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高麗(高麗) 末期(末期)から朝鮮(朝鮮) 初期(初期)までの官服(官服)です.

- 14世紀末(末) ‾ 15世紀初め(初)

 

思慕(紗帽)の高さがものすごく低いです.

 

思慕閣(紗帽 角)が曲線の形態で下に下る姿です.

 

襟(collar)部分が丸くて 首に近い形態です.

統一新羅(統一新羅) 時には初めから首にくっつく形態だったと言います.

 

 

 

 

やはり高麗(高麗) 末期(末期)から朝鮮(朝鮮) 初期(初期)までの官服(官服)です.

- 14世紀末(末) ‾ 15世紀初め(初)

 

上の内容と同一.

 

 

 

 

 

今度にも

やはり高麗(高麗) 末期(末期)から朝鮮(朝鮮) 初期(初期)までの官服(官服)です.

- 14世紀末(末) ‾ 15世紀初め(初)

 

上の内容と同一.

 

ただ, 思慕(紗帽)による思慕閣(紗帽 角)の姿が少しずつ違って来たということを

分かります.

 

 

 

 

朝鮮(朝鮮) チォズングギ(初中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5世紀初め(初)中(中)

 

思慕(紗帽)がもうちょっと高くなりました.

 

思慕(紗帽)による思慕閣(紗帽 角)がもっと長くなって伸びられている姿です.

 

官服(官服) 胸部分に胸背(胸背)ができたが

これはミョンググック(明国)の流行によって臣下たちの建議で

朝鮮(朝鮮) 6台(六代) 賃金である端宗[端宗](1452〜1455) 時から施行されたのです.

 

が当時の胸背(胸背)は数(繍)をおいて刻む方式です.

 

 

 

 

朝鮮(朝鮮) チォズングギ(初中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5世紀末(末)

 

思慕(紗帽)による思慕閣(紗帽 角)が直線(直線)になっていることを見られます.

が頃から思慕閣(紗帽 角)がミョンググック(明国)の流行(流行)に付いて行ったように見えます.

 

胸背(胸背)は相変らず数(繍)をおいて刻む方式です.

 

 

 

 

朝鮮(朝鮮) チォズングギ(初中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6世紀初め(初) ‾ 中(中)

 

思慕(紗帽)による思慕閣(紗帽 角)がもっと広くなりました.

 

残りはほとんど同一.

 

 

 

 

朝鮮(朝鮮) 中期(中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6世紀末(末)

 

思慕(紗帽)による思慕閣(紗帽 角)が丸い直線(直線) みたいです.

これはミョンググック(明国)の流行だったことと見えます.

 

官服(官服)の袖部分が広くなり始めます.

 

 

 

 

朝鮮(朝鮮) 中期(中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6世紀末(末) ‾ 17世紀初め(初)

 

¥”壬辰の乱¥”くらいの官服(官服)です.

 

思慕(紗帽)が低いです.

 

思慕(紗帽)による 思慕閣(紗帽 角)がとても広いです.

 

胸背(胸背)はこれより少し先に進んだ時期から別に作って付着(付着)する方式で

変わりました.

 

 

 

 

朝鮮(朝鮮) 中期(中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6世紀末(末) ‾ 17世紀初め(初)

 

残りは上と等しいです.

 

 

 

 

朝鮮(朝鮮) 後期(後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8世紀 超(初)

 

この時はミョンググック(明国)が滅亡して消えたデュラ 官服(官服)が

朝鮮(朝鮮)だけの独自の形態で鎭火するようになります.

 

襟(collar)部分が下に下り始めます.

 

襟(collar)部分の白服が見えるのに既存には襟(collar)部分と

附着していた一方この頃からは別に着る方式に変わりました.

 

思慕(紗帽)がとても高くなりました.

 

思慕(紗帽)による 思慕閣(紗帽 角)が細くなった代りに横で長くなりました.

 

 

官服(官服)の小売値とても広くなって長くなりました.

 

 

 

 

朝鮮(朝鮮) 後期(後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8世紀 中(中)

 

上の写真と同一.

 

 

 

 

朝鮮(朝鮮) 後期(後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9世紀初め(初) ‾ 中(中)

 

全体的に上の写真と似ているが

襟(collar)部分がよほど下に下ったことを見られます.

 

 

 

 

朝鮮(朝鮮) 後期(後期) 時の官服(官服)です.

- 19世紀 末(末)

 

 

上の肖像画は 朝鮮(朝鮮) 26台(二十六代) 賃金である高宗[高宗](1863‾1097)のお父さんである

¥”興宣大院君[興宣大院君]- 李ハウン(李〓応)¥”です.

 

襟(collar)部分が非常に下に下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す.

 

思慕(紗帽)が低くなりました.

 

思慕(紗帽)による 思慕閣(紗帽 角)が横でしないました.

 

このような形態の官服は後に ¥”大韓帝国[大韓帝国]¥” 時洋式官服(官服)と一緒に

相変らず使われたし ¥”大韓帝国[大韓帝国]¥”の終幕(終幕)と一緒に消えます.

 

 

 

 


조선(朝鮮)의 관복(官服) 변화.

 

고려(高麗) 말기(末期)에서 조선(朝鮮) 초기(初期)까지의 관복(官服)입니다.

- 14세기 말(末) ~ 15세기 초(初)

 

사모(紗帽)의 높이가 굉장히 낮습니다.

 

사모각(紗帽 角)이 곡선의 형태로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입니다.

 

옷깃(collar)부분이 둥글며 목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통일신라(統一新羅) 때에는 아예 목에 달라붙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역시 고려(高麗) 말기(末期)에서 조선(朝鮮) 초기(初期)까지의 관복(官服)입니다.

- 14세기 말(末) ~ 15세기 초(初)

 

위의 내용과 동일.

 

 

 

 

이번에도

역시 고려(高麗) 말기(末期)에서 조선(朝鮮) 초기(初期)까지의 관복(官服)입니다.

- 14세기 말(末) ~ 15세기 초(初)

 

위의 내용과 동일.

 

단,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의 모습이 조금씩 틀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朝鮮) 초중기(初中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5세기 초(初)중(中)

 

사모(紗帽)가 조금 더 높아졌습니다.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더 길어지고 뻗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관복(官服) 가슴부분에 흉배(胸背)가 생겨났는데

이는 명국(明國)의 유행에 따라 신하들의 건의로

조선(朝鮮) 6대(六代) 임금인 단종[端宗](1452∼1455) 때부터 시행된 것입니다.

 

이 당시의 흉배(胸背)는 수(繡)를 놓아서 새기는 방식입니다.

 

 

 

 

조선(朝鮮) 초중기(初中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5세기 말(末)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직선(直線)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무렵부터 사모각(紗帽 角)이 명국(明國)의 유행(流行)에 따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흉배(胸背)는 여전히 수(繡)를 놓아 새기는 방식입니다.

 

 

 

 

조선(朝鮮) 초중기(初中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6세기 초(初) ~ 중(中)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더 넓어졌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동일.

 

 

 

 

조선(朝鮮) 중기(中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6세기 말(末)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둥근 직선(直線) 모양입니다.

이는 명국(明國)의 유행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복(官服)의 소매 부분이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조선(朝鮮) 중기(中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6세기 말(末) ~ 17세기 초(初)

 

"임진왜란"쯤의 관복(官服)입니다.

 

사모(紗帽)가 낮습니다.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굉장히 넓습니다.

 

흉배(胸背)는 이보다 조금 앞선 시기부터 따로 만들어서 부착(付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朝鮮) 중기(中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6세기 말(末) ~ 17세기 초(初)

 

나머지는 위와 동일합니다.

 

 

 

 

조선(朝鮮) 후기(後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8세기 초(初)

 

이때는 명국(明國)이 멸망하고 사라진 뒤라 관복(官服)이

조선(朝鮮)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진화하게 됩니다.

 

옷깃(collar)부분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옷깃(collar)부분의 흰색 옷이 보이는데 기존에는 옷깃(collar)부분과

부착되어 있었던 반면 이 무렵부터는 따로 입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모(紗帽)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좁아진 대신에 옆으로 길어졌습니다.

 

관복(官服)의 소매가 굉장히 넓어지고 길어졌습니다.

 

 

 

 

조선(朝鮮) 후기(後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8세기 중(中)

 

위의 사진과 동일.

 

 

 

 

조선(朝鮮) 후기(後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9세기 초(初) ~ 중(中)

 

전체적으로 위의 사진과 비슷하지만

옷깃(collar)부분이 상당히 밑으로 내려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朝鮮) 후기(後期) 때의 관복(官服)입니다.

- 19세기 말(末)

 

위 초상화는 조선(朝鮮) 26대(二十六代) 임금인 고종[高宗](1863~1097)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입니다.

 

옷깃(collar)부분이 아주 많이 밑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모(紗帽)가 낮아졌습니다.

 

사모(紗帽)에 달린 사모각(紗帽 角)이 옆으로 휘어졌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관복은 후에 "대한제국[大韓帝國]" 때 서양식 관복(官服)과 함께

여전히 사용되었으며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종막(終幕)과 함께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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