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과거는 있으나 역사가 없는 일본


고대 일본을 통합하기 위하여 ‘기기(記紀: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조작했듯이 메이지 쿠데타 세력들은 그들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모순과 모순을 숨기고 국민들을 다잡기 위하여 역사를 재차 조작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정부 3류 사무라이들은 “역사를 조작하면 그 나라가 망한다” 라고 주장했던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이야기는 먼 나라 전설로 치부했다.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 큰 거짓말에 쉽게 속는 법이다’ 라는 히틀러식 역사조작 수법을 우매한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하여 역사조작 판도라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국수적 학자들과 언론을 총동원했다.

역사조작은
1. 고대 일본이 한반도 속국이었다는 열등의식에서 탈피하고,
1. 이웃나라 민족의 조상, 역사, 신까지 조작하여 가치를 격하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일왕의 가치를 높여 조작된 황국사상과 국가신도에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1. 이로 인하여 국민들을 과거를 모르는 역사치매에 걸리게 하여 3류 사무라이들의 충견으로 만들어
1. 3류 사무라이들에게로 향한 칼끝을 돌려 이웃을 침략하는데 사상적 근거로 활용하기 위하여 조작하였다.

이들의 역사조작은 난징대학살보다 더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3류 사무라이들의 인간 광기가 서린 역사조작에 의거 일본인들은 역사치매에 걸려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의 광풍은 붉은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들게 되었다. 역사조작은 일본열도에 과거는 있으되 역사가 없는 땅으로 만들고 말았다. 역사조작의 위력은 핵폭탄 수만 개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조작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이 조작한 역사는 바로 한반도의 역사이자 일본의 역사였으며, 일본의 모든 것이었다. 일본이 저지른 역사조작의 서막(序幕)은 ‘기기’이지만 최종적으로 희대의 역사조작 걸작품을 만든 자는 바로 메이지 쿠데타를 일으킨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이다. 일본은 조작된 역사를 일본인은 물론 전세계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역사조작을 하면 단시일에 유명해지는 곳이 오늘날 일본이다. 2005년 7월 한국을 헐뜯고 조작된 내용으로 가득 찬 ‘혐한류 (マンガ 嫌韓流)’라는 단행본 만화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듯이 역사조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제2 분서갱유
이들이 조작한 역사를 별도의 ‘역사조작’ 카테고리에서 일부 정리하였지만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열도로 패주한 백제인들이 신라에 패한 역사를 지우기 위하여 조작.기술한 일본서기에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단어를 찾아내어 이를 확대 재생산
2. 1874년 조작된 임나일본부를 측면지원하기 위하여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던 칠지도 발굴 및 조작
3. 1879년 300여 년 전 한반도를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악랄한 전쟁혼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하여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 및 코무덤(鼻塚) 중건
4. 1880년대 광개토태왕비를 조작하여 임나일본부가 실존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
5. 고대 일본열도가 “한반도 속국” 이었음을 나타내는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일본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한반도 관련 단어.지명.신사의 이름을 ‘일본어의 비밀’에서 언급했듯이 범 국가 차원에서 일본식 발음으로 개칭 작업 착수
6. 일본 왕가(王家)의 뿌리가 가야.백제 왕족이었음을 숨기기 위하여 일왕가를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조작하면서 황국사상을 확대 포장
7. 이들이 조작한 역사가 모순으로 충돌하자 일본을 신의 나라라고 조작하면서 일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조작하여 이를 신봉하는 국가신도를 조작하였다. 그리고 일왕의 만수무강을 기리는 노래 “기미가요”를 만들어 지금까지 일본의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8. 이를 뒤받침하기 위해서 한반도.일본.대마도.중국에 보유하고 있던 단군조선을 비롯한 고대역사서 수십만 종 기록들을 불태워(焚書)버렸다.
9. 일본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반도와 관련된 고대역사를 지우고. 조작했으며, ‘삼국사기 및 고대 한국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조작서임으로 절대로 보지도 말고 참고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또 한반도인들에게 선조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어 열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최대 역점으로 여겼다.(1927년 조선총독부 대외비 조사자료 제20집을 근거로 세종출판사 하종근著 “일제식민관료가 분석한 한국인”참조) 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여 神은 진실을 선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하라타 사카에루(原田榮)는1981년 4월 그의 저서 <역사와 현대>에서 다음과 같이 폭로하고 있다. “1923년 7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고문인 구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동경제국대학 교수가 대마도에 사료 탐방을 하였을 때 한국과 관계가 있는 문서, 고기록 등이 대마도 번주(藩主) 家에 있는 것을 알고, 고문서류(古文書類) 66,469매, 고기록류(古記錄類) 3,576권, 고지도 34매, 두루마리 고화류(古畵類) 18점, 그림 53점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했다”. “조선총독부가 1926년 12월부터 1938년 3월까지 사이에 조선에서 탈취한 수집사료 4,950책, 사진자료 4,511매, 문서기록, 초상화, 긴 액자 등 4,513점에 달한다.” 또 그는 분서의 사유를 “백제. 가야의 제왕(諸王)이 일본의 일왕이 되었다는 것이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에 경악(驚愕)하여 동종(同種)의 문서를 대마도 종(宗)씨로부터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위험(향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 두려워)하다는 판단에 달한 것이다

☞ 사시요시히코(佐治芳彦)는 <야마타이국말살(邪馬台國抹殺)의 미(謎)- 어느 누구도 몰랐던 한국문서>(1981년 9월)에서 “일제 때 일본은 한국사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 단군역사와 야마타이국에 관련한 역사를 말살,변조하는 것을 최초의 과업으로 삼았다. 일견(一見) 조선 민족의 역사를 탈취하고 그 혼을 고갈(枯渴)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동시에 일본민족의 뿌리까지 말소하여, 장차 일본제국의 붕괴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분서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 광복 후 발간된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 씨의 저서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에서는 일본이 1910년 8월 한국을 폭거적이고, 불법적인 강제병합 이후 1911년 12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제1차 전국 서적 색출에서 단군조선 및 고대역사서 등 51종 20여 만권 분서했다”고 밝히고 있다.

☞ 또 1938년 6월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에서는 한국사 조작 편찬 배경을 말하고 있으며,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5년 동안 압수 분서한 사료가 무려 4950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시변호사 인터뷰 내용 조선일보 1985.10.4 ▲조선일보 1986.8.17

당시 이들이 조작한 역사는 수없이 많지만 ‘역사조작’ 카테고리에서 밝힌 것 외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호소카 유지著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 참조)

1. 청일전쟁이 끝날 무렵 일제는 “조선의 신”은 일본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의 남동생 수사노오(素 鳴尊)라고 대대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한국 통치를 위한 대선전이었으며, 엄청난 픽션 창작이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수사노오는 난폭했기 때문에 하늘의 나라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추방당하여 신라에 내려와 거기서 살았다고 한다. 일본서기의 기술에 입각하여 수사노오가 한민족, 나아가서 만주민족의 조상이라는 주장이 당시 활발히 퍼졌다. 당시 일본은 수사노오를 한국의 신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이는 한국의 신이 일본의 신의 “동생 신”이였다는 이야기는 한국인을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해서 안성맞춤이었다. 일제는 당시 초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실어 한국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조선총독 고이소(小磯國昭)는 공개적으로 수사노오가 “한국의 신”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반도 2500만의 원(原)민족은 틀림없이 수사노오의 후손입니다. 과연 그렇다고 하면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내지(일본) 민족과 바로 뿌리가 같고 하나라는 것을 숨길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알 수 있는 역사상으로나, 그 후로도 피의 혼합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이지 43년(1910)의 성대에 아마테라스의 후손이신 메이지 일왕에 대하여 수사노오의 후손인 조선이 합방된 것은 신대 말기의 신사(神事)가 더욱 철저히 완성적으로 되풀이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뿐만 아니였다.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시조인 단군이 실은 수사노오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다카마가하라에서 신라에 내려 온 수사노오는 실은 단군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단군은 일본으로 건너가 시마네현의 수사(須佐)라는 데에 상륙하여 잠시 거류했으므로 단군을 수사의 사나이(=수사노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이 사실처럼 퍼졌다고 한다.

2. 그리고 일제는 만주를 삼키기 위하여 1930년대 오야베 젠이치로(小谷部全一郞)라는 작가가 징기스칸을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1192년 가마쿠라(鎌倉)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남동생인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經)는 작아도 용감한 미남무사로서 일본인들에게 지금도 인기있다. 그는 친형인 요리토모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오야베는 “요시츠네는 형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몽고로 도피하여 징기스칸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만주식민지화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리고 오야베는 만주국의 황제였던 부의(溥義)도 일본인의 자손이라는 과대망상적인 픽션을 만들어 냈다. 만주 민족의 피에는 일본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므로 만족민족은 일본인과 동족이며, 동족끼리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는 논리다.

3. 서양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 낸 조작도 있다. 놀랍게도 서양인들이 신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일본 혼슈(本州)의 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靑森)현의 신고오무라(新鄕村)에 있다. 이곳은 지금 관광명소로 되어 있다. 그리고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자는 예수가 아니라 그의 남동생인 이수키리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예수는 일본에 도피해 106세로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일본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1935년에 이바라기(茨城)현 기타이바라기(北 茨城)시에 위치한 고오소코(皇祖皇) 大신궁 안에서 발견된 다케우치(竹內) 고문서에 쓰여 있다. 고문서에 예수의 무덤이 아오모리현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 내용대로 예수의 무덤 위치가 일치했으니 만들기는 잘 만들어진 정교한 픽션이다. 그뿐만 아니라 1936년에는 일본어로 쓰인 ‘예수 그리스도의 유서’마저도 발견되었다. 그 유서 내용 속에 일왕을 찬미하는 문구가 쓰여진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일제는 서양정신의 중심인 기독교까지 조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1919년 8월 12일 단군조선.백제.가야 등 한국 고대사를 말살시키는데 앞장섰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이어 문화정치를 빙자하여 부임한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사진)는 1922년 “조선사편수사업”을 진두 지휘하면서 소위 “교육시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먼저 조선사람들의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선조와 선인들의 무위(無爲), 무능과 악행 등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한국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한국인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그 결과 한국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사적,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한국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 말은 일제가 역사조작과 병행하여 한국인들에게 자학사관을 빠지도록 강제 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過去はあるが歴史はいない 倭国

過去はあるが歴史がない日本

古代日本を統合するために ‘器機(記紀:古事記と日本書紀)’を操作したように明治クーデター勢力たちは彼らの無能力から始まった矛盾と矛盾を隠して国民を引き締めるために歴史を再び操作し始めた. 明治政府 3類さむらいたちは “歴史を操作すればその国が滅びる” と主張した司馬遼太郎(司馬遼太郎)の話は遠い国伝説で心に刻んでおいた.  ‘嘘も百番(回)すれば真実になる’, ‘大衆は小さな嘘より大きい嘘に易しくだまされるものだ’ というヒトラー式歴史操作手法を愚昧な国民に注入させるために歴史操作パンドラの箱を開き始めた. ここには国粋的学者たちと言論を総掛かりした.

歴史操作は
1. 古代日本が韓半島属国だったという劣等意識で脱皮して,
1. 隣国民族の先祖, 歴史, 神さままで操作して価値を格下げさせることで相対的に日王の価値を高めて操作された皇国思想と国家信徒に正当性を付与したし
1. これによって国民を過去が分からない歴史痴ほうにかかるようにして 3類さむらいたちの忠犬で作って
1. 3類さむらいたちに向かった刃先を回して隣りを侵略するのに思想的根拠で活用するために操作した.

これらの歴史操作は南京大虐殺よりもっと残忍な方法を使った. 3類さむらいたちの人間狂気が立ちこめた歴史操作に基づいて日本人たちは歴史痴ほうにかかってしまったのだ. このようになると日本人たちは世界で一番残酷な悪事をやらかし始めた. これらの狂風は赤い夕焼けよりもっと赤く染まるようになった. 歴史操作は日本列島に過去はあるが歴史がない地で作ってしまった. 歴史操作の威力は核爆弾数万個よりもっと力強い威力を持つようになった.

歴史操作で一番多い被害を被った国は韓国と日本だ. 日本の操作した歴史はすぐ韓半島の歴史と同時に日本の歴史だったし, 日本のすべてのものだった. 日本がやらかした歴史操作の序開き(序幕)は ‘器機’だが最終的に希代の歴史操作傑作を 作った者はすぐ明治クーデターを起こした卑劣な 3類さむらいたちだ. 日本は操作された歴史を日本人はもちろん全世界で拡大させた. そして歴史操作をすれば短時日に顔が売れる所が今日日本だ. 2005年 7月韓国を扱き下ろして操作された内容でいっぱいになった ‘嫌韓類 (マンガ 嫌韓流)’という単行本マンガが日本で旋風的な人気を呼んでいるように歴史操作は今も続いている.

◆ 第2 焚書坑儒
これらが操作した歴史を別途の ‘歴史操作’ カテゴリーで一部整理したが概略的によく見れば次のようだ.

1. 日本列島に敗走した百済人たちが新羅に敗れた歴史を消すために操作.記述した日本書紀で任那日本府(任那日本府)という単語を捜し出してこれを拡大再生産
2. 1874年操作された任那日本府を側面支援するために李ソノ加美神宮(石上神宮)に保管されていた打つかも発掘及び操作
3. 1879年 300余年私は韓半島を侵攻した豊臣秀吉の悪辣なゾンゼングホンを国民に注入させるためにドヨクニシンサ(豊国神社) 及びコムドム(鼻塚) 重建
4. 1880年代グァンゲトテワングビを操作して任那日本府が実存したように大大的に宣伝
5. 古代日本列島が ¥"韓半島属国¥" であったことを現わす跡を消すために日本に散在している幾多の韓半島関連単語.地名.ジェントルマンの名前を ‘日本語の秘密’で言及したように虎国家次元から日本式発音で改称作業着手
6. 日本王家(王家)の根が伽揶.百済王族だったのを隠すために天皇家を万歳日計(万世一系)で操作しながら皇国思想を拡大包装
7. これらの操作した歴史が矛盾に衝突すると日本を信義国と操作しながら日王を ‘生きている神さま’で操作してこれを信奉する国家信徒を操作した. そして日王の御健康を 称える歌 ¥"君が代¥"を作って今まで日本の国家で使っている.
8. これをドイバッチムするために韓半島.日本.対馬島.中国に保有していた檀君朝鮮を含めた古代歴史で数十万種記録たちを燃やして(焚書)捨てた.
9. 日本はそれでも足りなくて韓半島と係わる古代歴史を消して. 操作したし, ‘三国史記及び古代韓国史は到底信じられない操作書なので絶対に見なくて堪えてからもするな’は指針を下ったりした.
また 一クラス道人たちに 先祖たちの醜い麺を暴き出して劣等意識を鼓吹させるのに最大力点で思った.(1927年朝鮮総督府対外秘調査資料第20集を根拠で世宗出版社ハゾンググン著 ¥"日製殖民官僚が分析した朝鮮人¥"参照) しかし最近科学技術の発達と多くの学者たちの努力で真実が一つ二つ明かされ始めて 神は真実を選択したことを見せてくれている.

 〓 ハラタサカエで(原田栄)は1981年 4月彼の著書 <歴史と現代>で次のように暴露している. ¥"1923年 7月朝鮮総督府朝鮮社編纂委員会顧問である九老だがスミ(黒板勝美) 東京帝国大学教授が対馬島に史料探訪をした時韓国と関係がある文書, 古記録などが対馬島ボンズ(藩主) 家にあることが分かって, 顧問書類(古文書類) 66,469枚, 古記録類(古記録類) 3,576冊, 古地図 34枚, 継ぎ紙古画類(古画類) 18点, 絵 53点等を隠蔽または分署(焚書)した¥". “朝鮮総督府が 1926年 12月から 1938年 3月まで間に朝鮮で奪取した収集史料 4,950本, 写真資料 4,511枚, 文書記録, 肖像画, 長い額縁など 4,513点に達する.” また彼は分署の事由を “百済. 伽揶の帝王(諸王)が日本の天皇になったということが明瞭に記録されていることに驚愕(驚愕)して同種(同種)の文書を対馬島鐘(宗)さんから取り入れなければ危険(今後の多くの人々が分かるようになることが恐ろしくて)という判断に達したことだ

〓 サシヨシヒコ(佐治芳彦)は <邪馬台国抹殺(邪馬台国抹殺)意味(謎)- 誰も分からなかった韓国文書>(1981年 9月)で “日帝の時の日本は韓国史の根を抹殺するために檀君歴史と邪馬台国に関した歴史を抹殺,変調することを最初の課業にした. 一見(一見) 朝鮮民族の歴史を奪取してその魂を枯渇(枯渇)させたように見えるものの, 実は同時に日本民族の根まで抹消して, 将来日本帝国の崩壊につながる歴史的な分署でもあった”と明らかにした.

〓 光復後発刊された <制憲国会社>わムンゾングチァング(文定昌) さんの著書 <軍国日本朝鮮強点36年史>では日本が 1910年 8月韓国を暴挙的で, 不法的な強制併合以後 1911年 12月まで 1年 2ヶ月の間第1次全国書籍索出で檀君朝鮮及び古代歴史でなど 51種 20余万巻分署した¥"と明らかにしている.

〓 また 1938年 6月朝鮮総督府が発行した <朝鮮史編修会事業ヶです (朝鮮史編修会事業概要)>では韓国史操作編纂背景を言っているし, 1923年から 1937年まで 15年の間押収分署した史料がおおよそ 4950種だと明らかにしている.

以上市辺豪奢インタビュー内容朝鮮日報 1985.10.4 ▲朝鮮日報 1986.8.17

当時これらの操作した歴史は数えきれないほど多いが ‘歴史操作’ カテゴリーで明らかにしたこと以外何種類例えば次のようだ.(ホソカ維持著 ‘日本に絶対あうな’ 参照)

1. 日清戦争が終わる頃日製は ¥"朝鮮の神さま¥"は日本の時祖神であるアマテラスの弟スサノ−オ(素 鳴尊)と大大的に主張し始めた. これは韓国統治のための大統領選挙戦だったし, おびただしいフィクション創作だった. 日本書紀によればスサノ−来る荒っぽかったから空の国ダカー馬加しなさい(高天原)で追放されて新羅に下ってそこで住んだと言う. 日本書紀の記述に即してスサノ−オが韓民族, さらには満洲民族の先祖という主張が当時活発に広がった. 当時日本はスサノ−オを韓国の神さまで作るためでいた努力をした. これは韓国の神さまが日本の信義 ¥"弟(妹)申¥"であったという話は韓国人を日本に同化させるためにうてっつけだった. 日製は当時小学校歴史教科書に載せて韓国学生たちに教えた.

そして朝鮮総督たまりなさい(小磯国昭)は公開的にスサノ−オが ¥"韓国の神さま¥"と主張した.
“ここに半島 2500万の円(原)民族はまさしくスサノ−オの子孫です. 果してそうだとすればアマテラスの子孫であるないし(日本) 民族とすぐ根が同じで一つというのを隠すことができない事実ではないか思われるだけでなく, 私たちが今日分かる歴史上でも, その後でも被疑混合が繰り返されています. ところで明治 43年(1910)の声帯にアマテラスの子孫である明治日王に対してスサノ−オの子孫である朝鮮が合邦されたことはシンデ末期のジェントルマン(神事)がもっと徹底的に完成的に繰り返されたのではないか気がします”

彼だけではなかった. 学者たちが中心になって ¥"韓国の詩調である檀君が実はスサノ−オだった¥"と主張し始めた. ダカマがハラで新羅に下ったスサノ−来る実は檀君だったという話だ. 檀君は日本に渡って島根県の捜査(須佐)というところに上陸してしばらく居留したので檀君を捜査の男(=スサノ−オ)と呼ぶようになったという主張が事実のように広がったと言う.

2. そして日帝は満洲をのむために 1930年代呉矢部ゼンイチで(小谷部全一郎)という作家がジンギスカンを日本人だと主張した. 1192年鎌倉(鎌倉)幕府を開いたミナモトノ−頼朝(源頼朝)の弟であるミナモトノ−ヨシツだね(源義経)は小さくても勇ましい美男無事として日本人たちに今も人気ある. 彼は実兄である頼朝に殺害されてしまった. オヤベは ¥"ヨシツネは兄さん(型)に殺害されたのではなくモンゴルで逃避してジンギスカンになった¥"は主張だ. 満洲殖民指話政策を支援するために作られた話だ. そしてオヤベは満洲国の皇帝だった付議(溥義)も日本人の子孫という誇大妄想的なフィクションを作り上げた. 満洲民族の血には日本人の血が流れているので満足民族は日本人と同族であり, 同族どうし一つになることは当たり前の道理という論理だ.

3. 西洋を勝つために作り上げた操作もある. 驚くべきことに西洋人たちが神さまと言えるキリストキリストの墓が日本本州(本州)の北端に位した青森(青森)現の申告Omura(新郷村)にある. こちらは今観光名所になっている. そして 2000年前にイスラエルで十字架にぶら下げられて死亡者はキリストではなく彼の弟であるイスキリという人だったと言う. 当時キリストは日本に逃避して 106歳で死んだというのだ. キリストが日本で死んだという話は初めて 1935年に茨城(茨城)現その他茨城(北 茨城)時に位したゴオソコ(皇祖皇) 大神宮の内で発見された竹内(竹内) 古文書に書いている. 古文書にキリストの墓が青森県で発見されるとなっている. その内容どおりキリストの墓位置が一致したから作ることはよく作られた精巧なフィクションだ. 彼だけではなく 1936年には日本語で使われた ‘キリストキリストの遺書’さえ発見された. その遺書内容の中に日王を賛美する文具が書かれた実はなどで推し量る時当時日製は西洋精神の中心であるキリスト教まで操作していた.

そして 1919年 8月 12日檀君朝鮮.百済.伽揶など韓国古代史を抹殺させるのに先に立った招待朝鮮総督やけどしなさい愚癡マサタケ(寺内正毅). 引き続き文化政治をかこつけて赴任した第3代総督SaitoMakoto(斎藤実 写真)は 1922年 ¥"朝鮮社編修事業¥"を陣頭指揮しながらいわゆる ¥"教育施策¥"で次のように言った.
¥"先に朝鮮の人たちの自分の仕事, 歴史, 伝統が分からなくマンドムとして民族魂, 民族文化を喪失するようにして彼らの先祖と先人たちの無為(無為), 無能と悪事などを暴き出してそれを誇張して朝鮮人子孫たちに教えることで朝鮮人青少年たちがその浮き彫り(父祖)らを軽視して, 見下す感情を起こすようにしてそれを一つの気風で作って, その結果朝鮮人青少年たちが自国のすべての人物と史蹟(史蹟)に関して否定的な知識を得て必ず失望と虚無感におぼれるようになるはずだからその時に日本史蹟, 日本人物, 日本文化を紹介すればその童話の效果がこの上なく大きいだろう. これが帝国日本が朝鮮人を半分(半)日本人で作る要訣であることだ.¥"  この言葉は日製が歴史操作と竝行して韓国人たちに自虐史観を抜けるように強制したことを証明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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