ミリタリー

訪韓したベトナム虐殺生存者と愛国韓国人達との戦争状態の2週間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392.html
ハンギョレ(韓国語) 2015.4.11

「ベトコンを殺せ!」「薄汚い東南アジア人出て行け!」
ベトナムには60以上の韓国軍憎悪碑、韓国には100以上の戦争賞賛記念碑



 1975年に終戦を迎えたベトナム戦争で延べ32万人を派遣した韓国軍は、9000人に及ぶベトナム民間人を虐殺したという疑惑に包まれています。この虐殺から生き残った2人が、光復(解放)70年、ベトナム戦争終戦40年を迎え初めて韓国を訪れました。訪韓中の彼らの日程は、彼らが生きてきた人生同様に順調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彼らの訪韓に付き添ってみました。

 写真展を開いた写真家のイ・ジェガプ氏が彼らを展示場の片隅の小さな部屋に案内した。韓国各地にある戦争記念塔の写真が映写機を通して暗い天井に投影されていた。ベトナム各地に韓国軍を憎む60余りの憎悪碑が建てられているのとは対照的に、韓国の領土では100余りの参戦記念碑があるという説明が後に続いた。

 展示会場はベトナムと韓国に建てられた戦争関連の石碑、民間人虐殺状況を証言するベトナムの人々の姿で満たされた。人々の写真の前には、くすんだビニールが日除けのように設置されていた。イ氏は「ベトナム戦争当時、米軍は死体を処理する時に主にビニールを使った。彼らにとりビニールは米軍の非常食だったCレーション同様、戦争を思い出させる媒介物」と語った。くすんだビニールの向こう側にある写真の中には、深い皺に窪んだ眼をしたあるベトナムの老婆が、悲しみが込み上げ涙が溢れ出そうな顔で幼い孫の顔と向き合っていた。伝えたいけど、伝えきれそうにないどんな言葉より雄弁だった。

 「坊や、この話を絶対に忘れないで。韓国の軍人たちが私たちを爆弾の窪みに追い込んで、みんなを撃ち殺したのよ。坊やが寝ていても、この話だけは忘れないで」。ロンさんとタンさんが写真展の後で参加した「水曜集会」でプラカードに書かれてあった文だ。伝えたいけど、伝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老婆の話だったのではなかろうか。


 訪韓3日目の6日、ロンさんとタンさんは韓国の国会を訪れた。

 「50年近い歳月が流れたけど、残忍な虐殺と苦痛な悲鳴で記憶される虐殺の声は、私の頭の中で生々しく残っています。その日の記憶を再び思い出すと半月は寝れずに体が痛みます。だけど、その日を記憶して話を伝えることが、私が生きている最後の役目だと感じています」

 国会議事堂政論観でロンさんとタンさんは今まで数百回と繰り返し話してきた虐殺当時の状況を証言した。ベトナムに自分たちを訪ねてきた他でもない韓国人に、しかも韓国のの公開の場でその話をするのは初めてだった。辛い証言に対する反応は翌日にすぐ伝えられた。

 7日午後、曹渓寺で開く予定だった写真展の開幕行事が取り消しになった。彼らはその代わり、泊まっていた近くのホテルの小さな部屋で非公開の記者会見を開いた。ベッドを片付け、他の部屋から椅子を借りてきて、せいぜい10人くらいの取材陣、そいて2人のベトナム人と1人の通訳が座る席を用意した。記者たちの質問が始まる前にロンさんは「出て行ってあの人たちに話したい。記者たちにお話しすれば伝わるのではないか」と急かした。窓の外からは枯葉剤戦友会が歌う愛国歌が聞こえてきた。ロンさんは「参戦勇士に会えば丁寧に挨拶をしようと思う。私がこの席にいるとは思いもよらないことでしょう。韓国国民に挨拶をし、彼らに韓国軍人がベトナムにいた時にどんなことがあったか、率直な心情を吐露したい」と話した。

 窓の外で再び「わあ!」という怒声が響いてきた。ロンさんは「彼らを許す」とも言った。「皆さんが過ちを犯したのは過去の旧制度で起きたことです。皆さんを許す心を十分に持っています。もし皆さんが過去の過ちを直視し、過ちを正したい気持ちがあるなら、私たちは皆さんを十分に理解できます」。枯葉剤戦友会の叫び声は収まる気配がなかった。ロンさんとタンさんのインタビューは彼らが体験した虐殺状況に対する具体的な証言へと続いた。

 「銃声がすぐ近くで聞こえ、村人たちの悲鳴と叫び、叫びが一緒に聞こえてきました。そうするうちに声が聞こえなくなったけど、妹と私を両脇に抱えていた母親が私たちにタオルを巻いてくれました。母親のタオルの暖かい温もりのおかげでお腹がすいていたのも、喉が渇いていたのも分からずにいました」

 ロンさんの母親は虐殺が起きた日、一日中ロンさんと妹を抱いて防空壕の中に隠れていて、午後遅くなって韓国軍に発見された。その後、他の村人と一緒に引きずられて行き、手榴弾を投げつけられ銃で乱射された。母親は下半身が殆どない状態で発見され、妹は頭がひどく崩れてしまっていた。母親の話をする時、ロンさんは目がしらが赤くなったまま話を続け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見守っていたタンさんが腕を支えるとようやく証言を続けた。証言が具体的になると頬が震えだし、眼には涙が溜まった。窓の外ではマイクをとる者の怒鳴り声が響いていた。通訳をしていたベトナムの社会的企業アマプのク・スジョン本部長(49)は「ロンおじさんは今までこの話を数百回してきたけど、母親の話をされる時はいつも話を続けられなくなります」と話した。

 タンさんも証言を続けた。彼女の左手にはナムヌの家でもらった黄色の腕輪がかかっていた。「迷彩色の服を着た韓国軍が子供たちが入っていた防空壕に手榴弾を投げ込むフリをしながら、出てこいと言いました。出てこなければ投げるということでした。とても恐ろしくて出て行くと、出てきた人たちを1人ずつ撃ちました」。タンさんの兄はその場で片方のお尻が吹っ飛ばされ、一緒にいた叔母は韓国軍の銃剣で刺されて殺された。姉と弟、甥もみな銃で撃たれて殺された。話が進むほどタンさんの涙声での話はむせび泣きに変わっていった。彼女は「その時は8歳でしたが、今でもその日ことを生々しく鮮明に記憶しています」と語った。


 インタビューを終えたこの日の夕方、彼らを慰労する席が用意された。彼らを招請し、ベトナムに行って彼らと会った韓国人が集まる歓迎パーティーだった。旅行の代案学校ロードスコラ、ベトナムを理解しようとする若い作家の集い、ベトナム平和医療連帯、保健医療労組、挺身隊対策協、アジア公正貿易ネットワークなどに属す約100人が招待された。ベトナム戦争に参戦した人もいた。

 作家のイ・ジェガプ氏は「お二人に申し訳ないとお話しできる、そんな場を設けることができたのは幸いなことだと思います。韓国人の中にもこうした良心ある人々が多いことを分かってもらえたら嬉しいです」と述べ、ロンさんは「韓国に来たのはただ共感と平和を分かち合うだためです」と答えた。ク・スジョン本部長は「ロンおじさんは脚に残る手榴弾の破片を除去したけど、常に足の痺れに悩まされてきました。だけど韓国に来てからは痛くないと仰いました。タンさんはもう韓国の人々が恐ろしくないと仰ってくださいました」と紹介した。集まった人たちが席を立って拍手して歓呼した。旅行代案学校のロードスコラのある女子生徒は「母が花になった日」という詩を朗読した。朗読が終わるとすぐタンさんが舞台にあがりその生徒を強く抱きしめて涙を流した。


 ロンさんとタンさん一行は8日の水曜集会が終わった後、釜山に向かった。この日の夕方に釜山中区の民主公園で、翌日には大邱の慶北大で講演をすることになっていた。枯葉剤戦友会が訪ねる場所にことごとく現れ彼らを出迎えた。8日には懇談会場である釜山の民主公園入口で枯葉剤戦友会釜山支部会員約170人が反対集会を開き、9日には大邱の慶北大キャンパス内で枯葉剤戦友会大邱支部会員40〜50人がデモをした。

 「(通訳の)ク・スジョンを放っておいていいのか。殺してしまえ!」「こんな行事を許可した学長は辞職しろ!」

 午後のキャンパスに乱暴な言葉が溢れかえった。見物していた慶北大の学生や教職員が呆れた表情で見守っていた。「大学でこんなことが許可されてもいいのか!」「総学生会は何をしている!」といった叫び声も聞こえてきた。チョン・チュングァン枯葉剤戦友会大邱支部長(73)は「どの国の戦争でも少数の良民は被害を受ける他はない。それでも我々はその時、良民に撤収しろとビラをばら撒き放送もした。残っていた人たちはみなベトコンだ」と言い放った。

 ある記者がこう尋ねた。「赤ん坊も死にました。それはどう説明するのですか?」。戦友会の会員らがざわつきだした。「事情も知らないくせになにを言う」。「子供たちはベトコンがいる防空壕に入っていた」。戦友会会員のキム・テボン氏は「このまま入っていこう。我々が入れないよう記者たちが防いでいるんじゃないのか」と言って行事場所へ向かおうとしたが、チョン支部長が「とりあえず待ちなさい」と彼らを制止した。記者たちに囲まれた戦友会会員たちは右往左往した。時々「突撃、前へ!」「自由大韓の懐に!」などと叫んでいたが、いつのまにか陽が沈んでいた。

 「私はベトナムから来たウンウイェントン・ロンです。話を始める前に一言申し上げたいと思います。今日私が話そうとするのは、私の目で見て、私の耳で聞き、私の体で体験した事実です」

 「私は私の心臓で話をしています。歴史の真実を伝えるためです。恨みや憎しみを煽ろうと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私は韓国軍の民間人虐殺の生存者です」

 ロンさんはこの日も、母親の死を話すところで涙声になり、話を続けられなくなった。



방한한 베트남 학살 생존자의 전쟁 상태의 2주간

방한한 베트남 학살 생존자와 애국 한국인들과의 전쟁 상태의 2주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392.html
한겨레(한국어) 2015.4.11

「Vietcong를 죽여라!」「추레한 동남아시아인 나가라!」
베트남에는 60이상의 한국군 증오비, 한국에는 100이상의 전쟁 칭찬 기념비



 1975년에 종전을 맞이한 베트남 전쟁으로 총계 32만명을 파견한 한국군은, 9000명에 이르는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하는 의혹에 싸이고 있습니다.이 학살로부터 살아 남은 2명이, 광복(해방) 70년, 베트남 전쟁 종전 40년을 맞이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방한중의 그들의 일정은, 그들이 살아 온 인생과 같이 순조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들의 방한에 시중들어 보았습니다.

 사진전을 연 사진가의 이・제가프씨가 그들을 전시장의 한쪽 구석의 작은 방에 안내했다.한국 각지에 있는 전쟁 기념탑의 사진이 영사기를 통해 어두운 천정에 투영 되고 있었다.베트남 각지에 한국군을 미워하는 60남짓의 증오비가 지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영토에서는 100남짓의 참전 기념비가 있다고 하는 설명이 후에 계속 되었다.

 전시회장은 베트남과 한국에 지어진 전쟁 관련의 비석, 민간인 학살 상황을 증언하는 베트남의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졌다.사람들의 사진의 전에는, 생기잃은 비닐이 차양과 같이 설치되어 있었다.이씨는「베트남 전쟁 당시 , 미군은 시체를 처리할 때에 주로 비닐을 사용했다.그들에 있어 비닐은 미군의 비상식이었던 C배급량 같이, 전쟁을 생각나게 하는 매개물 」라고 말했다.생기잃은 비닐의 저쪽 편에 있는 사진안에는, 깊은 주름에 움푹 팬 곳응이다 눈을 한 있는 베트남의 노파가, 슬픔이 울컥거려 눈물이 넘쳐 나올 것 같은 얼굴로 어린 손자의 얼굴과 마주보고 있었다.전하고 싶지만, 다 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떤 말보다 웅변이었다.

 「아가, 이 이야기를 절대로 잊지 마.한국의 군인들이 우리를 폭탄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모두를 쏘아 죽였어요.아가가 자고 있어도, 이 이야기만은 잊지 말고 」.론씨와 탄씨가 사진전의 다음에 참가한「수요일 집회」로 플래카드에 쓰여져 있던 문장이다.전하고 싶지만, 전할 수 없었던 노파의 이야기(이)었던 것은 아닌가.


 방한 3일째의 6일, 론씨와 탄씨는 한국의 국회를 방문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잔인한 학살과 고통인 비명으로 기억되는 학살의 소리는, 나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그 날의 기억을 다시 생각해 내면 반달은 자지 못하고 몸이 아픕니다.그렇지만, 그 날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내가 살아 있는 마지막 역할이라고 느끼고 있는 」

 국회 의사당 정론관으로 론씨와 탄씨는 지금까지 수백회로 반복해 이야기해 온 학살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베트남에 스스로를 찾아 온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에, 게다가 한국의 것한 공개의 장소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괴로운 증언에 대한 반응은 다음날에 곧 전해졌다.

 7일 오후, 조계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사진전의 개막 행사가 취소가 되었다.그들은 그 대신해, 묵고 있던 가까이의 호텔의 작은 방에서 비공개의 기자 회견을 열었다.침대를 정리해 다른 방으로부터 의자를 빌려 오고, 겨우 10명정도의 취재진, 있어 2명의 베트남인과 1명의 통역이 앉는 석을 준비했다.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에 론씨는「나와 가서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기자들에게 이야기하면 전해지는 것은 아닌가 」?`니 갑작스러운가 했다.창 밖에서는 고엽제 전우회가 노래하는 애국가가 들려 왔다.론씨는「참전 용사를 만나면 정중하게 인사를 하려고 한다.내가 이 자리에 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한국 국민에게 인사를 해, 그들에게 한국 군인이 베트남에 있었을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라고 이야기했다.

 창 밖에서 다시「원아!」라고 하는 노성이 울려 왔다.론씨는「그들을 허락하는」고도 말했다.「여러분이 잘못을 범한 것은 과거의 구제도로 일어난 것입니다.여러분을 허락하는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만약 여러분이 과거의 잘못을 직시 해,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 기분이 있다면, 우리는 여러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고엽제 전우회의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는 들어가는 기색이 없었다.론씨와 탄씨의 인터뷰는 그들이 체험한 학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으로 계속 되었다.

 「총성이 곧 근처에서 들려 마을사람들의 비명이라고 외쳐, 절규가 함께 들려 왔습니다.그렇게 할 때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여동생과 나를 양쪽 겨드랑이에 안고 있던 모친이 우리에게 타올을 감아 주었습니다.모친의 타올의 따뜻한 따스함 덕분에 배가 고프고 있었던 것도, 목?`마르고 있었던 것도 알지 않고 있었던 」

 론씨의 모친은 학살이 일어난 날, 하루종일 론씨와 여동생을 안아 방공호가운데에 숨어 있고, 오후 늦어져 한국군에게 발견되었다.그 후, 다른 마을사람과 함께 끌려가서 가, 수류탄을 떨어져 있어 총으로 난사되었다.모친은 하반신이 대부분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여동생은 머리가 몹시 무너져 버리고 있었다.모친의 이야기를 할 때, 론씨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지켜보고 있던 탄씨가 팔을 결리면 간신히 증언을 계속했다.증언이 구체적으로 되면 뺨이 흔들림이고, 눈에는 눈물이 모였다.창 밖에서는 마이크를 잡는 사람의 고함 소리가 영향을 주고 있었다.통역을 하고 있던 베트남의 사회적 기업 아마추어프의 쿠・스젼 본부장(49)은「론 아저씨는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수백 돌려 왔지만, 모친의 이야기를 하실 때는 언제나 이야기를 계속되지 않게 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탄씨도 증언을 계속했다.그녀의 왼손에는 남누의 집에서 받은 황색 팔찌가 걸려 있었다.「미채색 옷을 입은 한국군이 아이들이 들어가 있던 방공호에 수류탄을 던지는 후리를 하면서, 나오라고 했습니다.나오지 않으면 던지는 것이었습니다/`B 매우 무서워서 나가면, 나온 사람들을 1명씩 공격했던 」.탄씨의 형(오빠)는 그 자리에서 다른 한쪽의 엉덩이가 취날아가 함께 있던 숙모는 한국군의 총검으로 찔려 살해당했다.언니(누나)와 남동생, 조카도 모두총으로 총격당해 살해당했다.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큼 탄씨의 울먹이는 소리로의 이야기는 흐느껴 울어로 바뀌고 갔다.그녀는「그 때는 8세였지만, 지금도 그 날 일을 생생하게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낸 이 날의 저녁, 그들을 위로하는 석이 준비되었다.그들을 초청 해, 베트남에 가서 그들과 만난 한국인이 모이는 환영 파티였다.여행의 대안 학교 로드 스콜라,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젊은 작가의 모여, 베트남 평화 의료 연대, 보건의료 노조, 정신대 대책협, 아시아 공정 무역 네트워크 등에 속하는 약 100명이 초대되었다.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사람도 있었다.

 작가의 이・제가프씨는「두 명에게 미안하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마련할 수 있던 것은 다행히일이라고 생각합니다.한국인안에도 이러한 양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아주면 기쁘겠습니다」라고 말해 론씨는「한국에 온 것은 단지 공감과 평화를 분담하는이다 유익입니다」라고 대답했다.쿠・스젼 본부장은「론 아저씨는 다리에 남는 수류탄의 파편을 제거했지만, 항상 다리의 저려에 골치를 썩여 왔습니다.그렇지만 한국에 오고 나서는 아프지 않으면 앙 있었습니다.탄씨는 더이상 한국의 사람들이 무섭지 않다고 말씀하셔주셨습니다」라고 소개했다.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쳐 환호 했다.여행 대안 학교의 로드 스콜라가 있는 여자 학생?`헤「어머니가 꽃이 된 날」라고 하는 시를 낭독했다.낭독이 끝나자마자 탄씨가 무대에 가 그 학생을 강하게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론씨와 탄씨일행은 8일의 수요일 집회가 끝난 후, 부산으로 향했다.이 날의 저녁에 부산 나카구의 민주 공원에서, 다음날에는 대구의 경북대에서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다.고엽제 전우회가 방문하는 장소에 죄다 현상 그들을 마중나갔다.8일에는 간담회장인 부산의 민주 공원 입구에서 고엽제 전우회 부산 지부 회원 약 170명이 반대 집회를 열어, 9일에는 대구의 경북대 캠퍼스내에서 고엽제 전우회 대구 지부 회원 40〜50명이 데모를 했다.

 「(통역의) 쿠・스젼을 방치해도 좋은 것인가.죽여 버려라!」「이런 행사를 허가한 학장은 사직해라!」

 오후의 캠퍼스에 난폭한 말이 흘러넘쳐 돌아갔다.구경하고 있던 경북대의 학생이나 교직원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대학에서 이런 일이 허가되어도 괜찮은 것인가!」「총학생회는 무엇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도 들려 왔다.정・츄그 고엽제 전우회 대구 지부장(73)은「어느 나라의 전쟁으로도 소수의 양민(백성)은 고름 `□Q를 받을 수 밖에 없다.그런데도 우리는 그 때, 양민(백성)에게 철수하라고 빌라를 장미 뿌려 방송도 했다.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Vietcong다」라고 말해 발했다.

 어느A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갓난아기도 죽었습니다.그것은 어떻게 설명합니까?」.전우회의 회원등이 자리원 내몄다.「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무엇을 말하는 」.「아이들은 Vietcong가 있는 방공호에 들어가 있던 」.전우회 회원 김・테본씨는「이대로 들어가자.우리가 들어갈 수 없게 기자들이 막고 있지 않는 것인가」라고 해 행사 장소로 향하려고 했지만, 정 지부장이「우선 기다리세요」와 그들을 제지했다.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전우회 회원들은 우왕좌왕 했다.가끔「돌격, 전에!」「자유 대한의 품에!」 등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어느새 햇빛이 가라앉고 있었다.

 「 나는 베트남에서 온 운위톤・론입니다.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오늘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나의 눈으로 보고, 나의 귀로 (들)물어, 나의 몸으로 체험한 사실입니다 」

 「 나는 나의 심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역사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때문입니다.원한이나 미움을 부추기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나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입니다 」

 론씨는 이 날도, 모친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곳)중에 울먹이는 소리가 되어, 이야기를 계속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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