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근대에 필사적으로 날조된 녀석들의 근본이 없는 쓰래기 같은 열등한 역사와 고대로부터 이어진 왜인들의 조선에 대한 원초적인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역사왜곡의 천국인가
선사·고려청자 날조- 공명심 배경에 日 특유의 강박관념 지난 11월말 일본 문화계는 도쿄(東京)신문이 1면 머릿기사로 특종 보도한 고려청자 사기극으로 흔들렸다. 도예상 겸 아마추어 도예가인 다니 순제이(谷俊成?2)씨가 1990년 고려청자의 유약에 얽힌 비밀을 독자적으로 밝혀내 복원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중견 도예가로 급부상했다. 이듬해 아키타(秋田) 현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은 이래 잇따라 일본 국내에서 전시회를 연 것은 물론 93년 유네스코 파리본부, 95년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회를 가졌다. 밀라노 전시회 당시에는 안브로지노 금화상을 받아 이탈리아 도예계에 깊은 인상을 심는 등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97년 일본 외무장관 표창을 받았고 일본 미술작가 명감에 작품이 올라 있을 정도의 지위를 확보했다. 올 10월에도 주 오스트리아 일본대사관과 외무성의 국제교류기금, 교토(京都)부 후원으로 빈에서 개인전을 열어 갈채를 받았다.
한국 도예가 작품에 서명만 넣은 것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기였다. 올 4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고려청자 환상의 기법을 해명했다”는 기고문을 실으면서 꼬리가 잡혔다. 그는 한국 정부 및 도예가들로부터 고려청자 유약에 어떤 금속이 사용됐는지를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아 30년전부터 고려청자 복원에 매달려 왔다고 밝혔다. 일반인들은 무심히 지나쳤지만 전문가인 와세다(早稻田)대학 고바야시 야스히로(小林保治)교수의 눈에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고바야시 교수는 이 기고문의 내용을 친분이 있는 이천의 도예가들에게 알렸다. 조사 결과 다니씨의 작품은 한결같이 이천 도예가들의 작품에 자신의 서명만 넣은 것이었다. 사기극이 드러나자 다니씨는 11월 26일 이천 도자기협동조합에서 고려청자 위조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는 일본내의 여러 미술관과 밀라노 박물관, 모나코 왕궁 등이 소장한 “고려청자”는 모두 기증한 것으로서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이 기본적인 동기였다고 용서를 빌었다. 이 사기극의 동기는 개인의 공명심이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나 도예가 경력이 불투명한 그가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한국이 자랑해 온 고려청자의 비법을 일본인이 풀었다는 일본 도예계의 인식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이런 인식은 현재 도자기 왕국으로 부상했으면서도 “원천 기술”이 한반도에서 왔다는 사실에 대한 집단적 강박관념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