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7년, AD383년.
七年 正月 行水羊祭 光臣伊伐飡 白花稟主
7년(AD383년) 1월, 水羊(수양, 癸未, AD383년)祭(제)를 행하였다. 光臣(광신)을 伊伐飡(이벌찬)으로, 白花(백화)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三月 夫余流民三十戶又來降 夫余與倭相通 年年受其民 散置都鄙 倭臣熊彦美而善辯 與阿尒相通 多聽其言 故國人異反 或歸于我 亦歸于麗 休禮太后生長昕子勿昕 始立戶口典 禁民子母相婚
3월, 夫余(부여)의 流民(유민) 30호가 또 來降(래항)하였다. 夫余(부여)와 倭(왜)가 相通(상통)하니, 해마다 그 백성들을 받아서, 도읍과 시골에 散置(산치)시켰다. 倭(왜)의 신하 熊彦(웅언)은 잘 생겼고 말을 잘 하여, 阿尒(아이)와 相通(상통)하니, 그의 말을 많이 따랐다. 그래서 國人(국인)들은 異反(이반)하여, 혹은 우리에게, 혹은 고구려에게 귀속하였다. 休禮太后(휴례태후)는 長昕(장흔)의 아들 勿昕(물흔)을 낳았다. 戶口典(호구전)을 처음 세웠다. 백성들이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혼인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倭臣熊彦美而善辯 與阿尒相通 多聽其言
= 倭(왜)의 신하 熊彦(웅언)은 잘 생겼고 말을 잘 하여, 阿尒(아이)와 相通(상통)하니, 그의 말을 많이 따랐다.
*千熊長彦(천웅장언)은 잘 생긴 사람이였죠.
위의 내물기에서는 熊彦(웅언)으로 나옵니다. 383년에 활약하던 인물입니다.
이 383년이란 시점이 일본서기 기년설정에 기준점이 됩니다.
美는 여자에게 쓰일 때는 이쁘다.라고 해석하지만, 남자가 美라고 적혀 있으면, “이쁘다” 라고 해석하기는 낯간지러운 표현이므로,
美= handsome= 잘 생겼다 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말도 잘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阿尒(아이)와 相通(상통)해 버렸으니, 요즘 말하는 불륜관계였죠.
阿尒(아이)는 신라인 白發(백발)의 딸로서, 근구수왕의 처입니다. 그러니, 침류왕의 어머니입니다.
348년, 10월, 백제와 신라가 다시 화친을 맺자, 다음해 349년, 3월, 근구수가 신라까지 찾아 와, 鮑祠(포사)에서 阿尒(아이)와 결혼식을 합니다.
380년대가 되자, 백제는 왜의 내정간섭을 받기 시작하죠.
예나 지금이나 외세의 입김이 들어 오면, 내정간섭이라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입니다.
*千熊長彦(천웅장언)은 백제와 왜 사이를 오가며 사신 역할을 하던 사람으로, 383년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둡니다.
奈勿大聖神帝紀(ネムルデソングシンゼギ) 7年, AD383年.
七年 正月 行水羊祭 光臣伊伐〓 白花稟主
7年(AD383年) 1月, 水羊(修養, 癸未, AD383年)祭(私の)を行った. 光臣(狂信)を 伊伐〓(イボルチァン)で, 白花(百貨)を 稟主(稟奏)にした.
三月 夫余流民三十戸又来降 夫余与倭相通 年年受其民 散置都鄙 倭臣熊彦美而善弁 与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