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근래에 한국의 국영방송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國內外 많은 권위있는 학자들의 檢證과 考證을 거쳤기 때문에 信賴할만한 내용입니다.

재미를 위하여 방송 캡쳐와 함께 내용을 소개합니다.

 

近来に韓国の国営放送で放送した内容です.

国内外 多くの権威ある学者たちの 検証と 考証を経ったから 信頼割ほどの内容です.

楽しさのために放送キャプチャとともに内容を紹介します.

 

 

 

 

5세기 後半에 고구려는 반도의 북부에서 반도의 남쪽으로 대대적인 南下政策을  실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백제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5世紀 後半に高句麗は半島の北部から半島の南に大大的な 南下政策を実施したが, この過程で百済は多くの困難に逢着します.

 

 

 

 

 

 

고구려의 공격에 위협을 느낀 백제의 蓋鹵王은 AD461년에 아들 昆支와 임신한 昆支의 妻를 列島로 피신시킵니다.

이것은 한국 역사서의 기록인데, 일본쪽의 기록은 약간 다릅니다. 日本書記에 의하면, 昆支는 蓋鹵王의 동생인데, 王은 임신한 자신의 妻를 동생에게 맏겨 열도로 피신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의 기록이 정확한지는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高句麗の攻撃に脅威を感じた百済の 蓋鹵王は AD461年に息子 昆支と姙娠した 昆支の 妻を 列島で身を避けらせます.

これは韓国歴史書の記録なのに, 日本側の記録はちょっと違います. 日本書記によれば, 昆支は 蓋鹵王の弟なのに, 王は姙娠した自分の 妻を弟と一緒に列島で身を避けらせたと記録されています

どっちの記録が正確かは後によく見ます.

 

 

 

 

 

 

 

 

여인은 列島로 가는 도중에 産氣를 느껴 “기카리시마”라고 하는 섬에서 아이를 出産하는데 후에 그가 백제의 武寧王이 됩니다.

현재 “기카리시마”에 거주하는 사쿠모토 이와오氏가 “한국에서 건너왔는데 지나가다가 産氣가 있어서 여기에 배를 세우고 동굴속에서 出産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女人は 列島で行く途中に 産気を感じて “がカリシマ”と言う島で子供を 出産するのに後に彼が百済の 武寧王になります.

現在 “がカリシマ”に居住する日本人住民 Sakumoto Iwao氏が “韓国から渡って来たが過ぎ去っている途中 産気があってここに船舶を止めて洞窟の中で 出産したと聞きました.”と証言しています.

 

 

 

 

 

 

 

 

그 섬에는 아직도 이런 표시가 남아 있습니다.

 

その島にはまだこんな表示が残っています.

 

 

 

 

 

 

 

 

 

그로부터 14년 뒤, AD475 年에 백제의 漢成이 고구려에게 함락되고 백제의 蓋鹵王과 왕비, 왕자 등이 모두 비참한 죽음을 당함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몰살되는 참변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는 列島로 간 武寧王 밖에 없습니다.

 

それから 14年後, AD475 年に百済の 漢成が高句麗に陷落されて百済の 蓋鹵王と王妃, 王子などが皆惨めな死を迎えます.

親と兄弟たちが皆皆殺しされる惨変から生き残った者は 列島で生まれた 武寧王 しかないです.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인 AD478 年에 중국의 宋나라 王에게 倭國으로부터 書信이 하나 도착합니다.

發信者는 <倭王武>으로 되어 있습니다.

 

ところが, それから 3年後の AD478 年に中国の 宋国 王に 倭国から 書信が一つ到着します.

発信者は <倭王武>になっています.

 

 

 

 

 

 

 

 

 

이 書信을 한국의 권위있는 역사학자가 엄정하고 조심스럽게 해석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この 書信を韓国の権威ある歴史学者が厳正で控え目に解釈します.

その内容が何かは私も分からないです.

 

 

 

 

 

 

 

 

 

 

잠시후 그가 역시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다 천천히 글을 읽은 소감을 밝힙니다.

그의 소감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문장을 제대로 읽으면 ...... 정당하게 읽었다고 한다면.... 이건 백제 태자에요. 475년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는걸 보면 倭國땅에서 태어나 15세쯤 된 태자가 아버지가 죽은걸 보고 결연하게 일어나 중국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참 피눈물나는 上表文입니다.”

 

しばらくして彼がやっぱり控え目に言葉を惜しむゆっくり文を読んだ所感を明らかにします.

彼の所感を助詞一つまでそのまま移して見れば次の通りです.

”こんな文章をまともに読めば ...... 正当に読んだと言ったら.... これは百済太子です. 475年にお父さんが死んだと言うのを見れば 倭国地で生まれて 15歳頃なった太子がお父さんが死んだのを見て決然としているように起きて中国に助けてくれと言って訴える.... 本当に血涙出る 上表文です.”

 

 

 

 

 

 

 

 

 

 

그럼, 일본의 역사학계는 倭의 武王을 어떻게 해석할까?

讚, 珍, 濟, 興, 武의 倭 5王이 천황 계보의 왕들과 일치한다는 것이 일본 역사학계의 입장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천황을 가르키는 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それでは, 日本の歴史学界は 倭の 武王をどんなに解釈しようか?

讃, 珍, 済, 興, 武の 倭 5王が天皇系譜の王たちと一致するということが日本歴史学界の立場だが, 具体的にどの天皇を示すかは明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그럼, 倭武王이 송나라 왕에게 보냈다는 上表文에는 도데체 어떤 내용이 실려있을까?

나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それでは, 倭武王が宋の国王に送ったという 上表文にはドデチェどんな内容が載せられていようか?

私はこれを個人的にインターネットで検索して見たら次のような内容です.

 

 

 

 

 

 

 

(1)   

 <順帝><昇明>二年, 遣使上表曰
“封國偏遠, 作藩于外, 自昔祖 , 躬 甲胄, 跋涉山川, 不遑寧處.

東征<毛人>五十五國, 西服衆夷六十六國, 渡平海北九十五國, 王道融泰, 廓土遐畿, 累葉朝宗, 不愆于歲.

(2)
臣雖下愚, 胤先緖, 驅率所統, 歸崇天極, 道逕<百濟>, 裝治船舫, 而<句驪>無道, 圖欲見呑, 掠抄邊 , 虔劉不已, 每致稽滯, 以失良風. 雖曰進路, 或通或不.

 

(3)
臣亡考<濟>實忿寇 , 壅塞天路, 控弦百萬, 義聲感激, 方欲大擧, 奄喪父兄, 使垂成之功, 不獲
居在諒闇, 不動兵甲, 是以偃息未捷. 至今欲練甲治兵, 申父兄之志, 義士虎賁, 文武效功, 白刃交前, 亦所不顧.

 

(4)
若以帝德覆載,  此强敵, 克靖方難, 無替前功. 竊自假開府儀同三司, 其餘咸各假授,

 

 

 

 

 

 

(1)은 첫머리의 인삿말에 해당하는 듯하여 생략합니다.

 

(1)は書き起こしのあいさつの言葉にあたるようで略します.

 

 

(2)역시 예의를 갖춘 인삿말인데, 갑자기 중국 송나라 왕에게 편지를 쓰기가 민망하여 그동안 고구려가 중국으로 가는 海路를 막았기 때문에 찿아뵙지 못했다고 하는 듯 합니다.

자세히 번역해보면,

”臣이 비록 어리석으나, 先祖의 緖業을 이어받아, (烈島의 舊세력들을) 휘몰아 統一하여 天極을 숭상하는 곳(=중국 황제가 있는 곳을 말하는 듯 함)으로 돌아 가고져 하나, 百濟에게 (허용된) 海路는 좁고, 船舶을 다스리고져 하나 高句麗가 無道하여, 우리를 삼켜려는 意圖로 우리의 邊方을 항시 抄掠하여, 굳게 이기려고 함이 끝나지 아니하니 늘 良風을 잃어서 매번 헤아림이 遲滯됨에 이르고, 비록 “나갈 길이 있다.”라고 말하나 때로는 通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2)も礼儀を取り揃えたあいさつの言葉なのに, 急に中国宋の国王に手紙を書くのがきまり悪くてその間高句麗が中国に行く 海路を阻んだからアブェブジできなかったと言うようです.

詳らかに翻訳して見れば,

”臣がたとえ愚かだが, 先祖の 緒業を受け継いで, (烈島の 旧勢力たちを) 駆り立てて 統一して 天極を崇尚する所(=中国皇帝がいる所を言うようにハム)に帰ろうと一つ, 百済に (許容された) 海路は狭くて, 船舶を治めようと一つ 高句麗が 無道して, 私たちをサムキョリョは 意図で私たちの 辺方を常時 抄掠して, 固く勝とうと思うことが終わらないから常に 良風を失って毎度推し量ることが 遅滞になるに至って, たとえ “出る道がある.”と言うが時には 通したり時には通じなかったりしました.”

 

 

 

 

(3)을 해석해보면,

”臣의 죽은 아비 <濟>가 중국 皇帝에게로 나가는 길(=天路)을 막는 도적에게 분노해서 그 열매를 맺고져 百萬의 활을 당기자 義理에 찬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가 크게 일어났으나, 갑자기 父와 兄의 喪을 당하여 드리워 이루려던 功을 움켜쥐지 못하였습니다.
臣은 諒闇(=임금이 父母喪 때 거처하는 곳)에 있어 兵甲을 움직이지 못하여서 그들을 싸워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甲士를 訓練하고, 병사를 다스렸기에 父兄의 뜻을 펼치고져 義士들과 虎賁들이 文王과 武王의 功을 본받고져 흰 칼날 앞에 交流하오니, 역시 뒤돌아볼 바가 없는 것입니다.

(3)を解釈して見れば,

”臣の死んだ父 <済>が中国 皇帝に出る途中(=天路)を阻む盗賊に怒ってその実を結ぼうと 百万の弓を繰り上げると 義理におかず音に感激して今こそ軍事が大きく起きたが, 急に 父と 兄の 喪にあって垂れて成そうとしていた 功をしっかり握りし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臣は 諒闇(=賃金が 父母喪 の時住む所)にあって 兵甲を動かすことができなくて彼らを争って勝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しかし今に至っては 甲士を 訓練と, 兵士を治めたから 父兄の意味を広げようと 義士らと 虎賁らが 文王と 武王の 功を模範としようと白い刃の前に 交流するから, やっぱり振り返えるところがないのです.

 

 

 

 

 

 


(4)는 생략하겠습니다.

 

(4)は略します.

 

 

 

 

 

해석은 다른 전문가들이 번역한 내용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解釈は他の専門家たちが翻訳した内容をたくさん参照しました.

 

 

 

 

 

과연 句句節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이 드러나 있고,

아버지와 형제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내용을 보면 AD478 년 무렵에 이런 글을 쓸 사람은 武寧王 밖에 없는듯 보입니다.

또한 하필 왜 부모가 죽은 3년 뒤에 이런 편지를 썼을까를 생각해 보면, 일본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모의 喪은 3년이고, 3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린 15살의 태자가 3년동안 얼마나 죽은 부모, 형제들의 복수심에 불탔는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果して 句句節節 高句麗に対する敵がい心が現われていて,

お父さんと兄弟たちが急に死んだという内容を見れば AD478 年頃にこんな文を書く人は 武寧王 しかないように見えます.

またよりによってどうして親が死んだ 3年後にこんな手紙をソッウルカを考えて見れば, 日本人たち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が韓国人たち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す.

韓国では伝統的に親の 喪は 3年で, 3年の間何もしないです.

幼い 15歳の太子が 3年間いくら死んだ親, 兄弟たちの復讐心に燃えたかは充分に共感します.

 

 

 

 

 

 

 

 

따라서, 武王 = 武寧王 이라고 결론내리는 것도 상당히 그럴듯 합니다.

일본인들의 반론을 요청합니다.

 

したがって, 武王 = 武寧王 と結論内里はのもよほどもっともらしいです.

日本人たちの反論を要請します.

 

 

 


古代日本에 관한 새로운 진실(古代日本に関する新しい真実)

근래에 한국의 국영방송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國內外 많은 권위있는 학자들의 檢證과 考證을 거쳤기 때문에 信賴할만한 내용입니다.

재미를 위하여 방송 캡쳐와 함께 내용을 소개합니다.

 

近来に韓国の国営放送で放送した内容です.

国内外 多くの権威ある学者たちの 検証と 考証を経ったから 信頼割ほどの内容です.

楽しさのために放送キャプチャとともに内容を紹介します.

 

 

 

 

5세기 後半에 고구려는 반도의 북부에서 반도의 남쪽으로 대대적인 南下政策을  실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백제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5世紀 後半に高句麗は半島の北部から半島の南に大大的な 南下政策を実施したが, この過程で百済は多くの困難に逢着します.

 

 

 

 

 

 

고구려의 공격에 위협을 느낀 백제의 蓋鹵王은 AD461년에 아들 昆支와 임신한 昆支의 妻를 列島로 피신시킵니다.

이것은 한국 역사서의 기록인데, 일본쪽의 기록은 약간 다릅니다. 日本書記에 의하면, 昆支는 蓋鹵王의 동생인데, 王은 임신한 자신의 妻를 동생에게 맏겨 열도로 피신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의 기록이 정확한지는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高句麗の攻撃に脅威を感じた百済の 蓋鹵王は AD461年に息子 昆支と姙娠した 昆支の 妻を 列島で身を避けらせます.

これは韓国歴史書の記録なのに, 日本側の記録はちょっと違います. 日本書記によれば, 昆支は 蓋鹵王の弟なのに, 王は姙娠した自分の 妻を弟と一緒に列島で身を避けらせたと記録されています

どっちの記録が正確かは後によく見ます.

 

 

 

 

 

 

 

 

여인은 列島로 가는 도중에 産氣를 느껴 "기카리시마"라고 하는 섬에서 아이를 出産하는데 후에 그가 백제의 武寧王이 됩니다.

현재 "기카리시마"에 거주하는 사쿠모토 이와오氏가 "한국에서 건너왔는데 지나가다가 産氣가 있어서 여기에 배를 세우고 동굴속에서 出産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女人は 列島で行く途中に 産気を感じて "がカリシマ"と言う島で子供を 出産するのに後に彼が百済の 武寧王になります.

現在 "がカリシマ"に居住する日本人住民 Sakumoto Iwao氏が "韓国から渡って来たが過ぎ去っている途中 産気があってここに船舶を止めて洞窟の中で 出産したと聞きました."と証言しています.

 

 

 

 

 

 

 

 

그 섬에는 아직도 이런 표시가 남아 있습니다.

 

その島にはまだこんな表示が残っています.

 

 

 

 

 

 

 

 

 

그로부터 14년 뒤, AD475 年에 백제의 漢成이 고구려에게 함락되고 백제의 蓋鹵王과 왕비, 왕자 등이 모두 비참한 죽음을 당함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몰살되는 참변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는 列島로 간 武寧王 밖에 없습니다.

 

それから 14年後, AD475 年に百済の 漢成が高句麗に陷落されて百済の 蓋鹵王と王妃, 王子などが皆惨めな死を迎えます.

親と兄弟たちが皆皆殺しされる惨変から生き残った者は 列島で生まれた 武寧王 しかないです.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인 AD478 年에 중국의 宋나라 王에게 倭國으로부터 書信이 하나 도착합니다.

發信者는 <倭王武>으로 되어 있습니다.

 

ところが, それから 3年後の AD478 年に中国の 宋国 王に 倭国から 書信が一つ到着します.

発信者は <倭王武>になっています.

 

 

 

 

 

 

 

 

 

이 書信을 한국의 권위있는 역사학자가 엄정하고 조심스럽게 해석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この 書信を韓国の権威ある歴史学者が厳正で控え目に解釈します.

その内容が何かは私も分からないです.

 

 

 

 

 

 

 

 

 

 

잠시후 그가 역시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다 천천히 글을 읽은 소감을 밝힙니다.

그의 소감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문장을 제대로 읽으면 ...... 정당하게 읽었다고 한다면.... 이건 백제 태자에요. 475년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는걸 보면 倭國땅에서 태어나 15세쯤 된 태자가 아버지가 죽은걸 보고 결연하게 일어나 중국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참 피눈물나는 上表文입니다."

 

しばらくして彼がやっぱり控え目に言葉を惜しむゆっくり文を読んだ所感を明らかにします.

彼の所感を助詞一つまでそのまま移して見れば次の通りです.

"こんな文章をまともに読めば ...... 正当に読んだと言ったら.... これは百済太子です. 475年にお父さんが死んだと言うのを見れば 倭国地で生まれて 15歳頃なった太子がお父さんが死んだのを見て決然としているように起きて中国に助けてくれと言って訴える.... 本当に血涙出る 上表文です."

 

 

 

 

 

 

 

 

 

 

그럼, 일본의 역사학계는 倭의 武王을 어떻게 해석할까?

讚, 珍, 濟, 興, 武의 倭 5王이 천황 계보의 왕들과 일치한다는 것이 일본 역사학계의 입장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천황을 가르키는 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それでは, 日本の歴史学界は 倭の 武王をどんなに解釈しようか?

讃, 珍, 済, 興, 武の 倭 5王が天皇系譜の王たちと一致するということが日本歴史学界の立場だが, 具体的にどの天皇を示すかは明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그럼, 倭武王이 송나라 왕에게 보냈다는 上表文에는 도데체 어떤 내용이 실려있을까?

나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それでは, 倭武王が宋の国王に送ったという 上表文にはドデチェどんな内容が載せられていようか?

私はこれを個人的にインターネットで検索して見たら次のような内容です.

 

 

 

 

 

 

 

(1)   

 <順帝><昇明>二年, 遣使上表曰
“封國偏遠, 作藩于外, 自昔祖 , 躬 甲胄, 跋涉山川, 不遑寧處.

東征<毛人>五十五國, 西服衆夷六十六國, 渡平海北九十五國, 王道融泰, 廓土遐畿, 累葉朝宗, 不愆于歲.

(2)
臣雖下愚, 胤先緖, 驅率所統, 歸崇天極, 道逕<百濟>, 裝治船舫, 而<句驪>無道, 圖欲見呑, 掠抄邊 , 虔劉不已, 每致稽滯, 以失良風. 雖曰進路, 或通或不.

 

(3)
臣亡考<濟>實忿寇 , 壅塞天路, 控弦百萬, 義聲感激, 方欲大擧, 奄喪父兄, 使垂成之功, 不獲
居在諒闇, 不動兵甲, 是以偃息未捷. 至今欲練甲治兵, 申父兄之志, 義士虎賁, 文武效功, 白刃交前, 亦所不顧.

 

(4)
若以帝德覆載,  此强敵, 克靖方難, 無替前功. 竊自假開府儀同三司, 其餘咸各假授,

 

 

 

 

 

 

(1)은 첫머리의 인삿말에 해당하는 듯하여 생략합니다.

 

(1)は書き起こしのあいさつの言葉にあたるようで略します.

 

 

(2)역시 예의를 갖춘 인삿말인데, 갑자기 중국 송나라 왕에게 편지를 쓰기가 민망하여 그동안 고구려가 중국으로 가는 海路를 막았기 때문에 찿아뵙지 못했다고 하는 듯 합니다.

자세히 번역해보면,

"臣이 비록 어리석으나, 先祖의 緖業을 이어받아, (烈島의 舊세력들을) 휘몰아 統一하여 天極을 숭상하는 곳(=중국 황제가 있는 곳을 말하는 듯 함)으로 돌아 가고져 하나, 百濟에게 (허용된) 海路는 좁고, 船舶을 다스리고져 하나 高句麗가 無道하여, 우리를 삼켜려는 意圖로 우리의 邊方을 항시 抄掠하여, 굳게 이기려고 함이 끝나지 아니하니 늘 良風을 잃어서 매번 헤아림이 遲滯됨에 이르고, 비록 “나갈 길이 있다.”라고 말하나 때로는 通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2)も礼儀を取り揃えたあいさつの言葉なのに, 急に中国宋の国王に手紙を書くのがきまり悪くてその間高句麗が中国に行く 海路を阻んだからアブェブジできなかったと言うようです.

詳らかに翻訳して見れば,

"臣がたとえ愚かだが, 先祖の 緒業を受け継いで, (烈島の 旧勢力たちを) 駆り立てて 統一して 天極を崇尚する所(=中国皇帝がいる所を言うようにハム)に帰ろうと一つ, 百済に (許容された) 海路は狭くて, 船舶を治めようと一つ 高句麗が 無道して, 私たちをサムキョリョは 意図で私たちの 辺方を常時 抄掠して, 固く勝とうと思うことが終わらないから常に 良風を失って毎度推し量ることが 遅滞になるに至って, たとえ “出る道がある.”と言うが時には 通したり時には通じなかったりしました."

 

 

 

 

(3)을 해석해보면,

"臣의 죽은 아비 <濟>가 중국 皇帝에게로 나가는 길(=天路)을 막는 도적에게 분노해서 그 열매를 맺고져 百萬의 활을 당기자 義理에 찬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가 크게 일어났으나, 갑자기 父와 兄의 喪을 당하여 드리워 이루려던 功을 움켜쥐지 못하였습니다.
臣은 諒闇(=임금이 父母喪 때 거처하는 곳)에 있어 兵甲을 움직이지 못하여서 그들을 싸워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甲士를 訓練하고, 병사를 다스렸기에 父兄의 뜻을 펼치고져 義士들과 虎賁들이 文王과 武王의 功을 본받고져 흰 칼날 앞에 交流하오니, 역시 뒤돌아볼 바가 없는 것입니다.

(3)を解釈して見れば,

"臣の死んだ父 <済>が中国 皇帝に出る途中(=天路)を阻む盗賊に怒ってその実を結ぼうと 百万の弓を繰り上げると 義理におかず音に感激して今こそ軍事が大きく起きたが, 急に 父と 兄の 喪にあって垂れて成そうとしていた 功をしっかり握りし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臣は 諒闇(=賃金が 父母喪 の時住む所)にあって 兵甲を動かすことができなくて彼らを争って勝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しかし今に至っては 甲士を 訓練と, 兵士を治めたから 父兄の意味を広げようと 義士らと 虎賁らが 文王と 武王の 功を模範としようと白い刃の前に 交流するから, やっぱり振り返えるところがないのです.

 

 

 

 

 

 


(4)는 생략하겠습니다.

 

(4)は略します.

 

 

 

 

 

해석은 다른 전문가들이 번역한 내용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解釈は他の専門家たちが翻訳した内容をたくさん参照しました.

 

 

 

 

 

과연 句句節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이 드러나 있고,

아버지와 형제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내용을 보면 AD478 년 무렵에 이런 글을 쓸 사람은 武寧王 밖에 없는듯 보입니다.

또한 하필 왜 부모가 죽은 3년 뒤에 이런 편지를 썼을까를 생각해 보면, 일본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모의 喪은 3년이고, 3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린 15살의 태자가 3년동안 얼마나 죽은 부모, 형제들의 복수심에 불탔는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果して 句句節節 高句麗に対する敵がい心が現われていて,

お父さんと兄弟たちが急に死んだという内容を見れば AD478 年頃にこんな文を書く人は 武寧王 しかないように見えます.

またよりによってどうして親が死んだ 3年後にこんな手紙をソッウルカを考えて見れば, 日本人たち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が韓国人たち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す.

韓国では伝統的に親の 喪は 3年で, 3年の間何もしないです.

幼い 15歳の太子が 3年間いくら死んだ親, 兄弟たちの復讐心に燃えたかは充分に共感します.

 

 

 

 

 

 

 

 

따라서, 武王 = 武寧王 이라고 결론내리는 것도 상당히 그럴듯 합니다.

일본인들의 반론을 요청합니다.

 

したがって, 武王 = 武寧王 と結論内里はのもよほどもっともらしいです.

日本人たちの反論を要請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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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4 (‘▽‘) 흔들흔들 visa 2009-10-10 1437 0
3493 ( ;′H`) y-~~지금에 와서 겨우 눈치....... kimuraお兄さん 2009-10-15 1827 0
3492 있어 인 것은 이케나이라고 생각합니....... infy 2009-10-12 178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