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쇄국을 하고 있어 세계와의 관계를 끊고 있던 에도기는, 큰 내분도 없고, 250년 이상이나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되고 있었다.

 

거기에 미국으로부터 외국 함선 래항

 

평화로운 쇄국 시대에 익숙해 자르고 있던 에도 막부에는, 갑작스런 외국 함선 래항에 대처하는 능력은 없었다.

에도 막부는, 미국을 시작해 차례차례로 서양 제국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던 것이었다.

 

우왕좌왕 하는 에도 막부를 보고, 존왕양이를 주창하는 세력이 대두해, 막부를 쓰러뜨림 운동이 활발하게 된다.

그 무렵, 불합리한 아편 전쟁에 의해 영국에서 영토를 할양 된 청나라에, 다른 서양 제국도 대거 해 밀려 들어 중국 대륙은 열강의 벌초장이 되고 있었다.

막부를 쓰러뜨림의 지사들은, 청나라인이 서양 제국의 음식으로 되고 노예와 같이 되어 있는 모습을 이미 견문해 알고 있었다.

그들을 분발하게 한 것은, 자신들도 서양인의 노예가 될지 모른다고 하는 위기 의식이었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에 의해, 막부로부터 조정으로 정치의 실권이 돌려주어져 메이지 신정부가 탄생했던 것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어쨌든 부국 강병, 식산흥업을 서둘렀다(사진은 토미오카 제사장자취)

당시는 제국주의의 시대이다.

그것은, 힘이 없는 나라는, 힘이 있는 나라의 지배하에 놓여지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되고 있었던 시대에서 만났다.

그리고 극동의 섬나라인 일본도, 힘이 없는 나라안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힘이 있는 나라로 서둘러 변모할 필요가, 타국의 지배하가 되지 않기 때문에에도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일본이 서양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때문에 국방을 생각하면, 지정학적으로 말해도, 하나 더 반드시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가 서양 열강의 지배하에 놓여져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서양 열강의 보급 기지가 되면, 당시의 약소국 일본은 잠시도 지탱하지 못하고, 서양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일본은 자국만이 부국 강병을 해도 의미가 없는 것에 깨달아, 조선에 제의하지만, 유교 사상이나 중화 질서에 깊게 물들고 있던 조선은, 일본이 말하는 것에 (듣)묻는 귀를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이라고 생각해 조선의 정치에 크게 간섭하고 있었던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일본은 자국의 방위를 위해, 먼저 조선의 정치로부터 청나라의 영향력을 없앨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한반도를 둘러싸 청일 전쟁이 일어난 것 였다.

저희들은 역사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약했던 청나라에, 강했던 일본이 이겼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그러나 실제는, 청나라는 아시아 제일의 대문명국이며 초강대국, 일본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약소의 섬나라라면 당시 , 세계에서는 생각되고 있었다.

일본에 있어서 청일 전쟁은, 자국의 운명을 걸어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싸움을 건 줄타기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청일 전쟁에 이기고, 일본은 청나라에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게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평안무사가 되는 것은 없었다.러시아가 조선에 촉수를 폈기 때문에 있다.

이 때의 일본에는, 당시 세계 최대의 육군 대국인 러시아와 전쟁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러시아 주도에 의한 삼국 간섭에 의해, 청일 전쟁의 결과 얻은 산동 반도의 권익의 방폐를, 일본은 얌전하게 받아 들일 수 밖에 (안)중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본의 저자세 자세를 보고, 조선 국왕은 일본보다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을 선택한 것에서 만났다.

지금에 와서 일본은, 다시 자국의 운명을 걸어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싸움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었다.

러일 전쟁에 간신히 이긴 것으로, 일본은 한반도에서 러시아 세력을 배제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조선의 정부를 신용할 수 없게 되고 있었다.

조선은 일본이 강한 동안은 아군이지만, 일본이 약하다고 판단하자마자 다른 나라에 잠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일본에서 조선을 병합 하려는 생각이 나왔던 것이었다.

조선측에서도 당시의 최대 정당인 일진회가, 일본과의 합방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당연한 당시의 세계 정세로, 열강에 참가한 일본이 조선을 병합 하는 일에,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나라는 이미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 일본은 조선을 병합 했다.

일본이 그 시정으로 조선으로 한 것은, 동화 정책이었다.

그것은 일본이 조선을 영구히 자국령으로 한다고 하는 생각으로부터 생기고 있었다.

일본의 일부가 된 조선의 인프라를, 일본 본토의 수준에까지 향상시키는 것은, 시정자에게 있어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니까, 대만때와 같게, 조선에도 일본인의 세금으로부터 지출된 자금에 의해 방대한 인프라가 정비되어 갔던 것이다.

반복하지만, 그러한 인프라 정비는 조선을 위해 일본이 해 준 것은 아니고,일본의 새로운 영토에 대해, 시정자가 당연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이다.

일본에 의한 동화 정책은, 전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화 정책은 일본측에서 하면 선의에 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동화하면 한국인이나 일본인도, 구별도 할 수 없으면 차별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은 실수였다고 하는 것이 일본인의 일반 인식이다.

 


日本が朝鮮を支配した動機

鎖国をしていて世界との関係を絶っていた江戸期は、大きな内紛も無く、250年以上も平和な時代が続いていた。

 

そこにアメリカから黒船来航

 

平和な鎖国時代に慣れきっていた江戸幕府には、突然の黒船来航に対処する能¥力は無かった。

江戸幕府は、アメリカを始め次々に西洋諸国と不平等条約を締結したのだった。

 

右往左往する江戸幕府を見て、尊王攘夷を唱える勢力が台頭し、倒幕運動が盛んになる。

その頃、理不尽なアヘン戦争によりイギリスから領土を割譲された清国に、他の西洋諸国も大挙して押し寄せ、中国大陸は列強の草刈り場となっていた。

倒幕の志士達は、清国人が西洋諸国の食い物にされて奴隷のようになっている姿を既に見聞して知っていた。

彼らを奮い立たせたのは、自分達も西洋人の奴隷にな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危機意識だった。

そのような歴史の流れにより、幕府から朝廷に政治の実権が返され、明治新政府が誕生したのだった

明治政府は、とにかく富国強兵、殖産興業を急いだ(写真は富岡製糸場跡)

当時は帝国主義の時代である。

それは、力の無い国は、力のある国の支配下に置かれるのが当然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た時代であった。

そして極東の島国である日本も、力の無い国の中の一つであったのだ。

だから、力のある国へと急いで変貌する必要が、他国の支配下にならない為にも絶対に必要だったのだ。

ここで、日本が西洋の植民地にならない為に国防のことを考えると、地政学的にいっても、もう一つ絶対に重要な事があった。

それは、朝鮮半島が西洋列強の支配下に置かれては絶対に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朝鮮半島が西洋列強の補給基地となれば、当時の弱小国日本はひとたまりもなく、西洋の植民地となることは必至だったろう。

日本は自国だけが富国強兵をしても意味のないことに気付き、朝鮮に働きかけるが、儒教思想や中華秩序に深く染まっていた朝鮮は、日本の言うことに聞く耳を持たなかった。

それは、清国が朝鮮を属国と考え、朝鮮の政治に大きく干渉していたことにも原因があった。

日本は自国の防衛の為に、先ず朝鮮の政治から清国の影響力を削ぐ必要があった。

よって朝鮮半島をめぐり日清戦争が起こったのっであった。

私達は歴史の結果を既に知っているから、弱かった清国に、強かった日本が勝ったのだと考えがちだ。

しかし実際は、清国はアジア随一の大文明国であり超大国、日本は名の知られていない弱小の島国だと当時、世界では考えられていた。

日本にとって日清戦争は、自国の命運を賭けて自分より強い相手に戦いを挑んだ綱渡りの戦いだったのだ。

日清戦争に勝って、日本は清国に朝鮮の独立を認めさせた。

しかしこれで安泰となることは無かった。ロシアが朝鮮に触手を伸ばしてきたのである。

この時の日本には、当時世界最大の陸軍大国であるロシアと戦争するなんてことは、考えることもできなかった。

だから、ロシア主導による三国干渉により、日清戦争の結果得た山東半島の権益の放棄を、日本は大人しく受け入れるしかなかったのだった。

そして、その日本の弱腰姿勢を見て、朝鮮国王は日本よりもロシアと手を組むことを選択したのであった。

ここにきて日本は、再び自国の命運を賭けて自分より強い相手に戦いを挑まなくてはならない状況となったのだった。

日露戦争にかろうじて勝ったことで、日本は朝鮮半島からロシア勢力を排除することに成功した。

しかし、日本はもはや朝鮮の政府を信用することはできなくなっていた。

朝鮮は日本が強い間は味方であるが、日本が弱いと判断するとすぐに他の国に寝返るからだった。

ここにきて日本で朝鮮を併合しようという考えが出てきたのだった。

朝鮮側でも当時の最大政党である一進会が、日本との合邦を希望していた。

そして、帝国主義が当然の当時の世界情勢で、列強に加わった日本が朝鮮を併合する事に、異を唱える国はもはや無かったのであった。

こうして日本は朝鮮を併合した。

日本がその施政で朝鮮にしたのは、同化政策であった。

それは日本が朝鮮を永久に自国領とするという考えから生じていた。

日本の一部となった朝鮮のインフラを、日本本土の水準にまで向上させるのは、施政者にとって当然の行いであった。

だから、台湾の時と同様に、朝鮮にも日本人の税金から支出された資金により膨大なインフラが整備されていったのだ。

繰り返すが、それらのインフラ整備は朝鮮の為に日本がしてあげたのではなく、日本国の新しい領土に対し、施政者が当然するべき事をしたのである。

日本による同化政策は、戦後、非難の対象となった。

しかし、同化政策は日本側からすれば善意による行いだったのだ。

同化すれば韓国人も日本人も、区別も出来なければ差別も出来なくなるからだ。

しかし今では、これは間違いであったということが日本人の一般認識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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