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朝鮮時代の科学技術 - 金属活字 4

일본인들은 우물 안에서 바라본 하늘을 네모 또는 동그랗다고 항상 주장하고 있다.
일본 종이의 품질은 세계 최고를 외치면서 한지의 품질을 폄하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伊東 俊太郞의 科學史技術史事典에 소개된 조선紙의 우수성 또는 일본에 전래된 한지의 기술은 곧잘 잊어 버린다.
이번에는 금속활자에 의한 출판에 밑거름이 되는 종이에 대해서 알아 보자.
日本人たちは井戸の中で見た空を四角だや圓だと常に主張している。
日本紙の品質は世界最高を叫びながら韓紙の品質を貶下する醜態を見せている。
伊东俊太郞の科學史技術史事典で紹介された朝鮮纸の優秀性や、日本に伝来した韓紙の技術は今方に忘れてしまう。
今回は、金属活字による出版への道を開いたの紙について調べてみよう。

 

丙寅洋擾1866년(高宗 3)
리델( Félix Clair Ridel) 神父의 안내를 받은 로즈 제독은 巡洋戰艦 게리에르를 비롯, 모두 함대 7척과 600명의 해병대를 이끌고 강화도를 침공했다.
長寧殿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앞서 약탈한 銀金塊(당시 화폐로 환산하여 3만 8000달러)와 대량의 서적 ·무기 ·보물 등을 가지고 중국으로 퇴각했다.
이 때 소중한 문화유산인 外奎章閣의 서적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リーデル(Félix Clair Ridel)神父のご案内を受けたローズ提督は巡洋戰艦ギャリーエールをはじめ、すべての艦隊7隻と600人の海兵隊を率いて江華島に侵攻した。長寧殿など、すべての官衙に火を放ち前に略奪された銀金塊(当時の貨幣に換算して3万8000ドル)と、大量の書籍,武器,宝物などを持って中国に退去した。
このとき大切な文化遺産である外奎章閣の書籍を略奪し、燃やす蛮行を犯した

 

다음은 강화도 침략을 안내한 리델 신부의 기록이다.
丙寅洋擾日誌 - 프랑스측 기록(불 리델신부 프랑스군 강화침공 기록)
서 가 안에는 2절지 사이즈의 상당히 여러 권으로 된 왕실에 관한 기록서들, 공자의 저서들, 의학서적 등과 4절지 사이즈의 60권으로 된 조선역사서 등이 있었는데 모두 수천 권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책들이 뛰어난 인쇄술 양피지로 만든 것 같은 종이와 글자를 금으로 상감해 만든 수많은 책들을 경첩과 걸쇠와 구리로 된 죄는 쇠불이로 장식한 제본기술을 보고 감탄했다. 구리경으로 연결된 대리석반판으로 된 이 책의 책장들이 마치 병풍을 펴놓은 것처럼 펼쳐졌다. 이 책들은 비단천으로 싸여있고 모두 상자들 안에 혹은 볽은색과 금빛으로 칠한 나무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잘 정리된 왕실도서였다
以下は、江華島の侵略を案内したリーデルの神父の記録である。
丙寅洋擾日誌(Félix Clair Ridel神父のフランス軍の江華島侵攻の記録)
書架では2切紙サイズの非常に多くの巻になった王室の履歴書たち、孔子の著書たち、医学書など4切紙サイズの60冊になった朝鮮の歴史書などがいましたが皆数千冊程度されているように見えた。私達はこれらの本が高い活版印刷, 羊皮紙に作成されたかのような紙や文字を金で象嵌して作成された多数の書籍を蝶番とかけがねと銅で作られたしめる金具で飾られた製本技術を見て感嘆した。銅鏡で接続された大理石の半分のボードになったこの本の本棚がまるで屏風を繰り広げておいたように繰り広げられた。これらの書籍は、絹の布に包まれてあり、すべての箱たちの、あるいは赤と金色に塗られた木箱の中に入っていた。よく整理された王室の書籍だった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땅을 밟았던 프랑스군 장교 주베르(Hubert Zuber)는 파병 당시의 자신의 체험기를, 세계 풍물을 화보로 소개하는 정기 간행물  세계 일주 "Le Tour du Monde " 1873년 전반기 호(號)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화도 같은 시골에 일개 서민이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책을 손쉽게 입수(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19세기 프랑스인등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적어도 20세기가 들어서고도 훨씬 후에나 유럽에서 이런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1866年の丙寅洋擾の時に江華島侵攻したフランス軍将校 ジュベル(Hubert Zuber)は、派兵当時の自身の体験記を、世界の風物を画像で紹介する定期刊行物世界一周"Le Tour du Monde"1873年前半号で、次のように 嘆息した。
 "ここで感歎しながら見るしかないし、私たちの誇りを傷つけることは、どんなに貧しい家庭でも、どこにでも本があるという事実である。"
江華島のような田舎の一介の庶民が、自分がほしいさえすれば、本を簡単に入手(購入)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事実は、19世紀のフランス人などにとっては夢のような話でした。少なくとも20世紀に入って遠く後に同じようにヨーロッパではこんな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미국의 저명한 문화 비평가 "배꼽티를 입은 문화"를 지은 "찰스 패너티Charles Panati"도 15세기 코리아에서는 세계 최대의 출판문화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당시 왕립출판국의 출판규모는 단연 세계 제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米国の著名な文化評論家"ベコプチを受けた文化"を著した"チャールズペノチCharles Panati"も、15世紀の韓國では、世界最大の出版文化を謳歌しており、当時の王立出版局の出版規模は明らかに世界の最もよいだったことを記録し、ています。

 

우리나라의 종이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송나라 손목(孫穆)이 지은 『계림지(鷄林志)』에 "고려의 닥종이는 윤택이 나고 흰 빛이 아름다워서 백추지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고반여사(考槃余事)』에는 "고려 종이는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종이 색깔은 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마치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종이에 대한 애착심이 솟구친다. 이런 종이는 중국에는 없는 우수한 것이다"라고 적었다.
我が国の紙は、昔から定評があるし。宋代の孫穆の本鷄林志に"高麗の楮紙は、潤いを放ち、白い光が美しくベクチュジ(白紙)と呼ぶとしている。『考槃余事には高麗紙は、繭綿で作られて紙の色は絹のように白くて腰が強いことが、まるで絹のように見える文字を書くと墨汁をよくよく吸っている紙への愛着心が湧き出る.このペーパーは、中国ではない優秀であるということが少なかった。

 

중국에서 진귀하게 여겨졌던 신라의 백추지 혹은 경면지(鏡面紙)는 긴 섬유의 종이를 몇 겹으로 붙여서 이를 두드려 광택을 낸 것이다. 백추지는 두드려 만든 하얀 종이라는 뜻이며, 경면지는 두드려 거울처럼 빛나게 한 종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질긴 것이 요구되는 우산, 부채, 책 표지 등의 용도에 우리나라의 종이가 인기가 있었고 그림이나 글씨에는 두드려서 광택이 나는 것을 즐겨 사용했다.
中国での珍事にされていた新羅のベクチュジ(白紙)や鏡面紙は、長い繊維の紙を数倍に付けることによって、これを叩いて光沢を出したいる。ベクチュジ(白紙)はたたいて作成された白い紙という意味で、鏡面紙は叩いて鏡のように放射された紙という意味である。中国では腰が強いことが要求される傘、扇、本の表紙などの用途に、韓国のペーパーが人気があり絵や文字には、叩いて光沢のあることを楽しんで使用した。

 

중국 역대 제왕의 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의 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 종이의 명성은 조선으로 이어져 한지가 중국과의 외교에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한지의 질이 명주와 같이 정밀해서 중국인들은 이것을 비단 섬유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였다.
中国歴代帝王の珍籍を記録することを高麗紙のみを使用したという記録もある。高麗紙の名声は、朝鮮につながり、韓紙ガ中国との外交に必需品として考慮された。韓紙の質が絹のような洗練されて、中国人はこれを絹繊維で作成されたものと考えている。

 

문종 34년(1080), 고려가 송나라에 보낸 국신물(國信物) 중에는 대지(大紙) 2천 폭과 먹 4백 정이 들어 있으며 송나라로의 수출품 중에는 백지와 송연묵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뒤 원나라에서도 고려지를 불경지(佛經紙)로 쓰기 위해 구했는데 한 번에 10만 장이라는 막대한 양의 종이를 수입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영조 때 서명웅(1716∼1787)이 지은 『보만재총서』에는 "송나라 사람들이 여러 나라 종이의 품질을 논하면 반드시 고려지를 최고로 쳤다.

文宗34年(1080)、高麗が宋に送った國信物の中には大紙 2,000幅と墨460個が含まれており、宋の時代への輸出品の中には白紙と松煙墨がたくさん入っていた。その後、元の時代にも高麗紙を佛經紙への書き込みのために一度に 10万枚という膨大な量の紙を輸入したという記録もある。
朝鮮 英祖の 徐命膺(1716〜1787)が著した保晩齋叢書には『宋代の人々が様々な国紙の品質を論すると必ず高麗紙を最高にしている。

 

다음은 일제강점기의 한지 제조 실태를 살펴 본다.
次は、日帝强占期の韓紙の製造の実態を見ます.

 

韓国では、7世紀以降から高麗期中葉に至るまで、韓紙の原料として専ら楮が使用されていたと考えられる。朝鮮時代になって儒教書籍の出版などで紙の使用量が多くなると、楮以外に桑、ちょま苧麻、がんぴ雁皮などの繊維も使われるようになるが、やはり原料として最も良質とされたのは楮であった。それ以外に大麻、柳木、よくい薏苡、がま蒲節、くず葛、竹、棉、松葉なども使用されたが、これらは主原料としてではなく楮不足を補うための副原料として使われたに過ぎない
한국에서는 7 세기 이후부터 고려 시대 중엽에 이르기까지 한지의 원료로 전적으로 닥나무(楮)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조선 시대가 되어 유교 도서 출판 등에서 종이 사용량이 많아져서 楮 이외 뽕나무, 苧麻, 雁皮 같은 섬유도 사용된다, 역시 원료로 가장 고품질인 것은 楮였다. 그 이외 大麻,柳木,薏苡, 蒲節, 葛,죽, 순면, 솔잎 등이 사용되었지만, 이들은 주로 재료가 아닌 楮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부 원료로 쓰인 것 에 불과하다.

 

韓紙の名称を見ると、原料、サイズ、用途、加工処理、色などそれぞれの紙の特徴を反映した名称がつけられていた。
原 料:塵紙、皮紙、桑紙、苔紙、藁精紙、苔壮紙、
サイズ :大甲紙、中新広紙、別新広紙、改良新広紙、大荘紙、大窓紙、中窓紙、小窓紙、大粉白紙、小白紙、大四顧紙、小四顧紙、大判紙、中判紙、小判、大山紙、中山紙、小山紙、小壮紙、大角紙、小角紙、厚紙、
用 途:窓紙、大窓紙、中窓紙、小窓紙、火紙、温突原紙、温突紙、壮紙、窓戸紙、壮板紙、窓厚紙、窓糊紙、篭扇紙、袋紙、傘紙、籠扇紙、笠帽紙、書厚紙
加工処理:油衫紙、粉白紙、塗油紙
色 :中白紙、大粉白紙、粉白紙、白紙、小白紙、

韓紙は古くから中国でその名を知られ、品質の面で定評があった。中国への韓紙の輸出量は決して多くなかったが、総督府では工業的輸出品として相当価値のあるものと見ている。しかし、植民地時代に入ると次の表1に示すように1920年を境に中国向け韓紙輸出高は急激に減少する。
한지는 옛날부터 중국에서 그 이름을 알려, 품질 면에서 정평이 나있었다. 중국에 한지의 수출량은 결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총독부는 산업적인 수출로 상당한 가치가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 들어가면 다음 표 1과 같이 1920 년을 경계로 중국을 향한 한지 수출은 급격히 감소한다.

 

総督府は事態を調査しその報告書の中で、中国における韓紙の需要減退の理由として、①高価であること、②模造朝鮮紙の出現、③代用品の需要増加、④日貨排斥の影響、⑤朝鮮紙の取引は小商人により行なわれること、⑥生産及び販売上統一を欠くことの6点を挙げている。
韓紙は前述のように製法上の理由により生産コストが高くついたのであるが、品質の良さのために珍重されてきた。そこで、高値で取引される韓紙に目をつけた中国の業者が韓紙の模造紙を生産し始め、また、満州産毛頭紙、大西紙などのような低廉な紙が韓紙の代用品として流通することになった。これに流通機構の不備などが加わって韓紙は模造品や代用品に対して市場競争力を著しく低下させたのである。韓紙と中国産模造品の中国市場における価格を比較すると、次の表に示すように、韓紙は模造品に比べて4、5割程度高い。
총독부는 사태를 조사하고 그 보고서에서 중국에서의 한지 수요 부진의 이유로 ① 고가이다, ② 모방 조선 종이의 출현, ③ 대용품의 수요 증가, ④日貨배척 영향, ⑤ 조선 종이의 거래는 중소 상인 의해 수행되는 것, ⑥ 생산과 판매에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6 점을 들고있다.
한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정상의 이유로 생산 비용이 많이 붙은 것이다,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애지중지되어왔다. 따라서 고가로 거래되는 한지에 주목한 중국 업체가 한지 모방 종이를 생산하기 시작, 또한 만주산 毛頭종이, 大西紙 등과 같은 저렴한 종이가 한지의 대용품으로 유통하게 되었다. 이것에 유통기구의 미비 등이 참가해 한지는 모조품이나 대용품에 대한 시장 경쟁력을 크게 감소시킨 것이다. 한지와 중국산 모조품 중국 시장의 가격을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이,한지은 모조품에 비해 40 ~50 % 정도 높다.

 

 

 

アメリカ人紙研究者のDard Hunterは次のように朝鮮の土着文化の一つである韓紙が消え去りつつあることを慨嘆している。
日本人は経済的に大きな成果をあげているが、朝鮮では、古い技法が粗野であり新しい技法に対して劣っている技術であるにしても、純然たる土着の特殊な技術が拒否されることには抵抗がある。事実、朝鮮人の紙つくりにはあまり進歩が見られず、古くからの紙はいかにも個性的であり魅力的で、確かな優れた特徴が盛りこまれたものである。しかし、日本の製紙教育の作業が完了すれば、この魅惑的な個性はもはや存在しなくなり、日本の紙も朝鮮の紙も同様のものとなるであろう。確かに日本の手漉き紙技法は朝鮮のものより明らかに優れているが、それが経済的に適切であるにしても、現存する土着の技能を規格化してしまうのは、まことに残念であると私は思う。
미국인 종이 연구원 Dard Hunter는 다음과 같이 조선의 토착 문화의 하나인 한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개탄하고있다.
일 본은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조선에서는 오래된 기술이 조잡하고 있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열등 기술이다 해도, 단순한 토착 특별한 기술이 거부되는 것은 저항이 있다. 사실, 조선 사람의 종이 제법에는 별로 진전이 보이지 않고, 예로부터의 종이는 그야말로 개성적이고 매력적이고, 확실 우수한 특징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제지 교육 작업이 완료되면,이 매혹적인 개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일본 종이도 조선의 종이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확실히 일본의 손으로 뜬 종이 기술은 조선보다 분명하게 우수하지만, 그것이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해도, 현존하는 토착 기술을 표준화해 버리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나는 생각한다.

 

第三者ばかりでなく当事者である日本人の中にも伝統的な韓紙の衰退を懸念する者があった。当時の著名な和紙研究者であった壽岳文章氏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 しかし工芸の場合には、独自の風格や地方性を無視しては、作られるものは凡そ無意義である。その間違った実例を、我々はすでに朝鮮の紙で見てきた。朝鮮の紙は、支那のとも日本のとも違って、いかにも朝鮮の風土や人がらを思はせる滋潤なものが作られてゐた。用ゐられる道具立ても、朝鮮らしくゆったりとしたものであった。それが日本本土の、しかも改良ずきと称する味気ないものが無方針に採り入れられた結果、この頃の朝鮮の紙は、一般には見る影もなく痩せてゐる。
제삼자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일본인 중에도 전통한지의 쇠퇴를 우려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유명한 종이 연구원이었던 壽岳文章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러나 공예의 경우에는 자신의 스타일과 지역을 무시하고는 만들어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잘못된 실례를 우리는 이미 한국의 종이에서 보고 왔다. 조선의 종이는 支那도 일본도 다른, 그야말로 조선의 풍토와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윤택한 것이 만들어 졌다.  사용되는 갖춤새도 조선답게 여유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일본 본토에, 게다가 개량이라고 칭하는 味気없는 무방침의 정책을 채용한되는 결과, 현재의 한국의 종이는 일반적으로 그림자도 없이 소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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