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어낸거 같은데 인물들의 캐릭터를 아주 잘 잡은거 같아요.(한거레신문 게시판에 있던 글을 프리첼에 옮겨놓은걸 퍼옴)
미운아기오리 또니..
—————- ”방은 2인1실으로, 4일까지 써야하니까..” —————-
박항서 코치님의 말씀은 죄송하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호텔 로비에 모여 방배정을 하고 있는 박항서 코치의 앞에 있는 대표팀의 막내 지성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고 무언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모양새였다.
“야, 어디 아프냐? 여기 앉어”
여북하면 왠만해선 앉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드래곤 마인드(龍心)의 대가,
마누라에게서 받은 오징어를 질겅거리는 천하의 안정환이가 자리를 양보하려 할까-
“..윤정환-설기현, 황선홍-안정환, 송종국-김남일..”
하느님 제발, 하느님 제발, 하느님 제발-
평소에는 잘 부르지도 않는 하느님은 또 어찌나 찾아대는지,
조용히 쇼파에 앉아 정환이 권하는 오징어 다리에도 고개를 저은 채 계속 성경책을 읽고 있던 종국조차도 지성에게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홍명보랑 박지성-”
하필이면..ㅠㅠ
순박한 얼굴로 좀체 찡그리는 일이 없던 지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털썩-하고 차마 일어날 기운이 없는 듯 주저앉은 지성을, 옆에 있는 을용이 일으키는데..
“지성아, 어디 아프냐?”
“아..아니요..”
“아닌데? 너 아까부터 좀 이상해, 내가 주치의 불러올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던 성경의 페이지를 덮고 종국이 일어났고, 남일은 쫄래쫄래 따라나선다. 하지만 누가 알랴,
1981년생 차라리 소년이라 불러도 좋을 어린 대표팀 초년생 어린양에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의 가장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는 사실을-
405호
-꿀꺽.
그 작은 몸에 2개의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짊어진 지성이 자신이 배정받은 호텔방의 매끄럽고 단단한 대리석 문만을 몇분째 응시하고 있었다.
안에 설사 천하의 씨발왕자 김남일이 있다해도 지성이 이렇게나 들어가기 머뭇거려 질까-
“..지성아”
흠칫~
온 몸의 털이 쭈뼛하는 으스스한 느낌에, 지성은 가까스로 뒤 돌았다.
뒤에는 음료수를 든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명보와 그런 명보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매끄러운 은테안경을 쓴 선홍이 웃고 있었다.
“아..혀..형”
지성을 부른 건, 선홍이었다.
“아..혀..형~그래, 형님들이시다, 뭐해?안 들어가고.”
장난스래 지성의 말을 흉내내며 그의 어깨를 툭 치는 선홍,
그러나 웃는 선홍과는 달리 누구누구는 무표정하기 그지 없는 표정인데..
“아하암~자러 가야겠다.
지성이 빨리 들어가고, 명보야 자라”
“어, 그래”
웃고 있다 지성과 명보의 어깨를 번갈아 치며 들어가 버리는 선홍.
그 덕에 둘만 남은 호텔 복도는 더욱 적막해 져 버렸다.
자신보다 6센티나 큰데다 언제나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대선배-
오늘밤 지성을 떨게했던 이유는 사실이지, 눈앞의 이 선배님 덕분인데...
“아~피곤하다”
유난히 한올한올 빛나는 그의 자랑 머릿결을 찰랑찰랑 빛내며, 어깨를 뚜두둑 거리는 명보의 행동에 자신이 괜히 흠칫하는 지성.
2000년 4월 국가대표에 처음 합류하여 홍명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성에게 명보는 줄곳 선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다가가기 어려운 ”가깝지만 먼 당신”이었다. 말이 좋아 2년여 같이 대표팀을 했다지만 사실 자신이나 명보가 대표팀 엔트리에서 왔다갔다 하는 동안 마주친 적이 별로 없어, 지성으로서는 명보가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그것이 궁금한데..
“내가 먼저 씻을까?”
“..예?”
“아, 샤워. 말야”
의자에 느긋하게 앉은 다음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있는 지성에게 묻는 명보.
지성이 차마 머뭇대자..
“같이 씻을까?”
우리의 명보. 그에겐 금기사항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나름의) 위트를 치는데..
“....예!?!?!”
그야말로 경악하며 놀라는, 우리의 어린양 지성.
“..농담이야”
절대 무표정을 고수하며 농.담 하는 명보 앞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대 이름은 지성, 지성, 박지성이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난 아담한 태극전사 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성은 로비 쇼파에 힘없이 앉아 잔뜩 골이 난 얼굴이다.
“어~사랑하지, 물론~ 여기?로빈데..선홍이형이 민감해서 방에선 전화하기 좀 그렇거든. 아참, 혜원이 과일 먹었어? 뭐?과일을 안 먹으면 어떡해, 고운 피부의 원천이라고 내가 그렇게 누누이 말했잖아,
하하!!뭐라구?넌 안 먹어도 예뻐?
야..뭐냐, 공주병!
킥킥, 아냐~농담이지, 응..그래,
오빠 아침 먹구, 오전훈련 한 다음에 전화할게,
그래, 안 다칠게. 걱정 마.
끊는다~♡”
신혼의 스파크를 지성에게도 팍팍 튀기며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건들거리며 웃던 정환이 지성을 보고 눈인사를 한다. 꼽지만 선배인지라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지성.
“어, 너 안 자고 왜 나왔어”
“예, 뭐..잠도 안 오고 해서요”
“왜, 무슨 고민있냐?”
결코 적개심없이 서글서글한 눈매로 호기심을 담아내는 정환의 시선을 지성은 애써 외면하는데.
“헤에~알겠다”
“...?”
“너 주장 때문에 그러는구나?”
“..!”
“주장하고 같은 방 쓰는게 불편해서 어제도 그렇게 떨었던 거지?
잠도 못 잤겠네?”
정곡을 지르는 정환의 말에 뜨끔하는 지성.
정환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일침을 가한다.
“어이그 바보야, 너는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여태까지 지내보며 그런 눈치도 안 기르고 뭐했냐?”
“하..하지만 주장은 너무 무서운걸요..”
“다 유도리로 하는 거지, 유도리!!! 내가 방법 하나 전수해 줄까?”
“..?”
“이름하야, 홍명보 꽉 잡는 방법, 딱 한마디로 끝나”
“그게..뭐에요?”
“...맨 입으로?”
그럼 그렇지..-_-
초롱초롱하던 지성의 눈이 한 순간 띠껍게 변한다.
후배가 씨부렁 거리거나 말거나, 일단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듯 꾹 닫힌 정환의 입술은 과연 정환다운 이해타산력과 뻔뻔함의 관록이 엿보이는데..
“..쉐끼, 이태리 가더니 뻔뻔함만 배워왔나..”
“므야!?!”
순간 뒤에서 들리는 묘하게 비꼬며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소리에,
정환이 꼬불꼬불한 파마로 눈을 찌르는 불상사를 감수하면서까지 힘차게 뒤 돌았다.
“요..용수형!”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리스마 넘치는 현 국대에서도 원조 카리스마로 분류되고 있는 최용수. 용수가 등장하자 기세등등하던 아니(Ahn)는 한풀 꺽힌 눈치, 지성은 때마침 등장해준 용수를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응시하고..
“자, 안정환이가 말하는 작전 한번 들어볼까?”
용수는 선배의 느긋함으로 이에 응수해준다.
“...ㅠㅠ”
중간에서 등터진 건 순진한 지성에게 삥 뜯어보려던 정환.
예기치 못한 복병의 등장으로 정환은 순순히 작전을 실토하기 시작하고...
10시, 대표팀의 오전 연습이 시작 되었다.
오늘 그 똘망에 젖은 눈동자가 더욱더 빛을 발하는 지성.
그러나 불행이도 그것은 볼을 향해서가 아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달리며 선배고 후배고 감독이건 간에 앞에 밟히는 게 있으면 가차없이 쓰러뜨리고 있는 한 선수에게 향해 있었으니..
“명보, 달려야지!!!”
“을용아, 여기-”
“선홍, 패스!!”
..;;
그것은 바로 김남일 이었다.
(어떤 면에서든) 해결사 안정환은 ”오늘 하루동안 김남일이 홍명보를 어떻게 대하는가-” 에 대해 보고 배우라는 아리송한 말만 한 채 흥흥대며 사라졌고,
고로 지성은 지금 공이 아닌 남일만을 따라다니며 그가 명보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인 것이다.
-퍼억!
“박지성 야이 쉐키야, 내 얼굴이 뽈이냐!! 왜 아까부터 자꾸 쳐다보고 지랄이여~지 쪽으로 뽈이 가는지 안 가는지 관심도 없지!!”
배움에 허덕이는 후배의 선망의 눈동자도 몰라준 채,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가차없이 지성의 머리로 강슛을 날리는 남일.
지성은 머리를 긁으며 재빨리 볼 컨드롤을 해 보지만, 이미 남일의 눈 밖에 난 듯 하다.
“잠시 타임!!!
10분 쉬었다 다시 가자!!!”
박항서 코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각기 드리블하던 볼을 퉁 튕기어 놓고 그라운드 가에 몰려앉는 선수들.
제각기 강도높은 훈련에 지쳐 헥헥거리고 있을 때-
“명보, 물 패스-”
“.......................................”
그러나, 남일의 한 마디로 그라운드는 정적에 휩싸였다.
농담따먹기를 하며 시시덕거리다 순간 마주보며 굳는 양 정환,
장갑의 제질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다 일순 말이 없어진 세 수문장 병지, 운재, 은성. 다리 근육을 풀어주며 마주웃다 고개를 숙여버리는 종국과 영표. 등.등.등.
그리고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장본인은 바로 대표팀의 막내,
영원한 귀염둥이 지성 이었으니.
..명보형이 화를 내실거야,
아무리 그래도 선후배간에 예절이라는 게 있지..??
그런 지성과, 아니 굳이 따지자면 지금 히딩크 감독과 이야기하고 있는 저 멀리의 선홍만을 뺀 모든 국대들의 예상을 뒤엎은 채,
명보는 잠시 남일을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휘휘 돌려 노란 물병을 찾아내곤 손을 뻗어 물병을 집더니, 가볍게 던진다.
“Thank you-”
“..싸가지 없는 쉑히-”
영표가 대놓고 한마디 하지만, 남일은 그런 영표를 ”니가 어쩔껀데, 새꺄”라는 눈빛 정도로 가비압게 무시하고 물통 뚜껑을 여는데..
“우와..”
바로 옆에 옆에 앉은 남일을 쳐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리는 지성.
그 천하의 카리스마 주장에게 저리도 당당하게 응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지성에게는 순간 남일의 온 몸에서 빛나는 오로라가 나온 것만 같이 느껴진다.
“거 봐, 내가 뭐랬어?”
“형..정말 명보형이 아무말도 안 하시네요.. 대단해요, 정환형,,그걸 알아내다니.”
“쿡-다 노~하우 아니겠니?”
혹시 명보가 들을새라, 소근소근 말하던 정환이 자랑삼아 자신의 파마머리를 찰랑찰랑 해 주자-
“아, 씨팔! 땀 튀잖아요~그 머리 좀 어떻게 해요!!”
곧바로 옆에 앉은 남일에게서는 반응이 온다-_-;;
그리고 저녁시간.
“뭐어??”
지성에게 또 한번의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속이 조금 안 좋아 먹지않은 점심 식사때 같은 테이블에 앉을 선수들을 정했는데 방배정 순으로 해 자신이 명보의 앞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저..저기 형-”
“응?”
지성은 황당한 마음에 일단 그 말을 전한 태욱의 바짓가랭이부터 잡는다.
“왜 이래, 임마?”
당황하며 바지를 추켜올리는 태욱. 지성은 한껏 애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는데..
“형있잖아, 나하고 자리 좀 바꾸면 안 될까?”
“...;;”
태욱은 잠시 할말을 잃고 왠일로 울려고 하는 후배 지성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평소 독실한 신앙으로 얻어진 최목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아버지, 이 어린양이 부디 소화 잘 할 수 있게 도와 주소서”
“혀..혀엉~”
“미쳤냐, 임마? 명보형 앞에서 뻔히 쳐다보며 밥 먹게? 차라리 남일이 형 옆에 앉겠다-!!!”
그러나 최목사도 지성의 고통을 대신해 줄수는 없는 듯, 줄행량을 쳐 버리고.. 혼자남은 지성은 비통해 하는데..
“..왜 저러지?”
마침 선홍과 함께 휴게실 앞을 지나던 명보는 룸메이트 지성이 바닥에 눈물을 흩뿌리는 것을 보고 그 원인제공자가 본인인 줄도 모른 채 큰 눈을 꿈뻑꿈뻑 댄다. 빙글빙글 웃으며 명보를 잡아끄는 선홍.
“오해는 본인이 푸는 게 좋지, 우리 명보 얼마나 귀여운데..그지?”
“..무슨 소리야?”
갑자기 볼을 잡아당겨오는 선홍에 무뚝뚝한 인상을 더욱 찌푸린 명보이지만,
불행이도 절친한 친구처럼 눈치가 빠르지 못한 우리의 주장님은 오늘도 지성에게 ”멀고도 먼 당신”이다.
PM 7:00
-대표팀의 저녁식사.
저녁도 안 먹을꺼라고 뻣대다 영표와 종국에게 질질 끌려오다시피 식당으로 들어온 지성은 우연스래 식판을 들고 한 선수 뒤에 섰다.
그리고, 곧 그가 홍명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감사합니다”
지성이 뒤에 있는지 없는지 별 신경도 안 쓰는 듯 묵묵히 앞을 보고 선 명보. 지성은 식판을 들고 밥을 퍼주시는 아주머니들께 일일이 목례하는 명보의 뒷통수만 보고 난감해 하는데..
선배가 하는 것을 후배가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명보의 인사는 뒤에 있는 자신에게도 인사를 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들려온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명보를 따라 인사하는 지성.
순간, 지성의 눈동자가 튀어나올듯이 커졌다.
명보가 흘낏 뒤 돌더니 자신을 향해 씩-웃는 것이 아닌가!!!
지성은 꿈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뒤에서 아니(Ahn)가 쿡 찌르는 것으로 보아, 꿈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명보형이 나한테 웃어 주시다니...
그 돈주고도 못 본다는 희귀한 명보의 웃음을(엄밀히 따지자면 미소였음-_-;;) 본 지성은 못내 스스로가 자랑스러운데..
분명 자신을 보고 웃어준 것이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면근육이 약간 풀어진 지성은 스스럼없이 명보의 앞에 앉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종국, 영표, 태욱, 천수등, 크리스쳔 패밀리를 쳐다보고,
그 사이에서 ”밥 좀 먹자, 썅-”이라고 구정거리는 남일을 쳐다본 후, 지성은 이제 명보가 수저를 들었겠지-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래 명보를 쳐다본다.
그러나 후배들이 기도를 하건 욕을 하건 관심없이 수저를 들려던 명보는 ”아참-”이라고 작게 읊조린 다음 일어서 예의 그 걸음거리로 성큼성큼 식당을 나서 버리는데..
...배고픈데..밥 먹고 싶은데..ㅠㅠ
점심을 못 먹어 배가 고픈 지성이지만 대선배님께서 자리를 떴는데 어찌 먼저 수저를 들겠는가?
그것은 개싸가지로 소문난 김남일조차도 하기 어려운 일인 고로, 하물며 어린양 지성에게는 선택의 여지 없이 그것이 1시간이 되든 2시간이 되든 명보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15분이 지나고,
동료들이 슬슬 밥을 다 먹어갈 즈음 다시 입구로 황망히 들어서는 명보.
지성은 반가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안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갈비찜이 바로 앞에서 식어가고 있는 것에 애통했던 것이다.
“밥 안 먹고 왜 그러고 있어?”
조금 놀란 듯 큰 눈을 더 크게 뜨는 명보에 지성은 실없이 웃고..
“그..그냥요”
“자-”
명보는 그런 지성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
명보가 내민것을 쳐다보는 지성.
그것은 보온병-
“이게 뭐에요?”
“너 속 안 좋다고 점심도 걸렀다며.
생각 같아서야 소화제를 먹여야 하겠지만 도핑 때문에 그건 어렵고,
궁여지책으로 유자차야. 유자가 소화를 돕는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어서”
“...”
명보에게서 보온병을 받아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지성.
명보는 점심 때부터 이미 지성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먹어보고 나으면야 좋겠지만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기에 지장 없도록 몸조리 잘 해, 먹자”
앞에 사람이 감동을 받든지 말든지, 또다시 묵묵히 현재의 일에 충실하는 명보. 눈가가 시큰해지는 지성은 목이 메 그날 저녁 결국 식사를 반이나 남겨야 했다.
“여보세요. ............네, ...........네, ............그냥 그렇지요, 뭐.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저녁, 폴란드전을 이틀 앞두고 있기도 한 6월 2일.
아까 식사때 조금 녹았던 분위기는 또다시 제자리다.
이층에서 베게에 얼굴을 묻고 창가에 서서 전화를 받는 명보를 보는 지성.
오로지 앞만을 쳐다보며 얘기하는 명보에, 지성은 사무적인 전화 이겠거니 했다.
“누구하고 통화하신 거에요?”
일단 남일처럼 막말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격식을 좁히고 싶어 먼저 말을 거는 지성. 명보는 예의 그 무뚝뚝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
...;;
새벽 2시.
꿈에서 자신의 논스톱 슛이 그대로 폴란드의 골문을 가르는 순간-”헉!!”하며 선홍은 축축해진 이마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만해도 짜릿한 꿈에 머리를 설래설래 저으며 조심하며 이층침대에서 내려오는 선홍, 새끈거리며 가끔 혜원아..라고 마누라 이름을 부르는 정환을 보고 씩 웃은 선홍은 도무지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슬며시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적막한 복도를 걸으며 아무도 없을 로비로 천천히 걸어나가는 선홍,
“..어?”
고개를 옆으로 까닥-하며 선홍은 조금 묘한 표정이 되는데..
갈색등이 켜져 은은하게 비치는 로비에, 익숙한 누군가의 뒷 모습이 보였던 것.
“...호..”
반가운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선 선홍이 명보를 부르려 하지만,
이내 선홍은 약간 의아한 눈동자로 걸음을 늦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서 났는지 레이스가 달린 거울을 이리 비추고 저리 비추며 뿔을 내고 있는 명보, 선홍은 저 친구가 왜 또 저러나 싶어 거울에 모습이 반사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다가가 보는데...
“..내 얼굴이 그렇게 무섭나?”
“...?”
“이렇게 하면 인상이 좀 좋아 지려나..”
근심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눈꼬리를 내렸다, 올렸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그것도 로비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주장.
다른 국대들이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떻게든 ”홍명보, 이런 모습 처음이야” 라는 타켓으로 몰카를 찍어 떼돈을 벌어보려 애쓸 테지만, 너무나 충분하게도 명보를 알고 있는 선홍은 예의 유한 눈꼬리를 내려 웃는 것만으로 놀라움을 대신했다.
“우리 주장님, 야심한 밤에 이 무슨 생쑈이신지요?”
짐짓 웃음을 참는듯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명보는 자칫 들고 있던 거울을 떨어뜨릴 뻔했다- 누가 봐도 자신의 행동이 이상한 짓이었기에 변명도 하지 못하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천천히 뒤도는 명보.
“휘유..”
그 ”누군가”가 선홍이라는 사실이 못내 다행인 듯,(사실 선홍이 아니라면 그렇게 비꼴 사람도 없지만) 명보는 쇼파에 몸을 묻으며 거울을 내려 놓는다.
“..사람 간 떨어지게 좀 하지 마”
볼멘소리로 명보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중얼대자..
“하하~? 누가 할 소릴?난 레이스 거울을 보는 공주님의 모습에 간이 이미 떨어졌는걸?”
느긋한 선홍은 되래 명보에게 강력한 어택을 가한다.
“누가! 그저 여기 있던 거 잠시 본 것 뿐야..”
명보는 애써 하지 않아도 될 변명까지 하며 잔뜩 골이 난 눈치.
선홍은 명보가 레이스 거울을 봤다는 것 보다도 왜 이 친구가 새벽 2시에 깨어 있가가 더 놀라운데..
“왜, 잠이 안 와?”
선홍이 명보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그와 마주앉자, 명보는 미간을 찌푸리며 짧게 답했다.
“아니”
“그런데 왜?”
“..내가 있으면 잠이 안 오는 사람이 있어”
“뭐?그게 무슨 소리야?”
선홍은 되묻지만, 이미 대충 눈치는 챘다.
...지성이 이놈, 얼마나 눈치채게 행동했길래 천하의 둔탱이 홍명보가 눈치를 깠냐.. 골 때리누만-_-
이놈이나..저놈이나..;;
“아까 보니까 지성이 잠들었던데?
웬 방문도 훨쩍 열고 불도 안 끄고 대자로 엎어져 자길래 내가 불 꺼주고 왔다.”
“아..그래?”
“에구..안정환이가 지성이 반만 닮았으면.. 녀석,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니까? 한번은 지 발 닦은 수건을 욕실에 걸어놔서 내가 얼굴 닦은적도 있을 정도야”
“..괴로웠겠구나-_-”
“아, 젠장. 얼굴을 닦는데 뭔가 쿰쿰한 냄새가 나는거야,
쉐끼 그래놓고 나보고 뭐 그런일로 승질이냐고 되래 지가 큰소리야.”
“..지성이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럼 너랑 나랑 바꿀까?”
“...나도 하루종일 드라이만 하는 머리우스는 사양이야.”
명보는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정색을 하며 정환, 일명 ”머리우스”와의 룸메이트 제의를 거절했다. 팬들이야 반반하게 생긴데다 부드러워 보이는 정환을 ”테리우스”라고 부르지만, 대표팀에서는 머리만 한번 감았다 하면 드라이를 무려 30분간이나 하는 정환을 ”머리우스” 라고 부르는데 만장일치했던 것이다.
“그럼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 할래?
나도 워낙 무시무시한 꿈을 꾼 지라 잠이 안 와서.”
“..그럴까?”
느릿느릿, 명보가 일어난다.
6월 3일 새벽,
누가 지어낸거 같은데 인물들의 캐릭터를 아주 잘 잡은거 같아요.(한거레신문 게시판에 있던 글을 프리첼에 옮겨놓은걸 퍼옴) 미운아기오리 또니.. ----------- "방은 2인1실으로, 4일까지 써야하니까.." ----------- 박항서 코치님의 말씀은 죄송하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호텔 로비에 모여 방배정을 하고 있는 박항서 코치의 앞에 있는 대표팀의 막내 지성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고 무언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모양새였다. "야, 어디 아프냐? 여기 앉어" 여북하면 왠만해선 앉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드래곤 마인드(龍心)의 대가, 마누라에게서 받은 오징어를 질겅거리는 천하의 안정환이가 자리를 양보하려 할까- "..윤정환-설기현, 황선홍-안정환, 송종국-김남일.." 하느님 제발, 하느님 제발, 하느님 제발- 평소에는 잘 부르지도 않는 하느님은 또 어찌나 찾아대는지, 조용히 쇼파에 앉아 정환이 권하는 오징어 다리에도 고개를 저은 채 계속 성경책을 읽고 있던 종국조차도 지성에게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홍명보랑 박지성-" 하필이면..ㅠㅠ 순박한 얼굴로 좀체 찡그리는 일이 없던 지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털썩-하고 차마 일어날 기운이 없는 듯 주저앉은 지성을, 옆에 있는 을용이 일으키는데.. "지성아, 어디 아프냐?" "아..아니요.." "아닌데? 너 아까부터 좀 이상해, 내가 주치의 불러올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던 성경의 페이지를 덮고 종국이 일어났고, 남일은 쫄래쫄래 따라나선다. 하지만 누가 알랴, 1981년생 차라리 소년이라 불러도 좋을 어린 대표팀 초년생 어린양에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의 가장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는 사실을- 405호 -꿀꺽. 그 작은 몸에 2개의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짊어진 지성이 자신이 배정받은 호텔방의 매끄럽고 단단한 대리석 문만을 몇분째 응시하고 있었다. 안에 설사 천하의 씨발왕자 김남일이 있다해도 지성이 이렇게나 들어가기 머뭇거려 질까- "..지성아" 흠칫~ 온 몸의 털이 쭈뼛하는 으스스한 느낌에, 지성은 가까스로 뒤 돌았다. 뒤에는 음료수를 든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명보와 그런 명보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매끄러운 은테안경을 쓴 선홍이 웃고 있었다. "아..혀..형" 지성을 부른 건, 선홍이었다. "아..혀..형~그래, 형님들이시다, 뭐해?안 들어가고." 장난스래 지성의 말을 흉내내며 그의 어깨를 툭 치는 선홍, 그러나 웃는 선홍과는 달리 누구누구는 무표정하기 그지 없는 표정인데.. "아하암~자러 가야겠다. 지성이 빨리 들어가고, 명보야 자라" "어, 그래" 웃고 있다 지성과 명보의 어깨를 번갈아 치며 들어가 버리는 선홍. 그 덕에 둘만 남은 호텔 복도는 더욱 적막해 져 버렸다. 자신보다 6센티나 큰데다 언제나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대선배- 오늘밤 지성을 떨게했던 이유는 사실이지, 눈앞의 이 선배님 덕분인데... "아~피곤하다" 유난히 한올한올 빛나는 그의 자랑 머릿결을 찰랑찰랑 빛내며, 어깨를 뚜두둑 거리는 명보의 행동에 자신이 괜히 흠칫하는 지성. 2000년 4월 국가대표에 처음 합류하여 홍명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성에게 명보는 줄곳 선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다가가기 어려운 "가깝지만 먼 당신"이었다. 말이 좋아 2년여 같이 대표팀을 했다지만 사실 자신이나 명보가 대표팀 엔트리에서 왔다갔다 하는 동안 마주친 적이 별로 없어, 지성으로서는 명보가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그것이 궁금한데.. "내가 먼저 씻을까?" "..예?" "아, 샤워. 말야" 의자에 느긋하게 앉은 다음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있는 지성에게 묻는 명보. 지성이 차마 머뭇대자.. "같이 씻을까?" 우리의 명보. 그에겐 금기사항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나름의) 위트를 치는데.. "....예!?!?!" 그야말로 경악하며 놀라는, 우리의 어린양 지성. "..농담이야" 절대 무표정을 고수하며 농.담 하는 명보 앞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대 이름은 지성, 지성, 박지성이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난 아담한 태극전사 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성은 로비 쇼파에 힘없이 앉아 잔뜩 골이 난 얼굴이다. "어~사랑하지, 물론~ 여기?로빈데..선홍이형이 민감해서 방에선 전화하기 좀 그렇거든. 아참, 혜원이 과일 먹었어? 뭐?과일을 안 먹으면 어떡해, 고운 피부의 원천이라고 내가 그렇게 누누이 말했잖아, 하하!!뭐라구?넌 안 먹어도 예뻐? 야..뭐냐, 공주병! 킥킥, 아냐~농담이지, 응..그래, 오빠 아침 먹구, 오전훈련 한 다음에 전화할게, 그래, 안 다칠게. 걱정 마. 끊는다~♡" 신혼의 스파크를 지성에게도 팍팍 튀기며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건들거리며 웃던 정환이 지성을 보고 눈인사를 한다. 꼽지만 선배인지라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지성. "어, 너 안 자고 왜 나왔어" "예, 뭐..잠도 안 오고 해서요" "왜, 무슨 고민있냐?" 결코 적개심없이 서글서글한 눈매로 호기심을 담아내는 정환의 시선을 지성은 애써 외면하는데. "헤에~알겠다" "...?" "너 주장 때문에 그러는구나?" "..!" "주장하고 같은 방 쓰는게 불편해서 어제도 그렇게 떨었던 거지? 잠도 못 잤겠네?" 정곡을 지르는 정환의 말에 뜨끔하는 지성. 정환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일침을 가한다. "어이그 바보야, 너는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여태까지 지내보며 그런 눈치도 안 기르고 뭐했냐?" "하..하지만 주장은 너무 무서운걸요.." "다 유도리로 하는 거지, 유도리!!! 내가 방법 하나 전수해 줄까?" "..?" "이름하야, 홍명보 꽉 잡는 방법, 딱 한마디로 끝나" "그게..뭐에요?" "...맨 입으로?" 그럼 그렇지..-_- 초롱초롱하던 지성의 눈이 한 순간 띠껍게 변한다. 후배가 씨부렁 거리거나 말거나, 일단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듯 꾹 닫힌 정환의 입술은 과연 정환다운 이해타산력과 뻔뻔함의 관록이 엿보이는데.. "..쉐끼, 이태리 가더니 뻔뻔함만 배워왔나.." "므야!?!" 순간 뒤에서 들리는 묘하게 비꼬며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소리에, 정환이 꼬불꼬불한 파마로 눈을 찌르는 불상사를 감수하면서까지 힘차게 뒤 돌았다. "요..용수형!"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리스마 넘치는 현 국대에서도 원조 카리스마로 분류되고 있는 최용수. 용수가 등장하자 기세등등하던 아니(Ahn)는 한풀 꺽힌 눈치, 지성은 때마침 등장해준 용수를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응시하고.. "자, 안정환이가 말하는 작전 한번 들어볼까?" 용수는 선배의 느긋함으로 이에 응수해준다. "...ㅠㅠ" 중간에서 등터진 건 순진한 지성에게 삥 뜯어보려던 정환. 예기치 못한 복병의 등장으로 정환은 순순히 작전을 실토하기 시작하고... 10시, 대표팀의 오전 연습이 시작 되었다. 오늘 그 똘망에 젖은 눈동자가 더욱더 빛을 발하는 지성. 그러나 불행이도 그것은 볼을 향해서가 아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달리며 선배고 후배고 감독이건 간에 앞에 밟히는 게 있으면 가차없이 쓰러뜨리고 있는 한 선수에게 향해 있었으니.. "명보, 달려야지!!!" "을용아, 여기-" "선홍, 패스!!" ..;; 그것은 바로 김남일 이었다. (어떤 면에서든) 해결사 안정환은 "오늘 하루동안 김남일이 홍명보를 어떻게 대하는가-" 에 대해 보고 배우라는 아리송한 말만 한 채 흥흥대며 사라졌고, 고로 지성은 지금 공이 아닌 남일만을 따라다니며 그가 명보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인 것이다. -퍼억! "박지성 야이 쉐키야, 내 얼굴이 뽈이냐!! 왜 아까부터 자꾸 쳐다보고 지랄이여~지 쪽으로 뽈이 가는지 안 가는지 관심도 없지!!" 배움에 허덕이는 후배의 선망의 눈동자도 몰라준 채,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가차없이 지성의 머리로 강슛을 날리는 남일. 지성은 머리를 긁으며 재빨리 볼 컨드롤을 해 보지만, 이미 남일의 눈 밖에 난 듯 하다. "잠시 타임!!! 10분 쉬었다 다시 가자!!!" 박항서 코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각기 드리블하던 볼을 퉁 튕기어 놓고 그라운드 가에 몰려앉는 선수들. 제각기 강도높은 훈련에 지쳐 헥헥거리고 있을 때- "명보, 물 패스-" "......................................." 그러나, 남일의 한 마디로 그라운드는 정적에 휩싸였다. 농담따먹기를 하며 시시덕거리다 순간 마주보며 굳는 양 정환, 장갑의 제질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다 일순 말이 없어진 세 수문장 병지, 운재, 은성. 다리 근육을 풀어주며 마주웃다 고개를 숙여버리는 종국과 영표. 등.등.등. 그리고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장본인은 바로 대표팀의 막내, 영원한 귀염둥이 지성 이었으니. ..명보형이 화를 내실거야, 아무리 그래도 선후배간에 예절이라는 게 있지..?? 그런 지성과, 아니 굳이 따지자면 지금 히딩크 감독과 이야기하고 있는 저 멀리의 선홍만을 뺀 모든 국대들의 예상을 뒤엎은 채, 명보는 잠시 남일을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휘휘 돌려 노란 물병을 찾아내곤 손을 뻗어 물병을 집더니, 가볍게 던진다. "Thank you-" "..싸가지 없는 쉑히-" 영표가 대놓고 한마디 하지만, 남일은 그런 영표를 "니가 어쩔껀데, 새꺄"라는 눈빛 정도로 가비압게 무시하고 물통 뚜껑을 여는데.. "우와.." 바로 옆에 옆에 앉은 남일을 쳐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리는 지성. 그 천하의 카리스마 주장에게 저리도 당당하게 응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지성에게는 순간 남일의 온 몸에서 빛나는 오로라가 나온 것만 같이 느껴진다. "거 봐, 내가 뭐랬어?" "형..정말 명보형이 아무말도 안 하시네요.. 대단해요, 정환형,,그걸 알아내다니." "쿡-다 노~하우 아니겠니?" 혹시 명보가 들을새라, 소근소근 말하던 정환이 자랑삼아 자신의 파마머리를 찰랑찰랑 해 주자- "아, 씨팔! 땀 튀잖아요~그 머리 좀 어떻게 해요!!" 곧바로 옆에 앉은 남일에게서는 반응이 온다-_-;; 그리고 저녁시간. "뭐어??" 지성에게 또 한번의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속이 조금 안 좋아 먹지않은 점심 식사때 같은 테이블에 앉을 선수들을 정했는데 방배정 순으로 해 자신이 명보의 앞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저..저기 형-" "응?" 지성은 황당한 마음에 일단 그 말을 전한 태욱의 바짓가랭이부터 잡는다. "왜 이래, 임마?" 당황하며 바지를 추켜올리는 태욱. 지성은 한껏 애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는데.. "형있잖아, 나하고 자리 좀 바꾸면 안 될까?" "...;;" 태욱은 잠시 할말을 잃고 왠일로 울려고 하는 후배 지성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평소 독실한 신앙으로 얻어진 최목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아버지, 이 어린양이 부디 소화 잘 할 수 있게 도와 주소서" "혀..혀엉~" "미쳤냐, 임마? 명보형 앞에서 뻔히 쳐다보며 밥 먹게? 차라리 남일이 형 옆에 앉겠다-!!!" 그러나 최목사도 지성의 고통을 대신해 줄수는 없는 듯, 줄행량을 쳐 버리고.. 혼자남은 지성은 비통해 하는데.. "..왜 저러지?" 마침 선홍과 함께 휴게실 앞을 지나던 명보는 룸메이트 지성이 바닥에 눈물을 흩뿌리는 것을 보고 그 원인제공자가 본인인 줄도 모른 채 큰 눈을 꿈뻑꿈뻑 댄다. 빙글빙글 웃으며 명보를 잡아끄는 선홍. "오해는 본인이 푸는 게 좋지, 우리 명보 얼마나 귀여운데..그지?" "..무슨 소리야?" 갑자기 볼을 잡아당겨오는 선홍에 무뚝뚝한 인상을 더욱 찌푸린 명보이지만, 불행이도 절친한 친구처럼 눈치가 빠르지 못한 우리의 주장님은 오늘도 지성에게 "멀고도 먼 당신"이다. PM 7:00 -대표팀의 저녁식사. 저녁도 안 먹을꺼라고 뻣대다 영표와 종국에게 질질 끌려오다시피 식당으로 들어온 지성은 우연스래 식판을 들고 한 선수 뒤에 섰다. 그리고, 곧 그가 홍명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감사합니다" 지성이 뒤에 있는지 없는지 별 신경도 안 쓰는 듯 묵묵히 앞을 보고 선 명보. 지성은 식판을 들고 밥을 퍼주시는 아주머니들께 일일이 목례하는 명보의 뒷통수만 보고 난감해 하는데.. 선배가 하는 것을 후배가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명보의 인사는 뒤에 있는 자신에게도 인사를 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들려온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명보를 따라 인사하는 지성. 순간, 지성의 눈동자가 튀어나올듯이 커졌다. 명보가 흘낏 뒤 돌더니 자신을 향해 씩-웃는 것이 아닌가!!! 지성은 꿈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뒤에서 아니(Ahn)가 쿡 찌르는 것으로 보아, 꿈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명보형이 나한테 웃어 주시다니... 그 돈주고도 못 본다는 희귀한 명보의 웃음을(엄밀히 따지자면 미소였음-_-;;) 본 지성은 못내 스스로가 자랑스러운데.. 분명 자신을 보고 웃어준 것이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면근육이 약간 풀어진 지성은 스스럼없이 명보의 앞에 앉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종국, 영표, 태욱, 천수등, 크리스쳔 패밀리를 쳐다보고, 그 사이에서 "밥 좀 먹자, 썅-"이라고 구정거리는 남일을 쳐다본 후, 지성은 이제 명보가 수저를 들었겠지-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래 명보를 쳐다본다. 그러나 후배들이 기도를 하건 욕을 하건 관심없이 수저를 들려던 명보는 "아참-"이라고 작게 읊조린 다음 일어서 예의 그 걸음거리로 성큼성큼 식당을 나서 버리는데.. ...배고픈데..밥 먹고 싶은데..ㅠㅠ 점심을 못 먹어 배가 고픈 지성이지만 대선배님께서 자리를 떴는데 어찌 먼저 수저를 들겠는가? 그것은 개싸가지로 소문난 김남일조차도 하기 어려운 일인 고로, 하물며 어린양 지성에게는 선택의 여지 없이 그것이 1시간이 되든 2시간이 되든 명보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15분이 지나고, 동료들이 슬슬 밥을 다 먹어갈 즈음 다시 입구로 황망히 들어서는 명보. 지성은 반가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안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갈비찜이 바로 앞에서 식어가고 있는 것에 애통했던 것이다. "밥 안 먹고 왜 그러고 있어?" 조금 놀란 듯 큰 눈을 더 크게 뜨는 명보에 지성은 실없이 웃고.. "그..그냥요" "자-" 명보는 그런 지성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 명보가 내민것을 쳐다보는 지성. 그것은 보온병- "이게 뭐에요?" "너 속 안 좋다고 점심도 걸렀다며. 생각 같아서야 소화제를 먹여야 하겠지만 도핑 때문에 그건 어렵고, 궁여지책으로 유자차야. 유자가 소화를 돕는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어서" "..." 명보에게서 보온병을 받아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지성. 명보는 점심 때부터 이미 지성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먹어보고 나으면야 좋겠지만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기에 지장 없도록 몸조리 잘 해, 먹자" 앞에 사람이 감동을 받든지 말든지, 또다시 묵묵히 현재의 일에 충실하는 명보. 눈가가 시큰해지는 지성은 목이 메 그날 저녁 결국 식사를 반이나 남겨야 했다. "여보세요. ............네, ...........네, ............그냥 그렇지요, 뭐.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저녁, 폴란드전을 이틀 앞두고 있기도 한 6월 2일. 아까 식사때 조금 녹았던 분위기는 또다시 제자리다. 이층에서 베게에 얼굴을 묻고 창가에 서서 전화를 받는 명보를 보는 지성. 오로지 앞만을 쳐다보며 얘기하는 명보에, 지성은 사무적인 전화 이겠거니 했다. "누구하고 통화하신 거에요?" 일단 남일처럼 막말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격식을 좁히고 싶어 먼저 말을 거는 지성. 명보는 예의 그 무뚝뚝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 ...;; 새벽 2시. 꿈에서 자신의 논스톱 슛이 그대로 폴란드의 골문을 가르는 순간-"헉!!"하며 선홍은 축축해진 이마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만해도 짜릿한 꿈에 머리를 설래설래 저으며 조심하며 이층침대에서 내려오는 선홍, 새끈거리며 가끔 혜원아..라고 마누라 이름을 부르는 정환을 보고 씩 웃은 선홍은 도무지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슬며시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적막한 복도를 걸으며 아무도 없을 로비로 천천히 걸어나가는 선홍, "..어?" 고개를 옆으로 까닥-하며 선홍은 조금 묘한 표정이 되는데.. 갈색등이 켜져 은은하게 비치는 로비에, 익숙한 누군가의 뒷 모습이 보였던 것. "...호.." 반가운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선 선홍이 명보를 부르려 하지만, 이내 선홍은 약간 의아한 눈동자로 걸음을 늦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서 났는지 레이스가 달린 거울을 이리 비추고 저리 비추며 뿔을 내고 있는 명보, 선홍은 저 친구가 왜 또 저러나 싶어 거울에 모습이 반사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다가가 보는데... "..내 얼굴이 그렇게 무섭나?" "...?" "이렇게 하면 인상이 좀 좋아 지려나.." 근심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눈꼬리를 내렸다, 올렸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그것도 로비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주장. 다른 국대들이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떻게든 "홍명보, 이런 모습 처음이야" 라는 타켓으로 몰카를 찍어 떼돈을 벌어보려 애쓸 테지만, 너무나 충분하게도 명보를 알고 있는 선홍은 예의 유한 눈꼬리를 내려 웃는 것만으로 놀라움을 대신했다. "우리 주장님, 야심한 밤에 이 무슨 생쑈이신지요?" 짐짓 웃음을 참는듯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명보는 자칫 들고 있던 거울을 떨어뜨릴 뻔했다- 누가 봐도 자신의 행동이 이상한 짓이었기에 변명도 하지 못하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천천히 뒤도는 명보. "휘유.." 그 "누군가"가 선홍이라는 사실이 못내 다행인 듯,(사실 선홍이 아니라면 그렇게 비꼴 사람도 없지만) 명보는 쇼파에 몸을 묻으며 거울을 내려 놓는다. "..사람 간 떨어지게 좀 하지 마" 볼멘소리로 명보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중얼대자.. "하하~? 누가 할 소릴?난 레이스 거울을 보는 공주님의 모습에 간이 이미 떨어졌는걸?" 느긋한 선홍은 되래 명보에게 강력한 어택을 가한다. "누가! 그저 여기 있던 거 잠시 본 것 뿐야.." 명보는 애써 하지 않아도 될 변명까지 하며 잔뜩 골이 난 눈치. 선홍은 명보가 레이스 거울을 봤다는 것 보다도 왜 이 친구가 새벽 2시에 깨어 있가가 더 놀라운데.. "왜, 잠이 안 와?" 선홍이 명보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그와 마주앉자, 명보는 미간을 찌푸리며 짧게 답했다. "아니" "그런데 왜?" "..내가 있으면 잠이 안 오는 사람이 있어" "뭐?그게 무슨 소리야?" 선홍은 되묻지만, 이미 대충 눈치는 챘다. ...지성이 이놈, 얼마나 눈치채게 행동했길래 천하의 둔탱이 홍명보가 눈치를 깠냐.. 골 때리누만-_- 이놈이나..저놈이나..;; "아까 보니까 지성이 잠들었던데? 웬 방문도 훨쩍 열고 불도 안 끄고 대자로 엎어져 자길래 내가 불 꺼주고 왔다." "아..그래?" "에구..안정환이가 지성이 반만 닮았으면.. 녀석,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니까? 한번은 지 발 닦은 수건을 욕실에 걸어놔서 내가 얼굴 닦은적도 있을 정도야" "..괴로웠겠구나-_-" "아, 젠장. 얼굴을 닦는데 뭔가 쿰쿰한 냄새가 나는거야, 쉐끼 그래놓고 나보고 뭐 그런일로 승질이냐고 되래 지가 큰소리야." "..지성이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럼 너랑 나랑 바꿀까?" "...나도 하루종일 드라이만 하는 머리우스는 사양이야." 명보는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정색을 하며 정환, 일명 "머리우스"와의 룸메이트 제의를 거절했다. 팬들이야 반반하게 생긴데다 부드러워 보이는 정환을 "테리우스"라고 부르지만, 대표팀에서는 머리만 한번 감았다 하면 드라이를 무려 30분간이나 하는 정환을 "머리우스" 라고 부르는데 만장일치했던 것이다. "그럼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 할래? 나도 워낙 무시무시한 꿈을 꾼 지라 잠이 안 와서." "..그럴까?" 느릿느릿, 명보가 일어난다. 6월 3일 새벽, 두 노장의 로비에서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6월3일 아침. 꿈벅꿈벅 눈을 뜬 지성은 몇초간 그대로 있다 헉-하고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제 밤 방을 나간 명보가 들어오길 기다리다 졸음을 못 이겨 그대로 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어쨌든 대선배가 방에 들어오기도 전에 벌렁 뒤집어져 잠을 자다니.. 명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스러워 방 여기저기를 둘러 보지만, 아무래도 어젯밤 상태 그대로인 이부자리와 가지런한 슬리퍼까지- 명보는 아무래도 어젯밤 들어온 것 같지 않다. 명보와 방을 쓰는 요근래 혹 자신이 삐걱거리면 밑에 있는 선배님의 귀에 거슬릴까 작은 뒤척임 하나에도 신경을 쓴 지성이지만, "나는 잠이 깊게 드는 편이라 왠만큼 큰 소리가 아니면 신경쓰이지 않는다" 라고 아침에 뜬금없이 말하던 것과 어젯밤 아예 들어오지 않았던 명보의 행동에 지성은 뭔가 조금 깨달아가는 눈치인데... 과연 지성이 김남일처럼 명보를 친구 대하듯 하는 날이 올 것인지, 명보의 새로운 모습과 보너스로 선홍의 폭주하는 모습까지 보게될 것도 모른채, 폴란드전을 하루 앞둔 6월 3일 아침, 대표팀의 어린양 지성은 그렇게 자신도 모를 약간의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다. "~♬" 트레이닝 복 자크를 올리며, 지성이 훈련할 채비를 마치고 일찌감치 방을 나섰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바로 마주보는 호수에다 문을 훨쩍 열고 면도를 하고 있던 정환. "안녕히 주무셨어요" 지성이 반누드 차림의 정환을 -_-이런 눈으로 쳐다보며 인사하자, 정환이 읽던 신문에서 눈을 떼고 웃는다. "어, 그래. 지금 나가냐?" "네.." "나 지금 거의 준비 끝났는데 같이 나가자. 머리만 말리면 끝나" ...또 30분 잡아먹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나즈막히 한숨을 쉰 지성이 정환의 방으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다. 여전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로 들어가는 정환, "그래-어떻게 명보형하고는 잘 지내고 있냐?" 쏴아-하고 물트는 소리와 함께, 곧 욕실 안에서 정환의 말소리가 들린다. 정환에게는 몇일사이 그것이 못내 궁금했던 모양인데.. "아니요.." 긍정적인 답을 기대했던 정환의 바램과는 달리 영 생퉁맞은 대답을 하는 지성.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정환이 수건을 들고 얼굴을 닦으며 지성이 앉아있는 창가의자를 향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왜-? 내가 남일이처럼 하면 직빵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말이야 쉽죠..하는 눈빛으로 지성은 여전히 자신없는 표정인데.. "어이그, 소심한 자쉭, 숟가락으로 떠 맥여줘도 제대로 못 받아먹냐.." "명보형이 화낼 거에요" 지레짐작하는 지성에, 어느새 다가온 정환이 머리를 꽁 박는다. "바보야.. 주장이 그런 걸로 화낼만큼 소심해 보이냐? 주장이 넌줄 알어?" "그래두요.." "남일이처럼 "명보"라고는 못 불러도 친근하게 명보형~♡ 이쯤은 해 줘야지. 주장이 의외로 애교많은 타입을 좋아한다, 너?" "별로 그래 보이지는 않던데요..;;" "야~이 자식이 이제 나도 안 믿네?!? 주장은 대범하고 무뚝뚝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너같이 소심한 후배가 조금만 웃으면서 꼬리치면 금방 넘어온다니깐~" "...제가 꽃뱀인가요-_-;;" 뭘 믿고 저리도 자신만만한지 일명 "명보학 박사"라고 자청하는 정환, 과연 그럴까? 중요한 경기를 하루앞둔 최후의 연습인 셈이었던지라, 그간 명보일로 고민이 많았던 지성도 잠시 그 일은 잊고 대범하게 연습에 열중한다. "여기요!!! 명보형!!!!" "선홍형, 패스!!!" ..대범하게 말이다;; 내일 있을 경기를 대비하여 기름기가 없는 깔끔하게 담백한 요리로 주류를 이룬 저녁. 뷔폐식인지라 삼삼오오 맘 맞는 선수들끼리 접시를 들고 음식을 집어가고 있는데.. "아이, 씨발- 내가 먼저 찜했잖아!!!" "뭐야~ 줄 반대로 오는 놈이 어딨어! 이거 내꺼야!!!"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동갑내기 영표와 남일의 신경전-_- 사소한 부추찌짐 하나에도 둘 사이에 양보란 있을 수 없는데.. "아, 진짜 열받게 하네! 새꺄, 내가 먹는게 그렇게 꼬우냐, 꼬와?" "이게 엇다대고 이새끼 저새끼야? 내가 니 새끼냐??" 남들은 동갑이라 잘만 지낸다던데, 이래가지고 둘이 경기할 때 서로 패스나 제대로 하려나..;; 모든 국대들이 땀방울을 달고 만만찮은 둘의 싸움을 방관할 때- "그..그만들 좀 하세요" 뒤에서 마침내 핏대까지 세우는 둘을 보며 종국이 소심하게 말려 보지만, 애초에 종국의 말을 들었을 것 같으면 나지도 않았을 싸움이다. "아 씨바, 엿같네! 안 그래도 열 받아 빡돌겠는데.." "씨밸놈, 성질 좀 죽일 것이지 맨날 지분에 지가 못 이겨서 욕질이야.." "뭐야!?!" "-그만해라" "선홍형.." 종국의 반가운 부름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느긋하게 접시를 쥔 채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둘을 바라보는 선홍. 아무리 남일이 무서운 것이 없다해도, 이 대선배만은 조금 예외인 것인지 왠일로 그가 연장전으로 가지 않고 입을 다문다. 영표 역시 남일만 만나지 않으면 서글서글-꽤 괜찮은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이 분명한 고로, 묵묵히 서 있는 중. "..이 찌짐은 내가 먹으마. 그러면 되겠지?" 여유로이, 선홍의 손으로 부추찌짐이 넘어갔다. ...선홍형도 은근히 저게 먹고 싶었던 걸까..? ...귀여운 의문에 휩싸인 지성. 안 그래도 면도칼 씹은 얼굴에 더 인상을 긋고있던 남일과, 큰눈을 더 크게 부라리는 영표에 내심 쫄고 있던 지성이라, 선홍의 의도가 어쨌든 지성에게는 국대들의 평화로운 식사 분위기를 되찾아준 맏형이 고마울 따름인데... "아참, 그러고 보니 명보가 안 보이네..? 상철아-아까 명보하고 같이 안 있었냐?" 선홍이 언뜻 생각난 듯 상철에게 묻자, "아..같이 있었는데 먼저 밥 먹으러 가라고 해서요, 명보형 요 앞에 계실걸요" 상철은 머리를 긁으며 식당 정문을 가리킨다. "그래? 밥은 같이 먹어야 제맛이지- 야, 김남일. 가서 명보 불러 와" 남일에게 미운털을 박은건지, 오늘만해도 멀쩡한 줄에 남일이 끼어든 꼴이니 그가 잘못했다고 판단한 선홍은 굳이 남일을 지목해 명보를 불러올 것을 명령했다. "..내가 동네 북이야..씨팔,,맨날 나야" "뭐야, 불만이냐?" 그래, 불만이요-라는 볼멘소리가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평화로운 식사분위기를 위해 접시를 틱 던져놓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껄렁껄렁 식당을 나서는 남일. 왜인지 불길한 예감에, 국대들은 잠시 먹는 것을 중단하고 남일을 쳐다보고 있는데.. 왜 타이밍은 이다지도 좋은 것인가!?! 선홍이 굳이 남일을 시키지 않아도 좋았을 듯-명보는 그만의 약간 서두는 듯한 독특한 걸음걸이로 식당 입구에 나타났다. "..." 목표물이 나오자 비죽이 입꼬리를 올리는 남일. 그리고 뭔가 이상한 식당 분위기에 두리번대는 명보. 남일이 뭔가 말할 듯 입술을 달싹이는데.. "마침 오는군 명보, 밥 먹지." "..." 그 때, 그라운드에서의 짧은 침묵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다량의 침묵이 식당을 감싸고 돌았다. 여기서 잠깐 국대들의 눈빛으로 마음을 읽어 보실까, 입맛이 별로 없는 듯 이것저것 음식들을 뒤적이다 내려놓고 결국 토스트 한조각을 아삭-베어물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야 만 대표팀의 노장 중 한명 상철은 ..저 놈이 진짜 미쳤나.. 라는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로 남일의 뒷통수를 응시했고, 한때 한 "튐"했던 꽁지머리 병지는 저 새끼는 나보다 더해.. 라는 듯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으며, 영표는 큼-하고 콧소리로 애써 웃음을 참은채 꼴통쉐끼,,유 다이(너 죽었어) 다!! 라고 기독교 답게 명복을 표했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오늘 이 성스러운 식사자리가 파토..아니아니, 불미스러운 일로 말미암아 저희 대표팀에 평화가 깨어지지 않도록.. .." ..그리고 영원한 기도맨 종국은 두 손은 맞잡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종국아-이것 좀 맡아 줄래" "..아, 예" 난데없이, 묘하게 침착한 소리에 실눈을 뜨고 앞을 보니 언제나 온화하며 부드러운 대표팀의 맏형 선홍이 끼고 있던 안경을 벗어 자신에게 내미는 것이 보인다. 일단 기도를 멈추고 받아드는 종국, 그러나 종국은 앞으로 0.01초 뒤에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예측을 못한 채 였다- "야이 졸같은 쉐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꿈쩍- 이건 분명, 자신의 앞에서 여전히 굳어있는 명보가 내지른 소리가 아니었다. 남일은 갑자기 뒤에서 오한이 느껴진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반사적인 자기방어와 함께 몸을 잔뜩 움츠렸다!! -퍼억 퍽 퍼어어억!!!! 무차별적으로 난타되는 펀치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남일, 완전히 깔린 남일의 위에는 선홍이 "이 쉑히야, 니가 양키놈이냐, 어디 선배를 이름으로 불러 명보가 니집 똥개 새끼냐-"등의 고함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고 있는데.. 그야말로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아무말도 못하고 얼어있는 국대들. 평소 한번 안경을 쓴 다음 반응이 좋자 걸핏하면 안경을 쓰고 나와 서글서글한 눈매로 웃던, 농담 따먹기의 대상이자 친구같은 고참이었던 황선홍이 저런 인물일 줄이야- 저건 「헐크」 저리가라이지 않은가!! 지성은 정신 못 차리고 맞고 있는 남일과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불가능한 선홍의 펀치를 보며 울 듯한 표정이다. 역시 히딩크 감독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것이 너무 과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고참들의 "선전포고" 인데.. "저..정환형,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잔뜩 떨며 지성이 묻자, 담담하려 노력하지만 지성 못지 않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정환은, "저걸 지금 말리는 건, 불난 집에 가스통 메고 들어가는 짓이나 마찬가지야" 라고 이치에 맞는 답을 했다. "나는 아직 우리 혜원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다-" ...라는 소박한 중얼임도 덧붙여서. 그러나 정작 소리만 컸지 바닥을 쿵쿵 때린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남일에게 줄 고통을 최대한 피하며, 줄곳 선홍이 쳐다본 것은 명보였다. 명보가 남일을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다 식당을 나서자 비로소야 남일을 풀어주며 "하아.." 하고 괴로운 한숨을 내쉬는 선홍. 생각지도 못한 선홍의 어택에 "왜 때려요!!!"라고 남일은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꼬리까지 단 채 억울해 하는데.. "너, 지금 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어?" 진짜 큰일이라고 난 듯 착 깔아앉은 선홍의 중얼거림. 과연 무슨 일로 선홍형이 저럴까.. 맞은 남일 뿐 아니라 모든 국대들이 우르르 선홍과 남일의 주위로 몰려와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내가 뭘 어쨌길래요!!" 그래도 이왕 당당하게 나간 김에 끝까지 밀고 나가자는 듯 굽히지 않는 남일. 그러나 왜인지 모를 불안한 예감에 그의 얼굴에는 한줄기의 식은땀이 가르는데.. "정말로 홍명보의 성격을 모르느냔 말이다.." "..??" "그게..뭔데요?" 모든 국대들의 바램을 대신해, 천수가 안 나오는 목소리를 짜내듯 선홍에게 재촉했다. 난감해 하는 선홍. "남일이 너 혹시- 저번에도 명보 어쩌고 한 적 있냐?" "없어요." 단언하는 남일에- 듣고있던 영표가 발끈하여 소리친다. "왜 없어, 얌마! 너 저번에 명보 물 패스, 그랬잖아!" "..-_-炚" "뭐어? 야이 븅신아!!! 너 진짜 미쳤냐?" 퍽-하고 남일의 뒷통수를 시원스래 강타한 선홍. "아, 씨발! 눈깔 튀어나오겠어요, 고만 좀 때려요!!!!" 남일이 불평을 하건 말건, 선홍은 머리를 감싸쥔 채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고.. "???" 보고 있는 국대들은 그저 궁금해 죽을 따름인데.. "너희들은 모른다.. 90년 이태리 월드컵의 전설을.." 이런 분위기 있는 나래이션으로, 선홍은 그때까지만 해도 대표팀의 귀염둥이 신참 이었던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지성은 그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불쑥 앞으로 나서 버렸다. 생각을 고르고 있던 선홍은 지성의 물음에 피식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 말머리를 여는데.. "..90년 이태리 월드컵이라면, 나와 명보를 뺀 나머지 너희들 중에 성인이었던 사람은 없었을 거다. 더군다나 지성이 너는 고작 9살??정도였겠지. 아무튼 명보의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아." 별 것도 아닌듯한 얘기가 그저 주장의 먼 옛날-_-; 파릇파릇했던 그때 그 시절이라고 생각하고 한층 진지하게 듣는 국대들. 거기에 탄력을 받은 선홍은 더욱더 은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당시 명보는 월드컵 첫 출전으로서 국내에서 그 지명도는 대단했지만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일 뿐 이렇다할 국제대회 성적은 없었어. 그런데, 명보가 2월 생이잖냐, 그래서 나하고도 그냥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사이었는데 당시 외국에서 활약하던 나와 동갑네기의 김순호라는 녀석이 명보한테 태클을 걸었던 거야" "-어떻게요?" 국대들은 일제히 물었다. 궁금함에 눈알을 반짝거리는 후배들을 보고 훗-하고 여유있게 웃는 선홍. "그 당시에는 선후배간의 규율이 상당해서 후배들은 선배몫의 빨래까지 다 해야 했거든. 김순호 그 시건방진 녀석이 88년부터 좀 뛰었다고 같은 또래이면서 명보한테 빨래를 떠넘긴거지, "야, 후배 빨래 좀 해라"고 말야" "그..그래서요?" 그 어떤 영화가 이보다 스펙터클하며 서스펜스할 수 있을까;; 국대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이야기 보따리인 선홍의 입만을 주시하고 있는데.. 잠시 옆에 놓인 이온음료로 목을 축인 선홍이 말을 잇는다. "너희는 명보가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빨래거리를 엎어요-" "한판 붙죠!" "쏘아봤을 것 같은데요" "씨발-하고 한마디 해야죠" "..김남일, 명보가 넌 줄 아냐?" 각양각색의 의견 끝에 유심히 듣고 있던 남일이 한마디 하자 선홍은 다 틀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말도 없이 빨래를 했어, 묵묵히-" "네???"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하는 국대들. 천하의 카리스마 홍주장이 어찌 그 수모를 견뎠는지, 국대들은 명보를 대신하여 10년도 넘은일에 분통을 터뜨리는데.. "나는 녀석이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빨래를 하는 모습에서 "아..이놈 정말 참을성이 좋구나" 라고 속으로 감탄했어. 역시 크게 될 녀석이야..라고 말야, 뭐, 순호 녀석은 잠깐 반짝하고 말았던 거라 그 뒤 월드컵부터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나는 심각히 오해하고 있던 부분이 있었지" "..그게 뭔데요?" "..바로 내가 명보를 너무 과대평가 했다는 거였어. 너희들 모두 지금 속으로 명보형님은 정말 괜찮은 사나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지?" "..네;;" "..작년 말에, 축구인들의 모임이 있었어. 지방대학에서 축구부 코치로 있다는 순호녀석이 어쩐일로 서울행사장에 온 거야. 그래서 명보와 나더러 다가와서는 아는 척을 하는데, 명보와 악수하려고 순호가 손을 내밀자, 명보가 내뱉은 한마디는 이거였어." "..?????" "...누구시더라?" "..............................................." 잠시, 선홍이 한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국대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역시나 꾀돌이답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영표, 조심스래 의견을 제시해 보는데.. "그럼, 명보형이 아직까지도 화가 안 풀리신 건가요?" "바로 그거야!!!" 눈치빠른 영표에 흐뭇해하며 무릎을 탁!치는 선홍. "설마..!?!" "명보는 11년이 지난 그 일을 잊지 않았었던 거야. 한마디로 삐.진.거.지!!!!" "헉!!!!!" 삐..삐졌다, 라!!! 무서운 기류가 대표팀의 사이를 돌아다녔다. 카리스마 넘치고 대범해 보이는 주장에게, 그런 소심한 면이 있었다니!! "..너희는 명보가 그때 남일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구나, 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명보는 그때 삐져 있었던 거라구!!" "..이 일을 어찌하나.." 골머리가 아프다는 듯, 남일이 머리통을 감싸쥐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내가 오늘일만 있었다면은 어찌 명보화를 풀어주려고 오버액션을 취해 봤다지만.. 이미 전과가 있어서 남일이 너는 힘들겠다." 낙담하는 남일에게 한줄기 빛마저 차단하는 냉정한 선홍. "아, 얘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군. 멀티비젼실에 8시까지 가야 하잖아" 숨겨진 주장의 지난 과거가 목에 캥겨,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있는 국대들. 어린양 지성의 심란함도 그렇지만, 사건의 장본인인 남일은 지금 죽을 맛인데.. 아..씨바,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겨갖고 왜 삐치고 그러냐..주장은.. 못 살겠네~ 과연 이런저런 사건들의 좌충우돌 대표팀에- 내일 폴란드 전과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역시 예상데로 대 폴란드 전을 하루 앞둔 날, 명장 히딩크 감독은 고루한 전술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내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분명 폴란드는 어려운 상대지만 우리에게는 그들과, 나아가서는 미국, 포르투칼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단지 그것을 폭팔시키기에 48년의 시간 이 필요했을 따름이다, 너희들을 믿는다."라고 짧게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래도 불안한 듯 발을 동동 굴러보는 지성. 히딩크 감독과 눈이 마주치자, 감독은 그만의 매력적인 윙크를 지성에게 선사하며 선수 모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린다. "You are best!!" 당당히 멀티비젼실을 나와 숙소로 올라가는 대표팀- 그저 여유로운 웃음으로, 그 존재만으로 언제나 후배들을 안심시키는 맏형 선홍서부터, 도대체 햇빛 하나 없는 이 밤에 호텔 7층에서 보라색 선글라스는 왜 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약간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정환, 말은 별로 없지만 확고한 눈빛으로 필승을 다짐하는 스타일은 비슷한 고참 상철, 용수. 원체 표정에서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심이 365일 구비되어 있는 개삭아지 남일과, 잔잔한 눈빛이지만 반드시 이기겠다는 확신을 가진듯한 종국.. 그 사이에서 우리팀은 최고다-라는 마인드 컨드롤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 막내 지성까지. 지금 대표팀의 컨디션은 한마디로, 최강 이다. "야, 우리 협상 하나 하자" 두리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계단을 내려가려는 영표를 잡는 건 언제나 들어도 띠꺼운 남일의 목소리. "...무슨?" 영표 역시 두리를 대할 때 피어났던 얼굴의 웃음꽃은 온데간데 없이 냉정한 얼굴로 응대하는데.. "내일 우리, 서로 패스하자." ...저 한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