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西洋の家たちと韓国の古屋が他の点の中重要なことは自然を対する方法だ. 空間配置に関して話せば概して西洋の家たちは内部志向型だ. 部屋たちはほとんど必ず廊下を通じて接続されていてたいてい中間に廊下がある構造なので 二重になった部屋が多い. 重要な部屋は外と直接繋がれる所なしに家の真ん中に位するのにその部屋は大部分一番地位の高い人が使う所で取り囲まれた重が多いほど勢力家の家だ. すぐ外部や自然は私を害することができる敵という考えのためであるはずでこれは西洋の機械論的自然観で現われる.

 西洋人の観念では 自然は征腹するための対象で建築は外部からの隠れ処であるだけなので, 自然と敵対的位置にあるしかない建築概念が西洋建築を成して来た.

 

 

 しかし韓国の昔の建築を見ればたいてい部屋自体が 1重でそのまま自然に露出している場合が多い. 部屋の集合も廊下を通じて接するのではなく他の放課直接連続されるとか外を通じて繋がれる. テチョンや縁側みたいな空間は内部なのか外部なのかまったく分かることができない位に外の自然に露出している. どんなに見れば自然の中に家が投げられている姿だ.

 これは自然が征服の対象ではなく共存しなければならない価値でどんな場合にはソムギムの対象だったので自然の攝理は運命のように受け入れなければならないわけだった. これは各国ごとに違いはあるが韓国だけではなく東アジア文化の共通点と言えるでしょう. したがって家は多分に外部志向的でアブサンと後方の山を連結してくれる媒介的役目をするだけだったことだ. だから家自らの模様に対する関心がありえなくて空間の配列がもっと大きい課題だった.

 

 

 

 

 多様な形象の現代建築と比べて韓国の古屋たちを思えば一様にその模様が ほとんどまったく同じだと思うかも知れない. 全部が瓦の家ではなければわらぶきで木柱を建てて壁は土やしっくいで 締め切って 紙を塗って締め切ったことはすべての伝統建築の該当事項だ. しかしこれは建築を 視知覚 対象だけで見る過誤の結果だ. 韓国の昔の建築は自然と外部をどんなに建築空間化させるのかにあるのでその建築が座った場所によって至る. したがって見えない空間の変化に注意を傾けることだけできたら 韓国建築が持つ指摘感性の妙味を満喫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この点で屏山書院は断然先頭にある.

 

 

 

 

 屏山書院は壬辰の乱の時の 名宰相だった西涯柳成竜(1542‾1607)を仕える書院だ. 書院と言う(のは)簡単に言って私大だと言えるがそのまま現代の学校概念と思ったら困る. 朝鮮時代の書院は儒教 聖賢たちの 位牌の面倒を見て定期的に儀礼を執り行なう儒教の 聖殿で儒教を完全に宗教だと定義しにくいが宗教施設と教育施設が結合された建築だと言える. この時書院に仕えられる人物は新羅で朝鮮に至る儒教の碩学で公立教育機関である郷校では孔子を中心に韓国と中国の人物を一緒に仕える.

 

 屏山書院は地理的に河回村と 山と絶壁を間に置いて 3km 位 落ちている所に位する. 北には 花山があって南側に 屏山がにょっきと湧いて屏風のように開かれているしその下に洛東江が流れる静かな所だ. したがって勉強夏期には大変良い場所でひたすら自然と向い合う生を暮すようになる所だ.

 

 

 

 まず韓国建築が作られる過程をよく見よう. まず柱 4個で成り立った空間を 間という単位と呼ぶのに 柱が 6個なら 2間だ. 普通 1間からそれよりちょっと大きい, 壁で包まれられた一つの空間を部屋だと言うのにその部屋たちが集まって建物を成す. そして建物が集まって建物群を成して建物群は一つの領域を成す. その建物群が集まって領域群を成して領域群は建築になる. そして最終的に建築は自然と関係を結ぶことでこんな集合的構造が完結される. 下位次元の機能と性格は上位次元の集合的性格によって支配を受ける. それはそのまま部屋一つだけ存在しては どんな意味がなくて建物の性格によってその部屋の機能と空間の性格が構成されるという話だ.

 しかしすべての建築がこんな 4次元的な空間構成の概念が適用されるのではない. 貧しい 人の家が安物な家 1軒で構成されたら建物は建物群を成さないで 建物と領域が会って 亭 建築は中間の過程を略して建物単位で自然と関係を構築する. 幾多の建物の 複合体である宮廷建築ではもっと複雑な次元の 集合が成り立つ. とにかくこんな式で一つの建築が構成されるのだ.

 

 

 

 

 屏山書院は大きく 3 領域で構成されている. 一つは教えて学ぶ所である講義棟と柳成竜の位牌の面倒を見た死当たり部分そして下人たちがとどまりながら全体の管理とサービスを担当する住所(廚所)がそれだ. それぞれ領域の中心軸は表示したことと一緒に中心の祠堂で中心に中方へ集められるのに後方の山である 花山の峰を志向しているからだ. 各部分が遂行する機能に当たる規模を維持して, こういう 部分たちが集まって屏山書院という一つの建築を成して全体的に地形に順応しながら絶妙の調和を成している. この中で 注意深く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 講義棟 建築が構成する空間の美しさだ.

 

 

 

 

 講義棟は四つの建物で成り立つのに一番の上に配置図の 6番(回)建物である講義をする入校だ(立教堂), その前に左右で学生たちがとどまる 4,5番(回)の東斎(東斎)と書斎(西斎), そして南側の下に樓閣である 3番(回)の万代で(晩対樓)があって 50‾60坪位大きさの中庭先をくるんでいる. 外から見れば重畳された瓦屋根が作り出す 風景が傾いた地形とよく似合っているがじっと見れば万代塁という樓閣の長さが違う建物に比べて相対的に過度に長いとい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る.

 

 

 

 

 どうして載せろと言っただろうか. この疑問は庭先に入って入校当たりに座って見れば自然に解けるようになる. 講義流れが 万代塁にいっぱい入って来て庭先の一方壁を形成しているのだ. すなわち万代塁はその建物自体が重要ではなく, 柱だけ残して自らを留守にすることで 自然をその中に満た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庭先内部は四方が取り囲まれた閉鎖的な空間だが全然息苦しさを感じることができないしこぢんまりしていながらも視野が開けた空間で作われ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だ. 樓閣の大きさは庭先全体を包容することができる長さを持つと するわけに長い姿を持つしかない. 建築はフレームとしてだけ存在して自然を積極的に媒介する手段であるだけだというのを感動的に見せてくれているのだ.

 

 

 

 

 景色を内部空間で引き入れることは現代建築でも使われているものなどだ. 安心タダオの水の教会みたいな場合は外部の湖と象徴物である十字架を内部空間で引き入れてとても印象的な場面を作り出しているのにこれはやっぱり東洋的な感覚であるでしょう. この建築は外部で眺めればそのように印象的な建築ではないが使用者の立場(入場)で中で眺めればまともにできた妙味を感じることができるのだ. これは自然の一部分を取って象徴的に再現する日本庭園でのチァギョングの手法を持って来たことで古典建築は現代建築の出発点になったりする. 日本とは違い韓国は自然そのままの自然を楽しんだがこんな両国の共通点と冷たくは優劣を去っておもしろいのだ.

 

 

 

 

 屏山書院入校当たりのテチョンに座って後壁の木材門を開けば山は庭先に沿って講堂を貫いて後庭先と 垣根を 過ぎて後方の山につながる. 建築はひたすら自然の中に腰かけているの自然を阻むとか閉めるとかその流れを逆わないのだ. 柱に頼って腰かけてまた 屏山を見れば, 屏山は名前そのまま屏風の中に閉まったように開かれていて時時時時で水煙がその風景を変化させる.

 

 

 

 

 万代塁に登って屏山を眺めれば自分が建築の中にないで 屏山の緑に埋めたようなのに後を見回れば庭先を置いてひたすら森羅万象の本質を論ずる姿勢になって入校当たりを向い合う.

 

 

 

 

 建築は 対象ではなく媒介者であるだけだ. 適当に行き違うように配置された建物はたぶん直角が持つ不自然さを こっそり 壊した結果だ. 配置図の赤い矢印と一緒に建物をこっそり開いてくれることで空間が次の空間で支えないで自然な流れを柔道するのだ. どこを見ても楽で自然だ. しかし断じて崩れるとか放漫にさせない. それはやっぱり静かな庭先が持つ緊張のためだろうが, ここでその緊張は単純な沈黙やまあまあな静寂のみを意味するのではなく新しい世界を志向する出発点になる. ググなの学問する正しい態度だ. その場所がすぐ書院であることだ.

 

 

 

 


한국건축 이야기

 서양의 집들과 한국의 옛집이 다른 점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이다. 공간 배치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체로 서양의 집들은 내부지향형이다. 방들은 거의 반드시 복도를 통해서 접속되어 있고 대개 중간에 복도가 있는 구조여서 이중으로 된 방이 많다. 중요한 방은 바깥과 직접 연결되는 곳 없이 집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데 그 방은 대부분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사용하는 곳이며 둘러싸인 겹이 많을수록 세력가의 집이다. 바로 외부나 자연은 나를 해칠 수 있는 적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고 이는 서양의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드러난다.

 서양인의 관념에서는 자연은 정복하기 위한 대상이고 건축은 외부로부터의 은신처일 뿐이어서, 자연과 적대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건축 개념이 서양 건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한국의 옛 건축을 보면 대개 방 자체가 1겹으로 그냥 자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방의 집합도 복도를 통하여 접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과 직접 연속되거나 바깥을 통하여 연결된다. 대청이나 툇마루 같은 공간은 내부인지 외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깥의 자연에 노출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자연 속에 집이 던져져 있는 모습이다.

 이는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는 섬김의 대상이었으므로 자연의 섭리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었다. 이것은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집은 다분히 외부지향적이며 앞산과 뒷산을 연결해 주는 매개적 역할을 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집 자체의 모양에 대한 관심이 있을 수 없고 공간의 배열이 더 큰 과제였다.

 

 

 

 다양한 형상의 현대건축과 비교하여 한국의 옛집들을 생각하면 하나같이 그 모양이 거의 똑같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전부가 기와집 아니면 초가집이며 나무 기둥을 세우고 벽은 흙이나 회반죽으로 마감하고 종이를 발라 마감한 것은 모든 전통건축의 해당사항이다. 그러나 이는 건축을 視知覺 對象으로만 보는 과오의 결과이다. 한국의 옛 건축은 자연과 외부를 어떻게 건축 공간화시키는가에 있으므로 그 건축이 앉은 장소에 따라 다 다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공간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한국 건축이 갖는 지적 감성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병산서원은 단연 선두에 있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名재상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을 모시는 서원이다. 서원이란 간단히 말해 사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대로 현대의 학교 개념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정기적으로 의례를 지내는 유교의 聖殿으로 유교를 완전히 종교라고 정의하기 힘들지만 종교 시설과 교육 시설이 결합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서원에 모셔지는 인물은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는 유교의 대학자로 공립교육 기관인 향교에서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인물을 함께 모신다.

 병산서원은 지리적으로 하회마을과 산과 절벽을 사이에 두고 3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花山이 있고 남쪽에 屛山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밑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고요한 곳이다. 따라서 공부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며 오로지 자연과 마주하는 삶을 살게 되는 곳이다.

 

 

 

 우선 한국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기둥 4개로 이루어진 공간을 칸이라는 단위로 부르는데 기둥이 6개면 2칸이다. 보통 1칸부터 그것보다 약간 큰, 벽으로 싸여진 하나의 공간을 방이라고 하는데 그 방들이 모여 건물을 이룬다. 그리고 건물들이 모여 건물群을 이루고 건물群은 하나의 영역을 이룬다. 그 건물群이 모여 영역群을 이루며 영역群은 건축이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건축은 자연과 관계를 맺음으로 이런 집합적 구조가 완결된다. 하위 차원의 기능과 성격은 상위 차원의 집합적 성격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것은 그냥 방 하나만 존재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고 건물의 성격에 따라 그 방의 기능과 공간의 성격이 구성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건축이 이런 4차원적인 공간 구성의 개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의 집이 허름한 집 1채로 구성된다면 건물은 건물群을 이루지 않고 건물과 영역이 만나게 되고 亭 건축은 중간의 과정을 생략하고 건물 단위에서 자연과 관계를 구축한다. 수많은 건물의 복합체인 궁궐건축에서는 더 복잡한 차원의 집합이 이루어진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하나의 건축이 구성되는 것이다.

 

 

 

 병산서원은 크게 3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인 강의棟과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사당 부분 그리고 하인들이 머물면서 전체의 관리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주소(廚所)가 그것이다. 각각 영역의 중심축은 표시한 것과 같이 중심의 사당으로 중심으로 안쪽으로 모아지는데 뒷산인 花山의 봉우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부분이 수행하는 기능에 맞는 규모를 유지하며, 이런 부분들이 모여 병산서원이라는 하나의 건축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지형에 순응하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은 강의棟 건축이 구성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이다.

 

 

 

 강의棟은 네 개의 건물로 이루어지는데 맨 위에 배치도의 6번 건물인 강의를 하는 입교당(立敎堂), 그 앞에 좌우로 학생들이 머무르는 4,5번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남쪽 아래에 누각인 3번의 만대루(晩對樓)가 있어 50~60평 정도 크기의 가운데 마당을 감싸고 있다. 밖에서 보면 중첩된 기와지붕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경사진 지형과 잘 어울려 있지만 가만히 보면 만대루라는 누각의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이랬을까. 이 의문은 마당에 들어가 입교당에 앉아보면 저절로 풀리게 된다. 강의 흐름이 만대루에 가득 들어와서 마당의 한쪽 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만대루는 그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둥만 남기고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자연을 그 속에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마당 내부는 사방이 둘러싸인 폐쇄적인 공간이지만 전혀 답답함을 느낄 수 없고 아늑하면서도 시야가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각의 크기는 마당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길이를 가져야 하는 까닭에 긴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건축은 프레임으로서만 존재하며 자연을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치를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현대 건축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안도 타다오의 물의 교회같은 경우는 외부의 호수와 상징물인 십자가를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여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은 역시 동양적인 감각일 것이다. 이 건축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인상적인 건축이 아니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안에서 바라보면 제대로 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일부분을 따서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일본 정원에서의 차경의 수법을 가져온 것으로 고전 건축은 현대 건축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즐겼는데 이런 양국의 공통점과 차이는 우열을 떠나서 흥미로운 것이다.

 

 

 

 병산서원 입교당의 대청에 앉아 뒷벽의 목재 문을 열면 산은 마당을 타고 강당을 관통하여 뒷 마당과 담장을 넘어 뒷산으로 이어진다. 건축은 오로지 자연 속에 걸터 앉아 있지 자연을 막거나 닫거나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기둥에 의지하고 걸터앉아 다시 屛山을 보면, 屛山은 이름 그대로 병풍 속에 닫힌 듯 펼쳐져 있고 시시때때로 물안개가 그 풍경을 변화시킨다.

 

 

 

 

 만대루에 올라 병산을 바라보면 자신이 건축 속에 있지 않고 屛山의 녹색에 파묻힌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마당을 두고 오로지 삼라만상의 본질을 논하는 자세가 되어 입교당을 마주한다.

 

 

 

 

 건축은 對象이 아니라 매개자일 뿐이다. 적당히 어긋나게 배치된 건물들은 아마도 직각이 갖는 부자연스러움을 살짝 부순 결과이다. 배치도의 빨간 화살표와 같이 건물을 살짝 열어줌으로 공간이 다음 공간으로 막히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도하는것이다. 어디를 보아도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결단코 흐트러지거나 방만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시 고요한 마당이 갖는 긴장 때문일 것인데, 여기서 그 긴장은 단순한 침묵이나 그저 그런 고요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그게 학문하는 올바른 태도이다. 그 장소가 바로 서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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