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보상화문나전경감(寶相華文螺鈿鏡鑑) - 新羅

 

皆、一度ぐらいは海辺に遊びに行くと砂場にある貝を拾ってみたことがあるだろう。人間は周りから容易に拾える貝を利用して物を飾ったり小道具として利用し、このような貝殻を使って飾ろうと思うが、これは人類の共通慣行だった。日本の岡田氏は「高麗の螺鈿」という文の中で「その技術は宋から新しく高麗が学んできたのではなく、統一新羅時代に唐から導入してきた技術であり高麗時代に入ってから漸次に国風化し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と記述している。これは螺鈿技法が高麗時代に発展し1、2世紀ごろから独自的な特色を得てきたことを意味する。螺鈿技法を利用して貴族中心の漆器工芸品が様々な技法で製作された。昔から韓国では螺鈿を「ジャゲ」という韓国固有の名前で呼んできた。螺鈿は漆器工芸の装飾技法の一つとして薄く削った貝殻をある形の模様通りに切り落とし物の表面に差し込むんで飾るものであり、貝殻だけでなく象牙、琥珀、宝石などを刻み込むのも広い意味では螺鈿という。ただ、金板や銀板を切って付けたのは螺鈿とは別途に平脫(ピョンタル) というがこれは大半の場合、塗った上に貝殻を着けまた塗った後表面を練磨し模様が現れるようにする技法である。韓国は木器と共に漆器が発達している国だが樹液を取るウルシは朝鮮半島全域に分布されておりよい漆がたくさんでる方である。
모두 한번쯤 해변에 놀러가서 백사장에서 조개를 집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주위에서 쉽게 버려진 조개를 사용하여 물건을 꾸미고 소품으로 이용하여 이것처럼 조개를 사용하여 장식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인류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일본의 오카다 씨는 “고려의 螺鈿”라는 문장에서 “이 기술은 송나라에서 새롭게 고려가 배운 것이 아니라, 통일 신라 시대에 당나라에서 도입하여 온 기술이며 고려 시대에 들어 점차 에 국풍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 기술하고있다. 이것은 螺鈿 기법이 고려 시대 발전 11,12 세기 무렵부터 독자적인 특색을 얻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螺鈿 기술을 이용하여 귀족 중심의 칠기 공예품이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螺鈿을 “자게”라는 한국 고유의 이름으로 불러왔다.螺鈿은 칠기 공예 장식 기법의 하나로서 얇게 깎은 껍질이 있는 형태의 모양대로 잘라 물건의 표면에 감입하여 장식하는 것으로, 조개뿐만 아니라 아이보리, 호박, 보석 등을 새겨 넣은 것도 넓은 의미로 螺鈿이라고 한다. 단, 금판이나 은판자를 잘라 붙인 것은 螺鈿와는 별도로 平脫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붙여진 위에 조개를 부착하여 표면을 연마하여 무늬가 나오게 하도록 하는 기법이다. 한국은 木器 함께 칠기가 발달한 나라이지만 수액을 채취하는 옻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고 좋은 옻나무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高麗時代의 나전포도문의함. 일본 다이와문화관 소장(螺鈿葡萄文衣函  大和文華館)

 

中国漢時代の漆で描いた絵は主に黒漆の上に模様を刻み、唐時代には厚貝の螺鈿と金属板を利用した平脱漆器が作られた。宋時代の漆器工芸の主な軸は無文漆器であり、13世紀頃から彫漆(ジョチル)(漆の上に模様を刻むこと)が活発に使われた。日本は漆面に金銀の粉を蒔いて模様を表す、いわゆる蒔絵を開発し貝殻と共に使うや、または金銀粉だけで独特な模様を表した。韓国は三国及び統一新羅時代は中国の文化を幅広く受け入れたが、高麗以後、相当制限された範囲内で材料を活用しながらすでに吸収した文化を土着化する動きが起きたが、主に薄(バク)貝(べ)法(薄い貝殻をカッターや針など使ってえぐる技法)が使用された。このように薄い貝殻を良く使った理由は簡単な製作道具を持って処理できる上、貝殻を固く付けやすいからである。しかし貝殻の表面に細密に刻み込むのは難しく面が広い貝殻は接着と同時に割れるという短所がある。韓国の漆工芸は貝殻を使う方がとても発達したが初期には主に白色の夜光貝を使ったがその後には緑色などが入っている多様な色のあわびの貝をよく使用した。韓国で発見された昔の螺鈿の遺物としては「螺鈿團花禽獸文銅鏡」があるが、鏡の裏側に貝殻、琥珀、青石などを付け漆塗りしたこの白銅鏡は夜光貝を使用し細密に刻み込み、寶相華紋や鳥、動物を対称的に配置し余白には青石の粉を掛けて華々しく作ったことが特徴である。
중국 한나라 시대의 칠에서 그려진 그림은 주로 검은 옻칠 위에 무늬를 새겼고, 당나라 시대에는 厚貝의 螺鈿과 금속판을 이용한 平脱칠기가 제작되었다. 송나라 시대의 칠기 공예의 주요 축은 無文 칠기이고, 13 세기 경부터 조각 옻칠(옻칠 위에 무늬를 새기는 것)가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일본은 옻칠 표면에 귀금속 분말을 뿌려 무늬를 나타내는 이른바 蒔絵를 개발 조개와 함께 사용하거나 또는 귀금속 분말만으로 독특한 무늬를 나타냈다. 한국은 삼국과 통일 신라 시대 중국의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고려 이후 상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재료를 활용하면서 이미 흡수한 문화를 토착화하는 움직임이 일어 났지만 주로 박패법 (얇은 패곡을을 칼이나 바늘 등을 사용한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얇은 껍질을 잘 사용했던 이유는 간단한 제작 도구를 가지고 처리할 수 있으며, 조개를 붙이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개의 표면을 세밀하게 새기는 것은 어려워 면이 넓은 조개는 접착 때 깨지는 단점이 있다. 한국 옻칠 공예는 조개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발달했지만 초기에는 주로 흰색 야광 조개를 사용했지만 이후에는 녹색 등이 들어있는 다양한 색깔의 전복 조개를 많이 사용했다. 한국에서 발견된 옛 螺鈿 유적으로 “螺鈿團花禽獸文銅鏡”이 있다, 거울의 뒷면에 조개, 호박, 청석등을 부착하여 옻칠한 이 백동 거울은 夜光貝를 사용하여 세밀하게 조각하여 감입하고, 寶相華紋이나 새, 동물을 대칭으로 배치하고 여백에 청색의 가루를 뿌려 화려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나전대모국당초문염주합(螺鈿玳瑁菊唐草文念珠盒) 고려, 12세기  일본 나라(奈良)의 다이마사(當麻寺)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

 

平脱技法や螺鈿遺物に比べるとより広範囲に普及されたが平脱物に注目する理由はそれが唐の漆器の装飾技法の一つとして流行した上、螺鈿漆器ぎほうのような工程で製作されたものであり韓国で螺鈿漆器に先行して技法上の並存を物語るものであるからだ。特に雁鴨池(アンアプチ) 出土の銀平脫(ウンピョンタル)遺物は木製品に漆塗りをし花模様の銀箔板を付けたものである。高麗時代は黒漆に螺鈿や亀のこうら、銀線、銅線で模様を作るのが特徴だった。亀のこうらを使う技法は朝鮮後期の華角張(ファガクチャン)技法に繋がるものでありこれは韓国の伝統的な装飾技法である。金属線の使用も高麗螺鈿漆器の時代様式として著しい。銀線、銅線、錫線などを利用してつるの茎や模様と模様の間の境界線などに応用された。朝鮮の螺鈿漆器は高麗時代のデザインを継承したがきめが粗く模様の整然さもなくなるがこれは少数の貴族の好みに応じて巧みで上品だったのが次第に庶民の好みに変わり始めたからである。またタイマイや金属板の代わりに15-16世紀の靑華白磁(チョンハベクジャ)に使用されている梅と竹や草花を配置し絵画的効果を試みる動きが出る。朝鮮前期の螺鈿漆器は牡丹唐草模様を主に使用したが満開の花やつぼみをあわしの貝殻で切り付けてつるの茎も貝殻を切って付けることでスピード感やリズム感を出す。19世紀の螺鈿は模様より自然な描写が普及し、のこぎりで貝殻を糸のように作りつなげることで模様を刻む技法により亀のうろこ模ようなどで全体を覆うや山水の風景を表現するものが増えている。これは社会構造が変わりながら登場すした進行産業資本層の好みと企業化した作業室で工匠が製品を量産し始めたからである。평탈 기법이나 螺鈿 유물에 비해 더 광범위하게 보급되었지만 평탈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당나라의 칠기 장식 기법의 하나로서 유행한 것으로,螺鈿 칠기법과 같은 공정으로 제작 된 것이며 한국 螺鈿 칠기에 선행 기술의 병존을 말해주는 것 때문이다. 특히 안압지 (안아뿌찌) 출토의 銀平脫 유물은 목재품에 옻칠을 하여 꽃무늬 은박판을 붙인 것이다. 고려 시대는 흑칠에 螺鈿이나 거북이 껍질,은선, 동선으로 패턴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었다. 거북이 껍데기 사용 기법은 조선 후기華角張 기법으로 이어진 것이며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장식 기법이다. 금속선의 사용도 고려 螺鈿 칠기 시대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은선, 구리, 주석선 등을 이용하여 줄기나 무늬와 무늬 사이의 경계선 등에 응용되었다. 조선의 螺鈿 칠기는 고려 시대의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지만 규칙이 엉성하고 모양의 정연함도 없어지지만 이것은 소수의 귀족의 취향에 의해 기교가 가해졌던 상품의 것이 점차 서민의 맛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모와 금속판 대신 15-16 세기 靑華 백자에 사용되는 매화와 대나무와 화초를 배치하고 회화적인 효과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나온다. 조선 전기의 螺鈿 칠기는 牡丹唐草模様을 주로 사용했지만 만개한 꽃이나 꽃봉오리를 패각을 잘라 붙이고 포도나무 줄기도 패곡을 잘라 붙여 속도감과 리듬감을 발휘한다. 19 세기 螺鈿은 무늬보다 자연스러운 묘사가 보급되어, 톱으로 조개를 실같이 만들고 연결하여 무늬를 새기는 기법에 의해 거북이 비늘모양과 같은 것으로 전체를 덮는 것이나 산수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등장해 야하는 절차 산업 자본 계층의 취향과 기업화된 작업실에서 工匠이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合 木製漆塗 縦37.8 横19.2 高26.0 高麗 13世紀 東京国立博物館
高麗蓋に大きな削面をもったすらりとした長方形の箱で,蓋中央に「大方廣佛華厳経」の七字が螺鈿であらわされていることで,この箱が経を納める箱として作られたことがわかる。高麗時代は螺鈿の手法がたいへん盛んであったことが文献や遺品からも察せられるが,この経箱はこの時代の螺鈿の典型的な作風を如実に示したものとして名高い作品である。
목제 칠기 칠기 세로 37.8 가로 19.2 높이 26.0 도쿄 국립 박물관
고 려 덮개에 큰  削面을 가진 늘씬하 장방형의 상자로 덮게 중앙에 “大方廣佛華厳経”일곱 글자가 螺鈿으로 쓰여진 것으로,이 상자가 불경을 담는 상자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는 螺鈿 기술이 매우 왕성했다는 것을 문헌과 유물에서도 살펴볼 수 있지만 이상자는 이 시대의 螺鈿 전형적인 작풍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牡丹唐草螺鈿箱  朝鮮時代・17~18世紀  東京国立博物館
葡萄螺鈿衣裳箱とほぼ同様の器形・つくりを見せた箱で,蓋とその四側面には牡丹唐草を全体にあしらっている。ただ,文様は比較的遠慮気味にあつかわれており,黒漆の部分を多く残しているのが特徴的である。この様な手法はわが国の近世の螺鈿に影響を与えたようで,そのことはMOA美術館にある箱をみても明らかである。李朝螺鈿の独特の作風を見せた優品の一つである。
葡萄螺鈿衣裳箱과 거의 동상의 기형 꾸밈을 보여주는 상자로 뚜껑과 네 측면에는 모란 당초를 전체적으로 새겼다. 단, 문양은 비교적 遠慮気味로 절제되고 있으며, 검정 옻칠 부분을 더 남겨두고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기술은 일본의 근세 螺鈿에 영향을 준 것으로, 그것은 MOA 미술관에있는 상자를 봐도 명백하다. 이조 螺鈿의 독특한 작풍을 보여주는 優品의 하나이다.

葡萄螺鈿衣裳箱  朝鮮時代・17~18世紀  東京国立博物館
蓋が身の下まですっぽりと被るいわゆる被せ蓋造りの箱で,蓋およびその四側面全体に葡萄と童子をあらわしている。文様はいずれも割り貝の手法であらわしているが,その貝片の放つ色あざやかな光がなんといってもこの箱の魅力である。李朝後期の螺鈿器にあって出色の出来栄えをみせた作品である。
덮개가 몸통 밑까지 떨어져 푹 덮은 소위 깊숙히 덮은 두껑 구조 상자로 뚜껑 및 네 측면 전체에 포도와 동자를 나타내고 있다. 문양은 모두 박편의 패각 수법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그 패각 박편이 내는 색깔 선명한 빛이 무엇보다도 이 상자의 매력이다. 이조 후기의 螺鈿器에 있어서 출중한 만듦새를 보인 작품이다.
 

亀文函 19世紀  高麗美術館
朝鮮時代の螺鈿技法は、貝の殻を砥石で磨き減らして貝片を木地に貼り、その上から漆を何回も塗り、文様を研ぎ出す技法が多くとられた。 この函にはつがいの亀が泳ぐ蓮池と一群の雁が飛ぶ山水風景とが螺鈿技法によって表現されている。左右両側の山水図のなかには藁葺屋根のような建物が見え、山野に広がる朝鮮の原風景が想起される。
조선시대의 螺鈿 기법은 조개 껍질을 숫돌로 갈아서 얇게 만들고 패편을 木地에 붙여, 그 위에 옻칠을 여러 번 바르고 문양을 예리하게 내는 기술이 많이 채택되었다. 이 函에는 한쌍의 거북이가 헤엄치는 연못과 무리의 기러기가 날아 가는 산수 풍경이 螺鈿 기법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좌우 양측에 산수 그림 중에는 초가 건물이 보이고 산야에 펼쳐지는 조선의 들판 풍경이 연상된다.

菊唐草文螺鈿経箱
この経箱は高麗時代(918~1392)にさかのぼる代表的な作品の一つで、当地で螺鈿技法が発達した12世紀後半から13世紀初頭にかけて製作されたと考えられる。もともと大蔵経が納められていたと考えられているが、箱だけが伝来した。
이 경전 상자는 고려 시대 (918 ~ 1392)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이곳에서 螺鈿 기술이 발달한 12 세기 후반부터 13 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 대장경이 납품되어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지만, 상자만 전래되었다.

 


「菊唐草文螺鈿玳琩合子」
幅9.3センチ 朝鮮・高麗時代
12 世紀から13世紀、高麗の螺鈿(らでん)の容器です。ごく小さな貝の破片を組み合わせて規則的な文様を表します。化粧道具だと考えられています。800年も前のものですが保存状態がよく黄色や赤の顔料も見て取れます。細かい螺鈿と華やかな彩が高麗螺鈿の技術の高さを示します。正倉院展で見られるようなすばらしい螺鈿です。
12 세기부터 13 세기 고려의 螺鈿의 용기입니다. 아주 작은 패각의 절편을 조합하여 일정한 문양을 나타냅니다. 화장 도구라고 생각됩니다. 800 년 전 것이지만 보존상태가 좋고 노란색이나 빨간색 안료도 간파할 수있습니다. 세밀한 螺鈿과 화려한 채색이 고려 螺鈿 기술의 높이를 나타냅니다. 正倉院展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한 螺鈿입니다.


한국의 미 - 나전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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