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7월 31일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두 마을은 근대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과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거의 기적적으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100년 전까지 대다수의 한국인이 살던 마을은 이런 모습이었으나 생활이나 문화를 서양의 것을 많이 따르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의 것이 생소하게 되었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로의 인구집중이나 새마을운동의 지붕개량사업 등으로 전통마을의 원형은 상당수가 사라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들 두 마을이 잘 보존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경상북도 지역은 소백산맥으로 차단되고 산이 많은 폐쇄적 지형이었고 그 가운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들판이 충분하여 타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를 낳았고 보수적인 전통이 강했다. 하회마을이 있는 안동은 조선시대 유교전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고 양동마을이 있는 경주는 신라문화가 태어난 곳이다.

 안동과 경주는 조선시대 지방의 중심도시로 번성했지만 근대 이후 바다와 떨어져 있고 교통이 좋지 못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근대 산업이 발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마을은 도시의 중심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고 외부세계와 폐쇄적인 지형 덕분에 외부요인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사람들은 자부심이 높고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 덕분에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돈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하회와 양동 두 마을은 집성촌인데 이런 집성촌은 16세기 후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정착된다. 고려시대에는 자녀들은 균등하게 상속받았고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집에 들어가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이 전통이 지켜졌는데 사림파가 16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집권하게 되면서 유교가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상속받고 가부장제가 정착한다. 장남은 마을을 지키면서 가문과 마을의 전통을 계승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집성촌이 상당수 있다.

 

 집성촌은 압도적인 특정 성씨의 일족들이 거주하고 거기에 일부의 다른 성씨의 사람들이 산다. 대종가는 마을의 가장 중심되는 위치에 있고 가문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서당, 가문의 성인남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친목을 도모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정자, 제사 전용건물인 재사, 마을에서 배출한 가장 위대한 학자를 사당에 모시고 학문을 계승하고 교육하는 서원, 공동 빨래터나 우물, 마을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는 나무나 바위 등 여러 시설들을 마을 안이나 주변에 만들고 자치적인 규칙을 만들어 협동하고 마을을 경영하였다.

 

 

 

 하회마을은 S 모양으로 돌아가는 강 옆에 위치한 특이한 지형인데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명당으로 여겼다. 삼면이 강이 휘감고 있고 한쪽은 산이 있어 상당히 외부에 폐쇄적인 지형이다. 600년 전부터 풍산류씨(豊山柳氏)가 정착하였는데 1592년 7년전쟁 당시 총리이자 성리학자인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태어난 곳이며 이 마을의 중심인물이다. 

 1984년 최초로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었고 이후 광고에도 나오고 등장하기도 하고 1999년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여 더욱 유명해져 한국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너무 유명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마을 안에는 집들은 식당이나 민박을 하는 집들이 많고 바깥에도 여러 시설이 있는 등 상업화가 되었는데 유명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관람객 숫자를 하루 5000명 이하로 제한한다고 하는데 세계유산에 지정된 지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종가를 중심으로 제사의식과 마을의 전통, 탈춤인 하회별신굿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양동마을은 勿字 모양의 지형으로 뻗어내려온 낮은 3개의 언덕과 그 사이의 4개의 골짜기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데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15세기 중반 孫昭가 정착하고 그의 딸과 결혼한 李蕃이 정착하여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의 두 성씨가 함께 사는 집성촌이다. 이번의 아들은 이언적(李彦迪 1491∼1553)으로 그는 정치가이자 조선 역사에 손꼽히는 위대한 성리학자였다. 孫氏가 먼저 정착했지만 이언적의 후광으로 李氏가 더 번성하여 여강이씨(驪江李氏)의 비율이 더 높다.

 이 마을은 최근까지도 아는 사람이 적어 몇 년전만 해도 마을이 조용하였고 편의시설도 거의 없었는데 정비가 이루어지고 올해는 입장료도 받으면서 하회마을이 걸었던 과정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덜 알려진 관계로 하회마을보다 주민생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건축의 질도 상당히 훌륭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평가한다. 하지만 세계유산에 등록된 시점에서 원하지 않는 변화를 겪을 것임은 틀림없다. 하드웨어는 유네스코나 국가의 지원도 늘어나면서 더 보존이 쉬워지겠지만 우려되는 것은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원래 주민들이 수백년간 큰 변화없이 유지하던 생활이 불과 몇년만에 달라질 것은 뻔한 일이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물론 기쁜 일이겠지만 세계유산이 아닌 하회, 양동마을이더라도 변함없이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세계유산이 아니어도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더 많을 것이며 세계유산이라는 것도 하나의 기준에 불과한 것이다.

 전통마을은 원래의 주요기능이 다른 궁궐, 절, 성곽과는 달리 지금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곳이고 외부의 영향에 더 민감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난 수백년 동안 마을의 전통이 지켜왔듯이 앞으로의 수백년, 그리고 그 이상을 지혜롭게 보존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世界遺産河回村と楊東村

 7月 31日河回村と楊東村がユネスコ世界遺産に指定された. 二つの村は近代以後急激な社会変動と開発の狂風の中でもほとんど奇跡的に原型を保存している韓国の代表的な伝統村だ. 100年前まで大多数の韓国人が住んだ村はこんな姿だったが生活や文化を西洋の物に たくさん従うようになりながらむしろ自分の物が疎くなった.

 産業化による都市への人口集中やセマウル運動の屋根改良事業などで伝統村の原型はかなり多い数が消えた. こんな環境の中でこれら二つの村がよく保存したことは多くの理由があるでしょう.

 昔から慶尚北道地域は小白山脈で遮られて山が 多い 閉鎖的地形だったしその中自給自足することができる野原が十分で他の地域と区別される独特の文化を生んだし保守的な伝統が強かった. 河回村のある安東は朝鮮時代儒教伝統が一番よく残っている所で楊東村のある慶州は新羅文化が生まれた所だ.

 安東と競走は朝鮮時代地方の中心都市で盛んだったが近代以後海と離れていて交通が良くない所に位するから近代産業が発達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そして二つの村は都市の中心地でよほど落ちていて外部世界と閉鎖的な地形おかげさまで外部要因は小さいしかなかった. 長い間伝統を維持していたからこの地域人たちは自負心が高くて教育を重視する伝統おかげさまで学者たちがたくさん排出されてお金にとらわれすぎなかった.

 

 下回と楊東二つの村は集成村なのにこんな集成村は 16世紀後半から形成され始めて 17世紀に定着される. 高麗時代にはお子さんたちは均等に継がれたし結婚をすれば男が女の家に入って行く事も有り勝ちな事だった. 朝鮮時代にもこの伝統が守られたが士林派が 16世紀後半に本格的に集権するようになりながら儒教が生活に染みこみ始めたし  祭祀を執り行なう長男が財産の相当部分を継がれて家父長制が定着する. 長男は村を守りながら家門と村の伝統を受け継いで今までつながるようになる. 今も農村へ行けば集成村がかなり多い数ある.

 

 集成村は圧倒的な特定氏姓の一族たちが居住してそこに一部の他の氏姓の人々が住む. 大宗家は村の一番中心される位置にあって家門の子供達を教育する寺小屋, 家門の成人男子たちが集まって会議をするとか親睦を図りながら休息を取る精子, 祭祀専用建物である再社, 村で排出した一番偉い学者を祠堂に仕えて学問を受け継いで教育する書院, 共同パルレトや井, 村の守護神と言える木や岩など多くの施設たちを村でないが周辺に作って自治的な規則を作って協動して村を経営した.

 

 

 

 河回村は S 模様に帰る川そばに位した珍しい地形なのに蓮華がかむ上にすくっている姿と言って明堂で思った. 三面が川が絡んでいるし一方は山があってよほど外部に閉鎖的な地形だ. 600年前から豊山柳さん(豊山柳氏)が定着したが 1592年 7年戦争当時総理と同時に性理学者であるリュソングリョング(柳成竜 1542〜1607)が生まれた所でこの村の心捧だ. 

 1984年最初で村全体が国家指定文化財になったし以後広告にも出て登場したり 1999年にはイギリスのエリザベト女王が訪問してもっと顔が売れて韓国人なら分からない人がいない位なのにとても有名で多くの観光客が捜す所だ. それで村の中には家たちは食堂や民宿をする家たちが多くて外にも多くの施設があるなど商業化になったがあつい人気に仕方ない現象だ. それで観覧客数字を一日 5000人以下で制限すると言うのに世界遺産に指定された今どの位效果があるか疑問だ. しかし終値を中心に祭祀意識と村の伝統, タルチュム(仮面舞)である下回別神グッドなどがよく保存している.

 

 

 

 

 

 

 

 

 

 

 

 

 楊東村は 勿字 模様の地形でポッオネリョオン低い 3個の丘とその間の 4個の谷間に村が位しているのに明堂で指折り数えられる所だ. 15世紀中盤 孫昭が定着して彼の娘と結婚した 李蕃が定着してワルソングソンシ(月城孫氏)とヨガングイシ(驪江李氏)の二つの氏姓が一緒に住む集成村だ. 今回の息子は二言的(李彦迪 1491〜1553)で彼は政治家と同時に朝鮮歴史に指折り数えられる偉い性理学者だった. 孫氏が先に定着したが二言的の背光で 李氏がもっと盛んでヨガングイシ(驪江李氏)の割合がもっと高い.

 この村は最近までも知り合いが少なくて何年前だけでも村が静かだったし便宜施設もほとんどなかったが整備が成り立って今年は入場料も受けながら河回村が歩いた過程を経験するはずだから憂慮される. 専門家たちは不十分に知られた関係で河回村より住民生活の原型がよく保存していて建築の質もよほど立派だからむしろもっと評価する. しかし世界遺産に登録された時点で願わない変化を経験するはずなのは間違いない. ハードウェアはユネスコや国家の支援も増えながらもっと保存が易しくなるが憂慮されることはソフトウェアだと言える元々住民たちが数百年間大きい変化なしに 維持した生活がわずか何年ぶりに変わることは明らかなことだ.

 

 

 

 

 

 

 河回村と楊東村が世界遺産に指定されてその価値を認められて多くの人々の関心を受け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もちろん嬉しい事だが世界遺産ではない下回, 楊東村だとしても相変わらず韓国の大事な文化遺産で世界遺産ではなくてももっと大事なことはこの世の中に もっと多いだろうし 世界遺産というのも一つの基準に過ぎないのだ.

 伝統村は元々の主要機能が他の宮廷, お寺, 城郭とは違い 今も住民たちが日常的に生活する所で外部の影響にもっと敏感だろう. 世界文化遺産に指定されるよりもっと重要なことは去る数百年の間村の伝統が守って来たようにこれからの数百年, そしてその以上を賢く保存して発展して行く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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