같은 형태라도 좋으니까 영불과의 교역을 시작합시다.
 이 시기 구미가 적극적으로 비단을 일본에서 구입하고 있던 최대의 이유는, 미립자병으로 누에가 전멸 상태에 있어, 수급이 지극히 언밸런스했었기 때문에입니다.일본에서는 생사가 활발히 수출되었던 것 뿐만 아니라, 누에씨지도 고가이고 거래되었습니다.메이지 후반, 반도의 비단의 품위는 별로 높지 않고, 생산량도 자급 자족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많은 서적에 쓰여져 있습니다.아마 1850년대라도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누에씨지의 품위도 좋은 것으로는 없었습니다만, 어쨌든 당시는 뭐든지 좋으니까 가지고 와 상태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매물이 됩니다.
 일본에서도 사실은 국내 사용분 밖에 없었던 생사나 누에고치, 누에씨를 전부 판 것 같은 상태(분큐 3년은 생사의 9할이 수출)이기 때문에, 반도로부터에서도 이러한 것을 팔 수 있었겠지요.당연「양호한 상태로 해 내 오면 더 고가로 팔리는」일을 알면, 다소 품위도 올랐겠지요.
 생사에 비해 작게 수송도 편하고, 한편 이익도 막대한 누에씨지라면, 당시의 빈약한 수송 환경에서도 대량으로 수출이 가능합니다.상업이 빈약해도 아내제 수공업이 빈약해도, 마을들을 회(이)라고 모아 가져오면 변명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팔리는 상황이 있으면, 생사겠지만 누에고치겠지만, 어쨌든 매등지금 짊어진다.모두삼의 옷으로 인내 인내.이전에 상인 육성, 도로의 정비까지 손을 대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돈이 된다고 되면 국민의 눈의 색이 바뀌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1870에 보불전쟁의 영향으로 프랑스가 누에씨의 수입을 멈춥니다.이 결과 누에씨지는 공급 과잉이 되어 눈 깜짝할  순간에 폭락합니다.그러므로1850-1870의 20년 정도, 이 상품으로 외화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큰 자본은 바랄 수 없으므로, 전함 가지고 싶은 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사각사각 다음의 단계에 들어갑시다.포인트는 어떻게 누에씨지 수출로부터 생사 수출에 시프트 할까입니다.당연, 선행해 일본 화판 번 팔고 있습니다만, 1870년대는 일본의 생사의 신뢰가 크게 요동하고 있는 시기이니까, 이용하는 틈은 충분히 있습니다.

 

벤치 마킹!이것으로 반도의 우위를 확립합니다.


 1876에 일본과 외교가 연결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1850년대에 부분적으로도 개항하고 있다고 하는 망상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으로부터의 정보도 모두 입수합시다.개길이인 일본인들입니다만 반도로 나아간 양잠 기술과 조실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상세하게 벤치 마킹.국제 경쟁에서는 중요한 일이군요.

이 단계에서는

1849 잠당계(잠실 온도 관리의 혁명)
1860 상주좌 조기(제사 기계의 비약적 발전)

 

의 두 개의 기술을 도입해 생사의 생산량・품질의 향상을 도모합시다.병행해 화전민이라든지는 구축하고 뽕밭을 확대해, 시비도 적극적으로 실시합시다.비료는 도시지역에 끙끙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미화도 진행되어 일석이조.비료 수송으로 내수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로 뽕밭을 너무 확대해서 논까지 뽕밭으로 하는 부정의 배도 나올지도 모릅니다.일순간미 자급율이 내릴지도 모릅니다만 외화 획득을 위해서는 밥도 인내군요.아마, 여기가 이씨 조선에 있어서의 최대의 시련이지요.그리고, 양잠은 여성이 가고 있었으므로 기술 교육이 어려울까요들 , 부인회를 결성해 회장에게는 국 모를 피울 수 있어 톱 스스로 양잠에게 매진 합시다.하들은 눈물을 흘리고 교육을 받아 국 모의 은혜에 보답하겠지요.

 

 1875에는 스와식조실기라고 하는, 획기적 기계가 발명됩니다.토미오카 제사장의 일부 당의 투자 코스트가  660엔인  것에 대해, 이 기계는 무려 20엔.소재의 금속 사용은 최저한입니다만, 목재는 필요합니다.특히 기계 톱니바퀴나 물방아라고 하는 기구도 목재이므로 최악 목재는 수입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목수도 필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기술만 손에 넣으면 빨리 추방해 버립시다.
 일본은 유럽의 시장도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독자 노선으로 달리려 하고 있습니다.반도에서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리용에서 인기의 품종을 적극적으로 생산합시다.


시계열적인 흐름

1850 부분적이라도 개항 당초 누에씨지를 판매 

    잠당계 도입 화전민 추방 뽕밭 확대 일본의 기술을 벤치 마킹
1865 상주좌 조기 도입 생사 수출에 시프트 개시 뽕밭 드디어 확대 

    여유가 있으면 항만과 도로의 정비 여자 교육을 위해 부인회 결성
1870 누에씨지 수출 종료상주좌조에 의한 생사 수출에 시프트 완료 

    리용이나 북쪽 이탈리아의 시장 조사, 벤치 마킹
1880 스와식조실기 도입 생사의 공장 생산 개시 

 

 , 뭐라고 말하겠지요.약 30년의 시련, 특히 의식을 희생한다고 하는 피땀을 흘린 결과, 한반도는 훌륭하게 생사 생산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찬미한 제한 표지 나왔으니까.

 

메이지 후기(1900년 이후)에 있어서의 반도에서의 벤치 마킹의 실례.


三眠蚕はベンチマーキングの夢を見るか

さてさて。

 歴史学というものの隅っこに座らせて貰っている身としては歴史というものにIFを求めてはいけない、と言う事は重々承知。現実では1900年代に入っても相変わらず稚拙な養蚕が行われており、日本が供与した「最新」技術は半島の習慣や風土に合わずほとんど失敗。それに大金を投じた人が笑いものにと言う話もあり、実際ものすごくお寒い状況なんです。それでも総督府時代には相対的に産量が増えているので、不可能ではなかったはず、と言う切り口をあえて打ち出してみます。


 そのうえで1850年代以降主に技術的な面で朝鮮半島に生糸産業を生み出すことは可能だったか?について妄想してみるですよ。あり得ない、と言うわけのわからない書き込みは無視。そもそも起きなかったことなのですから。
 もちろんこの妄想を実行するためにはものすごい数の条件と、乗り越えるべき多くの壁があります。でも妄想だから大丈夫だ、問題ない。


 さて、時は1850年代。李氏朝鮮でも開国の是非という議論はあったでしょうが、結果鎖国を引き締める方向に走っています。

 

ここでまず出島貿易みたいな形でもいいから英仏との交易をはじめましょう。
 この時期欧米が積極的に絹を日本から購入していた最大の理由は、微粒子病で蚕が全滅状態にあり、需給が極めてアンバランスであったためです。日本からは生糸が盛んに輸出されただけでなく、蚕種紙も高価で取引されました。明治後半、半島の絹の品位はあまり高くなく、産量も自給自足に近い状態だったと多くの書物に書かれています。おそらく1850年代でも変化はないでしょう。蚕種紙の品位もいいものではなかったのですが、とにかく当時は何でもいいからもってこい状態であった部分がありますので、売り物になります。
 日本でも本当は国内使用分しかなかった生糸や繭、蚕種を根こそぎ売ったような状態(文久3年は生糸の9割が輸出)ですから、半島からでもこれらのものを売ることはできたでしょう。当然「良好な状態にして出してくればもっと高値で売れる」事がわかれば、多少品位も上がったでしょう。
 生糸に比べ小さく輸送も楽で、かつ利益も莫大である蚕種紙なら、当時の貧弱な輸送環境でも大量に輸出が可能です。商業が貧弱でも家内制手工業が貧弱でも、村々を回って集めて持ってくればいいわけですから、何とかなりそうです。
 もちろん売れる状況があれば、生糸だろうが繭だろうが、とにかく売っぱらいましょう。みんな麻の服で我慢我慢。この間に商人育成、道路の整備まで手をつけることは難しいですが、お金になるとなれば国民の目の色が変わることは間違いないです。

 

 1870に普仏戦争の影響でフランスが蚕種の輸入を止めます。この結果蚕種紙は供給過剰になりあっという間に暴落します。ですので1850-1870の20年くらい、この商品で外貨を獲得できます。大きな資本は望めませんので、戦艦ほしいニダ、なんて言わずにサクサク次の段階に入りましょう。ポイントはどうやって蚕種紙輸出から生糸輸出にシフトするかです。当然、先行して日本がばんばん売ってますが、1870年代は日本の生糸の信頼が大きく揺らいでいる時期だから、つけいる隙は十分にあります。

 

ベンチマーキング!これで半島の優位を確立するのです。


 1876に日本と外交が結ばれるのが史実ですが、1850年代に部分的にも開港しているという妄想ですから当然日本からの情報もバンバン入手しましょう。こしゃくな倭寇どもですが半島より進んだ養蚕技術と繰糸技術を持っていますから、逐一ベンチマーキング。国際競争では重要なことですね。

この段階では

1849 蚕当計(蚕室温度管理の革命)
1860 上州座繰機(製糸機械の飛躍的発展)

 

の二つの技術を導入し生糸の産量・品質の向上を図りましょう。並行して火田民とかは駆逐して桑畑を拡大し、施肥も積極的に行いましょう。肥料は都市部にうなっていたから、都市の美化も進み一石二鳥。肥料輸送で内需拡大にも寄与できそうです。
 あんまり桑畑を拡大しすぎて水田まで桑畑にする不貞の輩も出るかもしれません。一瞬米自給率が下がるかもしれませんが外貨獲得のためにはご飯も我慢ですね。多分、ここが李氏朝鮮にとっての最大の試練でしょう。あと、養蚕は女性が行っていたので技術教育が難しいでしょうから、婦人会を結成し会長には国母をすえ、トップ自ら養蚕に邁進しましょう。下々は涙を流して教育を受け、国母のご恩に報いることでしょう。

 

 1875には諏訪式繰糸機という、画期的機械が発明されます。富岡製糸場の一釜当たりの投資コストが660円なのに対し、この機械はなんと20円。素材の金属使用は最低限ですが、木材は必要です。特に機械歯車や水車といった機構も木材ですので最悪木材は輸入が必要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大工も必要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が、技術さえ手に入れればさっさと追放してしまいましょう。
 日本は欧州の市場も研究していますが、独自路線に走ろうとしています。半島ではそんなことはしません。リヨンで人気の品種を積極的に生産しましょう。


時系列的な流れ

1850 部分的にでも開港 当初蚕種紙を販売 

    蚕当計導入 火田民追放 桑畑拡大 日本の技術をベンチマーキング
1865 上州座繰機導入 生糸輸出にシフト開始 桑畑いよいよ拡大 

    余裕があれば港湾と道路の整備 女子教育のため婦人会結成
1870 蚕種紙輸出終了 上州座繰による生糸輸出にシフト完了 

    リヨンや北イタリアの市場調査、ベンチマーキング
1880 諏訪式繰糸機導入 生糸の工場生産開始 

 

 おお、なんと言うことでしょう。約30年の試練、特に衣食を犠牲にするという血の汗を流した結果、朝鮮半島は立派に生糸生産地に生まれ変われたのです。めでたしめでたし。

 

明治後期(1900年以降)における半島でのベンチマーキングの実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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