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무식한 일본인들의 망상은 끝이 없다.

人糞을 이용하여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까?

퇴비 만드는 법을 일제강점기에 전해줬다고 망상하는 일본인들
죠몬인들이 농사에 人糞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가?

 

일일이 트집잡는 일본인들의 망상을 단숨에 격퇴해 보도록 한다.

 

일본의 퇴비 정의
堆肥
일본 - 짚, 왕겨, 나무 껍질, 동물의 배설물 기타 동식물 질 유기質物(슬러지 및 해산물 기관 제외)을 입금 또는 교반하고腐익은 것을 말한다.

下肥는 대부분의 경우 원시 인간 쓰레기 (인분과 사람 소변)을 비료로 채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日本では14世紀の二条河原落書に触れられているのが人糞利用の記録としては最古であり、江戸時代の江戸をはじめとする大都市では近郊の農民が町家の糞尿を購入して、回収した糞尿を用いて堆肥を生産しており、結果的には当時の深刻な都市問題であった人間の廃物処理問題を上手く解決してきた。近年このような風習は廃れてきたが、第二次世界大戦後の近郊農家の減少や水洗トイレと化学肥料の普及が減少の一因として挙げられる。

 

農事直說

조선 초기의 문신 정초(鄭招:?~1434)와 변효문(卞孝文:1396~?)이 엮은 농업기술서.

<농사직설>, 중간본(1581), 비곡종 부분, 규장각 소장
12엽(葉) 1책으로 되어 있다. 1429년(세종 11)에 엮은이들이 세종의 명을 받아 각도 관찰사들에게 경험이 많은 농부들로부터 농업 기술을 듣게 하고, 이를 모아서 저술·간행한 것이다. 그뒤에도 판을 거듭했으며, 1656년(효종 7)에는 〈농가집성 農家集成〉에 포함되어 간행되기도 했다. 편찬의 방법은 고농서(古農書)의 초록에 의한 정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농업관행을 조사하고 중국 농서를 참작하여 정리했다.

내용은 비곡종(備穀種:이듬해 파종하게 될 종자의 준비법)·경지(耕地:파종 전에 경작지를 일구어 고르는 방법)·종마(種麻:삼의 파종·재배·수확)·종도(種稻:벼의 재배법)·종서속(種黍粟:기장·조·수수의 재배법)·종직(種稷:피의 재배법)·종대두소두녹두(種大豆小豆菉豆:콩·팥·녹두의 재배법)·종맥(種麥:보리와 밀의 재배법)·종호마(種胡麻:참깨 재배법)·종교맥(種蕎麥:메밀 재배법) 등 10항목으로 되어 있다. 〈농사직설〉에 나타난 당시의 농업기술체계는 우선 농지고르기[整地法]에서는 춘하경(春夏耕)은 얕게 갈고, 추경(秋耕)은 깊게 갈 것을 장려했고, 치전(治田)의 방법으로는 추경하여 겨울을 넘기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벼의 파종법은 직파법(直播法:논에 볍씨를 뿌려 그대로 키워 거두는 방식)·건답법(乾畓法:밭벼식으로 파종하여 키우다가 장마 이후로는 물을 담은 채 논벼로 기르는 방법)·묘종법(苗種法:못자리에서 키운 벼의 모를 논에 옮겨 심어 재배하는 이식법)과 산도법(山稻法)이 있었다. 밭작물의 파종법으로는 조파(條播:줄뿌리기)·살파(撒播:흩뿌리기)·혼파(混播:몇몇 다른 종류의 씨를 섞어 뿌리기) 등 3가지 방법이 시행되었으며, 경작방식으로는 2년3작·단작(單作)·혼작(混作)·휴한(休閑)·간작(間作) 등을 채용했다. 중경제초(中耕除草) 작업은 작물에 따라 달랐는데 언급이 없는 것(메밀), 1번에 그치는 것(삼·보리), 3~4번에 이르는 것(벼·기장) 등이 있었다. 비료를 쓰는 법에는 객토(客土)를 넣는 것과 여러 가지 거름을 사용하는 것이 있었다. 객토는 단순한 시비가 아니라 농지를 근원적으로 개량해가는 방법이었으며, 거름으로는 인분, 재거름, 소와 말의 배설물, 녹비(참갈잎·녹두), 외양간 거름, 오줌재[尿灰]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농기구로는 쟁기·써레·쇠스랑·미리개·번지·곰배·따비·호미 등이 쓰였다.

〈농사직설〉이 간행된 것은 우리 농법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고려 이전까지는 우리 농업이 중국 농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중국 화북지방의 휴한농법(休閑農法)을 골격으로 하는 중국 농서가 바로 이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휴한세역농법(休閑歲易農法)이 연작상경농법(連作常耕農法)으로 변화하고, 수전농업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농서의 이용은 한계에 달했다. 따라서 우리 현실에 맞는 농서가 요구되었으며 이는 아직도 세역농법이 남아 있는 후진지역의 농민에 대한 농업교육이란 관점에서도 시급한 문제였다. 세종조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껴 우리 농업기술에 기반한 〈농사직설〉을 편찬한 것이다. 〈농사직설〉은 일반 경종법(耕種法)에 대한 현존 문헌으로 가장 오래된 농서이다. 더욱이 순수한 우리 농업기술로 관행되어오는 것을 종합한 것으로서 후대 농서의 선구가 되어 농업기술사나 농학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공무원교육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堆肥(堆肥)に対して

무식한 일본인들의 망상은 끝이 없다.

人糞을 이용하여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까?

퇴비 만드는 법을 일제강점기에 전해줬다고 망상하는 일본인들
죠몬인들이 농사에 人糞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가?

 

일일이 트집잡는 일본인들의 망상을 단숨에 격퇴해 보도록 한다.

 

일본의 퇴비 정의
堆肥
일본 - 짚, 왕겨, 나무 껍질, 동물의 배설물 기타 동식물 질 유기質物(슬러지 및 해산물 기관 제외)을 입금 또는 교반하고腐익은 것을 말한다.

下肥는 대부분의 경우 원시 인간 쓰레기 (인분과 사람 소변)을 비료로 채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日本では14世紀の二条河原落書に触れられているのが人糞利用の記録としては最古であり、江戸時代の江戸をはじめとする大都市では近郊の農民が町家の糞尿を購入して、回収した糞尿を用いて堆肥を生産しており、結果的には当時の深刻な都市問題であった人間の廃物処理問題を上手く解決してきた。近年このような風習は廃れてきたが、第二次世界大戦後の近郊農家の減少や水洗トイレと化学肥料の普及が減少の一因として挙げられる。

 

農事直說

조선 초기의 문신 정초(鄭招:?~1434)와 변효문(卞孝文:1396~?)이 엮은 농업기술서.

<농사직설>, 중간본(1581), 비곡종 부분, 규장각 소장
12엽(葉) 1책으로 되어 있다. 1429년(세종 11)에 엮은이들이 세종의 명을 받아 각도 관찰사들에게 경험이 많은 농부들로부터 농업 기술을 듣게 하고, 이를 모아서 저술·간행한 것이다. 그뒤에도 판을 거듭했으며, 1656년(효종 7)에는 〈농가집성 農家集成〉에 포함되어 간행되기도 했다. 편찬의 방법은 고농서(古農書)의 초록에 의한 정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농업관행을 조사하고 중국 농서를 참작하여 정리했다.

내용은 비곡종(備穀種:이듬해 파종하게 될 종자의 준비법)·경지(耕地:파종 전에 경작지를 일구어 고르는 방법)·종마(種麻:삼의 파종·재배·수확)·종도(種稻:벼의 재배법)·종서속(種黍粟:기장·조·수수의 재배법)·종직(種稷:피의 재배법)·종대두소두녹두(種大豆小豆菉豆:콩·팥·녹두의 재배법)·종맥(種麥:보리와 밀의 재배법)·종호마(種胡麻:참깨 재배법)·종교맥(種蕎麥:메밀 재배법) 등 10항목으로 되어 있다. 〈농사직설〉에 나타난 당시의 농업기술체계는 우선 농지고르기[整地法]에서는 춘하경(春夏耕)은 얕게 갈고, 추경(秋耕)은 깊게 갈 것을 장려했고, 치전(治田)의 방법으로는 추경하여 겨울을 넘기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벼의 파종법은 직파법(直播法:논에 볍씨를 뿌려 그대로 키워 거두는 방식)·건답법(乾畓法:밭벼식으로 파종하여 키우다가 장마 이후로는 물을 담은 채 논벼로 기르는 방법)·묘종법(苗種法:못자리에서 키운 벼의 모를 논에 옮겨 심어 재배하는 이식법)과 산도법(山稻法)이 있었다. 밭작물의 파종법으로는 조파(條播:줄뿌리기)·살파(撒播:흩뿌리기)·혼파(混播:몇몇 다른 종류의 씨를 섞어 뿌리기) 등 3가지 방법이 시행되었으며, 경작방식으로는 2년3작·단작(單作)·혼작(混作)·휴한(休閑)·간작(間作) 등을 채용했다. 중경제초(中耕除草) 작업은 작물에 따라 달랐는데 언급이 없는 것(메밀), 1번에 그치는 것(삼·보리), 3~4번에 이르는 것(벼·기장) 등이 있었다. 비료를 쓰는 법에는 객토(客土)를 넣는 것과 여러 가지 거름을 사용하는 것이 있었다. 객토는 단순한 시비가 아니라 농지를 근원적으로 개량해가는 방법이었으며, 거름으로는 인분, 재거름, 소와 말의 배설물, 녹비(참갈잎·녹두), 외양간 거름, 오줌재[尿灰]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농기구로는 쟁기·써레·쇠스랑·미리개·번지·곰배·따비·호미 등이 쓰였다.

〈농사직설〉이 간행된 것은 우리 농법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고려 이전까지는 우리 농업이 중국 농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중국 화북지방의 휴한농법(休閑農法)을 골격으로 하는 중국 농서가 바로 이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휴한세역농법(休閑歲易農法)이 연작상경농법(連作常耕農法)으로 변화하고, 수전농업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농서의 이용은 한계에 달했다. 따라서 우리 현실에 맞는 농서가 요구되었으며 이는 아직도 세역농법이 남아 있는 후진지역의 농민에 대한 농업교육이란 관점에서도 시급한 문제였다. 세종조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껴 우리 농업기술에 기반한 〈농사직설〉을 편찬한 것이다. 〈농사직설〉은 일반 경종법(耕種法)에 대한 현존 문헌으로 가장 오래된 농서이다. 더욱이 순수한 우리 농업기술로 관행되어오는 것을 종합한 것으로서 후대 농서의 선구가 되어 농업기술사나 농학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공무원교육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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