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宗 77卷, 19年(1437 丁巳 / 명 정통(正統) 2年) 4月 15日(甲戌)
乃於後苑慶會樓之北, 築石爲臺, 高三十一尺、長四十七尺、廣三十二尺, 繚以石欄, 顚置簡儀, 敷正方案於其南。 臺之西植銅表高五倍八尺之臬, 斲靑石爲圭, 圭面刻丈尺寸分, 用影符取日中之影, 推得二氣盈縮之端。
후 원(後苑) 경회루 북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높이는 31척이고, 길이는 47척, 넓이는 32척인데, 돌로 난간을 두르고 간의를 엎드려 놓았다. 정방안(正方案)을 그 남쪽에 펴고, 대의 서쪽에는 동표(銅表)를 세웠는데 높이는 5배(倍)고, 8척의 얼(臬)이다. 청석(靑石)을 깎아 규(圭)를 만들고 규의 면에는 장·척·촌·분을 새겼다. 그림자[影]를 일중(日中)의 그림자와 맞추어서 음양의 차[盈]고 주[縮]는 이치를 미루어 알도록 되었다.
後苑慶會樓の北に石を積んでの台を作った、高さは31尺、長さは 47尺、広さは32尺で、石の欄干をひきとの簡儀を設置した。正方案を、その南に置き、台の西側には銅表を立てたのに高さは5倍と、8尺の臬である。靑石を削って圭を作し、圭面に丈.尺.寸.分を刻んだ。影を日中の影と合わせて陰陽の盈と縮の理致を理されてわかるようになった。
主) 1周尺은 20센치 정도이며 1寸 = 2센치 1分=2mm이다.
靑石을 거울처럼 연마하여 그 면위에 최소눈금 2mm를 새겨 冬至와 다음 冬至의 日과 시간을 측정 일년의 길이를 측정하였다.
1周尺は20センチ程度で、1寸= 2センチ1分= 2mmである。
靑石を鏡のように研磨し、その面の上に最小目盛2mmを切り分けている冬至と次の冬至の日と時間を測定し、1年の長さを測定した。
일본의 圭表는 土圭로 놀랍게도 시계의 어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日本の圭表は土圭に驚くほどの時計の語源的に使用されている。
時計の語源
「時計」は、中国周代に用いられた緯度測定器 「土圭」の当て字とあります。 棒を立て、その影の長さを測るものが粘土で出来ていたので土圭と呼ぶことに由来します。
倭漢三才図会によれば土圭は、8尺の板を地面に立てて日影を測る日時計であると書かれています
시계의 어원
”시계”는 중국 周代에 채택된 위도 측정기 “土圭”에 들어 맞는 글자입니다 . 막대기를 세워 그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 것이 점토로되어 있었기 때문에 토케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倭漢三才図会(1713, 正徳3年)에 의하면 토케이는 8척 판을 바닥에 세워 日影을 측정하는 해시계이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土圭—->時計(とけい)
土圭와 日時計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여 倭漢三才図会(1713, 正徳3年)에 조차 용어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土圭と日時計の違いを分せず、倭漢三才図会にしてからが用語を確立していない。
江戸時代の圭表儀 寛政暦書(冬至の時刻を決めるために使われた土圭)
世宗 77巻, 19年(1437 丁巳 / 人正統(正統) 2年) 4月 15日(甲戌)
乃於後苑慶会樓之北, 築石為台, 高三十一尺′長四十七尺′広三十二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