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1909年 10月 26日安重根義士がハルビン義挙で逮捕した直後, 高宗がウラジオストックに密使を送って中医者救出作戦を広げた事実が明かされた. また日本政府がハルビン義挙の背後勢力で高宗を指目したことで現われた.

安重根・ハルビン学会共同代表である異態陣ソウル大名誉教授(国史学)はハルビン義挙翌年の 1910年 2月と 3月ウラジオストック駐在日本総領事が小村(小村) 当時日本外務大臣に送った機密報告で 3件を手に入れて朝鮮日報 29日付けを通じて公開した.


新聞によれば, この機密報告では京城からハルビンを経って 1910年 1月 27日ウラジオストックに到着した高宗の密使 2人が安重根義士を日本法廷からロシア法廷に移管して求め出そうと思った動向を追跡している. おかっぱ洋服身なりであるこの密使たちの名前は ‘ソングソンツン’と ‘造兵した’と, ソングソンツンは 37‾38歳の管理出身で日本語と英語に上手で日本とアメリカにも行って来たことがあることに把握された.

1910年 2月 17日付け ‘太皇帝密使(太皇帝密使)’という題目の見てからはこれら密使がウラジオストック居留民回に出席して “アジア太平洋皇帝(我太皇帝・高宗) 陛下の勅命(勅命)を受けてこんなに陛下の親の間(親璽)が撮れた密書を持って麗水順天(旅順) 獄中にいる安重根を求め出してラッシュ鉄アレイにいるうちの同胞と一緒に極力これをロシアの裁判に任せるために当地へ来た”と言ったと記録している. 五日後人 2月 22日付け報告書 ‘ハンファング(韓皇)の密使ソングモ(宋某)に関する’は ”上の密使は到着当時多数の韓人からどの位真偽を疑心されていたが, 今は韓人たちが上の密使密勅(密勅)を信じるのに至った”と書いている.

3月 2日付け報告書 ‘韓国宮廷からの密使’は “密偵の言葉によれば, 目下こちらを発って麗水順天に間ソング・栗二人の密使は決して威武を(偽物・にせ物)ではなくて, ニコリスク時で死亡した李・ヨンイクもハンファング(韓皇)の密使として当時彼が持って来たネタング(内帑) 残金 7000円は今もツェボングズンの家に保管されていると言う”ともした.

のような報告書は特に“排日(排日)の本院(本元)はもちろん韓国皇帝と言う. 一昨年京城及び平壌人多数が来て排日を慫慂したことも宮廷が与えたお金としてこの頃から当地の居留民回及び新聞社が徐徐に勢力を得るようになったと言って, 去年 10月ハルビンでの凶変(凶変) 事件も宮廷から鉛錘(煙秋・クラスキノ−)の催嶺型家で先導して来たこととして…”と言いながら安重根義挙の背後で高宗を指目した.

牛の朝鮮痛感が 1910年 1月 8日付けで小村外務大臣に送った他の見てからは安重根義士を救出するために雇った上海のイギリス人弁護士ダグラスの弁護費用を高宗側近である閔泳柿・閔英哲・現象件がつけたと書いている.

高宗が派遣した二人の密使は沿海州韓人たちを相手で安重根義士支援を訴えるなど救出作業に出たし, ダグラス弁護士も麗水順天法廷に出席したが外国人という理由で弁論を拒否されて安重根義士は結局死刑判決を受けた.

異態陣教授は朝鮮日報とのインタビューで “これら密使は高宗が 1902年国内諜報と海外情報収集のために設立したキンテリジェンスサービスイックムンサ(益聞社) 要員に推定される”と “機密報告では高宗が沿海州に建設した抗日独立運動基地を背景でハルビン義挙が起こったし, 日本側がこんな事実に注目した可能性があることを見せてくれる”と言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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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안중근 구하기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체포된 직후, 고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밀사를 보내 안 의사 구출 작전을 펼친 사실이 밝혀졌다. 또 일본 정부가 하얼빈 의거의 배후 세력으로 고종을 지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중근ㆍ하얼빈학회 공동대표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국사학)는 하얼빈 의거 이듬해인 1910년 2월과 3월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 총영사가 고무라(小村) 당시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기밀보고서 3건을 입수해 조선일보 29일자를 통해 공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기밀보고서는 경성에서 하얼빈을 거쳐 1910년 1월 27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고종의 밀사 2명이 안중근 의사를 일본 법정에서 러시아 법정으로 이관해 구해내려 했던 동향을 추적하고 있다. 단발 양복 차림인 이 밀사들의 이름은 ‘송선춘’과 ‘조병한’며, 송선춘은 37~38세의 관리 출신으로 일본어와 영어에 능숙하고 일본과 미국에도 다녀온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910년 2월 17일자 ‘태황제밀사(太皇帝密使)’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이들 밀사가 블라디보스토크 거류민회에 출석해 “아태황제(我太皇帝ㆍ고종) 폐하의 칙명(勅命)을 받고 이렇게 폐하의 친새(親璽)가 찍힌 밀서를 가지고 여순(旅順) 옥중에 있는 안중근을 구해내어 러시아령에 있는 우리 동포와 함께 극력 이를 러시아의 재판에 맡기기 위해 당지에 왔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닷새 후인 2월 22일자 보고서 ‘한황(韓皇)의 밀사 송모(宋某)에 관한 건’은 ”위 밀사는 도착 당시 다수의 한인으로부터 어느 정도 진위를 의심당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인들이 위 밀사 밀칙(密勅)을 믿기에 이르렀다”고 적고 있다.

3월 2일자 보고서 ‘한국 궁정으로부터의 밀사’는 “밀정의 말에 의하면, 목하 이곳을 떠나 여순으로 간 송ㆍ조 두 사람의 밀사는 결코 위물(僞物ㆍ가짜)이 아니고, 니코리스크 시에서 사망한 이용익도 한황(韓皇)의 밀사로서 당시 그가 가지고 온 내탕(內帑) 잔금 7000엔은 지금도 최봉준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고도 했다.

같은 보고서는 특히“배일(排日)의 본원(本元)은 물론 한국황제라고 한다. 재작년 경성 및 평양 사람 다수가 와서 배일을 종용한 것도 궁정이 준 돈으로서 이 무렵부터 당지의 거류민회 및 신문사가 점차 세력을 얻게 되었다고 하고, 작년 10월 하얼빈에서의 흉변(凶變) 사건도 궁정으로부터 연추(煙秋ㆍ크라스키노)의 최재형 집으로 선동해온 것으로서…”라며 안중근 의거의 배후로 고종을 지목했다.

소네 조선통감이 1910년 1월 8일자로 고무라 외무대신에게 보낸 다른 보고서는 안중근 의사를 구출하기 위해 고용한 상하이의 영국인 변호사 더글러스의 변호 비용을 고종 측근인 민영익ㆍ민영철ㆍ현상건이 댔다고 적고 있다.

고종이 파견한 두 밀사는 연해주 한인들을 상대로 안중근 의사 지원을 호소하는 등 구출 작업에 나섰고, 더글러스 변호사도 여순법정에 출석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변론을 거부당해 안중근 의사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태진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밀사는 고종이 1902년 국내 첩보와 해외정보 수집을 위해 설립한 첩보기관 익문사(益聞社) 요원으로 추정된다”면서 “기밀보고서는 고종이 연해주에 건설한 항일 독립운동기지를 배경으로 하얼빈 의거가 일어났고, 일본 측이 이런 사실에 주목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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