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우선 소그드인에 대해 말한다.

소그드 지역은 중앙 아시아에 있어, 4대문명의 무렵부터의 도시가 무슨층에도 집적해 테페라고 하는 언덕이 되어 있다.

소그드인이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군과 7년간 싸운 것이다.그 결과, 알렉산더 대왕과 소그드 왕녀의 로크서누가 정략 결혼하고 싸움은 들어갔다.덧붙여 알렉산더 대왕과 로크서누의 아이는, 캇산드로스에 살해당해 버리는 것은, 정치의 세계의 베타인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후, 몽골 제국 지배하에서는, 실크로드 상인으로서 교과서에도 나오는 메이저인 존재가 되었다.

이하, 있다 사이트를 인용한다.

「서향」

그 지명은 소그드인이 「다른 장소」를 마련하고 있던 곳이라고 마나베는 전하고 있습니다.

사이죠(최상)의 지명은 하리마 카코, 빈고 히바, 아키 카모, 아와 이타노, 이요 니이(에 있어), 미카와 하즈(), 안보 안보(조), 안보 나가사(길이)에 볼 수 있다.이것이 왜인이 번역번안 한 실크로드의 도로(길 비비 꼬아)에서 만났다.

 서향의 지명은 셋츠 토요노(와의), 호키 토하쿠(묻고는 구), 오키주길(좋아), 치쿠젠 무나카타, 히젠 칸자키, 히젠 타카키, 오스미 아이라, 미노 모토스(), 소우고 아츠미(아쯔미), 토노에 오가사(오가사)를 들 수 있어 가지고 사에키의 씨족의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 습유 p167

요약하면,

소그드인은 실크로드를 개척한 씨족이며, 일본에서는 사에키라고 하여, 이바라키현 이시오카시까지 발자국을 전하고 있다.지명은 「사이죠」다른 장소는 「서향」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위키페디아에는,

소그드인은 중앙 아시아에 살고 있던 이란계의 농경 민족으로,  이전에는 실크로드를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소그드인은 일본에서는 사에키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므로, 풍토기에 쓰여진 사에키는 소그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됩니다.

「사이죠」(최상) 「서향」(사이고)의 지명은 사에키(재기)의 거점이었다는 것입니다.이른바 소그드인 콜로니입니다.

위키디아에 의하면, 소그드인은 중국에서는 「야스시·야스·요네·사·하·조·석·필·라·목·?」라고 하는 성이 주어져 그것들을 일괄해 소그드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소그드」는 「위서」에서는 「속특」(속독)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그것이 일본에서는 「조의 나라」를 연상시킵니다.사에키성은 세토나이카이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인용끝


즉, 서향응의 이름은, 소그드인 콜로니 출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이제(벌써) 1점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

서향응은, 사진을 싫어해, 사진이 하나도 남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생각나는 것은 당에서 일어난 안사의 난이다.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로쿠잔은 소그드인이며, 란진압 후에는 소그드인(이란계이므로 백인얼굴)은 몰살로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그드인 콜로니에 기억으로서 남아, 서향응의 사진 싫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뭐, 가설이지만, 정창원에 로마의 유리가 있다 일로부터 소그드인이 일본에 와있던 가능성은 높다.

0 참고까지 다른 사이트로부터 인용한다.

소그드인에 초점을 맞춘다.스가야 소장은 약 20년간에 걸쳐 소그드인을 연구, 중국 국내에서 소그드인의 무덤을 발굴했다.지금까지의 연구로부터, 일본 서기에 등장하는 「도화나(라든지들 ) 국(토화라(라든지들 ) 국)」의 관계자중에 소그드인이 있던 가능성을 지적한다.

 일본 서기효덕 5년의 조에는 「토화라국의 남자 2명, 여자 2명, 사위(사네)의 여자 1명이 양지에 표착」, 또 제명 3년의 조에는 「도화나국의 남자 2명, 여자 4명이 치쿠시에 표착, (도로) 향을 받았다」라고 있다 외 , 동6년의 조에는 「도화라인건두파사들아(검않고는 들아)」라고 하는 인명도 등장한다.

 도화나는 지금까지 남방의 나라로 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중앙 아시아의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스가야 소장은 「도화나인안에 소그드인이 동행해, 아스카의 수도에도 소그드인이 있었던 것이 생각할 수 있다」라고 지적, 소그드 문화가, 아스카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0또 다른 사이트로부터 인용한다.

소그드 상인은 바다의 실크로드에서도 활발한 교역 활동을 전개해, 일본에도 도래했던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호류사 헌납 보물의 일부에 백단2점과 침향나무 일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그 중의 백단2점이 새겨진 수수께끼의 각인과 소인을 단서에, 8~9 세기의 소그드 상인의 바다와 육지에 건너가는 교역 네트워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백단에 기록된 묵서는 나라시대의 연호 5년(716년)의 것으로, 각명의 문자는, 중기 페르시아어의 파후라비어에 「보후토이」(인명?)(와)과 있어요.

소인의 문자는 소그드 문자 「님·스르」가 되고 있어 페르시아인 및 배에 관한 사료는 의정 「남해기귀 내법전」에 있어, 671년의 광저우에 사는 페르시아의 배상인이 쓴 것입니다.

혜초 「왕5 천축전」(8 세기 전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트카라국부터 서쪽으로 1개월 가면, 페르시아에 이른다.이 왕은 이전에는 대식(다시·페르시아)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땅의 사람은 선천적으로 흥역(교역)을 좋아한다.항상 사이카이(아라비아해)에 배를 범(부) 벽, 남해(인도양)에 들어간다.스리랑카(스리랑카)가 보물을 산출하기 때문에 있다라고 한다.한층 더 베트남에서는 돈을 입수한다.한층 더 배를 한지(중국 본토)에 띄워 직접, 광저우에 도착해 능직 비단·생사·풀솜등을 입수한다」.

☆일본의 정창원에 있는 페르시아풍의 문물은, 실은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소그드인이 만들었는지, 있다 있어는 소그드인을 개입시키고 동방에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쇼오토쿠 타이시의 시대부터 일본의 호류사에는 백단의 향나무가 있다.거기에는 소그드어의 소인이 밀리고 있다.중량 또는 가격을 나타낸 것 같다.향나무는 인도·동남아시아등의 열대산이다.인도에서 육로에서 힌두 쿠쉬 산맥을 넘고 실크로드를 거쳐 온 것일 것이다.그래서 있으면, 소그드 문자가 들어가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한편, 소그드인은, 해상 루트인 남해 교역에까지도 손을 대고 있던 것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설이 있다.소그드인이 일본에 와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소그드인의 장사의 넓이를 도모할 수 있다.

☆돌궐의 가한이 중국에서 손에 넣은 비단을, 서방으로 팔아 치우고 있던 것은 소그드인이었던 일이 잘 알려져 있다.

☆몇개의 소그드어 문서로부터, 그들이“위대한 신”을 의미하는 아드바그로 불리는 신을 우러러보고 있던 것을 알고 있다.아드바그는 인드라이다.인드라의 탈 것은 코끼리이다.소그드인은 그들의 신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인도의 신의 모습을 사용한 것이다.이 아드바그신은 몹시 중요한 신으로, 소그드어 문서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교조인 예언자 트라트스트라의 물음에 답하는 신이 되고 있다.

☆소그디아나 자체, 그 중 마음에서는, 그저 소수 부분이 불교도였다.그러나 그 동쪽의 타슈켄트와 같은 거주지에는 소그드인이 큰 부츠쿄지원이 있어, 동방에서는 소그드인의 대부분이 불교도가 되었다.소그드인의 대다수는 중국의 영향아래에서 불교도가 되어, 당대가 많은 불교 불전이 소그드어로 번역되게 되었다.

☆실은 일본에도 소그드인이 나라시대에 오고 있다.문헌에도 기록이 있다.그것은 나라에 있는 토우쇼우다이사의 4대째 주직이 안여보지만, 이 사람은 중국 양주의 소그드인이다.이것은 문헌의 기록에는 송곳이라고 써 있다.따라서 소그드인과 일본과는 전혀 무연의 이야기는 아니다.일본 서기에도 몇군데인가 나온다.

☆게다가 2006년 9월 22일의 신문 각지에서는, 나라시대를 중심으로 오테라원의 법요등에서 개최된 가면극 「기락(희화구)」에 사용된 면이, 소장품중에서 발견되었다고, 텐리대부속 텐리 참고관이 19일에 발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나라시대의 도다이사에서 사용되어 술에 취한 서역의 인물을 나타낸 「취호종(들이마셔 호종)」의 면이라고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설을 대면시키면, 서쪽에서의 민족과 문화가 노도와 같이 중국에 들어 오고, 그 조류의 일단이 칸진 화상에게 따라 왔다.만약 안여보가 인 채 양주에 있으면, 안사의 난으로, 안로쿠잔, 안사명 미움으로 8천명의 소그드인이 살해당했으므로, 그도 살해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잘 일본에 와 토우쇼우다이사의 4대째 주직이 되어 주었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 말해 온 것처럼, 아득한 중앙 아시아의 한 구석에 흥한 소그드인이 동점 하고, 트르판이나 카사이 회랑의 각지에 주거지를 지어 도장안에 있어도 교역 상인이나 군인 있다 있어는 공무원으로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결과, 사료상으로는 밝혀지고 있는 일본에의 도래라고 하는 사실, 무려 꿈과 로망으로 가득 차 흘러넘치고 있는 것입니까.또한 한층 더 해명이라고 분석의 노력을 진행시키고 싶습니다.

인용끝




西郷どん(西郷隆盛)は、ソグド人の末裔か。

まずソグド人について述べる。

ソグド地域は中央アジアにあり、4大文明のころからの都市が何層にも集積してテペという丘になっている。

ソグド人が歴史に出てくる有名な話は、アレキサンダー大王の軍と7年間戦ったことだ。その結果、アレキサンダー大王とソグド王女のロクサーヌが政略結婚して戦いは収まった。なお、アレキサンダー大王とロクサーヌの子供は、カッサンドロスに殺されてしまうのは、政治の世界のベタな残念なことではある。

その後、モンゴル帝国支配下では、シルクロード商人として教科書にもでてくるメジャーな存在となった。

以下、あるサイトを引用する。

「西郷」

その地名はソグド人が「別所」を設けていた所だと真鍋は伝えています。

西条(さいじょう)の地名は播磨加古、備後比婆、安芸賀茂、阿波板野、伊予新居(にい)、三河幡豆(はづ)、安房安房(あわ)、安房長狭(ながさ)にみられる。これが倭人が翻訳翻案したシルクロードの道路(みちすじ)であった。

 西郷の地名は摂津豊能(とよの)、伯耆東伯(とうはく)、隠岐周吉(すき)、筑前宗像、肥前神埼、肥前高来、大隅姶良、美濃本巣(もとす)、三河渥美(あつみ)、遠江小笠(おがさ)が挙げられ、もって佐伯の氏族の別所であった。 拾遺p167

要約すれば、

ソグド人はシルクロードを開拓した氏族であり、日本では佐伯といい、茨城県石岡市まで足跡を伝えている。地名は「西条」別所は「西郷」という。

ということです。

ウィキペディアには、

ソグド人は中央アジアに住んでいたイラン系の農耕民族で、かつてはシルクロードを経済的に支配していた、

と書かれています。

ソグド人は日本では佐伯という名で呼ばれていたので、風土記に書かれた佐伯はソグド人たちだっ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西条」(さいじょう)「西郷」(さいごう)の地名は佐伯(さいき)の拠点だったということです。いわゆるソグド人コロニ―です。

ウィキぺディアによると、ソグド人は中国では「康・安・米・史・何・曹・石・畢・羅・穆・翟」という姓を与えられ、それらを一括してソグド姓と呼んでいます。

「ソグド」は『魏書』では「粟特」(そくどく)と書かれています。それが日本では「粟の国」を連想させます。佐伯姓は瀬戸内海を中心に分布しています。

引用了


つまり、西郷どんの名前は、ソグド人コロニ―出身を表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


ここで、もう1点気になることがある。

西郷どんは、写真をきらい、写真が一つも残っ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

このことで思い出されるのは唐で起こった安史の乱である。

安史の乱を起こした安禄山はソグド人であり、乱鎮圧後にはソグド人(イラン系なので白人顔)は皆殺しにされたという。

このことがソグド人コロニ―に記憶として残り、西郷どんの写真嫌いにつながっていると思う。


まあ、仮説ではあるが、正倉院にローマのガラスがあることからソグド人が日本に来ていた可能性は高い。

〇参考までに別のサイトから引用する。

ソグド人に焦点をあてる。菅谷所長は約20年間にわたりソグド人を研究、中国国内でソグド人の墓を発掘した。これまでの研究から、日本書紀に登場する「都貨邏(とから)国(吐火羅(とから)国)」の関係者の中にソグド人がいた可能性を指摘する。

 日本書紀孝徳5年の条には「吐火羅国の男2人、女2人、舎衛(しゃえ)の女1人が日向に漂着」、また斉明3年の条には「都貨邏国の男2人、女4人が筑紫に漂着、(都で)饗を賜った」とあるほか、同6年の条には「都貨羅人乾豆波斯達阿(けんずはしたちあ)」という人名も登場する。

 都貨邏はこれまで南方の国とされていたが、最近では中央アジアの国と考えられるようになっており、菅谷所長は「都貨邏人の中にソグド人が同行し、飛鳥の都にもソグド人がいたことが考えられる」と指摘、ソグド文化が、飛鳥文化にも影響を与えたとみている。

〇また別のサイトから引用する。

ソグド商人は海のシルクロードでも活発な交易活動を展開し、日本にも渡来し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ています。たとえば、法隆寺献納宝物の一部に白檀二点と沈香一点が伝わっています。そのうちの白檀二点が刻まれた謎の刻印と焼印を手がかりに、8~9世紀のソグド商人の海と陸にわたる交易ネットワークについて、次のように記述されています。

白檀に記された墨書は天平宝字5年(716年)のもので、刻名の文字は、中期ペルシア語のパフラヴィー語に「ボーフトーイ」(人名?)とあります。

焼印の文字はソグド文字「ニーム・スィール」となっており、ペルシア人および船に関する史料は義浄『南海寄帰内法伝』にあり、671年の広州に住むペルシアの船商人が書いたものです。

慧超『往五天竺伝』(8世紀前半)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トカラ国より西に1ケ月行くと、ペルシアに至る。この王は以前には大食(ダーシー・ペルシアのこと)を管理していた。・・・・・この地の人は生まれつき興易(交易)を好む。常に西海(アラビア海)に船を汎(浮)かべ、南海(インド洋)に入る。獅子国(スリランカ)が宝物を産するためであるという。さらにベトナムでは金を入手する。さらに船を漢地(中国本土)へ浮かべ、直接、広州に到着して綾絹・生糸・真綿などを入手する」。

☆日本の正倉院にあるようなペルシア風の文物は、実はペルシア人ではなくて、ソグド人が作ったか、あるいはソグド人を介して東方に伝わったものだと思われる。

☆聖徳太子の時代から日本の法隆寺には白檀の香木がある。それにはソグド語の焼印が押されている。重量または価格を表したものらしい。香木はインド・東南アジアなどの熱帯産である。インドから陸路でヒンドゥークシュ山脈を越え、シルクロードを経てきたものだろう。それであれば、ソグド文字が入っていることを理解できる。しかし一方、ソグド人は、海上ルートである南海交易にまでも手を出し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説がある。ソグド人が日本に来ていたかもしれないが、ソグド人の商売の手広さをはかることができる。

☆突厥の可汗が中国から手に入れた絹を、西方に売りさばいていたのはソグド人だったことがよく知られている。

☆いくつかのソグド語文書から、彼らが“偉大な神”を意味するアドヴァグと呼ばれる神を崇めていたことが分かっている。アドヴァグはインドラである。インドラの乗り物は象である。ソグド人は彼らの神の姿を表現するのにインドの神の姿を使ったわけである。このアドヴァグ神は大変重要な神で、ソグド語文書では、ゾロアスター教の教祖である預言者ツァラトゥストラの問いに答える神となっている。

☆ソグディアナ自体、その中心地では、ほんの少数部分が仏教徒だった。しかしその東のタシケントのような居住地にはソグド人の大きな仏教寺院があり、東方ではソグド人の多くが仏教徒になった。ソグド人の大多数は中国の影響の下で仏教徒になり、唐代の多くの仏教仏典がソグド語に翻訳されることになった。

☆実は日本にもソグド人が奈良時代にやってきている。文献にも記録がある。それは奈良にある唐招提寺の4代目住職が安如宝なのだが、この人は中国揚州のソグド人である。これは文献の記録にはっきりと書いてある。したがってソグド人と日本とはまったく無縁の話ではない。日本書紀にも何ヶ所か出てくる。

☆さらに2006年9月22日の新聞各紙では、奈良時代を中心に大寺院の法要などで催された仮面劇「伎楽(ぎがく)」に使われた面が、所蔵品の中から見つかったと、天理大付属天理参考館が19日に発表したと報道している。奈良時代の東大寺で使われ、酒に酔った西域の人物を表わした「酔胡従(すいこじゅう)」の面と見られている。

これらの説をあわせると、西からの民族と文化が怒涛のように中国に入ってきて、その潮流の一端が鑑真和上についてきた。もし安如宝があのまま揚州にいたら、安史の乱で、安禄山、安思明憎さで8千人ものソグド人が殺されたので、彼も殺されていたかもしれない。よくぞ日本へ来て唐招提寺の4代目住職になってくれたという気がする。

 以上述べてきたように、はるか中央アジアの一隅に興ったソグド人が東漸して、トルファンや河西回廊の各地に居を構え、都長安においても交易商人や軍人あるいは役人として富と権力を手にした結果、史料の上では明らかになっている日本への渡来という事実、なんと夢とロマンに満ち溢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なおいっそう解明と分析の努力を進めたいと思っています。

引用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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