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朝鮮は 1392年から 1910年まで 519年の間維持された王朝で 27人の王が在位こんにちはだった. 王が崩御すれば魂は王室の祠堂である宗廟にまつって肉身は王陵を作って仕えた. 500余年期間中王妃を含んだ 42機の王陵が造営されたが 2這う北朝鮮にあって南韓にある王陵は大部分ソウル近郊にある.

 王陵は大部分都城外 4km の外で 40km 中にいるのにこれは王が 陵行をしても非常事態の時にソウルに迅速に帰って来るためのことで 朝鮮初期に法制化したのだ.

 王陵の構造を大きく分けようとすると桟が付けてある赤門(紅箭門) 外は進入空間で王陵の管理と祭礼を準備する中(俗)の空間で桟が付けてある赤門(紅箭門)から絵の夏季(下階) 下までは祭祀を執り行なう祭享(祭享)空間で聖(聖)スピートの出しすぎ(俗)が会う空間でその以上は陵寝(陵寝)空間で王や王妃がつけている聖(聖)の空間だ.

 

 

 

 

 王陵は王がゾンゼハヌンしたずっと造営されて来たが時代によって姿を異にする. 元々墓祭り(墓制0というのは保守的になるしかなくて地域や国家ごとに他の現在の朝鮮王陵の原型は統一新羅時代から始まった. 統一以前の新羅王陵は巨大な土になった封墳であるだけだったが統一以後に王陵は封墳周りに石で護石(護石)を取り囲むようになって 8世紀に至って王陵前の方に墓を守護する多くの石物を配置するようになる.

 以後高麗や朝鮮を経りながら王陵の立地や少しの構造が変わることはするが封墳をかける護石と 前に王陵を守護する 石物(石物)を配置するという点はあまり変わらなかった.

 

 

 ソウル三成洞に位した宣陵(宣陵)と貞陵(靖陵)は今の価値で一番高い地に立てられた王陵なのに元々はこの前がものしずかな所だったがソウルが徐徐に拡張されて江南が開発されながらビルディングの林で取り囲まれて周辺のほとんど唯一の緑地空間で残るようになった.

 宣陵は朝鮮 9台王人成宗(成宗)の王陵で この時期に法典が編纂されたし朝鮮の文物と制度が整備されながら朝鮮の統治基礎が完成された. 前代にクーデターに集権して多くの権力を持ったフング(勳旧)という補修集団を牽制するために士林(士林)という進歩集団を登用したし留学(儒学)を発展させて安定期を享受した.

 

 

 

 朝鮮は儒教を理念にするから民を疲れてだるくする度が外れた贅沢は禁止したし規模もそんなに大きくはない. 王が崩御すれば王がつける明堂を決めて森の中に王陵を造成して管理するようにした. 封墳(封墳) 周辺で 12地と蓮華を刻んだ屏風石と欄干席を かけた.

 朝鮮王陵の内部はまだ一度も発掘になった事がないのに記録によれば副葬品もほとんどなくて木管の表に石灰を厚く塗って堅たく密封して盗掘も大変な構造だ. しかしこの宣陵(宣陵)は 1592年日本軍によって盗掘されて成宗(成宗)の死体は消えて服を焼いてまた埋めたと言う. 左側に見える 4個の足に四角い石は魂遊石(魂遊石)でここに下に入口があって門を阻む錠だと言える.

 

 

 

 宣陵(宣陵)の東の他の丘には成宗(成宗)の王妃である正弦王后の御陵がある. 元々の王妃だったユンさんが王妃らしくない品行で廃妃(廃妃)になりながら王妃になったがユンさんの息子が朝鮮 10台王人燕山君だ. 燕山君は朝鮮最高の暴君になって政治波動を起こして多くの人を殺した. 臣下たちのクーデターを起こして 燕山君を追い出して正弦王后の息子を 11台王で推戴した.

 王陵の前には文人と武人, 後には言葉を立てて王陵を守護する. 王陵ごとに切れの姿が違って表情がほとんどなくて比例や人体表現がリアルと言えないのに死亡者を守っているから完全な人間の 姿であ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

 

 

 主人公が女性なのでそうか正弦王后御陵の切れは成宗の物よりもっと優雅で美しい. 王の物とは違い屏風石がなくて欄干席だけあり封墳の高さも低い方だ.

 

 

 後では王陵を保護する垣根と外で眺めながら王陵を守護する羊と虎が一方ごとに二頭ずつ配置されている.

 

 

 11台王中宗(中宗)がつけている貞陵(靖陵)だ. 彼の異母型だった 10代王燕山君は暴悪で臣下たちがクーデターを起こして追い出したから王の称号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弟(妹)だった中宗が 11台朝鮮国王で即位するようになるのに臣下たちがあげた王だから神権(臣権)が王権(王権)を圧倒した. しばらく権力ある臣下たちにフィドルリにチョ・カンジョという 若くて有能なゲヒョックがに会って 彼を積極的に後援しながら改革を推進するが結局自ら チョ・カンジョを首切りする.

 前には神聖な地域なのを知らせる桟が付けてある赤門(紅箭門)が立っていてここ書から中(俗)から聖(聖)の始まる空間になる. この門の前から正面の建物が 王陵を選り分けるようになって神聖な空間なのを暗示する. 建物まで行くドルギルは左側のちょっと高い永遠に魂が通う吉人信徒(神道)で右側が王が通う (御道)だ.

 

 

 長くつながった道に付いて祭祀を執り行なう建物である丁字閣(丁字閣)に至る. 正面には階段がなくて東の二つの階段の中で小さな階段に入る. 大きい階段は信徒(神道)とつながる魂が過ぎ去る階段だ. 内部でお供え(祭物)をあげて祭祀を執り行なって西の方に出る. 西の方には人間が過ぎ去る一つの階段湾ある.

 

 

 丁字閣(丁字閣)の内部では丘の上にある王陵の 姿が見える. 視覚を考慮して建物を配置したからだ. 聖(聖)の空間である王陵で王の魂がこの建物で下って中(俗)の空間から歩いて来た王が会いながら聖(聖)スピートの出しすぎ(俗)の空間になる. 今もこちらでは毎年 12月 9日に祭祀を執り行なう. 

 

 


조선의 왕릉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9년 동안 유지된 왕조로 27명의 왕이 재위하였다. 왕이 승하하면 영혼은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 모시고 육신은 왕릉을 만들어 모셨다. 500여년 기간동안 왕비를 포함한 42기의 왕릉이 조영되었는데 2기는 북한에 있고 남한에 있는 왕릉은 대부분 서울 근교에 있다.

 왕릉은 대부분 도성 밖 4km 밖에서 40km 안에 있는데 이는 왕이 陵行을 하더라도 비상사태시에 서울로 신속히 돌아오기 위한 것으로 조선 초기에 법제화한 것이다.

 왕릉의 구조를 크게 나누자면 홍살문(紅箭門) 밖은 진입공간으로 왕릉의 관리와 제례를 준비하는 속(俗)의 공간이며 홍살문(紅箭門)부터 그림의 하계(下階) 아래까지는 제사를 지내는 제향(祭享)공간으로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공간이며 그 이상은 능침(陵寢)공간으로 왕이나 왕비가 묻혀 있는 성(聖)의 공간이다.

 

 

 

 왕릉은 왕이 존재하는한 계속 조영되어 왔는데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원래 묘제(墓制0라는 것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지역이나 국가마다 다른데 현재의 조선왕릉의 원형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통일 이전의 신라 왕릉은 거대한 흙으로 된 봉분일 뿐이었는데 통일 이후에 왕릉은 봉분 주위에 돌로 호석(護石)을 둘러싸게 되고 8세기에 이르러 왕릉 앞 쪽에 무덤을 수호하는 여러 석물을 배치하게 된다.

 이후 고려나 조선을 거치면서 왕릉의 입지나 약간의 구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봉분을 두르는 호석과 앞에 왕릉을 수호하는 석물(石物)을 배치한다는 점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은 지금의 가치로 가장 비싼 땅에 세워진 왕릉인데 원래는 이 앞이 한적한 곳이었으나 서울이 점차 확장되고 강남이 개발되면서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주변의 거의 유일한 녹지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선릉은 조선 9대 왕인 성종(成宗)의 왕릉으로 이 시기에 법전이 편찬되었고 조선의 문물과 제도가 정비되면서 조선의 통치기틀이 완성되었다. 전대에 쿠데타로 집권하여 많은 권력을 가졌던 훈구(勳舊)라는 보수집단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士林)이라는 진보집단을 등용하였고 유학(儒學)을 발전시켜 안정기를 누렸다.

 

 

 조선은 유교를 이념으로 하기 때문에 백성을 고단하게 하는 지나친 사치는 금지하였고 규모도 그렇게 크지는 않다. 왕이 승하하면 왕이 묻힐 명당을 정하고 숲 속에 왕릉을 조성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봉분(封墳) 주변으로 12지와 연꽃을 새긴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조선왕릉의 내부는 아직 한번도 발굴이 된 적이 없는데 기록에 따르면 부장품도 거의 없고 목관의 겉에 석회를 두껍게 발라 단단히 밀봉하여 도굴도 힘든 구조이다. 하지만 이 선릉(宣陵)은 1592년 일본군에 의해 도굴당해 성종(成宗)의 시신은 없어지고 옷을 태워 다시 묻었다고 한다. 좌측에 보이는 4개의 다리에 네모난 돌은 혼유석(魂遊石)으로 여기 밑에 입구가 있어 문을 막는 자물쇠라고 할 수 있다.

 

 

 선릉(宣陵)의 동쪽의 다른 언덕에는 성종(成宗)의 왕비인 정현왕후의 릉이 있다. 원래의 왕비였던 윤씨가 왕비답지 않은 품행으로 폐비(廢妃)가 되면서 왕비가 되었는데 윤씨의 아들이 조선 10대 왕인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조선 최고의 폭군이 되어 정치파동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신하들의 쿠데타를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현왕후의 아들을 11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릉의 앞에는 문인과 무인, 뒤에는 말을 세워 왕릉을 수호한다. 왕릉마다 조각의 모습이 다르며 표정이 거의 없고 비례나 인체표현이 사실적이라 할 수 없는데 죽은 자를 지키고 있으니 완전한 인간의 모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 여성이어서 그런지 정현왕후 릉의 조각은 성종의 것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 왕의 것과는 달리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으며 봉분의 높이도 낮은 편이다.

 

 

 뒤로는 왕릉을 보호하는 담장과 밖으로 바라보면서 왕릉을 수호하는 양과 호랑이가 한쪽마다 두마리씩 배치되어 있다.

 

 

 11대 왕 중종(中宗)이 묻혀있는 정릉(靖陵)이다. 그의 이복형이었던 10대 왕 연산군은 포악하여 신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몰아냈기에 왕의 칭호를 받지 못 하였다. 동생이었던 중종이 11대 조선국왕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신하들이 올린 왕이라 신권(臣權)이 왕권(王權)을 압도하였다. 한동안 권력있는 신하들에 휘둘리다가 조광조라는 젊고 유능한 개혁가를 만나 그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개혁을 추진하지만 결국 스스로 조광조를 숙청한다.

 앞에는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紅箭門)이 서 있고 여기서부터 속(俗)에서 성(聖)이 시작되는 공간이 된다. 이 문 앞에서부터 정면의 건물이 왕릉을 가리게 되어 신성한 공간임을 암시한다. 건물까지 가는 돌길은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이 영혼이 다니는 길인 신도(神道)이며 오른쪽이 왕이 다니는 (御道)이다.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정자각(丁字閣)에 이른다. 정면에는 계단이 없고 동쪽의 두 개의 계단 중에서 작은 계단으로 오른다. 큰 계단은 신도(神道)와 이어지는 영혼이 지나가는 계단이다. 내부에서 제물(祭物)을 올려 제사를 지내고 서쪽으로 나간다. 서쪽에는 인간이 지나가는 하나의 계단만 있다.

 

 

 정자각(丁字閣)의 내부에서는 언덕 위에 있는 왕릉의 모습이 보인다. 시각을 고려하여 건물을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성(聖)의 공간인 왕릉에서 왕의 영혼이 이 건물로 내려오고 속(俗)의 공간에서 걸어온 왕이 만나면서 성(聖)과 속(俗)의 공간이 된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년 12월 9일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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