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さて、中国の塀はとにかくでかかったり赤かったり黒かったり。意外にバリエーションがないかというと磚貼りという方法でもの凄い装飾をしていたり。日本の塀の根っこだとは思うのだが、王宮はとにかく桁違いすぎる。民家の塀も城内では日本のものに比べかなり高い。この辺は塀としての役割がきちんと機能している(外敵防衛)からだと思う。城を出てムラ、のレベルになると土塀A・練塀Bのようなものが多いようである。
 しかも今度は石炭という宿題ができてしまった。遠い。遠すぎるよ。中国はでかすぎるよ。

では孤盲猫を撫でる、第1 塀の話9 中国の塀
 

塀(へい)とは、家や敷地などにおいて、他との境界に設置する囲いのこと。

 古代中国の城は版築土塁で外壁を構成し、住居も物見台をつける物々しい塀を持っていた。この事については築地のルーツでお見せしたとおりである。天をつくような外壁、中の住人の安全を確保するための塀、と言うのが基本になっている。特に宋代以降は外壁にしろ住居などの塀にしろ、磚を多用したものになったと考えられる。もちろん防衛のための外壁と住居の塀では天井部分は異なるが。
 中国の塀は実益が優先されていたと思われ、表面が華美なものはそう多くない様に見える。ただこれは外壁構造物が非常に目立つため、そのように感じるのかもしれない。
 中国には木造磚積壁の建築が一般的多いようであるが、この辺は不勉強である。(本当はきちんと本を探して読むべきなのだが)また、時代区分、いつできたかなどは今ひとつ分からなかった。王宮などを除けば清代以前に遡れるものはそう多くないだろうし、唐代以前のものと断定できる遺構や現物の塀はほとんど見つけられなかった。※1。
 この辺についてはお叱りがあれば甘受する次第である。

 それでも外壁内側や王宮、庭園などでは贅を凝らした塀や壁を作っている。


 一方民家はおそらく清代以降のものだろうが土塀Aや練塀Bに相当するものが見られた。土塀Aについてはやはりどこかの時点で日本に渡ってきたのだろうと思うし、練塀Bについては渡ってきたのかもしれないし、それぞれ似たような進化を遂げた結果かもしれない。こういうところが不明なままなのはかなり口惜しいところである。
少数民族の住居というものまで手を広げてみたが、塀についてはよく分からないままである。

※1長城の調査や遺跡の発掘による宋代唐代やそれ以前の外壁や塀状遺構もある程度分かったのだが、版築土塁であったり現在と類似したものと思われたので割愛した。

※※以前宋代に磚が石炭で焼かれ始めたと述べましたが、間違いでとして謹んで訂正いたします。漢代には下水用の磚を石炭で焼いたと言う記述を発見しました。こちらについては現在論考を捜している最中です。あと、唐代にご飯を石炭(コークス?)炊いたという記述も見つけ、ちょっとこっちもgdgdになりました。ただ、おおむね宋代以降にこうした石炭などの高火力で磚を焼く技術が一般化していったということは間違いないようです。

 ということで、分からないまま中国の塀をいくつか。


豫園1 
断面が全く分からないので構造は不明だが、石もしくは磚積の上に漆喰を塗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


豫園2
同じ塀かどうか不明だが、豫園の塀の上部装飾。中国らしいと言えば中国らしいと思うし、驚嘆しか出てこない。おそらく白い部分(爪・歯・目?)は漆喰。


故宮の塀
故宮内部の塀。磚を積み、彩釉磚(釉薬をかけて焼いた磚、タイルのような物)を貼っている。


故宮の塀のアップ1


故宮の塀のアップ2
もうこうなると腰を抜かして口を開けてみるしかない。


北京四合院の門塀
磚積だが色々高度なことをしているようである


霊石県静升村王家王院の塀
奥の人物と対比して、かなり高い塀(壁)


爨底下村(川底下村)
明・清代のままの村だそうである。城壁状の外壁も見える


川底下村2
土塀Bタイプと思われる。上部に瓦がかけてあるようである。

おまけ


今回の困った一枚
台湾平埔族の住居1897撮影

平埔族は明代以降漢化が進んだ台湾原住民。なので煉瓦住居に住んでいてもおかしくないのだが、これで地震に弱いから作らなかった説は非常につらくなった。焼成時の精度の問題も解決している民族がアジアにいた。かといって湿度というのも決定打としては弱い。東南アジアにも植民地化以前に煉瓦文化が存在するからだ。
でも正直、あんな気候で日干し煉瓦建築にすんでて、台風とかは大丈夫なのかと思う。
ちなみにこの写真の撮影者は鳥井龍蔵。台湾の住居についてはこの一枚だけがぽつんと日干し煉瓦で、あとは石積や竹?・丸木などが多かった。
いやはや。やはり素材供給という点が一番しっくり来るかなぁ。発掘状況とかも今一度精査し直し、基壇部分の磚の精度を上げる行為の有無も確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なぁ。もちろん要因はひとつではなく複数が関与するだろうけど。


고맹묘를 어루만지는, 제1 담의 이야기 9 중국의 담

 그런데, 중국의 담은 어쨌든 크거나 붉거나 검거나.의외로 바리에이션이 없는가 하면 전첩라고 하는 방법으로 것 굉장한 장식을 하고 있거나.일본의 담의 뿌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왕궁은 어쨌든 현격한 차이 지나다.민가의 담도 성내에서는 일본의 것에 비해 꽤 높다.이 근처는 담으로서의 역할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외적 방위) 에서라고 하면 생각한다.성을 나와 얼룩짐, 의 레벨이 되면 흙벽 A・련담B와 같은 것이 많은 듯 하다.
 게다가 이번은 석탄이라고 하는 숙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멀다.너무 멀어.중국은 너무 커.

그럼 고맹묘를 어루만지는, 제1 담의 이야기 9 중국의 담
 

담(에 있어)이란, 집이나 부지 등에 있고, 외와의 경계에 설치하는 울타리.

 고대 중국의 성은 판축토루로 외벽을 구성해, 주거도 전망대를 붙이는 삼엄한 담을 가지고 있었다.이 일에 대해서는 츠키지의 루트로 보여드렸던 대로이다.하늘을 도착하는 외벽, 안의 거주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담, 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 있다.특히 송대 이후는 외벽으로 해라 주거등의 담으로 해라, 전을 다용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된다.물론 방위를 위한 외벽과 주거의 담에서는 천정 부분은 다르지만.
 탐`·조후담은 실익이 우선되고 있었다고 생각되어 표면이 화려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게 보인다.단지 이것은 외벽 구조물이 매우 눈에 띄기 위해, 그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목조전적벽의 건축이 일반적 많은 듯 하지만, 이 근처는 공부에 힘쓰지 않다.(사실은 제대로 책을 찾아 읽어야 하는 것이지만) 또, 시대구분, 언제 할 수 있었는지 등은 별로 몰랐다.왕궁등을 제외하면 청대 이전에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고, 당대 이전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옛날 건축의 잔존물이나 현물의 담은 거의 찾아낼 수 없었다.※1.
 이 근처에 대해서는 꾸중이 있으면 감수 하는 대로이다.

 그런데도 외벽 안쪽이나 왕궁, 정원등에서는 사치를 집중시킨 담이나 벽을 만들고 있다.


 한편 민가는 아마 청대 이후의 것이겠지만 흙벽 A나 련담B에 상당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흙벽 A에 대해서는 역시 어딘가의 시점에서 일본에 건너 왔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련담B에 대해서는 건너 왔을지도 모르고, 각각 비슷한 진화를 이룬 결과일지도 모른다.이런 곳이 불명한 그대로인 것은 꽤 분한 곳이다.
소수민족의 주거라는 것까지 손을 벌려 보았지만, 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와까지 있다.

※1장성의 조사나 유적의 발굴에 의한 송대당대나 그 이전의 외벽이나 담장 옛날 건축의 잔존물도 어느 정도 알았지만, 판축토루이거나 현재 와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므로 할애 했다.

※※이전송대에 전이 석탄으로 달구어져서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만, 실수로로서 삼가 정정하겠습니다.한대에는 하수용의 전을 석탄으로 달구었다고 하는 기술을 발견했습니다.이쪽에 대해서는 현재 논고를 찾고 있는 한중간입니다.그리고, 당대에 밥을 석탄(코크스?) 밥했다고 하는 기술도 찾아내 조금 여기도 gdgd가 되었습니다.단지, 대개 송대 이후에 이러한 석탄등의 고화력으로 전을 굽는 기술이 일반화하며 갔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으로, 모르는 채 중국의 담을 몇개인가.


예원 1 
단면이 전혀 모르기 때문에 구조는 불명하지만, 돌 혹은 전적 위에 회반죽을 바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예원 2
같은 담인지 어떤지 불명하지만, 예원의 담의 상부 장식.중국인것 같다고 하면 중국인것 같다고 생각하고, 경탄 밖에 나오지 않는다.아마 흰 부분(손톱・이빨・눈?)(은)는 회반죽.


고 궁의 담
고 궁내부의 담.전을 쌓아, 도자기 표면에 유약을 바르는 것전(유약을 쳐 구운 전, 타일과 같은 물건)을 붙이고 있다.


고 궁의 담의 업 1


고 궁의 담의 업 2
더이상 이렇게 되면 깜짝 놀라 기급하고 입을 열어 볼 수 밖에 없다.


북경 사합원의 문담
전적이지만 여러가지 고도의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령석현정승촌왕가왕원의 담
안쪽의 인물과 대비하고, 꽤 높은 담(벽)


촌저시모무라(카와소코 시모무라)
명・청대 인 채의 마을이라고 한다.성벽장의 외벽도 보인다


강바닥 시모무라2
흙벽 B타입이라고 생각된다.상부에 기와가 걸려 있는 것 같다.




이번 곤란한 한 장
대만평포족의 주거 1897 촬영

평포족은 명대 이후 한화가 진행된 대만 원주민.그래서 벽돌 주거에 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것으로 지진에 약하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던 설은 매우 괴로워졌다.소성시의 정도의 문제도 해결하고 있는 민족이 아시아에 있었다.일까하고 말해 습도라고 하는 것도 결정타로서는 약하다.동남아시아에도 식민지화 이전에 벽돌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직, 저런 기후로 일조 벽돌 건축에 살고 있어, 태풍이라든지는 괜찮은지 생각한다.
덧붙여서 이 사진의 촬영자는 토리용장.대만의 주거에 대해서는 이 한 장이다 개응과 일조 벽돌로, 나머지는 이시즈모리나 대나무?・통나무등이 많았다.
아니는이나.역시 소재 공급이라고 하는 점이 제일 잘 올까.발굴 상황이라든지도 한번 더 정밀 조사 다시 해 , 기단부분의 전의 정도를 올리는 행위의 유무도 확인해야 한다.물론 요인은 하나는 아니고 복수가 관여할 것이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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