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중국의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알려진지 1년이 넘었다.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를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한국, 중국 간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과 그 연구 중심인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한국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은 뚜렷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이 문제는 단순히 학술적인 차원에 불과한 것일까?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담겨있는 중국의 또다른 노림수는 과연 무엇인가?

지난해 7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갑작스레 한국을 방문했다. 공식적인 방문 목적은 짜칭민 중국 국가 부주석의 방한에 앞선 사전협상 문제였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 해결이었다. 한,중 양국 외교부 간 회담은 27일과 28일 연이틀에 걸쳐 벌어졌다. 무려 9시간 반에 걸친 기나긴 협상이 이어졌다.

최영진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 “양국 정부는 향후 역사 문제에 있어서 양국 간 우호 협력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자...”

결국 양국 정부가 구두양해 형식으로 합의한 내용은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가 양국 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것을 인정하고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2003년 말에 이미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뤘던 한국과 중국...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내의 한국 소개란에서 고구려를 삭제하여 또다시 불붙었던 양국 간 역사논쟁은 일단 이렇게 봉합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서길수 서강대학 교수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주목해 볼수 있는 것은 중국이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사(高句麗史)를 왜곡한 내용을 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교과서를 왜곡하지 않으면 우리가 승리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용만 한국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중국 측이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방정부나 민간단체에서 역사왜곡 행위를 하는 것가지 막으려는 의지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 구두합의 이후에도 중국에서 역사왜곡을 하는 사태는 계속 벌어졌다. 단순하게 중국 외교부부장의 말을 믿고 한,중 간의 역사논쟁을 마치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보는 것은 우리만의 착각일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사(高句麗史)에 대한 중국 내부의 시각은 구두합의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2004년 9월 말에는 베이징에서 중국의 역사문화 전시회가 열렸다. 그런데 전시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구려 역사 유적을 소개하는 사진과 설명문이다. 고구려의 첫번째 도성(都城)이었던 오녀산성을 비롯해 장군총(將軍塚)과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훈적비(勳積碑) 등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중국의 역사 유적으로 버젓이 소개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한 문화잡지에는 “고구려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제목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중외문화교류”라는 이름의 이 잡지는 중국의 문화부가 발행하는 것으로 중국어판과 영어판으로 촐판돼 전세계 180여개국에 배포되는 관영 홍보지이다. 그런데 여기 실린 기사 역시 지금까지 중국에서 진행되어온 고구려사 왜곡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는 고대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한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주장해온 중국인 학자들의 입장 역시 큰 변화가 없다. 2004년 9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 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증국인 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손홍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일부 사람들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4세기에 고구려가 한반도 북부에 침입했고 그곳으로 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국의 소수민족이 한반도에 침입하여 중국의 식민지 정권을 설립한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지 고구려가 한국 민족의 국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기환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실장 “고구려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였고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호태왕비(好太王碑) 등 금석문(金石文)에도 잘 나타나듯이 고구려는 중원 왕조와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나라였다.”

한국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고구려 역사 문화의 독자성까지도 이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손진기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원장 “고구려가 자체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임 선생이 제기한 도자기, 축성법, 사신도 등은 공교롭게도 고구려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다.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손홍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고구려는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의 영향으로 고구려는 놈업과 수렵 혼합형의 과도기적인 경제 상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되었으며 고구려는 비록 자주적인 문화의 특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漢) 문화가 중심이었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한,중 간 구두합의가 끝났지만 전혀 달라진게 없는 중국 학자들의 태도. 이것이 단지 학술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

김현숙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중국에서는 사실 한국의 정치가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정치적인 명분이 필요하다고 보면 역사학계에서 그것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되고 일반론이 하나가 뜨게 되면 다른 이설은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수 있다.”

조민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중국의 국경 내에서 중세, 혹은 고대에 전개되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 아닌가. 그렇다면 만주지방에서 전개되었던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가 바로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라는 그런 주장인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역사 날조인데 지금 와서 중국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가 뭐냐. 중국도 일본의 식민사관, 한국에 대한 침략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반도사관을 비판해왔지 않은가?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우리 민족의 과거사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혼(魂)이다. 우리 민족의 혼을 왜곡하고 갈취하겠다고 하는 것은 학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중국의 정치적인 속셈, 다시 말해서 대한반도(對韓半島) 전략의 핵심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북경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작업의 핵심으로 알려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관하고 있는 곳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동북공정은 단순히 학술적인 연구일 뿐이며 이를 문제삼는 것은 한국 측의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공격하는 중국.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홈페이지에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소개문에는 이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목표가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과 사회질서 확립이라고 밝혀 놓았다. 동북공정이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표에 주안점을 둔 프로젝트임을 명시한 것이다. 동북공정의 조직도에서도 정치적인 색깔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서열에 포함돼 있는 정치부 위원과 재정부 부장이 동북공정의 고문을 맡고 있다. 또 사회과학원의 부원장 흑룡강성 부서기 등 중국 정부의 주요 관직자들이 동북공정의 요소요소에 포진돼 있다.

그렇다면 대체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연구내용은 무엇인가?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홈페이지에는 2003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수정된 연구과제들이 설명되어 있다. 이들 56개 과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내용이 중국 동북지역의 공정(工程)과 영토문제에 관한 것이다. 동북공정이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동북지역은 중국의 최동북쪽에 위치한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세지역을 가리킨다. 총면적이 78.9만 평방 킬로미터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동북삼성(東北三省)에는  우리가 흔히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이 대부분 포함되는데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한,중 간에 영토분쟁을 일으켜왔다.

조선조 숙종(肅宗) 38년인 1712년 실록에는 중국의 사신이 국경문제로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양국인 모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던 간도지역이 영토분쟁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가 세워졌다. 양국 간 국경협정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는 백두산 정계비. 그 내용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후로 문제가 되는 것이 동쪽 경계인 토문강의 위치다.

토문강을 동쪽 경계로 할 경우 간도지역의 대부분이 조선 영토에 포함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두만강과 토문강이란 지명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중국은 두만강이 경계라고 주장했다. 조선과 청나라는 1885년과 87년 두차례에 걸쳐 국경회담을 가졌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조선과 청나라의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던 간도. 그런데 1909년 당시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던 일본이 청나라와의 협약을 체결한다. 간도를 청나라에 넘기고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탄광체굴권을 얻는다는 내용이었다. 국경문제의 당사자였던 한민족(韓民族)이 완전히 배제된채 체결된 이 조약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지난 22일 국경감사장에서 반기문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간도협약이 무효란 입장을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간도협약에 관해서는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간도협약이 체결된지 9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정부가 간도협약의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지금의 국제법적인 문제로 봐도 국경문제의 당사자가 배제된채 제삼자가 개입을 해서 영토를 중국에 넘긴 것은 분명한 과오라고 볼 수가 있다. 특히 국제법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미국에 항복하기 이전에 체결했던 모든 협약은 무효라는 내용이 있고 그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포츠담 카이로 조약에서도 다 무효라고 인정하는데 오직 이 간도협약의 무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여서 어쨌든 1960년에 중국과 북한 간의 국경협약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한,중 간의 국경협약이 다시 재개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중국도 충분히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간도문제가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점으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 측과의 구두양해 합의 당시에도 중국은 고구려사와 국경 및 영토문제의 연관성에 가장 관심을 보였다. 한,중 간의 외교회담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해 8월20일자 “더 타임”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렸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옛 고구려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바인더 하버드대학 교수 “나는 중국의 입장에 상당히 수세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동북지역 세개의 성이 중국 영토라는 입장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49년까지 중국의 중앙정부가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었던 지역이다.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지켜내기가 힘들어진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북동쪽 국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존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동북지역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길림성 연변시에 위치한 조선족 자치주이다. 한반도의 1/4 면적에 중국 동북지방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이 지역은 조선족이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요 행정직은 대부분 이들 조선족이 맡고 있으며 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주도권 역시 조선족이 가지고 있다. 중국어와 함께 조선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중국 개방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한류열풍까지 겹치면서 조선족 사회에 한국의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연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조선족 가정에는 한국 공중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위성안테나가 달려 있다. 한국 방송 수신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이들은 단속을 피해 거의 매일같이 한국 TV 방송을 시청한다. 드라마와 뉴스 등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한국과 동시에 방송된다.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돈을 벌려고 한국 땅을 찾는 조선족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남한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은 1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통해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도 한국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속속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는 탈북자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7일 북경에선 67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이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민감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흔들리면서 탈북자의 수는 계속 늘고 있고 이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사회로 숨어든다. 그리고 중국은 이같은 상황이 변경지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보령 동북공정(東北工程) 전문가 위원회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 이를테면 북한의 난민이 끊임없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이것은 한중관계를 생각할때 중국으로서도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바로 변경 불안정의 요소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탈북자들이 주로 숨어드는 곳은 연길을 포함한 조선족 거주지역이다. 미국에서도 탈북자 문제와 인권문제를 포함해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상황이고 중국의 변경 즉 동북지역이 중국과 북한 간의 외교적 문제만이 아니고 중국과 남한 간의 외교적 문제만도 아니고 미국도 관여하게 되고 세계가 관여하게 되어서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되기 때문에 국제적 문제로도 비화될 수가 있는 것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관하고 있는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탈북자 문제가 동북지역 불안정의 중요한 요인이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 이후다. 통일이 되면 북한과 남한 조선족 사회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이 지역 전체가 한민족(韓民族)의 영향권에 들수 있기 때문이다.

윤휘탁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그렇게 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간의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게 되는 것이다. 북쪽에는 탈북자와 조선족이 어울리게 되고 남쪽에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들이 어울리게 되고 또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과도 어울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이 한민족의 활동영역으로 고정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한반도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또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조선족들은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될 것이고 조선족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25일 뉴욕타임즈에는 이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현재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현대의 국경을 넘어선 통일한국을 지지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노력하는 조선족들을 중국 정부가 엄하게 처벌한 것도 한국과 조선족들간의 연결을 우려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2003년 12월부터 중국은 조선족들에게 이른바 삼관교육이라는 사상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삼관이라는 것은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 세가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내용은 조선족들에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홍두 (연길 거주 조선족) “중국이 너희들의 조국이다. 남한이나 북한이 너희의 조국이 아니다. 법적으로 이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을 똑똑히 알아라. 이게 조국관 문제고, 민족관은 너희는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국에 사는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관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변방에 사는 소수민족의 역사로서 중국 역사 가운데 하나다. 이런걸 정확히 수립해야 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왜곡 작업도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고구려와 발해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한반도와 연결된 조선족의 역사적 뿌리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윤휘탁 위원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 간의 관련성을 부정해야 될 필요가 있고 중국에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논리를 개발하거나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서들을 들춰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과거에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여겨져 왔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라는 국가가 중국 민족이 세운 것이고 이것들이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를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조선족과 동북지역에 대해 중국이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다민족국가(多民族國家)라는 중국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중국은 전체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漢族) 이외에도 55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이 다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소수민족은 중국 전체인구의 1/10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의 거주지역은 중국 영토의 절반을 넘는다. 때문에 이들의 융화와 단결이 국가 생존의 절대적인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건국 초기부터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通一的多民族國家論)을 강조해 왔다. 중국 내의 소수민족은 모두 중국이라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이며 각 민족간의 관계는 분리할수 없다는 내용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중국 내 각 민족간의 분열을 해소하고 국가를 통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이론이다.

윤휘탁 위원 “한족(漢族)과 소수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적어도 중국이라는 역사적 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민족이라고 한다면 그 민족이 어떻든 간에 모두 온전한 중국 민족이라고 하는 그런 전제 하에서 중국 내 각 민족의 단결과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파생시킨 중국의 국가인식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인 것이다.”

사실 중국은 건국 이후 끊임없이 소수민족과의 분쟁에 시달려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갈등이 심한 지역은 중국 남서부에 자리잡고 있는 티베트다. 1950년 중국의 침공을 받은 티베트는 1959년 3월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반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채 실패로 끝났고 티베트는 중국에 의해 완전 점령당하고 만다.

1965년 서장자치구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영토 내에 편입된 티베트는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였지만 중국은 이를 무력(武力)으로 진압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같은 무력 진압을 통해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차단시키기 위한 또다른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이른바 서남공정(西南工程)이 그것이다.  

서남공정(西南工程)을 진행하는 곳은 이른바 중국의 장학연구중심(奬學硏究中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 설립된 중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이곳에서는 1986년 130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서남공정을 시작했다.

10년에 걸친 서남공정을 통해 중국은 7세기 이후 독자적인 주권과 문화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철저하게 부정해왔다. 티베트는 중국이라는 다민족국가의 일부분이며 사고(史古) 이래로 중국과 나눠질수 없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 서남공정의 주장이다. 이같은 서남공정(西南工程)의 논리는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논리와 유사하다.

김용만 한국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해서 정치적 구심체까지 있기 때문에 (티베트는) 중국과는 다른 문명체이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양해 하에 티베트 지역을 점령한 후에 여기를 다시 때앗기지 않기 위해서 수십년 동안 티베트 지역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또 한족(漢族) 인구를 티베트 지역에 분파시켜 티베트의 독립의지와 명분을 없애려고 하였으며, 동북지역보다 더 먼저 중국이 오랫동안 투자를 했다고 볼수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중국 화폐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설자인 마오쩌둥과 함께 소수민족의 얼굴을 넣을 정도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강조해온 중국. 소수민족 통합이란 목적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왔다.

규모가 크거나 이탈 움직임이 많은 소수민족의 경우 거주지역에 한족(漢族)들을 대거 유입시켜 한족들과의 동화를 꾀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는 대규모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최근들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이 바로 동북지역의 조선족이다.

박선영 교수 “조선족 문제가 부각될 경우 중국 내의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억누르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인으로서의 민족관, 중국인으로서의 역사관, 중국인으로서의 국가관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끊임없이 중국이라는 역사, 문화, 정치의 틀 안에서 소수민족을 가두고 소수민족을 설명하려는 요인이 되지 않을가...”

마크 바인더 하버드대학 교수 “사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입장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서쪽이나 북서쪽에서 살고 있는 다른 소수민족들의 경우 계속 독립을 요구하며 독립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는데 왜 우리는 중국에 속해야 하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논지를 확장하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우리는 옛 고구려 땅에 살고 있고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왜 중국에 속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 아래서 중국인 티베트 역사를 편입시키는 서남공정(西南工程)에 이어 동북지역 문제를 다루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 집결지인 집안(集安) 일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도 이같은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집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중국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고구려가 중국 역사란 주장을 본격화했고 관광객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과 장수태왕(長壽太王)의 흔적도 마치 중국 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될 무렵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환인(桓仁)에서는 대규모의 축제까지 열렸다. 축제의 대부분은 한민족의 전통문화 공연으로 채워졌지만 중국 측의 주장은 한결같다.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 동북지역에 존재했던 지방정권의 하나며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집안과 환인에는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가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동북지역의 안정과 조선족 정체성 말살의 방편으로 시작된 동북공정. 이로 인한 고구려 역사의 왜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집안과 환인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책자를 판매하고 있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장군총(將軍塚)과 호태왕비(好太王碑) 등 우리 민족 역사의 소중한 유산들이 빠짐없이 소개되어 있는 책자들이다. 최근에는 기념 우표집까지 등장했다. 고구려와 발해 등 동북지역에 대한 역사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만주지역을 지배했던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중국 것이라 주장하는 책들... 그런데 여기는 중국 동북지역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있는 평양의 고구려 유적들까지도 소개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 광명일보의 기사. 여기에는 한반도의 북부 지방가지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이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지방에 현도군(玄都郡)과 낙랑군(樂浪郡) 등의 통치기구를 두었고 고구려의 수도는 이들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중국은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 북부까지도 중국의 고대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소부 북경대학 교수 “평양으로 천도했을 당시 그 땅은 중국 고대 영토의 일부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곳은 중국의 소수민족이자 지방정권인 고구려 영토이기 때문이다. 그 지방을 점령하기 전에는 한사군(漢四郡), 낙랑군(樂浪郡) 같은 것이 있어 중국이 직접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낙랑군은 중국의 영토였다.” [옮긴이 주;  사실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등에 따르면 낙랑군(樂浪郡)의 위치는 서요하(西遼河) 영주(永州)에 있었다고 전한다. 낙랑군이 한반도의 평안도에 설치되었다는 이론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왜곡한 날조에 불과하다.]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와 중국 간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주장. 이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최근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핵개발 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국 북경에서는 지난해 6월에 제3차 6자회담이 열렸다. 오래 전부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중국은 6자회담 과정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에 대해 중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한반도의 평화유지다.

중국 국제문제 연구소 소속 진림파 박사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한다는 의미는 중국은 한반도 내의 군사충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고 심지어 내란이 일어나는 것도 반대한다. 예를 들어 외부의 압력이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북한 내부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가 중국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이 북한 핵개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배경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중국 자신의 안정과 관련된 문제이기 대문이라고 분석한다.

김일영 성균관대학 교수 “북한이 만일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물론 지금도 소량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핵무기 개발 이후 모험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력의 강대국들이 개입을 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안정이 깨지고 약간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국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안정. 그것은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국경지대와 근접하고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북한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것이 곧 자신들의 안보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봉균 북경대학교 교수 “현재는 한반도의 안보가 중국에게 가장 중요하다. 비핵화, 지역안보 등은 중국의 안보와 동북아시아 안보에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 안정, 발전은 중국의 안보와 직결되기 대문에 중국은 비핵화 안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중국의 경제, 현대화 건설을 위한 안정적인 외부 환경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윤휘탁 위원 “만약에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미국이 주도권을 갖고 미국이 자의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할 경우에 예를 들어 (남한 주도적인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미국군 기지가 압록강이나 두만강가에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중국은 코 앞에 위협세력을 가까이 두게 되는 것이고 중국의 군사 안보적인 입장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완충지대로서의 북한 정권이 갑자기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으로서는 동북아시아 주도권 장악의 발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북한의 현 체제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의 학자 스티븐 모셔는 자신의 저서 “헤게몬”에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은 군대를 북한으로 파견하여 괴뢰 정권을 수립하거나 자국의 조건에 따라 한반도 통일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서는 이와 비슷한 글이 확산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북경대학에서 공부했던 한국인 유학생이 썼다는 이 글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중국의 정치학 교수에게서 들었다는 글의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중국은 앞으로 10년 내에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북한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들어 한반도 북부지역을 중국의 영토로 삼으려 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인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표된 대한민국 건국 헌법.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에 대한 조항이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바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50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었고 우리는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경우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북한 영토를 넘겨받게 될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현실적인 상황은 한국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UN에서 결의한 문서들이 보관돼 있는 UN기록보존소. 대한민국 건국 당시 UN이 한반도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결의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서도 여기에 있다.  UN총회 결의 제195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에 보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변화에 대해 어떤 대비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UN 위원단의 활동이 가능했던 3.8선 이남 지역에 대해서만 유효한 통치와 관할권을 갖는 합법적인 정부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일영 교수 “본래 UN은 남,북한의 인구비례를 생각해서 남,북한 총선거를 할 것을 결의했는데 그게 북한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확인하고 남한 정부를 어떻게 인정했느냐 하면 UN 한국 임시위원단, 다시 말해 UN의 감시 하에 선거가 치뤄진 유일한 합법정부다. 그러니까 한반도 전체의 합법정부가 아니라 UN 감시 하에 선거가 치뤄진 한반도 남부지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승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UN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한국전쟁 당시다. 1950년 11월 UN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에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평양을 방문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기록한 국회 속기록은 평양 방문 당시 이승만은 대통령 자격이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UN은 3.8선 이북 지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은 이후 국제사회의 인식을 더욱 굳혀놨다. 북한은 이미 100여개 이상의 국가와 수교를 맺고 있고 1991년에는 남한과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국제 정치무대에서 남한과 북한은 연관성이 없는 독자적인 나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김일영 교수 “이런 상황이 앞으로 현재 남,북한 관계나 북한 정권의 급변사태, 북한 정권의 붕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에 우리처럼 국내법 논리로 대한민국 헌법을 가지고 남한의 북한 영토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면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경우 자동적으로 남한의 헌법이 북한 지역으로 확장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북한은 수복 지역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히 북한 영토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반면에 국제법적인 논리로 따져보면 북한은 엄연히 남한과는 다른 별개의 주권국가였고 따라서 북한 김정일 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남한이 우선적인 영향력 행사를 주장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럴 때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미국이 중심이 되고 중국이 참여하고 이런 식의 국제적인 개입, UN을 통한 개입 이런게 아마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재 북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이 유사시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최근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경찰 등 경비력 대신 군병력을 배치한 것은 그런 시각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도 많다.  

조민 통일연구원 위원 “경찰병력으로 충분히 탈북자들을 단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본다면 군병력으로 전환시킨데 대해서는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의 의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된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6월 북한과 국경협력협정을 체결했다.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사시 중국이 북한 내부에 대한 개입을 할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이 북한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시작된 고구려의 역사는 한반도 북부로 이어졌고 북한은 이러한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한 국가라고 말해왔다.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면 북한지역 역시 중국의 영토란 주장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북공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중국. 그 속내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위원 “중국은 북한의 체제변화라든가 김정일 정권 붕괴 등 다양한 정치적 현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해 유사시에 대비한 다양한 방책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나타나고 동북공정은 바로 그들이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강조하는 고구려의 활동영역이 대동강 또는 한강 이북까지 있었지 않던가. 그러한 것이 북한이란 나라가 만약에 변화가 있을때 그들은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김일영 성균관대학 교수 “중국의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 대한 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요한 부분작업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간도지방을 중국이 계속 관할하기 위한 포석도 있고 북한이 붕괴된 이후에 북한지역에 대한 우선적인 영향권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가 이런 계산고 있으니까 한반도에 대한 큰 정책이 부분적인 방향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그러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인식은 아직까지 고구려사(高句麗史)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동북공정의 목표와 거기에 대한 결과를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잠정적인 대응과 일시적인 대책 밖에는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한국은 미래에 대한 전략 부재가 심각하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이며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전략이 없기 때문에 유사시에 순간적인 대응에 그칠 것이고 그 이상의 지혜로운 대책은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꼭 남이 먼저 시작해서 우리가 거기에 뒤따라 대응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 민족의 번영과 한반도를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현숙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이 문제가 어차피 장기적으로 가야 될 것이니까 우리도 긴 호홉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아주 단발적인 정책을 내거나 흥분하거나 또는 여론무마용 정책만을 강조한다면 또다시 이런 문제가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서 길게 계속 간다.....”

김용만 박사 “우리에게 중국이란 존재는 생존문제와 연관을 지어 바라봤을 때에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경계해야 할 존재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면 우리도 그에 못지않게 중국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 중국이 과거를 연구해서 미래를 대비한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미래를 위한 연구를 해야 된다고 본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한반도와 중국 간의 최대 외교 쟁점이 되고 있다. 1992년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협력해온 한중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동북공정과 중국에 대해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역사문제가 아니라 한민족(韓民族)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동북공정에는 중국의 이익과 미래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존재하고 그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東北公正(東北工程)と韓半島. 中国の最終目的は何か?

 

 

中国の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問題がうちの社会に知られてから 1年が過ぎた. 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を取り囲んだ論争は絶えず続きながら韓国, 中国に行った葛藤要因になっている. 中国の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とその研究中心である東北公正(東北工程)に対する韓国側の荒い反発にもかかわらず中国側は明らかな立場変化を見せていない. 彼らの主張どおりこの問題は単純に学術的な次元に過ぎないのだろう?  東北公正(東北工程)に盛られている中国のもう一つの狙いは果して何か?

去年 7月, ウダウェイ中国外交部副部長が急に韓国を訪問した. 公式的な訪問目的はチァチングミン中国国家副主席の訪韓に先に進んだ辞書交渉問題だったがより重要な理由は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解決だった. 韓,中両国外交部の間会談は 27日と 28日二日続きにかけて起った. おおよそ 9時間半分にわたった長長しい交渉がつながった.

崔ヨン陣韓国外交通商部次官 ¥"両国政府は今後の歴史問題において両国の間友好協力関係が損傷されないようにしよう...¥"

結局両国政府が靴さんして形式で合議した内容は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が両国の間重大懸案に頭をもたげたことを認めて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を政治争点化しないように努力するのだ. 2003年末にもう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で一度はしかを受けた韓国と中国... 中国外交部ホームページ内の韓国紹介欄で高句麗を削除して再び火が付いた両国の間歴史論争は一応こんなに縫合された. しかしこれに対する評価はあまり肯定的ではない.

西ギルス西江大学教授 ¥"内容をよく見ればそこで新しいのがないという点だ. その中で注目して見られることは中国が歴史教科書に高句麗社(高句麗史)を歪曲した内容を積まないというのだ. ところで中国が教科書を歪曲しなければ私たちが勝利したことと思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のだ.

キム・ヨンマン韓国歴史文化研究所所長 ¥"中国側が韓国の古代史を歪曲しないと約束をしたが地方政府や民間団体で歴史歪曲行為をするゴッがだ阻もうとする意志はないだろう. 実際にその靴合意以後にも中国で歴史歪曲をする事態はずっと起った. 単純に中国外交部部長の言葉を信じて韓,中の間の歴史論争をまるで平和的に終わったと思うことは私たちばかりの錯覚であるでしょう.¥"

実際に高句麗社(高句麗史)に対する中国内部の視覚は靴合意以後にも大きく変わったのがない状況だ. 2004年 9月末には北京で中国の歴史文化展示会が開かれた. ところで展示場一方を占めていることは高句麗歴史遺跡を紹介する写真と説明文だ. 高句麗の一番目都城(都城)だったオニョサンソングを含めて張君寵(将軍塚)と光ヶ土豪太王(広開土好太王) フンゾックビ(勳積碑) など高句麗の歴史と文化を代表する遺跡たちが中国の歴史遺跡で堂堂と紹介されている. 彼だけではない. 中国の一文化雑誌には ¥"高句麗に身近に近付く.¥"は題目の特集記事が載せられた. ¥"中外文化交流¥"という名前のこの雑誌は中国の文化部が発行することで中国語版と英語版でチォルパンドエ全世界 180余個国に配布される官営広報誌だ. ところでここに積まれた記事も今まで中国で進行されて来た高句麗社歪曲内容と特に違わない. 高句麗は古代中国東北地方に存在した中国少数民族の中一つというのだ.

このような内容を主張して来た中国人学者たちの立場(入場)も大きい変化がない. 2004年 9月 16日ソウルで開催された ¥"韓国歴史の中の高句麗の位相¥"という題目の国際学術会議でもズンググックである学者たちは高句麗が中国歴史という主張を一貫されるように広げた.

ソンホング沈陽東アジア文化研究員 ¥"一部人々は高句麗が中国歴史と主張するのにその理由は 4世紀に高句麗が韓半島北部に侵入したしその所に遷都したからだ. しかしこちらは中国の少数民族が韓半島に侵入して中国の植民地政権を設立したことを説明してくれることであって高句麗が韓国民族の国家というのを言うのではない.¥"

林奇幻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室長 ¥"高句麗が中国少数民族の一つだったし中原王朝の地方政権だと主張している. しかしホテワングビ(好太王碑) など金石文(金石文)にもよく現われるように高句麗は中原王朝とは違う独自の天下官を持った国だった.¥"

韓国人学者たちが主張する高句麗歴史文化の独自性までもこれらは認め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立場だ.

手珍奇沈陽東アジア文化研究員院長 ¥"高句麗が自らの独特の文化を持っていると言ったが私も同意する. しかし林先生が申し立てた陶磁器, 築城法, 四神図などはあいにくにも高句麗の独特の文化ではない. 皆中国の影響を受けたのだ.¥"

ソンホング沈陽東アジア文化研究員 ¥"高句麗は経済のみならず文化的な面でも皆中国の影響を受けた. 中国の影響で高句麗はノムアップと狩猟混合型の過渡期的な経済状態で農業経済に転換されたし高句麗はたとえ自主的な文化の特色を取り揃えていたが後期にのぼるまでたいてい(漢) 文化が中心だった.¥"

高句麗社問題に対する韓,中の間靴合意が終わったが全然変わったのがない中国学者たちの態度. これがただ学術的な問題に過ぎないのだろう?

金賢淑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委員 ¥"中国では実は韓国の政治が完全に独立されていると話しにくい. 政治的な名分が必要だと見れば歴史学界でそれを提供してくれる役目をたくさんするようになって一般論が一つが浮かぶようになれば他の異説は発表す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するそんな雰囲気だと言える.¥"

兆民統一研究員院長 ¥"現在中国の国境内で中世, あるいは古代に展開されたすべての歴史は中国の歴史という論理ではないか. それなら満洲地方で展開されたうちの韓民族(韓民族)の歴史がすぐ中国地方政権の歴史というそんな主張であることだ. これは厳密に言えば歴史捏造なのに今来て中国人たちがそんな主張をするようになった理由が何か. 中国も日本の植民史観, 韓国に対する侵略統治を正当化するための半島士官を批判して来たのないか? 古朝鮮, 高句麗, 渤海は我が民族のすぎ去った事と言うよりは我が民族の魂(魂)だ. 我が民族の魂を歪曲して脅して奪うと言うことは学問的な次元を越して中国の政治的な下心, 言い替えれば対韓半島(対韓半島) 戦略の核心ではないか? 私たちはここに関心を持たざるを得ない.¥"

中国北京の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 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作業衣核心と知られた東北公正(東北工程)を主観している所だ. 東北公正に対する韓国側の荒い反発にもかかわらず中国はこのプロジェクトを中断していない. 東北公正は単純に学術的な研究であるだけでこれを問題視することは韓国側の度が外れた民族主義だと攻撃する中国. しかしこのような主張は事実と違う.

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 ホームページにある東北公正(東北工程) 小開門にはこのプロジェクトの直接的な目標が国家の長期的な安定と社会秩序確立だと明らかにしておいた. 東北公正が単純に学問的な研究にだけ止むのではなく特定の政治的目標に主眼点を置いたプロジェクトなのを明示したのだ. 東北公正の組職図でも政治的な色は明らかに現われる. 中国共産党の最高序列に含まれている政治部委員と財政部部長が東北公正の顧問を引き受けている. また社会科学院の副院長黒竜江省部署期など中国政府の主要官職者たちが東北公正の要素要素に布陣されている.

それなら一体東北公正(東北工程)の研究内容は何か? 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 ホームページには 2003年から3回目にかけて修正された研究課題たちが説明されている. これら 56個課題の中半分に近い内容が中国東北地域の公正(工程)と領土問題に関するのだ. 東北公正が主要研究対象にしている東北地域は中国の催東北の方に位した遼寧省, 吉林省, 黒竜江省世智役を示す. 総面積が 78.9万平方キロメートルで南韓の三つの倍が越える東北三星(東北三省)には  私たちがよく間島だと呼ぶ地域が大部分含まれるのにこの地域はずいぶん前から韓,中の間に領土紛争を起こして来た.

朝鮮朝肅宗(肅宗) 38年の 1712年実録には中国の使臣が国境問題で訪問したという記録が出る. 当時両国である皆の出入りが禁止されていた間島地域が領土紛争の対象で登場したのだ. そして同じ年に白頭山定界碑(白頭山定界碑)が立てられた. 両国の間国境協定の出発点で評価を受けている白頭山定界碑. その内容は西の方では鴨緑江, 東では土們江を境界にするというのに以後で問題になることが東境界である土們江の位置だ.

土們江を東境界にする場合間島地域の大部分が朝鮮領土に含まれる. しかし中国では豆満江と土們江と言う(のは)地名が混在されて使われているしこれを根拠で中国は豆満江が境界だと主張した. 朝鮮と清は 1885年と 87年二度にかけて国境会談を持ったが結局合意に至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以後でも長い間朝鮮と清の紛争地域で残っていた間島. ところで 1909年当時韓半島を強点していた日本が清との協約を締結する. 間島を清に越して満洲の鉄道敷設権とタングァンチェグルグォンを得るという内容だった. 国境問題の当事者だった韓民族(韓民族)が完全に排除されたまま締結されたこの条約が果して正当だか?

去る 22日国境監事長でバン・ギムン韓国外交通商部長官は間島協約が無效と言う(のは)立場を明らかにした.  

バン・ギムン外交通商部長官 ¥"間島協約については法理的に無效だと思うことができる.¥"

間島協約が締結されてから 95年ぶりに初めて韓国政府が間島協約の問題点を公式的に申し立てたのだ.

朴ションヨン浦項工業大学教授 ¥"今の国際法的な問題で見ても国境問題の当事者が排除されたまま第三者が介入をして領土を中国に越したことは明らかな煮こんで来なさいと見られる. 特に国際法学者たちの主張によれば日本帝国主義勢力がアメリカに降伏する以前に締結したすべての協約は無效という内容があってその後の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やポツダムカイロ条約でもすべて無效だと認めるのにただこの間島協約の無效化が成り立た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とても重要なポイントなのでとにかく 1960年に中国と北朝鮮の間の国境協約が成り立ったと言っても韓,中の間の国境協約がまた再開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十分な理由があり中国も充分にこれが分かっているからいつかは間島問題が中国立場(入場)ではよほど頭痛い問題点で目立つ素地がある...¥"

実際に中国はこのような状況を一番憂慮している. 去る 8月韓国側との靴さんして合意当時にも中国は高句麗社と国境及び領土問題の連関性に一番関心を見せた. 韓,中の間の外交会談が盛んに進行中だった去年 8月20日付け ¥"もうタイム¥"地にも同じ内容が載せられた. 中国は韓国が統一された以後にも昔の高句麗領土の領有権を主張することに対して一番心配しているというのだ.

マークバインダーハーバード大学教授 ¥"私は中国の立場によほど水勢に置かれていると思う. 中国は東北地域三つの性が中国領土という立場に対する歴史的正当性に対して心配している. この地域は 1949年まで中国の中央政府が長期的に統治したことがなかった地域だ. 歴史的な根拠を提示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この領土に対する領有権を守り出すのが大変になる. 中国人たちはそれを恐れているのだ. 北東の方国境を維持して領土を保存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心配で不安に思っているのだ.¥"

中国が東北地域に対して不安に思っているもう一つの理由は吉林省辺の時に位した朝鮮族自治州だ. 韓半島の 1/4 面積に中国東北地方の国境を形成しているこの地域は朝鮮族が全体人口の 40%を占めている. 辺朝鮮族自治州の主要行政職は大部分これら朝鮮族が引き受けているしこの地域の政治, 経済, 文化の主導権も朝鮮族が持っている. 中国語とともに朝鮮言語を共用で使っている辺朝鮮族自治州では韓国の大衆文化も難しくないように接することができる. 中国開放以後韓国との交流が増えて韓流熱風まで重なりながら朝鮮族社会に韓国の文化が早く流入されているのだ.

辺に暮している大部分の朝鮮族家庭には韓国空中波放送を受信することができる衛星アンテナが走っている. 韓国放送受信は原則的には不法だがこれらは取り締まりを避けてほとんど毎日韓国 TV 放送を視聴する. ドラマとニュースなどほとんど大部分のプログラムが韓国と同時に放送される. 韓国との交流が活発になりながらお金を儲けようと韓国地を尋ねる朝鮮族たちも急速に増えている. 現在南韓に滞留している朝鮮族は 10万名位に推算されるのに人々を通じて中国の朝鮮族社会にも韓国の生活様式と文化が隅隅まで伝わっている.

こんな中中国では北脱出者問題が社会的論難になっている. 去年 9月 27日北京では 67人に達する北脱出者が中国公安に逮捕する事件まであった. これは北脱出者問題に対する中国政府の敏感な立場(入場)を見せてくれるのだ.

北朝鮮経済が搖れながら北脱出者の数はずっと増えているしこれらは中国東北地方の朝鮮族社会でスムオドンダ. そして中国はこのような状況が変更地域を心細くする要因だと思っている.  

宝令東北公正(東北工程) 専門家委員会 ¥"韓半島を取り囲んだ問題, 言わば北朝鮮の難民が絶えず中国に入って来ているのにこれは韓中関係を思う時中国としてもすごく困難な状況だ. このような状況たちがすぐ変更不安定の要素だ.¥"

朴ションヨン浦項工業大学教授 ¥"北脱出者たちが主にスムオドは所は延吉を含んだ朝鮮族居住地域だ. アメリカでも北脱出者問題と人権問題を含んで支援をしてくれると約束した状況で中国の変更すなわち東北地域が中国と北朝鮮の間の外交的問題だけではなくて中国と南韓の間の外交的問題だけもなくてアメリカも関与するようになって世界が関与するようになって人権問題が水面の上に浮び上がるようになる状況で滲むようになるから国際的問題でも飛話されることができるのだ.¥"

東北公正(東北工程)を主観している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ではこのような内容の報告書を作成したりした. 北脱出者問題が東北地域不安定の重要な要因でこれに対する対策を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特に中国が憂慮することは韓半島統一以後だ. 統一になれば北朝鮮と南韓朝鮮族社会の間の交流が拡がってこの地域全体が韓民族(韓民族)の影響圏に入ることができるからだ.

ユンフィタック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委員 ¥"そのようになれば韓半島北部と満洲の間の国境線という概念が曖昧になるのだ. 北には北脱出者と朝鮮族が似合うようになって南側には北朝鮮人と南韓人々が交わるようになってまた不法滞留している朝鮮族とも似合うようになる. そのようになれば韓半島と中国東北地域が韓民族の活動領域に固定される恐れがあるのだ. 中国東北地域に対する韓半島の影響力が大きくなるしかなくてまた朝鮮族に対する韓国人たちの影響力が大きくなるしかない. 中国朝鮮族たちはアイデンティティに対して会議を持つようになるはずで朝鮮族たちの離脱をもたらすことができるというのだ.¥"

去年 8月 25日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にはこのような内容の記事が載せられたりした. 韓半島が統一される場合現在中国東北地域に住んでいる朝鮮族たちが現代の国境を超えた統一韓国を支持することができるし中国はこのような状況を恐れているというのだ. 韓国国籍を取得しようと努力する朝鮮族たちを中国政府が厳しく処罰したことも韓国と朝鮮族たちの間の連結を憂慮真書という視覚が多い.

2003年 12月から中国は朝鮮族たちにいわゆる三観教育という思想教育も実施している. 三観というのは歴史観, 民族官, 祖国官三種類を示すことでその内容は朝鮮族たちに中国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強調するのだ.

朴泓も (延吉居住朝鮮族) ¥"中国が君たちの祖国だ. 南韓や北朝鮮が君逹の祖国ではない. 法的にこんなに規定されていることをはっきり分かりなさい. これが祖国官問題で, 民族官は君逹は中国の少数民族の中一つであるだけだ. 中国に住む 56個少数民族の中一つだ. 歴史観は君たちが持っている歴史は辺方に住む少数民族の歴史として中国歴史の中一つだ. こんな事を正確に樹立しなければならない.¥"

中国が推進している歴史歪曲作業も朝鮮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問題と連関されている. 高句麗と渤海を含めた東北地域の歴史を中国歴史に編入させることで韓半島と繋がれた朝鮮族の歴史的根を否定しようとするのだ.

ユンフィタック委員 ¥"(中国立場(入場)では) 歴史的に韓半島と中国東北地域の間の関連性を否定しなければならない必要があって中国ではこれに対する明らかな論理が必要なのだ. それでそんな論理を開発するとか捜し出すために歴史書たちを暴き出し始めたのだ. そうして見るから過去に我が民族の歴史と思って来た古朝鮮, 高句麗, 渤海という国家が中国民族が立てたことでこれらが皆中国の歴史という論理を立てるようになるのだ.¥"

朝鮮族と東北地域に対して中国がこんなに敏感な理由は何だろう. その背景には多民族国家(多民族国家)という中国の特殊な状況がある. 中国は全体人口の大部分を占める漢族(漢族) 以外にも 55個に達する少数民族が多民族国家を成している. これら少数民族は中国全体人口の 1/10度及ぶことができないがこれらの居住地域は中国領土の半分を越す. だからこれらの融化と団結が国家生存の絶対的な問題だ.

こんな状況で中国は建国初期から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通一的多民族国家論)を強調して来た. 中国内の少数民族は皆中国という一つの家庭を成す構成員で各民族間の関係は分離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内容の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 中国内各民族間の分裂を解消して国家を統合しようとする目的から出た理論だ.

ユンフィタック委員 ¥"漢族(漢族)と少数民族を区分しないで少なくとも中国という歴史的共同体中で決まった役目を一民族だと言ったらその民族がいずれにせよの間に皆完全な中国民族だと言うそんな前提下で中国内各民族の団結と中国人民の愛国心を鼓吹させるために意図的に派生させた中国の国家認識が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であることだ.¥"

実は中国は建国以後絶えず少数民族との紛争に苦しんで来た. その中でも一番葛藤のひどい地域は中国南西部に席を取っているチベットだ. 1950年中国の侵攻を受けたチベットは 1959年 3月首都ラッサで大規模反乱を起こした. しかしこの反乱は幾多の犠牲者を出したまま失敗で終わったしチベットは中国によって完全占領されてしまう.

1965年署長自治区という名前で中国の領土内に編入されたチベットは絶えず独立闘いをしたが中国はこれを無力(武力)で押えて来た. そしてこの過程で幾多のチベット人々が犠牲された. このような無力鎭圧を通じて中国はチベットに対する領有権を主張してチベットの独立運動を遮断させるためのもう一つの作業を進行させて来た. チベットの歴史を中国歴史に編入させるいわゆる西南公正(西南工程)がそれだ.  

西南公正(西南工程)を進行する所はいわゆる中国の装学研究中心(奨学研究中心)と知られている. 1980年代に設立された中国の代表的な研究機関であるこちらでは 1986年 130人余りの研究人力を投入して西南公正を始めた.

10年にわたった西南公正を通じて中国は 7世紀以後独自の株券と文化を維持して来たチベットの歴史を徹底的に否定して来た. チベットは中国という多民族国家の一部分で事故(史古) 以来で中国と分けられることができない中国の地方政権というのが西南公正の主張だ. このような西南公正(西南工程)の論理は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プロジェクトである東北公正(東北工程)の論理と似たり寄ったりだ.

キム・ヨンマン韓国歴史文化研究所所長 ¥"ダライラマを中心にして政治的求心体まであるから (チベットは) 中国とは違うムンミョングチェだ. ところで中国はアメリカの了解の下にチベット地域を占領した後にここをまたテアッギだないために数十年の間チベット地域の歴史を自国歴史に編入させる努力をして来た. また漢族(漢族) 人口をチベット地域に分派させてチベットの独立意志と名分を無くそうと思ったし, 東北地域よりもっと先に中国が長い間投資をしたと見られる.¥"

現在通用している中国貨幤に中華人民共和国の創設者である毛沢東と一緒に少数民族の顔を入れるほどに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を強調して来た中国. 少数民族統合と言う(のは)目的のために多様な政策を動員して来た.

規模が大きいとか離脱動きが多い少数民族の場合居住地域に漢族(漢族)らを大挙流入させて漢族たちとの童話をはかったり経済的に立ち後れされた地域には大規模支援も行われている. 特に中国が最近になって一番関心を持っている少数民族がすぐ東北地域の朝鮮族だ.

朴ションヨン教授 ¥"朝鮮族問題が目立つ場合中国内の少数民族たちが自分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に対して思うようになるはずでそれを押えつけるとか解決することができる方法は中国人としての民族官, 中国人としての歴史観, 中国人としての国家観をどんなに再確立しようかこれを思うようになるはずで絶えず中国という歴史, 文化, 政治のフレーム中で少数民族を閉じこめて少数民族を説明しようとする要因にならアンウルが...¥"

マークバインダーハーバード大学教授 ¥"実は中国に住んでいる朝鮮族は (中国立場(入場)で) 大きい問題ではないかも知れない. しかし南西の方や北西の方で暮している他の少数民族たちの場合ずっと独立を要求して独立の歴史的正当性を捜すために努力している. ¥"私たちご先祖は中国の一部ではなかったがどうして私たちは中国に属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と言う質問をするようになるのだ. 論旨を確張すれば中国に住んでいる朝鮮族たちが ¥"私たちは昔の高句麗地に住んでいるし高句麗は中国の一部ではなかったが私たちはどうして中国に属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と質問することもできるのだ.¥"

このような背景の下で中国人チベット歴史を編入させる西南公正(西南工程)に引き続き東北地域問題を扱う東北公正(東北工程)を始めた. 去年 7月代表的な高句麗遺跡集結誌である家(集安) 一帯を世界文化遺産で登録したこともこのような東北公正の一環だ. 家が世界文化遺産に指定された以後中国は多くの言論媒体を通じて高句麗が中国歴史と言う(のは)主張を本格化したし観光客幼稚にも熱をあげている. 高句麗の最前性器を成した光ヶ土豪太王(広開土好太王)と長寿太王(長寿太王)の跡もまるで中国歴史の日附印のように広報している.

世界文化遺産登載が確定される頃高句麗の初首都だった桓因(桓仁)では大規模の祭りまで開かれた. 祭りの大部分は韓民族の伝統文化公演で満たされたが中国側の主張は一様だ. 高句麗と渤海は中国東北地域に存在した地方政権の一つであり韓半島とは何らの関連がないというのだ.

世界文化遺産登載以後家と桓因にはおびただしい数字の観光客が寄り集まっている. 中国人はもちろん外国人観光客枝ますます増える成り行きだ.

東北地域の安定と朝鮮族アイデンティティ抹殺の方便で始まった東北公正. これによる高句麗歴史の歪曲は現在までも続いている状況だ.

現在家と桓因では世界文化遺産登載を記念するという名目で各種パンフレットを販売している. 高句麗の代表的な遺跡な張君寵(将軍塚)とホテワングビ(好太王碑) など我が民族歴史の大事な遺産たちが漏れ無く紹介されているパンフレットたちだ. 最近には記念切手集まで登場した. 高句麗と渤海など東北地域に対する歴史に関する諸本も溢れ出ている.

満洲地域を支配した韓半島の歴史を皆中国のだから主張する諸本... ところでここは中国東北地域だけでなく韓半島にある平壌の高句麗遺跡たちまでも紹介されている. これは何を意味するか.

高句麗が中国歴史と主張した光明日報の記事. ここには韓半島の北部地方枝も中国の支配を受けたという内容が含まれている. 中国が東北地域と韓半島北部地方に県道だね(玄都郡)とナクラン君(楽浪郡) などの統治器具を置いたし高句麗の首都はこれら地域を脱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のだ.

このような理由で中国は高句麗の領土だった韓半島北部までも中国の古代領土だと主張している.

ワングソブ北京大学教授 ¥"平壌に遷都した当時その地は中国古代領土の一部だと言える. 何故ならばその所は中国の少数民族と同時に地方政権である高句麗領土だからだ. その地方を占領する前には漢四郡(漢四郡), ナクラン君(楽浪郡) みたいなことがあって中国が直接統治している状況だった. ナクラン君は中国の領土だった.¥" [オムギンが株;  実は中国歴史書である詐欺(史記), 毒蛇部屋ここです(読史方輿紀要) などによればナクラン君(楽浪郡)の位置は西腰下(西遼河) 領主(永州)にあったと伝える. ナクラン君が韓半島の平安道に設置されたという理論はIkeuchiHiroshi[池内宏]が歪曲した捏造に過ぎない.]

平壌を含めた韓半島北部と中国の間の歴史的連関性に対する主張. これと関して北朝鮮に対する中国の最近動きを注目する必要がある.

北朝鮮核開発問題が国際的な関心事に浮び上がった状況で中国北京では去年 6月に第3次 6者会談が開かれた. ずいぶん前から北朝鮮と緊密な関係を結んで来た中国は 6者会談過程でも一番積極的な役目をして来た. これに対して中国の立てる名分は韓半島の平和維持だ.

中国国際問題研究所所属濃いリンパー博士 ¥"中国の韓半島に対する一番基本的な政策は韓半島の平和と安定を守護するのだ. 韓半島の平和と安定を守護するという意味は中国は韓半島内の軍事衝突, 戦争が起こることを反対して甚だしくは内乱が起きることも反対する. 例えば外部の圧力や他の原因によって北朝鮮内部に混乱が発生することを願わないという話だ.¥"

それなら韓半島の平和が中国に持つ意味は何だろう. 中国が北朝鮮核開発問題に対して積極的に出ている背景に対して多い専門家たちはこれが中国自分の安定と係わる問題だ大門だと分析する.

金日英成均館大学教授 ¥"北朝鮮がもし核兵器を開発したら... もちろん今も少量の核兵器を持っていると伝わるが,  核兵器開発以後冒険的な行動をした時はアメリカを含めた西欧勢力の強大国たちが介入をして来るはずでそのようになれば韓半島の安定が割れて少しの混乱が発生するのだ. これを中国は望まないのだ.¥"

中国が望む韓半島の安定. それは現在のような分断状態が持続するのだ. 特に中国は自国の国境地帯と近接して一種の緩衝地帯役目をする北朝鮮にどんな変化が生ずることも願わない. それがすなわち自分たちの安保と直結されると思うからだ.

進封菌北京大学校教授 ¥"現在は韓半島の安保が中国に一番重要だ. 非核化, 地域安保などは中国の安保と東北アジア安保にすごく重要だ. 韓半島の平和, 安定, 発展は中国の安保と直結される大門に中国は非核化安定を主張するのだ. そうしてこそ中国の経済, 現代化建設のための安定的な外部環境が確保されるからだ.¥"

ユンフィタック委員 ¥"もし韓半島統一と係わってアメリカが主導権を持ってアメリカが恣意的に東北アジアの秩序を再編する場合に例えば (南韓主導的な統一が成り立ったら) アメリカ軍這わ鴨緑江や二だけ川端に設置される可能性もある. このようになったら中国は鼻の前に脅威勢力を身近に置くようになることで中国の軍事安保的な立場で困難な状況に処す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緩衝地帯としての北朝鮮政権が急に消えると思ったら中国としては東北アジア主導権掌握の足場を喪失するようになるのだ.¥"

それなら中国は北朝鮮の現体制に変化が起きる場合どんなに対応しようか. アメリカの学者スチーブンモショは自分の著書 ¥"ヘゲモン¥"から ¥"北朝鮮の金正日政権が崩壊すれば中国は軍隊を北朝鮮で派遣して傀儡政権を樹立するとか自国の条件によって韓半島統一を調整する手段で利用しようと思うでしょう.¥"と診断した.

ところで最近インターネットではこれに似ている文が拡散しながら注目を引いている. 北京大学で勉強した韓国人留学生が書いたというこの文には北朝鮮に対する中国の計画が具体的に描写されている. 中国の政治学教授から入ったという文の内容はまさに衝撃的だ. 中国はこれから 10年内に北朝鮮政権が崩壊すると予想して北朝鮮を中国の地方政権で作って韓半島北部地域を中国の領土にしようと思うというのだが... 果してこのようなシナリオが可能だか.

1948年大韓民国政府樹立とともに公表された大韓民国建国憲法. ここには大韓民国の領土に対する条項が明示されている. 大韓民国の領土はすぐ韓半島とその付属島嶼にするというのだ. このような内容は 50年以上変わりがなかったし私たちは北朝鮮政権が崩壊される場合当然大韓民国で北朝鮮領土を渡されるようになることと思って来た.

しかし国際社会での現実的な状況は韓国の立場とは全然違う. UNで決意した文書たちが保管されている UN記録保存所. 大韓民国建国当時 UNが韓半島に関する問題をどんなに決意したのか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文書もここにある.  UN総会決意第195条がそれだ. しかしこの条項に見れば大韓民国は北朝鮮の変化に対してどんな備えや権利を主張しにくい. 大韓民国は UN 委員団の活動が可能だった 3.8線以南地域に対してだけ有效な統治と管轄権を持つ合法的な政府だと明示されているからだ.

金日英教授 ¥"本来 UNは南,北朝鮮の人口比例を思って南,北朝鮮総選挙をすることを決意したがそれが北朝鮮では実現しなかったというのだ. それで南韓だけの単独選挙が実施されることを確認して南韓政府をどんなに認めたかすれば UN 韓国臨時委員団, 言い換えれば UNの監視の下に選挙が受けられた唯一の合法政府だ. だから韓半島全体の合法政府ではなく UN 監視の下に選挙が受けられた韓半島南部地域の唯一の合法政府だと承認をするようになるのだ.¥"

韓半島に対する UNの立場(入場)を端的に見せてくれる例が朝鮮戦争当時だ. 1950年 11月 UN郡が平壌を占領した時に韓国の招待大統領である李承晩は平壌を訪問した. ところで当時状況を記録した国会ソックギロックは平壌訪問当時李承晩は大統領資格ではなかったと書いている. UNは 3.8線以北地域を大韓民国の領土で認めないのだ.

その上にこんな状況は以後国際社会の認識をもっと固めて置いた. 北朝鮮はもう 100余個以上の国家と修交を結んでいるし 1991年には南韓と同時に UNに加入した. 国際政治舞台で南韓と北朝鮮は連関性がない独自の国で認められているのだ.

金日英教授 ¥"こんな状況がこれから現在南,北朝鮮関係や北朝鮮政権の急変事態, 北朝鮮政権の崩壊のような事が起こった時にどんなに影響を与えようかと言う点だ. もし私たちのように国内法論理で大韓民国憲法を持って南韓の北朝鮮領土に対する影響力行事の正当性を主張するようになれば北朝鮮政権が崩壊される場合自動的に南韓の憲法が北朝鮮地域に拡張されるようになるのだ. それでは北朝鮮は修復地域になるのだ. 私たちが当然北朝鮮領土を掌握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することができる一方に国際法的な論理で計算して見れば北朝鮮は厳然に南韓とは違う別個の主権国家だったししたがって北朝鮮金正日政権が急に崩壊される事態が起ると言っても南韓が優先的な影響力行事を主張する理由があるのか. そんな時に一番可能性が高いことはアメリカが中心になって中国が参加してこんな式の国際的な介入, UNを通じる介入こんなのが多分一番可能性が高くないが考えをして見る.¥"

こんな状況なら現在北朝鮮と一番密接な関係を結んでいる中国が有事時に北朝鮮に対する影響力を主張することができる可能性も十分だ. 最近中国が北朝鮮との接境地帯に警察など警備(経費)力当てた軍兵力を配置したことはそんな視覚を念頭に置いた措置という解釈も多い.  

兆民統一研究員委員 ¥"警察兵力で充分に北脱出者たちを取り締まることができないと思ったら軍兵力で転換させたのに対しては中国がもうちょっと積極的に韓半島問題に対する介入の意志を見せてくれる兆候ではないかこんなに考えられる.¥"

も中国は去年 6月北朝鮮と国境協力協定を締結した. その内容は公開されなかったが有事時中国が北朝鮮内部に対する介入ができるきっかけにならないのかという観測だ. こんな脈絡で現在中国が推進している東北公正(東北工程)は中国が北朝鮮地域に介入することができる歴史的名分になることもできる.

中国東北地域で始まった高句麗の歴史は韓半島北部につながったし北朝鮮はこのような高句麗の歴史を受け継いだ国家だと言って来た. だから高句麗が中国の歴史なら北朝鮮地域も中国の領土と言う(のは)主張も可能になるのだ.

韓国の荒い反発にもかかわらず東北公正を持続的に推進して来た中国. その本音はすぐここにあるのだ.  

兆民統一研究員委員 ¥"中国は北朝鮮の体制変化とか金正日政権崩壊など多様な政治的現象が起きることを予想して有事時に備えた多様な方策をもう用意しておいているのではないか. それがちょうど東北公正(東北工程)で現われて東北公正はまさに彼らが中国の地方政権だと強調する高句麗の活動領域が大同江または漢江以北まであったのないのか. そうなのが北朝鮮と言う(のは)国がもし変化がある時彼らは歴史的縁故権を主張することができる論理を作っていると思うことができる.¥"

金日英成均館大学教授 ¥"中国の北朝鮮を含んだ韓半島に対する大きい政策の一環で推進されている重要な部分作業が東北公正(東北工程)だ. 韓半島が統一された後にも間島地方を中国がずっと管轄するための布石もあって北朝鮮が崩壊された以後に北朝鮮地域に対する優先的な影響圏をどんなに主張しようかこんな計算高あるから韓半島に対する大きい政策が部分的な方向に入っていることがすぐ東北公正だ.¥"

しかし東北公正(東北工程)に対するうちの社会と政治権の認識はいまだに高句麗社(高句麗史) 問題にだけエネルギーを消耗している. 東北公正の目標とそこに対する結果を緻密に分析した結果ではなく暫定的な対応と一時的な対策の外には出すことができないのだ.

朴ションヨン浦項工業大学教授 ¥"韓国は未来に対する戦略不在が深刻だ. 現在私たちが何をしているしこれから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だしどんな方法を取ら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なのかに対して戦略がないから有事時に瞬間的な対応に止めるはずでその以上の賢い対策は用意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のだ. 必ず他人が先に始めて私たちがそこに後に従って対応ばかりするのではなく今状況で私たちが強大国たちの間で我が民族の繁栄と韓半島を守り出すためにどうすれば良いだろうのか戦略が必要な時点だ.¥"

金賢淑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委員 ¥"が問題がどうせ長期的に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だから私たちも長いホホブを持って準備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今こんな事が発生したと言ってとてもおかっぱ的な政策を掲げるが興奮するとかまたは世論撫摩用政策のみを強調したら再びこんな問題がずっと起き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したがって中長期的な対策を用意して長くずっと行く.....¥"

キム・ヨンマン博士 ¥"私たちに中国と言う(のは)存在は生存問題と連関を作って眺めた時にいつも緊張状態を維持して警戒しなければならない存在だ. 中国が東北公正を推進していたら私たちも彼に劣らず中国を徹底的に研究しなければならない. 中国が過去を研究して未来を備えたら私たちも同じく未来のための研究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

中国が推進している東北公正(東北工程)は韓半島と中国の間の最大外交争点になっている. 1992年修交以後持続的に協力して来た韓中関係が搖れているのだ. こんな状況で韓国は東北公正と中国に対してどんな戦略を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か. それは単純な歴史問題ではなく韓民族(韓民族)の生存と直結された問題だ. 東北公正には中国の利益と未来に対する緻密な計算が存在してそれは韓半島の未来を脅威することができるか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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