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인터넷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글이라 보신분들이 많으시겠지만 혹 못보신분들도 있지 않을까 하여 여기에 옮겨와 봅니다.~~~
중복되거나 문제되시면 지우셔도 상관없습니다.

한국의 귀족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오만한 계층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군주나 법관, 그외 다양한 기관이 귀족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권력을 견제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귀족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내분이 잦아도
자신들의 특권을 옹호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놀라운 단결력을 보인다.
그래서 백성들도 관리들도 심지어는 왕조차도 그들의 권위에 대항해 싸울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정치인들의 모습과도 흡사한듯 -_-;;)

 

. . . 한국에서는 다른 아시아국가에서처럼
풍속이 극도로 부패해 있고 그 당연한 결과로 여성들의 일상적 지위는 충격적일 정도로 경멸과 열등함의 대상이다.

. . 한국여성은 사회에서도 가족내에서도 하등의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존중의 대상이 된다.
여성들에게는 항상 경어체로 말하며 하녀에게 말할 때 외에는 이 원칙이 항상 지켜진다.
길에서는 모든 정숙한 여자들, 심지어는 서민의 아녀자에게도 길을 양보한다.
여자들의 거처는 침범할 수가 없다. 정부의 관리들도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수 없으며 이곳으로 몸을 숨긴 귀족은 절대 강제로 잡혀갈수 없다.

                                                    —- 샤를르 달레

 

 

한반도의 역사는 아시아 연보에서도 가장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에 극동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중 하나로 손꼽힌다.

                                                    —- 레옹 드 로니

 

 

한국은 아직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한 단계이다.
한국은 여전히 농업국이며 사냥하기 좋은 방대하고 풍요로운 숲이 있다.
말들과 우수한 품종의 소들이 있고 해안에는 물고기들과 식용해초들이 넘친다. 한국에서는 석탄과 금이 난다.

. . . 한국의 경제적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수있다.
다만 한국인들이 악덕을 개혁하고 서구문명에서 유용한 것을 취할줄 알고
생산수단과 빠르고 저렴한 통신수단, 더 평등한 사법제도, 더 엄격하고 정확한 금융제도를 갖추어야 할것이다.
또한 무기경쟁으로 빈약한 자원을 바닥내는 일은 외국인들에게 맡기고 강대국보다는 벨기에나 스위스 같은 나라를 본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 모리스 쿠랑

 

 

협곡들은 점점더 평형상태를 되찾아 산봉우리의 경사는 더욱 완만해진다.
우리의 아래위로는 광활한 논이 펼쳐져 있다.
산을 가로로 잘라 끝없이 이어져 있으며 꼭 진한 초록색의 물줄기로 포석을 깔아놓은 거대한 계단같아 보인다.
물은 정교하게 파놓은 작은 도랑을 따라 흘러 들어간다.
한국에서만큼 논의 관개가 잘 정비된 나라는 없을것이다.
이 인간의 대업적은 이곳에서는 나무랄데 없이 수행되고 있었다.
한뙈기의 땅도 버려진 곳이 없다.
이와 같은 경작방식을 오베르뉴같이 수확이 높지않은 프랑스 지역에서 활용한다면, 프랑스의 농업생산량은 급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샤를르 바라

 

 

한국이 정지상태를 집요하게 고집해서 필연적으로 쇠퇴했지만
한때는 전통예술을 수용해 훌륭하게 보존 계승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때는 예술산업이 발달한 시기도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천, 도자기, 그림, 회화, 조각등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7~8세기무렵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예술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한민족이 찬란한 문학이 있었고, 10세기 이전에 목판인쇄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1403년 분리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적잖이 놀라게 된다.
이는 사람을 첫인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조선이라는 작은 왕국은 외부에 알려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에밀 부르다레

 

19C 서양에 비친 한국의 의,식,주

고기를 구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너무 늙어서 일할수 없는 소만 잡아먹으니까요.
송아지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양과 염소도 없습니다.
돼지고기도 매우 귀하고 돼지들은 크기도 매우 작습니다. 돼지고기는 잔치가 있을때에나 사는데 그나마 고기를 구할수 있거나 돈이 있을때뿐입니다.

. . . 과일도 매우 귀한데, 저는 아직까지 체리도 배도 사과도 보지 못했습니다.
야채들은 야생으로 자라는데 일종의 야생 양배추 같은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 . . 이곳의 옷들은 현지에서 만든 면직이나 마직으로 지었는데 모두 흰색입니다.
정말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이건 직접와서 보셔야 합니다.
한국사람이 프랑스에 가면 그곳에서 가장 별나게 차려입은 희극배우보다 더 눈길을 끌것입니다.

. . . 선교사가 외출을 할때는 짙은 색의 길다란 겉옷을 입는데 이것은 우리의 보자기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비둘기집 지붕같이 생긴 원뿔모양의 모자를 쓰는데
50센티미터 높이에 지름이 1미터 50센티미터는 됩니다.
이 이상한 모자의 테두리가 팔꿈치까지 내려옵니다.
이것은 한국인이 초상때 입는 옷이라고 하는데 선교사들은 이옷을 입기로 했습니다.(서양인임을 들키지 않기위해서)

                                          —- 뤼크 마르탱 위엥 신부, 19세기말

 

 

이러한 건축풍은 본래 중국에서 온것이며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이를 모방했다.
서쪽의 제국과 동쪽의 제국은 모두 가장 방대하고 웅장한 건물들을 지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 특유의 천재적 예술성으로 변형을 시도하고 측면도를 다양화하면서
시대나 장소에 따라 소박하거나 풍요롭거나 장식적인 건물들을 건축한 반면,
한국은 중국의 건축풍에 일종의 엄격함과 상당히 우아한 취향을 유지했다.
게다가 한국의 건축은 나름대로 항상 다양함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건축물들이 주변경관을 너무도 능란하게 활용하기 때문에
풍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기념물로 보이기도 하고 풍경이 의도적으로 기념물을 부각시키려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예로 궁전입구의 문을 지키는 두마리의 환상적 동물이 북악산 기슭에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또한 험한 돌로 지은 성채들이 산꼭대기에 있는 모습, 그 성벽은 폭포와 키 큰 나무사이로 사라져 있는 모습이 그렇다.

                                          —- 모리스 쿠랑, 19세기 말

 

 

19C 서양에 비친 한국인의 외양, 성격, 사상

 

한국인의 가장큰 덕목은 인류애를 존중하는 선천적인 마음과 그것을 매일 실행하는 자세이다.
앞서 우리는 다양한 모임들, 특히 가족이 얼마나 협심해 서로 지키고 격려하고 밀어주고 도와주는지를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의는 친척이나 단체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상호부조와 모든이들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자세는 한국인의 성격의 주요특징을 이루는데
이는 대문명의 이기주의에 빠져 침략을 감행한 우리민족보다 한국인들을 우위에 서게 만드는 그들의 장점인 것이다.

. . . 그러나 이세상의 모든 좋은것에는 나쁜측면도 있게 마련이다.
앞서 설명한 가부장적인 습관들로 인해 몇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수많은 사람이 다른이들의 호의에 기대어 이곳 저곳 어슬렁거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산다는 것이다.

                                          —- 샤를르 달레 ‘한국 교회사’ ?1874년 출간

 

 

그들의 민첩함은 실로 놀랍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산에서 뛰어다니고 종종 산의 정상에서 모임을 하면서 얻어진 능력인 듯하다.

. . . 글을 읽을줄 모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다른 이들의 멸시를 받기 쉽다. 문맹인에 대해 그토록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면 프랑스에는 멸시받을 사람이 상당히 많을것이다.

. . . 이들은 민첩하고 지칠줄 모르는 산인들이다. 한국의 자연적 여건 때문에 끝없이 산에 올라야 하고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서 폐가 그토록 발달한 것 같다.

. . . 최소한 초보적 교육은 널리 보급되어 있는 듯하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종이와 책은 갖추고 있다.

                                          —- 앙리 주베르 ‘한국원정’ 1870년

 

 

지식에 권력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존중하는 일반인들의 태도는
우리 서구에 만연되어있는 개탄할만한 사조와는 대조적이며 한국인들에게 독립적인 사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 . . 이들은 겉치장없는 정직함만을 따를려는 본능적인 소박함과 투박함이 있으며
겉으로는 야만스럽게 보이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매우 여리고 섬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한국의 사회조직은 중국이나 일본의 이론을 토대로 하지만 이곳주민들은 타타르족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 . . 최소한 내가만난 한국인들은 매우 크고 다혈질이며 예민하고 건장하다.
이들의 외모는 잔꾀많은 중국인이나 경박한 일본인보다는 야성적인 몽골인들을 연상케 한다.
짐꾼들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고 뻣뻣하고 건조한 머리가 이마 양쪽으로 내려와 있는데,
이는 사나운 사람의 외모처럼 보이게 한다.
이들은 용감하고 사려가 깊은데 중국인들은 용기라는 덕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려깊은 것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볼수없다.
이 모든 징후들로 보아 한국인들은 몽골과 가까운 혈족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역사학자들이 들려주는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별로 놀랄일도 아니다.

                                          —- 모리스 잠텔

 

 

한국인은 아리안족과 몽골족의 후예이다.
아리안족에게서는 흰피부와 큰키, 건장한 체형, 노란머리칼과 수염을 물려받았다.
한국인은 자신의 육체적 우수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런 자만심은 그들의 용기를 한층 자극한다.
날카로운 눈매, 유연한 몸동작은 몽골족으로부터 물려받았다.                                          —- 이폴리트 프랑댕

 

 

오래도록 고집스레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평화롭고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부드러운 면모를 지닌다.
굳건하면서도 생기없는 민족, 가난하기 짝이 없지만 비옥한 땅이 자아내는 기대하지 못했던 광경을 목격할수있다.

                                                    —- 마르셀 모니에

 

 

한국, 은둔의 땅! 슬픔에 찬 유형자, 현대생활에서 길을 잃고 놀라운 새 환경에서
실수를 반복한 듯 한국인의 표정은 더욱더 어리둥절해 보인다.
한국동쪽에 위치한 낮선 불교사찰과 은자의 동굴이 숨겨져 있는 바위투성이의 공오산(금강산)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은둔하고 있는가!
이곳 한국인의 얼굴에는 존경심이 우러나는 금욕적 기품이 묻어있다.
평온과 슬픔, 내면적인 먼곳으로 돌린 시선에 묻어나는 무력한 눈빛은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 . 한국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겉모습과는 달리 용감하고 부드럽고 관대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이해력이 부족하고 느린성격은 이따금 신경을 거슬리게도 한다.
오늘날 아시아 열강들의 관심이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요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정작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 주옹 데 롱그레

 

—- 벨로네가 로즈에게 보낸 서신 중—-

저는 이미 공태자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전쟁의 선포를 알리고 한국을 중국과 결별하도록하고 왕권을 박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리의 성스런 군주이신 황제의 의향에 따라 한국과 그 왕권을 결정할수 있게 될것임을 통지했습니다.
한국의 수도와 폐위된 왕, 죽은 왕의 어머니인 섭정자가 제 손에 들어오기전에는 로즈소장께서는 한국내의 어떤 권력도 인정하지 마시고 누구와도 조약을 맺지 마시기 바랍니다. . . .

 

 

—- 벨로네가 공태자에게 보낸 서신 중—-

. . . 한국의 왕이 우리 가엾은 동포들에게 손을 댄 순간이 바로 그가 한국을 통치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폐위를 선포한 것이며 나도 오늘 경건히 그의 폐위를 선포합니다.
며칠후면 우리군대는 한국정복에 나설것이며, 이제부터는 프랑스황제만이 한국의 왕위에 대한 권리와 권력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중국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에 대해 어떤 권한도 없으며 행동도 하지않을것임을 밝혔고,
이러한 핑계로 텐진조약의 시행을 거부했으며,
우리 선교사들이 요구한 여권의 발급을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입장을 인식했고, 이제 우리도 중국이 한국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것을 알리는 바입니다.

 

 

—- 로즈가 본국의 담당부처로 보낸 서신 중—-

장관님,
며칠후면 저는 한국해안으로 직접 탐사를 떠날것이며 무력개입이 쉽고 안전하게 이루어질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입니다.
저는 절대로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며
만일 상황의 어려움이 제 능력을 넘어선다면 저는 지시를 기다린 후에 행동할 것입니다.
저는 며칠전 대리공사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는 저와는 상의도 없이 한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왕의 폐위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급한 조치는 북경정부에 알려졌으며 중국은 이를 비밀로 하지않을것입니다.

. . . 한국은 독립국가이며 중국과 어떤 주종관계도 없습니다. 이는 공태자 자신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해외대표도 둔적없는 나라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대리공사의 권한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일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국익에 따라 문제해결을 위해 행동할 권리와 의무는 현지에 파견되는 해군사령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 . . .

 

 

—- 프랑스 해군부 장관이 로즈에게 보낸 서신 중—-

본인은 해군소장께서 한국에서 행하려는 행위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있습니다. 
. . .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하기위해 결과를 알수없는 모험속으로 우리나라를 던져넣어야 한다면,
해군소장님, 그 경우에는 단순히 우리의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 .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리델신부의 기록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백건대, 수도까지 원정대를 파견할 구실로 삼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이미 한국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해안에서 두척의 함대를 잃은 것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 . . 귀하의 책임과 저자신의 책임은 황제의 정부로 하여금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력을 필요로하는 계획에 가담할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단순한 해상탐사의 경우에는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큰 부작용이 없겠지만,
한 국가내에서의 군사작전은 성격이 달라서, 실패할 경우에는 보복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원정에 함께 오게된 리델신부의 기록—-

. . . . 언덕에는 대포소리를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서양선박의 모습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의복은 흰색, 푸른색, 붉은색으로 다양했고 초록빛 언덕과 함께 정말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여기저기 커다란 꽃바구니를 놓아둔 것 같았습니다.

. . . 우리는 갑판 가까이 가서 탄피가 스쳐지나간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위뒤 간 양편으로 주민들이 모두모여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배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도 우린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착하고 단순하고 순진한 주민들인가”라고 해군소장이 말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교전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는듯,
아니 실제로 그사실을 모르고 있던 주민들은 우리에게 애정어린 기쁨의 표현을 하며 신뢰감 가득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 . . 성벽이 나타나자 소장은 척후병을 보냈습니다.
곧 작은 배 네척이 언덕정상으로 올라가기위해 성벽에 접근했습니다.

. . . 드 샤반대위가 칼을 허리에 차고 두손을 주머니에 넣은채 성벽에 나타나서 소리쳤습니다.

“모두 전진하라. 도시에는 아무도 없다.” 소장은 전진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황제만세를 외치며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 . . 이 책들이 발견된 왕실의 도서관(외규장각)은 매우 잘 관리된 듯 질서정연했습니다.
2절지 크기의 두툼한 왕가연보, 공자의 책들, 의술관련서적, 그리고 4절지 크기의 60권짜리 한국사 서적등이 있었습니다.
전부 합하면 수천권은 되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책들의 뛰어난 인쇄상태에 감탄했고
양피지처럼 만든종이, 접합장식이나 고리, 구리로 된 모퉁이 장식이 달린 책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금글자를 새겨넣은 수많은 서적들은 얇은 대리석판을 구리로 된 접합장식으로 이어붙여 비단천으로 덮은 병풍처럼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서적은 붉은색이나 금색으로 칠한 나무상자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 건물들 가운데 하나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책들말고도 이상한 물건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 물건들은 보관에 들인 정성으로 보아 매우 귀한것인 듯 했습니다.
금글씨를 새긴 대리석판, 대리석으로 된 작은 거북상, 이모든것을 비단주머니로 정성스레 싼 다음 두세겹의 상자속에 넣고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향기나는 주머니도 넣어두었습니다.
서적의 관리도 소홀했던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도서는 2절지 크기의 두꺼운 책이었으며, 제본부분은 녹슨 청동으로 장정해 놋쇠고리로 이어놓았습니다. 커다란 지도들과 현판들, 그리고 이상한 그림들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물건들은 목록을 작성한 다음 가능하면 프랑스로 보낼것입니다.

. . . 한국은 거칠면서도 아름답고 풍요롭습니다.
장교들과 병사들은 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감탄했고 우리는 이런 감탄사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기후, 얼마나 풍요로운 나라인가! 우리가 코친차이나가 아닌 이곳에 자리를 잡았더라면….!”

—-샤를르 달레의 ‘한국교회사’, 1874년—-

 

 


사실 로즈해군소장의 원정이후로 한국은 그 어느때보다도 세상과 단절되었다.
1867년 외교사절들의 이동로인 영은문에서 열리던 국제박람회가 취소되었다.
일본 나룻배들이 여느때처럼 해안으로 낚시를 하러 왔는데 배 밑바닥까지 수색을 한 다음, 체류허가를 하지않고 돌려보냈다.

그다음해인 1868년 무슨 구실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들 나룻배중 70척 이상이 불에 탔고 사공들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선박들도 한둘정도 같은 운명을 겪게되자 미국은 1871년 원정을 시도했는데, 1866년 프랑스원정만큼이나 소득이 없었다.
그이후로 한국해안에서 중국인들의 청어잡이가 금지되었고 중국인들도 더 이상 한국해안에 접근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천성적으로 외국인들에게 적대적이지는 않다.

 

 


http://blog.naver.com/amuro9/15092499

 

 

 


19世紀朝鮮を描く西洋人たち

インターネットあっちこっちをさすらう文だから見た方たちが多いがもしかモッボシンブンドルもないかと思ってここに移して来て見ます.‾‾‾ 重複されるとか問題になれば消しても構わないです. 韓国の貴族たちは世界で一番力強くて傲慢な階層だ. 他の国では君主や法官, その外多様な機関が貴族たちを治めて彼らの権力を牽制する. ところで韓国では貴族たちがあまりにも多くていくら内紛がひんぱんでも 自分たちの特権を擁護して拡大するためなら驚くべきな団結力を見せる. それで民たちも役人たちもはなはだしくは王までも彼らの権威に対抗して争うことができない. (どんなに見れば今の政治家たちの姿ともフブサしたように -_-;;) . . . 韓国では他のアジア国家のように 風俗が極度に腐敗していてその当たり前の結果で女性たちの日常的地位は衝撃的な位に軽蔑とヨルドングハムの対象だ. . . 韓国女性は社会でも家族内でもなんらのもてなし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が対外的には尊重の対象になる. 女性たちにはいつも敬体で言って下女に言う時外にはこの原則がいつも守られる. 道ではすべての淑やかな女達, はなはだしくは庶民の児女子にも道を譲歩する. 女達の居所は侵犯することができない. 政府の役人たちもその所に足を入れることができないしこちらで身を隠した貴族は絶対強制でザブヒョガルスない. --- シャルルルダルレ 韓半島の歴史はアジア年譜でも一番ずいぶん前でさかのぼって, 今日非常に重要な戦略的位置を占めているから極東で一番重要な国家中一つで指折り数えられる. --- レオンドロニー 韓国はまだ経済を成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段階だ. 韓国は相変らず農業国で狩りやすい膨大で豊饒ローン森がある. 言葉と優秀な品種の牛たちがあって海岸には魚と食用海草たちがあふれる. 韓国では石炭と金が出る. . . . 韓国の経済的見込みは非常に明るいと言える. ただ韓国人たちが悪徳を改革して西欧文明で流用したことを酔うことができて 生産手段と早くてチープな通信手段, もっと平等な司法制度, もっと厳格で正確な金融制度を取り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また武器競争で貧弱な資源を使い果たす事は外国人たちに任せて強大国よりはベルギーにでもスイスみたいな国を本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 モリスクーラント 峡谷たちはますます平衡状態を取り戻して峰の傾斜はもっと緩くなる. 私たちの下上では広闊な田が開かれている. 山を横で切って果てしなくつながっているし必ず濃い緑色の水かさで布石を敷いて置いた巨大な階段みたいに見える. 水は精巧にほっておいた小さな溝に沿って流れて行く. 韓国ほど論議潅漑がよく整備された国はないだろう. この人間の大業的はこちらでは申し分なく遂行されていた. ハントエギの地も捨てられた所がない. このような耕作方式をオーベルニュのように収獲が高くないフランス地域で活用したら, フランスの農業生産量は急増するはずだという気がする. --- シャルルルバラ 韓国が停止状を執拗に固執して不可欠で衰退したが ひとときは伝統芸術を収容して立派に保存受け継いだという点を認めるしかない. ひとときは芸術産業が発達した時期もあった. 現在残っている布地, 陶磁器, 絵, 絵画, 彫り等はこれをよく証明してくれる. 7‾8世紀頃韓国人は日本人に芸術を伝授してくれたりした. 今は停止したように見える韓民族のきらめき輝いて美しい文学があったし, 10世紀以前に木版印刷術を保有していたし 1403年分離活字を発明し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った時は多く驚くようになる. これは人を第一印象と判断してはいけないし, 朝鮮という小さな王国は外部に知られる価値があるというのを証明するのだ. --- エミールブルダレ 19C 西洋に映った韓国の衣,式,株 肉を求めることは非常に大変です. あまり老けて働くことができない小満食うから. 子牛を殺すことは禁止されています. 私が分かるところでは羊と塩素もいないです. 豚肉も非常に珍しくて豚たちは大きさも非常に小さいです. 豚肉は宴がある時にでも暮すのにそれさえも肉を求めることができるとかお金がある時だけです. . . . 果物も非常に大事だが, 私はいまだにチェリーも梨も謝りも見られなかったです. 野菜たちは野生で者だというのに一種の野生キャベツみたいなことを見たことがあります. . . . こちらの服たちは現地で作った兔職や麻織で作ったが皆白です. 本当にどうに説明させていただかなければならないか… これはジックゾブワで見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韓国人がフランスへ行けばその所で一番変に着飾った喜劇俳優よりもっと視線をひくでしょう. . . . 宣教師が外出をする時は濃い色の長長しい上着を着るのにこれは私たちの風呂敷に似ています. そして鳩舍屋根のように見える円錐模様の帽子をかぶるのに 50センチメートル高さに直径が 1メートル 50センチメートルはなります. この変な帽子のわくがヒジまで下ります. これは韓国人が初喪時着る服だと言うのに宣教師たちはイオッを着る事にしました.(西洋人なのを見付からないためで) --- ルィクマルタンウィエング花嫁, 19世紀末 このような建築風は本来中国でオンゴッで韓国人たちと同じく日本人たちもこれを模倣した. 西の方の帝国と東の帝国は皆一番膨大で雄大壮厳な建物を作った. ところで日本人たちはその特有の天才的芸術性で変形を試みて側面もを多様化しながら 時代や場所によって素朴とか豊かとか飾り的な建物を建築した一方, 韓国は中国の建築風に一種の厳格さとよほど優雅な趣向を維持した. それに韓国の建築はそれなりにいつも多様さを提供する. 何故ならば建築物たちが周辺景観をあまりにも上手に活用するから 風景を引き立つようにするための記念物で見えたり風景が意図的に記念物を浮上させようとイッヌンゴッのように見えたりする. その例で宮殿入口の門を守る二頭の幻想的動物が北岳山岸にその輪郭を現わしている姿がそうだ. また険しい石で建てた城砦たちが山頂にある姿, その城壁は瀧と背の高い木間で消えている姿がそうだ. --- モリスクーラント, 19世紀末 19C 西洋に映った韓国人の形振り, 性格, 思想 韓国人の最大の徳目は人類愛を尊重する先天的な心とそれを毎日行う姿勢だ. 先立って私たちは多様な集まりたち, 特に家族がいくらヒョブシムしてお互いに守って励まして押してくれて手伝ってくれるかどうかを見た. しかしこのような雨着は親戚や団体の境界をずっと越すのだ. 相互扶助と皆を手厚くもてなす姿勢は韓国人の性格の主要特徴を成すのに これは大文明の利己主義に耽って侵略を敢行した我が民族より韓国人たちを優位に立つようにする彼らの長所であることだ. . . . しかし此の世のすべてのゾッウンゴッにはナプンツックミョンもあるものと決まっている. 前に説明した家父長的な習慣たちによっていくつかの問題が発生する. グがウンデ一番深刻なことは幾多の人がダルンイドルの好意によってこちらあちらぶらついてどんな仕事もしないでぶらぶらしながら暮すというのだ. --- シャルルルダルレ ‘韓国教誨士’ ?1874年出刊 彼らの素早いことは実に驚くべきだ. これは彼らがそのように好きな山で走り回ってたびたび山の頂上で集まりをしながら得られた能力であるようだ. . . . 文を読むことができない人は非常に珍しくて他の人々の蔑視を受けやすい. 文盲人に対してそのように厳格な態度を取ったらフランスには蔑視受ける人がよほど多いだろう. . . . これらは素早くて疲れない山人たちだ. 韓国の自然的与件のため果てしなく山に登らなければならないしその所で新鮮な空気を吸って廃家そのように発達したようだ. . . . 最小限初心者的教育は広く普及されているようだ. いくら貧しい家でも鐘と本は取り揃えている. --- アンリズベル ‘韓国遠征’ 1870年 知識に権力が隋伴されないとしてもそのものを尊重する一般人たちの態度は 我が西欧に蔓延されている慨嘆するに値する思潮とは対照的で韓国人たちに独立的な思想があることを見せてくれる. . . . これらは見かけ装いないゾングジックハムのみをよろうとする本能的な素朴さと粗悪さがあって 表では野蛮に見えるが彼らの本音は非常にジェリコ纎細だとい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った. . . 韓国の社会組織は中国や日本の理論を土台とするがこちら住民たちはタルタル族に属するのが明らかだ. . . . 最小限ネがマンナン韓国人たちは非常に大きくて多血質で鋭敏で壮健だ. これらの外貌は浅知慧多い中国人や軽薄な日本人よりは野性的なモンゴル人たちを連想するようにする. 軽子たちはぼろを着けているしこちこちで乾燥した頭が額両方へ下っているのに, これは荒しい人の外貌のように見えるようにする. これらは勇ましくて思廬の深いのに中国人たちは勇気という徳目が何かも知れなくて思慮深いことは日本人たちの間では見られない. このすべての兆したちで見て韓国人たちはモンゴルと近い血族であると思うのだ. それに中国歴史学者たちが聞かせる韓国の歴史をよく見ればこれはあまり驚きべきでもない. --- モリスザムテル 韓国人はアーリア族族とモンゴル族の後裔だ. アーリア族族にはフィンピブとクンキ, 壮健な体形, 掻欄髪の毛とひげを受け継いだ. 韓国人は自分の肉体的優秀性を誇らしく思ってこんな慢心は彼らの勇気をいっそう刺激する. 鋭い目つき, 柔軟な身振りはモンゴル族から受け継いだ. --- イポルリトプラングデング 長い間ゴジブスレ自らを孤立させたが, 平和でお客さんを暖かく迎えて, 柔らかい面貌を持つ. 堅固ながらも生気ない民族, 貧しくてしょうがないが肥えた地が催す期待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光景を目撃することができる. --- マルセル牟尼に 韓国, 隠遁の地! 悲しみにおかず類型者, 現代生活で道に迷って驚くべきな新しい環境で 間違いを繰り返したように韓国人の表情はより一層ぼやっとしたように見える. 韓国東に位した不慣れな仏教査察と隠者の洞窟が隠されている岩だらけのゴングオサン(金鋼山)にどれだけ多い韓国人が隠遁しているか! こちら韓国人の顔には尊敬心が染み出る禁慾的気品がついている. 平穏と悲しみ, 内面的な遠いところで回した視線に付け出す力無い目つきは多くのことを隠している. . . 韓国人たちは老若男女を問わず見かけとは違い勇ましくて柔らかくて寛大で純粋な人々だ. しかし純朴であどけない第一印象にもかかわらず, 物分りが不足でヌリンソングギョックは時時神経に障るようにする. 今日アジア列強たちの関心が自国で起きている童謡に集中されているにもいざ韓国人たちはすぎるほど無関心だ. --- 株翁ところロンググレ --- ベルロネがローズに送った書信中--- 私はもうゴングテザに手紙を送ったし戦争の宣布を知らせて韓国を中国と別れるようにして王権を剥奪するという意思を明らかにしました. 私たちの神聖な君主である皇帝の意向によって韓国とその王権を決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はずだと通知しました. 韓国の首都と廃位された王, 死んだ王のお母さんである攝政者が私の手にドルオオギゾンにはローズ所長は韓国内のどんな権力も認めなくて誰とも条約を結ばない. . . . --- ベルロネがゴングテザに送った書信中 --- . . . 韓国の王が私たち可哀そうな同胞たちに手を出した瞬間がまさに彼が韓国を統治した最後の日でした. 彼は自ら廃位を宣布したことで私も今日敬虔に彼の廃位を宣布します. 何日の後ならわが軍隊は韓国征服に出るはずで, 今からはフランス皇帝だけが韓国の王位に対する権利と権力を持つようになるでしょう. 中国政府は何回にかけて韓国に対してどんな権限もないし行動も夏至しないだろうことを明らかにしたし, このような言い訳でテンジンゾヤックの施行を拒否したし, 私たち宣教師たちが要求したパスポートの発給を断りました. 私たちは中国の立場を認識したし, もう私たちも中国が韓国に対してどんな権利も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せるところです. --- ローズが本国の担当部処に行かせた書信中 --- 長官様, 何日の後なら私は韓国海岸で直接探査を去るはずで無力介入が易しくて安全に成り立つことができるかどうかを検討するでしょう. 私は絶対に不器用な行動をしないことをご約束致して もし状況の難しさが私の能力を越したら私は指示を待った後行動するでしょう. 私は数日前代理公使の手紙を受けたが, 彼は私とは相議もなしに韓国に戦争を宣布して王の廃位を宣言したと言います. このような性急な措置は北京政府に知られたし中国はこれを秘密で夏至しないだろう. . . . 韓国は独立国家や中国とどんな主従関係もないです. これはゴングテザ自分も認めるところです. それならどんな海外代表も置いた事がない国の仕事に介入することは代理公使の権限範囲から脱する事だろう. このような状況でフランスの国益によって問題解決のために行動する権利と義務は現地に派遣される海軍司令官にあると思います. . . . . --- フランス海軍部長官がローズに送った書信中 --- 本人は海軍所長が韓国で行おうとする行為に対して多い憂慮をしています. . . . 彼らの死に対する仕返しをするために結果をわからない冒険の中に我が国を投げこま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ら, 海軍所長様, その場合には単純に私たちの感情が導き次第に行動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思います. . . . もう発生した事に対するリデル花嫁の記録は信憑性があると思います. しかし告白建国大, 首都まで遠征隊を派遣する言い立てにするには不十分です. もう韓国のよく知られない海岸でドチォックの艦隊を失ったことを私は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 . . . 貴下の責任と低自分の責任は皇帝の政府にとって私たちの限界を越す無力を要する計画に加わることができなくしています. 単純な海上探査の場合には成功をしようが失敗をしようが大きい副作用がないが, 一国家内での軍事作戦は性格が違って, 失敗する場合には仕返しをするしかないという事実を憶えてください. --- 韓国遠征に一緒に来るようになったリデル花嫁の記録 --- . . . . 丘には大砲音を聞いて寄り集まった人々で一杯でした. これらは訪問着を着飾って西洋船舶の姿を見物しに寄り集まったのでした. 彼らの衣服は白, 青色, 赤色で多様だったし緑色丘とともに本当に美しい壮観でありました. まるであちこち大きな花篭を置いておいたようでした. . . . 私たちは甲板身近に行って弾皮がすれちがった所をよく見ました. 岩の後の間両側で住民たちがモドモなので好奇心幼い目でお腹が通り過ぎるのを待っていることを見てからもわれらはあまり驚かなかったです. “いくら善良で単純で純粋な住民たちか”と海軍所長が言いました. 近くで交戦があったという事実も分からないように, いや実際にグサシルが分からなかった住民たちは私たちに愛情のこもった喜びの表現をして信頼感一杯な姿でその席にありました. . . . 城壁が現われると所長は斥候兵を送りました. すぐ小さなお腹ネチォックが丘正常に上がるために城壁に近付きました. . . . ドシャバンデウィが刀を腰にガレージ両手を懐に入れたまま城壁に現われて叫びました. “皆進みなさい. 都市には誰もいない.” 所長は前進命令を下げたし兵士らは歓呼の声を上げて皇帝万歳を叫んで攻撃を始めました. . . . この諸本が発見された王室の図書館(外圭章閣)は非常によく管理されたように秩序整然としていました. 2節だ大きさの厚ぼったい王家年譜, 孔子の諸本, 医術関連書籍, そして 4節だ大きさの 60冊の韓国史書籍等がありました. 全部合わせれば数千圏はなったように見えました. 私たちはこの諸本のすぐれた印刷状態に感嘆したし 羊皮紙のようにマンドンゾングが, 接合飾りや掛けがね, あかがねになった角飾りがぶら下がった諸本を見て驚きました. 金字を刻んで入れた幾多の書籍たちは薄ら代理石版をあかがねになった接合飾りでイオブッで布はくで覆った屏風のように開かれたりしました. こんな書籍は赤色や金色で塗った折詰に盛られていました. この建物の中一つには巨大な図書館があったが, その所には諸本を除いても変な品物がおびただしく多かったです. この品物は保管に入れた真心で見て非常にグィハンゴッであるようでした. 金字を刻んだ代理石版, 大理石になった小さな亀上, 李すべてを絹懐でまことをつくして包んだ後ドセギョブの箱の中に入れて衝撃を吸収するために香りが漂う懐も入れて置きました. 書籍の管理も疎かだったようではなかったです. 大部分の図書は 2節だ大きさの厚い本だったし, 製本部分はさびた青銅に壮丁して真鍮掛けがねで引き継いでおきました. 大きな指導たちと懸板たち, そして変な絵たちもありました. このすべての品物はリストを作成した後できればフランスに送るでしょう. . . . 韓国は荒いながらも美しくて豊かです. 将校たちと兵士らはその美しさと豊かさに感嘆したし私たちはこんな感嘆詞を数えきれなくかかりました. “どんなに良い気候, いくら豊かな国か! 私たちがコーチンチャイナではないこちらに腰を据えたら….!” ---シャルルルダルレの ‘韓国教誨士’, 1874年 --- 実はローズ海軍所長の遠征以後で韓国はいつよりもも世の中と断絶された. 1867年外交使節たちの移動路であるヤングウンムンで開かれた国際博覧会が取り消しされた. 日本渡し船たちがいつものように海岸で釣りをしに来たがお腹下積みまで捜索をした後, 滞留許可をしないで返した. グダウムヘである 1868年何のグシルエソだったかは分からないが, これら渡し船中 70尺以上が火に燃えたし船頭たち 300人余りが命を失った. アメリカ船舶たちもハンドルゾングも同じな運命を経験するようになるとアメリカは 1871年遠征を試みたが, 1866年フランス遠征程所得がなかった. その後で韓国海岸で中国人たちのチォングオザブイが禁止されたし中国人たちもこれ以上韓国海岸に近付くのを憚った. しかし韓国人たちは天性的に外国人たちに敵対的ではない. http://blog.naver.com/amuro9/1509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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