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開土太王(391-413)
▶신묘년(391) 倭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
▶영락(永樂) 6년(396)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을 토벌하였다
58성과 7백 촌을 얻고 잔왕제(殘王弟)와 대신 10인을 잡아 도읍으로 개선하였다.
▶영락(永樂)9년(399) 백잔(百殘)이 맹서를 어기고 倭와 화통(和通)하였다 1신라 국경에 왜인이 가득찼다
▶영락(永樂10년(400) 왕이 보병(步兵)과 기병(騎兵) 도합 5만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을 쳐서 신라성(新羅城;國都)에 이르니, 그 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官軍)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안라인술병(安羅人戌兵) …
신라성□성(新羅城□城) … 하였고, 일본인가 크게 무너졌다. (이하 77자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훼손 불명
▶영락(永樂14년(404) 왜(倭)가 법도(法度)를 지키지 않고 대방(帶方) 지역에 침입하였다. … 석성(石城)(을 공격하고 … ),
연선(連船;水軍을 동원하였다는 뜻인 듯) … (이에 왕이 대군을 끌고)
평양을 거쳐 (…로 나아가) 서로 맞부딪치게 되었다. 왕의 군대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를 공격하니,
일본인가 궤멸하였다. (일본인를)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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広開土太王(391-413)
◆神妙年(391) 倭が海を渡って来てバックザン□□新羅を属国にした
◆ヤングラック(永楽) 6年(396) 王が親しく軍を導いて百残菊(百残国)を討伐した
58成果 7百村を得てザンワングゼ(残王弟)と代わりに 10人を取って都邑で改善した.
◆ヤングラック(永楽)9年(399) バックザン(百残)が猛暑を破って 倭と火筒(和通)した 1新羅国境に倭人がいっぱいになった
◆ヤングラック(永楽10年(400) 王が歩兵(歩兵)と騎兵(騎兵) しめて 5万名を送って新羅を救援するようにした.
高句麗軍がナムゴソング(男居城)を打って新羅性(新羅城;国都)に至ったら, その所に倭軍が一杯だった.
官軍(官軍)がちょうど到着したら外敵が退却こんにちはだった. アンラインスルビョング(安羅人戌兵) …
新羅性□性(新羅城□城) … したし, 倭寇が大きく崩れた. (以下 77字の中ほとんど大部分が毀損不明
◆ヤングラック(永楽14年(404) 倭(倭)が法道(法度)を守らないで大房(帯方) 地域に侵入した. … 石聖(石城)(を攻撃して … ),
沿線(連船;水軍を動員したという意味であるように) … (これに王が大軍をひいて)
平壌を経って (…に進んで) お互いにぶつかり合うようになった. 王の軍隊が時の道を切って阻んで左右を攻撃したら,
倭寇が潰滅こんにちはだった. (倭寇を) 惨殺したことが無数に多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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