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サングリョングゾント

人造14年(1636年) 12月清が大軍を導いて 2次で朝鮮を侵攻して丙子胡乱が勃発します. 多数の騎兵を保有した 時の早い進撃速度にまだ逃げ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人造は 結局南漢山城で座り込みして 外部の救援を待つ世話になります.

1637年, 人造を 求めるために北上した慶尚道軍事 4万名は 1月 3日朝京畿道光州サングリョングで青瓦病 300人と戦闘をします.

当時朝鮮軍指揮官は軽傷優兵士民営とギョングサングズァビョングサホワンだったし 4万軍事の ほとんど大部分が 弔銃病でした.(朝鮮は壬辰の乱の後地方君大多数が弔銃病です.)

2万ずつ分けて民営は右の方尾根に陣を張ってホワンは左側低い所に陣を張ったが軍事たちの熟練島を信じることができなくてやっと 10発だけ支給したし 精鋭砲手たちを選んで皆中に残して中等と下等砲手は外に駆っておきました. ここにチォグァン(=中隊長) イテックが “外面が支え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中が一人きり守ることができるか.” しながら引き止めるとホワンは 1位砲手が多くないからだ. と言います.

時の先鋒 33人が木盾を持って南山上峰で列をなして突撃して誤字, 銃砲日製射撃で無事に沮止して青軍は 100 補落ちた地点で後退します.

しかし指揮官たち 言葉のように熟練島の低い砲手たちが距離(通り)もジャジーしなくて相次いでむやみにソアデはせいで火薬がもうすべて落ちて火薬をもっとくれと相次いで叫んでまた丁布数をもっと送ってくれと要請しました.

少ない 気配を気付いて再び 突撃して木柵 まん前まで 近付きます. 安東令状 (安東営将) 先約して(宣若海)が 一人で時の刃にあって手ずから矢 30余足をうったが皆木盾に当たったし矢がすべて落ちよう その席に立って一歩も移さないで時の手に死にます.

敵兵が木柵中に攻め寄せると朝鮮砲手たちはすべて一度うつことができずに自然に崩れて逃げて ホワンが臆病をつまみ食いをして 3番(回)や馬から落ちたあげく逃げた我軍に踏まれてたまらないです. これで左陣の 2だけは 崩れます.

右側に布陣した民営はチンを整理して待っている途中日製射撃時の 1次突撃を沮止します. こちらはホワンとは違い軍旗がよくであって充分に勝算がありました. しかしやっぱり弾薬を 10発だけ支給したせいにまた弾薬を分けてやるために急に急いでいる途中火繩(火繩)が火薬に落ちて火薬が台爆発, 弾薬を普及した 受領 2人と軍事数十人が爆死して兵士らは一斉に 動搖します . 

この時少なく 総攻撃したら戦意を喪失した朝鮮軍はすべて一度うたなくて逃げだして全滅されて民営も死にます. 二陣を皆破ったことは死亡者の服を脱がせて燃やしました. 青瓦病 300人手に頃, 上優兵士, 忠青兵馬節度使を始じめ数千名が戦死したし南漢山城に閉じこめられた人造は結局降参, 三伝島でひざまずきます.

がサングリョングゾントは壬辰の乱時七川量海戦, 6.25の時の懸里戦闘とともに歴史上一番荒唐な敗戦で数えら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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清だね300人が朝鮮軍4万名を全滅させた初乳の事件この事件を映画で大幅所コメディになる.


조선에도 300이 있었다.

 

쌍령전투

인조14년(1636년) 12월 청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2차로 조선을 침공하여 병자호란이 발발 합니다. 다수의 기병을 보유한 적의 빠른 진격 속도에 미처 달아나지 못한 인조는 결국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며 외부의 구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1637년, 인조를 구하기 위해 북상한 경상도 군사 4만명은 1월 3일 아침 경기도 광주 쌍령에서 청기병 300명과 전투를 벌입니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은 경상우병사 민영과 경상좌병사 허완이었으며 4만 군사의 거의 대부분이 조총병이었습니다.(조선은 임진왜란후 지방군 대다수가 조총병입니다.)

2만씩 나누어 민영은 오른편 산등성이에 진을 치고 허완은 왼편 낮은 곳에 진을 쳤는데 군사들의 숙련도를 믿지 못해 겨우 10발만 지급했으며 정예포수들을 뽑아서 모두 가운데에 두고 중등과 하등 포수는 밖에 몰아놓았습니다. 이에 초관(=중대장) 이택이 “외면이 지탱하지 못하면 가운데가 홀로 지킬 수 있겠는가.” 하며 만류하자 허완은 "1등 포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적의 선봉 33명이 나무방패를 가지고 남산 윗봉우리에서 줄지어 돌격해 오자, 총포 일제사격으로 무사히 저지하고 청군은 100 보 떨어진 지점으로 후퇴합니다.

그러나 지휘관들 말마따나 숙련도가 낮은 포수들이 거리도 재지않고 연달아 함부로 쏘아대는 바람에 화약이 이미 다 떨어져 화약을 더 달라고 연달아 소리치고 또 정포수를 더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적은 낌새를 알아채고 다시 돌격하여 목책 바로 앞까지 다가옵니다. 안동 영장 (安東營將) 선약해(宣若海)가 혼자서 적의 칼날을 당하여 손수 화살 30여 발을 쏘았으나 모두 나무방패에 맞았고 화살이 다 떨어지자 그 자리에 서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적의 손에 죽습니다.

적병이 목책 안으로 쳐들어오자 조선 포수들은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저절로 무너져 달아나고 허완이 겁을 집어먹어 3번이나 말에서 떨어진 끝에 도망치던 아군에게 밟혀 죽습니다. 이걸로 좌진의 2만은 무너집니다.

오른쪽에 포진한 민영은 진을 정돈하고 기다리다가 일제사격 적의 1차 돌격을 저지합니다. 이쪽은 허완과는 달리 군기가 잘서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탄약을 10발만 지급한 탓에 다시 탄약을 나누어주느라 급히 서두르다가 화승(火繩)이 화약에 떨어져서 화약이 대 폭발, 탄약을 보급하던 수령 2명과 군사 수십명이 폭사하고 병사들은 일제히 동요합니다 . 

이때 적이 총공격하니 전의를 상실한 조선군은 총 한번 안쏘고 도망가다 전멸되고 민영도 죽습니다. 두진을 모두 깨뜨린 적은 사망자의 옷을 벗기고 불 태웠습니다. 청기병 300명 손에 경, 상좌우병사, 충청 병마절도사를 비롯 수천명이 전사했으며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는 결국 항복,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이 쌍령전투는 임진왜란때 칠천량 해전, 6.25때의 현리전투와 함께 역사상 가장 황당한 패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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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군300명이 조선군4만명을 전멸시킨 초유의 사건 이사건을 영화로 대폭소 코메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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