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旧韓国末義兵写真 . 古い韓服の身なりの義兵と旧式軍隊の軍服を着た義兵

 

 

 

 

露日戦争当時義兵の死

日本は韓国の独立意志を折って警戒心を覚ますためにこんな残忍な写真を撮って陳列したり

したと言います

 

法治主義話す日本人がいてあげたんですがこんな残忍な虐殺も法治主義に即した

行動でしょうか?

 

 

梁起鐸問題と係わる 三浦 対 コボン事件

 

1. コボンが直ちに 人渡を拒否したことは 梁氏[梁起鐸]の拘留に対して両国政府の間の交渉が

 

あったから正当だと言ってもその交渉はコボンが梁起鐸の拘留がベデル裁判と関連が

あると誤解した報告に起因した

梁起鐸の逃走に対して条約規定の移行を要求した都合だったが拘留問題と 人渡請求問題は

当時もう全面的に別個の事件になっていた

これを混乱するコボンの措置は正当ではないことだ

 

2. コボンが 人渡 訓令をイギリス本国から受けたけれども 梁氏を重病人だと主張して

その 人渡を引き延ばしたことはむしろ事実を売り渡したことだと言える

 

3. コボンがいつも同盟国の領事館として態度を取っていないこと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

英政府では根本問題の 梁氏 人渡と交渉拒絶に対して皆私たち主張を受け入れた以上

文書作成問題に対して一歩譲歩してもやっぱり変ではないだろう

 

 

統監府文書

 

http://db.history.go.kr/url.jsp?ID=jh_tg_004r_0090_0850

 

 

 

韓国を訪問したイギリスまもなく新聞  [インディペダント]のパトリックコボン待機者が大韓帝国  末期

 

イギリス総領事を勤めたヘンリコボンに対して話した彼はヘンリコボンの孫だ

パトリックコボンは [インデペンデント]にヘンリの戦争 -強制人渡に対する反対闘いという題目の 5枚

分量の記事を書いた

日帝統監府が韓国言論である梁起鐸を 拷問するなど

弾圧した史料を捜し出していきいきと反映した

イギリス外務省と韓国中国日本の専門を捜すためにイギリス国家記録員を探したから

当時状況をどんな資料より正確に国際情勢を反映したという評価を受けた

 

ヘンリコボンは 1905年 11月 20日から 1908年 9月15日帰国するまで約 3年の間韓国に

とどまった

1908年 7月梁起鐸が日本刑務所でひどい拷問にあってイギリスの治外法権建物大韓毎日新報に

身を避けよう  日本と外交的けんかが始める

 

 

日本は梁起鐸を渡してやることを要請したがコボン総領事は 拷問しないことを約束しなさいだと

言いながら断った

イギリス外務省でも梁起鐸を渡してやることを指示したがコボンは 3ヶ月の間梁起鐸を 人渡夏至

アンアッダ

パトリックコボンは

 

 

 

お爺さん [ヘンリコボン]はもし私たちが梁起鐸を日本に渡してやったのが知られれば外交上最悪の

不名誉を作ることだと外務省を説得したと言う

 

梁起鐸の 人渡拒否が長期化されて日製の言論弾圧と 拷問 など蛮行が国際社会に知られたりした

 

こんな摩擦でヘンリコボンは 49歳若い年に外交官として引退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パトリックコボンはお爺さんが大変誇らしいと言った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18027019

 

統監府文書にはコボンイギリス総領事の梁起鐸の 人渡拒否理由に対して

[重病であると主張した ]と書いているだけ梁起鐸顧問 [拷問]を問題視した事に対しては

言及がないようです

 


법치주의에 대하여

 

 

구한말 의병 사진 . 낡은 한복차림의 의병과 구식 군대의 군복을 입은 의병

 

 

 

 

러일전쟁 당시 의병의 죽음

일본은 한국의 독립의지를 꺽고 경각심을 깨우기 위해 이런 잔인한 사진을 찍어 진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법치주의 운운하는 일본인이 있어서 올렸습니다만 이런 잔인한 학살도 법치주의에 입각한

행동일까요?

 

 

양기탁 문제와 관련된 三浦 對 코번 사건

 

1. 코번이 즉시 人渡를 거부한 것은 梁氏[양기탁]의 구류에 대해 양국 정부 사이의 교섭이

있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교섭은 코번이 양기탁의 구류가 배델 재판과 관련이

있다고 오해한 보고에 기인하였다

양기탁의 도주에 대해 조약 규정의 이행을 요구한 형편이었으나 구류 문제와 人渡청구 문제는

당시 이미 전적으로 별개의 사건으로 되어 있었다

이것을 혼돈한 코번의 조치는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2. 코번이 人渡 훈령을 영국 본국으로 부터 받았으면서도 梁氏를 중병인이라고 주장하고

그 人渡를 지연한 것은 오히려 사실을 매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코번이 항상 동맹국의 영사관으로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영국정부에서는 근본 문제의 梁氏 人渡와 교섭 거절에 대해 모두 우리 주장을 받아들인 이상

문서작성 문제에 대해 한 걸음 양보해도 역시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통감부 문서

 

http://db.history.go.kr/url.jsp?ID=jh_tg_004r_0090_0850

 

 

한국을 방문한 영국 일간 신문  [인디페던트]의 페트릭 코번 대기자가 대한제국  말기

 

영국 총영사를 지낸 헨리코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헨리코번의 손자이다

페트릭 코번은 [인디펜던트]에 헨리의 전쟁 -강제人渡에 대한 반대투쟁이라는 제목의 5장

분량의 기사를 썼다

일제 통감부가 한국언론인 양기탁을 拷問하는 등

탄압한 사료를 찾아내고 생생하게 반영했다

영국 외무부와 한국 중국 일본의 전문을 찾기 위해 영국 국가 기록원을 뒤졌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어떤 자료 보다 정확하게 국제 정세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헨리 코번은 1905년 11월 20일 부터 1908년 9월15일 귀국할 때 까지 약 3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1908년 7월 양기탁이 일본 형무소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영국의 치외법권 건물 대한매일신보에

피신하자  일본과 외교적 싸움이 시작한다

 

일본은 양기탁을 넘겨 줄 것을 요청했지만 코번 총영사는 拷問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 라고

말하며 거절하였다

영국 외무부에서도 양기탁을 넘겨 줄 것을 지시하였지만 코번은 3개월 동안 양기탁을 人渡하지

않앗다

페트릭 코번은

 

 

 

할아버지 [헨리코번]는 만일 우리가 양기탁을 일본에 넘겨 준 것이 알려지면 외교상 최악의

불명예를 만드는 것이라고 외무부를 설득하였다고 한다

 

양기탁의 人渡거부가 장기화되어 일제의 언론탄압과 拷問 등 만행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마찰로 헨리코번은 49세 젊은 나이에 외교관으로서 은퇴해야 했다

 

페트릭 코번은 할아버지가 몹시 자랑스럽다고 말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18027019

 

통감부 문서에는 코번 영국 총영사의 양기탁의 人渡거부 이유에 대해

[중병인 이라고 주장하였다 ]라고 쓰고 있을 뿐 양기탁 고문 [拷問]을 문제 삼은 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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