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朝鮮を舞台に戦われた日露戦争…

 

西洋人が見たその時の私たちの姿

 

朝鮮日報& Chosun.com 2009.10.31 03:1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30/2009103001505.html

 

白い服を着た人々で、城壁の上も下もぎっしりと埋め尽くされている。

1904年の日露戦争当時、
平壌(ピョンヤン)に入城する日本軍を見物するために

押し寄せた人波だ。

冠をかぶった男に混じり、

子供を背負った女性も上から見下ろしている。

人々は義州から始まったロシアと日本の戦闘を見つめるしかなかった。

米国と英国の雑誌で紹介された

日露戦争当時の朝鮮人を描写した写真資料だ。

 

 

 

 日露戦争は日本とロシアの間の戦いだったが、

その主戦場は朝鮮半島だった。

ロシアと日本の衝突が始まるや、

朝鮮は1904年1月21日に中立を宣言した。

しかし日本軍は2月9日にソウルに進駐した上、

朝鮮政府を強圧して韓日議定書を締結した。

朝鮮半島では日本軍があたかも自分の庭のように

我が物顔でうろつき戦争を遂行した。

外国雑誌や新聞に紹介された日露戦争当時の朝鮮人の姿は

徹底して野次馬だった。

 

 

 

西欧に当時の朝鮮のイメージを刻印させる写真を撮った彼らは、

宣教師や外交官・記者・旅行者・地理学者・商人たちだった。

彼らが記録した写真資料のおかげで

百年前の私たちの日常をこの目で見ることができるのは収穫だ。

しかし写真の中の朝鮮と朝鮮人の姿が、

あまりにもみすぼらしくて

未開な印象を与えるのが不快なのも事実だ。

 

 

西洋人が一緒に被写体となっている写真では、

文明と野蛮、近代と前近代の対比がより一層強調される。

写真の中の人物と風景は明らかに私たちのものなのに、

異次元の世界のように見えるのはなぜだろうか。

いつも妄想ばかりしているからだよ!!!

きちんと現実を受け入れなさい!!!

 

 

レンズを通して被写体を見る西欧人のフィルターがかかっているためか、

でなければ徹底して西欧化されてしまった現在の

私たちの視点から見るためだろうか。

 

 

さて、現実をみてみよう。

 

 

Ethel HOWARD (1865-1931年)

 

1907年のある時期に,

下の子供たち3人を朝鮮と中国へ旅行に連れてゆく許しが出たが,
これは私が公爵(島津忠重: 1886-1968)や

顧問の人たちから信頼されていたことを

示す大いなる証拠といってよいだろう。

 

 


この旅行の計画が知れると,

それに反対する何通かの手紙が

いろいろな友人から送られてきた。

その友人のある者は,

以前その地方を旅行したことがあり,

衛生上およびその他の見地から,

この計画をやめるように強く忠告してきた。

 

 


われわれは医学書をたくさん抱え込み,

大きな薬箱を提げて旅行に出発したのである。

 

 

われわれが,朝鮮への第一歩を印すべく釜山の港へ着いたのは

午前9時半頃であった。
船から見ると,丘は砂山で暑そうに見え,木が一本もなかった。
土は茶褐色をしていて,日本の土とは全然違っていた。

港には,三隻の日本の小型巡洋艦が停泊していた。

上陸して最初に私の目をとらえたものは,

朝鮮人の人夫の長い行列で,
背中に荷物を背負うための木の板を括りつけていたが,

それは荷物がなくともそれだけで大変な重さであった。
後で道端でその中の一人が休んでいるのを見かけたが,

彼が背中から板を下ろして私に背を向けたのを見ると,

それは全くの裸であった。

最初私は,彼が背中いっぱいに

入れ墨をしているのかと思ったが,

よく見ると木の板が皮膚を押し付けて

一面に青い痣になっているのだった。

 

 

私の聞いた話では,普通の朝鮮~人は1着しか着物を持たず,
それも洗っている間は家にい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単純な理由から,
滅多に洗濯しないということだった。また,同じ理由で雨の日は働かない。

 

 

既婚の男は髪の毛を頭の上で小さな髷に結っており,
未婚の男は髪を真ん中で分け,後ろ側で弁髪に編んでいる。         
朝鮮~人が高い帽子をかぶると,

この髷が透けてみえるので面白いと思った。
帽子が蝿帳のように,ある程度透けてみえるからである。
時によると,彼らは帽子を雨や日光から守るために,
小さな油紙で張った1フィートぐらいの

長さの笠を帽子の上につけていることがある。

朝鮮服の奇妙な特徴は,

腹部を丸出しにしたままであることで,
それを除けば人々の服装はかなり整っていた。
彼らは,両足の間にぶら下げた

スコットランド人の下げ皮袋のような袋に,
お金や煙草を入れて持ち運び,
歩くときには日本人が使っているような

長い煙管を手に持っている。
人足が働く時には,

煙管やマッチ箱をどこかしらに押し込んでしまうが,
大抵の場合は,頭上に括りつけた衣類の間から

それらがのぞいているのが見える。

 

 

 

汽車で旅行すると,

方々に所かまわず土が盛り上げてあるのが見えるが,

それは墓らしかった。

それらの墓には名前もついてないし,

碑文を刻んだ墓石もなかった。
なぜなら,

朝鮮~人は死者を葬るのに気の向いた所に,
水田でもどこでもお構いなしに葬るからである。

 

 

朝鮮の子馬は非常にかわいくて,

私が思うにはウェールズ種の子馬よりさらに小さいようだ。

子供たちは,その中の大変かわいらしい1頭の子馬をとても欲しがった。

 

 

 

 

↑ 左が朝鮮馬。ちなみに右は日本の在来種w

 

 

朝鮮人は皆,

軒を接して建てられた藁葺小屋に

一緒に住んでいるようだ。
屋根には一列に縄が張ってあったが,

それが美観のためか補強のためか私にはわからなかった。

強風が吹いていたから,おそらく後の理由だろう。
われわれは歩を進めて,小屋の中を覗いてみた。

壁は土で塗り固められ,窓は非常に小さかった。

床には茣蓙が敷いてあり,

あたりに,寝るとき枕に使う木の台が散らばっていた。


人々の身なりは汚く,子供たちの多くは着物を着ていなかった。
彼らの髪の毛は日本人のように黒ではなくて,
ある種の色がある――

あるいは埃をよく払い落とせば

色がわかるだろうといったほうがよかもしれない。
とにかく,そこいらじゅう埃だらけで大変だった。

 


 

 

宮殿は,建てられてからまだ50年しか経っておらず,

現皇帝の父君が建てたものであった。
彼はこれを建てるために民意を抑えて

人民に重税を課した暴君であった。
その建築途中で,恨みからたくさんの材木が燃やされたが,

皇帝は事業の続行を命じた。
それは,周りを丘で囲まれた眺めのよい場所に建っていたが,
樹木が建物を建てるために切り倒されてしまったので,

田園風景は丸裸も同然であった。

 

 

建物そのものは完全に中国風であった。
われわれは数多くの大きな門をくぐっていったが,

正門は2階建ての塔になっていた。
それを通り抜けると石畳を敷いた大きな中庭があり,

そこには雑草が生い茂り,全く手入れされていなかった。
門の反対側に,宴会のために使われる大きな集会堂があり,
その屋根にはあちこち一面に小さな動物の形の石像が飾ってあった。
暑さの中を歩き回るのが疲れてきたので,

とうとう私だけ休むことにして,
他の人たちに先に行ってもらうようにした。

 


私は緑色をした川の流れのそばに腰を下ろし,

1人の女が衣類を洗濯しているのを見ていた。

衣類は黄色や茶色に見えるほど汚れていたが,

彼女はそれを木の棒で何度も強く叩きながら,

緑色をした汚い石にこすりつけた。
衣類のためにはそんなやり方はよくないと思うが,
その効果は抜群で,衣類は真っ白になった。

 

 

 

 

 

↑ 洗濯風景?

 

 

 

 

 

 

 


현실 도피하는 한국인

조선을 무대에 싸워진 러일 전쟁…

 

서양인이 본 그 때의 우리의 모습

 

조선일보 & Chosun.com 2009.10.31 03:1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30/2009103001505.html

 

흰 옷을 입은 사람들로, 성벽 위나 아래도 가득가득 차고 있다.

1904년의 러일 전쟁 당시 ,
평양(평양)에 입성 하는 일본군을 구경하기 위해서

밀려 든 인파다.

관을 쓴 남자에게 섞여,

아이를 짊어진 여성도 위로부터 내려다 보고 있다.

사람들은 도리주로부터 시작된 러시아와 일본의 전투를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과 영국의 잡지로 소개되었다

러일 전쟁 당시의 한국인을 묘사한 사진 자료다.

 

 

 

 러일 전쟁은 일본과 러시아의 사이의 싸움이었지만,

그 주전장은 한반도였다.

러시아와 일본의 충돌이 시작되자 마자,

조선은 1904년 1월 21일에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2월 9일에 서울에 진주 한 후,

조선 정부를 강압해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한반도에서는 일본군이 마치 자신의 뜰과 같이

우리 물안으로 배회해 전쟁을 수행했다.

외국 잡지나 신문에 소개된 러일 전쟁 당시의 한국인의 모습은

철저히 해 구경꾼이었다.

 

 

 

서구에 당시의 조선의 이미지를 각인 시키는 사진을 찍은 그들은,

선교사나 외교관·기자·여행자·지리학자·상인들이었다.

그들이 기록한 사진 자료 덕분에

백년전의 우리의 일상을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수확이다.

그러나 사진안의 조선과 한국인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미개인 인상을 주는 것이 불쾌한도 사실이다.

 

 

서양인이 함께 피사체가 되고 있는 사진에서는,

문명과 야만, 근대와 전근대의 대비가 보다 한층 강조된다.

사진안의 인물과 풍경은 분명하게 우리의 것인데,

이차원의 세계와 같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언제나 망상만 하고 있기 때문이야!!!

제대로 현실을 받아 들이세요!!!

 

 

렌즈를 통하고 피사체를 보는 서구인의 필터가 걸려 있기 위해인가,

(이)가 아니면 철저히 해 서구화 되어 버린 현재의

우리의 시점으로부터 보기 위해일까.

 

 

그런데, 현실을 보자.

 

 

Ethel HOWARD (1865-1931해)

 

1907년이 있는 시기에,

아래의 아이들 3명을 조선과 중국으로 여행에 데려 가는 허가가 나왔지만,
이것은 내가 공작(시마즈 다다시게: 1886-1968)이나

고문의 사람들로부터 신뢰 받고 있던 것을

나타내 보이는 커다란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여행의 계획이 알려지면,

거기에 반대하는 몇통인가의 편지가

여러가지 친구로부터 보내져 왔다.

그 친구가 있는 사람은,

이전 그 지방을 여행했던 적이 있어,

위생상 및 그 외의 견지로부터,

이 계획을 그만두도록(듯이) 강하게 충고해 왔다.

 

 


우리는 의학서를 많이 안아,

큰 약상을 들어 여행을 떠나 발했던 것이다.

 

 

우리가, 조선에의 제일보를 표시할 수 있도록 부산의 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반무렵이었다.
배에서 보면, 언덕은 모래산으로 더운 듯이 보여 나무가 한 개도 없었다.
흙은 다갈색을 하고 있고, 일본의 흙과는 전혀 차이가 났다.

항구에는, 3척의 일본의 소형 순양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상륙해 최초로 나의 눈을 파악한 것은,

한국인의 인부의 긴 행렬로,
등에 짐을 짊어지기 위한 나무의 판을 괄붙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짐 (이) 없더라도 그 만큼으로 대단한 무게였다.
다음에 길가에서 그 중의 한 명이 쉬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가 등으로부터 판을 내리고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을 보면,

그것은 완전한 알몸이었다.

최초 나는, 그가 등 가득

문신을 하고 있는지 생각했지만,

잘 보면 나무의 판이 피부를 꽉 눌러

일면에 푸른 반점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내가 (들)물은 이야기에서는, 보통 조선~인은 1벌 밖에 옷(기모노)를 가지지 않고,
그것도 씻고 있는 동안은 집에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단순한 이유로부터,
분별없게 세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또, 같은 이유로 비오는 날은 일하지 않는다.

 

 

기혼의 남자는 머리카락을 머리 위에서 작은 곡에 결은 내려
미혼의 남자는 머리카락을 한가운데에서 나누어 뒤측에서 변발에 짜고 있다.         
조선~인이 높은 모자를 쓰면,

이 곡을 틈이 날 수 있어 보이므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모자가 파리장과 같이, 어느 정도 틈이 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때에 따르면, 그들은 모자를 비나 닛코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작은 기름종이로 친 1피트 정도의

길이의 삿갓을 모자 위에 붙이고 있는 일이 있다.

한복의 기묘한 특징은,

복부를 노출로 한 채로 있는 것으로,
그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복장은 꽤 갖추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양 다리의 사이에 매달았다

스코틀랜드인의 인하피대와 같은 봉투에,
돈이나 담배를 넣어 운반해,
걸을 때는 일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긴 담뱃대를 손에 가지고 있다.
인적이 일할 때에는,

담뱃대나 성냥갑을 어딘가 해들에게 밀어넣어 버리지만,
대체로의 경우는, 두상에 괄붙인 의류의 사이부터

그것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기차에서 여행하면,

분들에게 곳 상관하지 않고 흙이 북돋워 있는 것이 보이지만,

그것은 무덤인것 같았다.

그러한 무덤에는 이름도 붙지 않고,

비문을 새긴 묘석도 없었다.
왜냐하면,

조선~인은 사망자를 매장할 생각이 향한 곳에,
논에서도 어디에서라도 상관없이 매장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망아지는 매우 귀엽고,

내가 생각컨대는 웨일즈종의 망아지 보다 더 작은 것 같다.

아이들은, 그 중의 큰 일인가 원 오셔 있어 1마리의 망아지를 매우 갖고 싶어했다.

 

 

 

 

↑ 왼쪽이 조선마.덧붙여서 오른쪽은 일본의 재래종 w

 

 

한국인은 모두,

채를 접해 지어진 고즙오두막에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
지붕에는 일렬에 줄이 쳐 있었지만,

그것이 미관이기 때문에인가 보강을 위해인가 나는 몰랐다.

강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후의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보를 진행시키고, 오두막가운데를 보았다.

벽은 흙에서 발라 굳힐 수 있어 창은 매우 작았다.

마루에는 돗자리가 깔아 있어,

근처에, 잘 때 베개에 사용하는 나무의 받침대가 흩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더럽고, 아이들의 상당수는 옷(기모노)를 입지 않았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일본인과 같이 흑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색이 있다--

혹은 먼지를 잘 떨어뜨리면

색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편이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근방 총 먼지 투성이로 큰 일이었다.

 


 

 

궁전은, 지어지고 나서 아직 50년 밖에 지나지 않고,

현황제의 아버님이 세운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세우기 위해서 민의를 억제해

인민에게 중세를 부과한 폭군이었다.
그 건축 도중에, 원한으로부터 많은 재목이 태워졌지만,

황제는 사업의 속행을 명했다.
그것은, 주위를 언덕에서 둘러싸인 경치가 좋은 장소에 세우고 있었지만,
수목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베어 쓰러뜨려져 버렸으므로,

전원 풍경은 발가숭이와 다름없었다.

 

 

건물 그 자체는 완전하게 중국풍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큰 문을 빠져 나가고 갔지만,

정문은 2층건물의 탑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빠져 나가면 돌층계를 깐 큰 안뜰이 있어,

거기에는 잡초가 무성해, 전혀 손질 되어 있지 않았다.
문의 반대 측에, 연회를 위해서 사용되는 큰 집회당이 있어,
그 지붕에는 여기저기 일면에 작은 동물의 형태의 석상이 장식해 있었다.
더위안을 걸어 다니는 것이 지쳤기 때문에,

드디어 나만 쉬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가 주도록(듯이) 했다.

 


나는 녹색을 한 강의 흐름의 곁에 앉아,

1명의 여자가 의류를 세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의류는 황색이나 갈색으로 보이는 만큼 더러워져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나무의 봉으로 몇번이나 강하게 두드리면서,

녹색을 한 더러운 돌에 문질러 발랐다.
의류를 위해서는 그런 방식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효과는 발군으로, 의류는 새하얗게 되었다.

 

 

 

 

 

↑ 세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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