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沈當吉 ]1597년 임진왜란으로
남원성 싸움에서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에 의해
규슈 가고시마현 구시키노 시마비라에 상륙 했다
1599년 조선式 가마를 만들어 도기를 생산 했다 현지인과 언어가 통하지 않은 불편이 있었다
1603년
나에시로가와로 옮겨 조선식 가마를 만들어 구로몬 [黑物]이라는 조선의
분황사기와 닮은 것을 생산
옥산궁 [玉山宮]을 지어 단군을 모시고 음력 8월 15일 마을 사람들과 제사를 지냈다
1614년
사쓰마 도기 생산을 시작해
시로 사쓰마 [百薩磨].시로몬 [白物]생산
1615년
박평의 [朴平意]와 함께 어용 [御用]도자기 處의 책임자가 되어 1628년까지 종사
壽官은 가문의 세습명으로
12대 부터 이어오고 있고 현재 15대[1999년]沈壽官이 이어 받았다
14대 沈壽官 와세다 대학 정치 경제학과 졸업
1928년생
한국이 일본에 점령 당했던 시대에 태어났고 예민한 청소년기에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너는 한국인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라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중학교 입학 하던 날 학교 친구들이 이름을 듣고 한국인 이라고
집단 폭행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나도 경험한 일이야
1998년
선조의 고향 전라북도 남원을 방문 했다
일본과 한국의 도자기를 비교해 주세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
도자기의 우열은 없습니다
도자기의 기본은 그릇입니다 식습관 문화에 따라 그릇은 만들어지니까요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沈壽官 작품
아버지가 나에게 교과서였고
나는 아들에게 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沈壽官의 말
朝鮮人で[ 沈当吉 ]1597年壬辰の乱で
南原性けんかで賊将シマズYoshihiroによって
九州鹿児島県仇視キノシマビラに上陸した
1599年朝鮮式 お御輿を作って陶器を生産した現地人と言語が通じない不便があった
1603年
ナエシロがワで移して朝鮮式お御輿を作ってグロモン [黒物]という朝鮮の
芬皇寺期に似ていることを生産
オックサングング [玉山宮]を作って檀君を仕えて旧暦 8月 15日村人々と祭祀を執り行なった
1614年
薩摩陶器生産を始めて
市で薩摩 [百薩磨].シロモン [白物]生産
1615年
朴評議 [朴平意]とともに御用 [御用]陶磁器 処の責任者になって 1628年まで従事
寿官は家門の世襲人で
12台から続いて来ているし現在 15台[1999年]沈寿官が受け継いだ
14台 沈寿官 早稲田大学政治経済学科卒業
1928年生まれ
韓国が日本に占領された時代に生まれたし鋭敏な青少年期に葛藤が多かったと言います
その時ごとにお父さんはお前は韓国人というのを忘れないでねだと教えることを受けたと言います
中学校入学した日学校友達が名前を聞いて朝鮮人と
集団暴行をしたが
家に帰って来る途中に
家近くにご両親が出迎えを出ていた
お父さんはこんなに言った ...良くて私も経験した事だと
1998年
先祖の故郷全羅北道南原を訪問した
日本と韓国の陶磁器を比べてくださいという記者の質問に
陶磁器の優劣はないです
陶磁器の基本は器です食習慣文化によって器は作られるからです
と返事をしたと言います
沈寿官 作品
お父さんが私に教科書だったし
私は息子に教科書になるでしょう
沈寿官の言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