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ナカスカAkiraの著書 ¥”近代日本の朝鮮認識¥” 中で

 

 

鼎韓論批判の最後の声

 

 

1875年 3月, チュブンギホで(忠芬義芳樓)で  『ゾングハンピョングでは』 という本が出版された. 鼎韓論を熱裂に主張した買ってハクボ(佐田白茅)が自分の文を含めて鼎韓論と係った八編の文を集めてそれに対する批評を柱石でつけて出版したのだ. その中には 1870年政府の非情(秕政)を訴える建白書を提出して自ら自害した横山ショタで(横山正太郎)が ¥”今日の急先務はまず綱紀を立てて政府の命令がまずになるようにして信頼を天下に現わして万民を安心させることにある. (中略) 朝鮮の罪を問うのに手間を取る時間がどこにあるという話か¥” して主張した文があって, ダヤママサナカ(田山正中)が鼎韓論を批判する長い文章の文が収録されている.

 

横山の主張がいわゆる内政を直すのがまずという立場で鼎韓論を批判していたら, ダヤマは鼎韓論その自らの主張を批判している. 鼎韓論を主張する過激な文等を集めた文集中に二人の文が順に出ていっそう異彩だ.

 

ダヤママサナカは ¥”世の中人々は珍句(神功) 皇后の古代朝鮮征伐をすごい功績と称して国家の栄誉だと思う. どうして偉いと思うか? たぶんその単純な無為(武威) のためであるでしょう. しかし私たち文明の基礎を立てることができたことも当時アジア大陸の文物と工芸を搾取したからではないか¥” して聞き返した. 彼は引き続き次のように言った. ¥”単純な無為をふるうと言えば名分は問わないで仕事を行って志を果たす業績と称して立派だと言ったら, ついには小盗人のような強奪行為さえ同じ部類で思うようになるでしょう. 私たち文明の来由を思えば福を与えた者は彼らで私たちはそれを受けた者だ. この恩恵は決して忘れてはいけない.¥” 描いてからは ¥”秀吉の業績を置いて全然利益がなかったと言うことはできない. 正しくない暴行が子株(神州:日本)という正義の名前を汚したから (中略) その褒め言葉可否は論ずるところではいや¥”と言いながら残酷に批判した. 彼はまた鼎韓論の主張を五つで分けて順に駁したが, これを要約すれば次のようだ.

 

 

その一番目言葉によれば, 今国の功臣たちは各各その所見を異にしているし将卒たちは皆功績を立てているから圧しにくい. そうするので 事件を朝鮮に起こしてしばらく所要事態の火を回そうと思うのだ. ああ, これは秀吉の二の舞を演ずるのだ. その正義のあることができずに無礼なところはもう前で言ったとおりだ.

 

その二番目言葉によれば, 朝鮮を私たちののにした後こういうわけでロシアを阻もうと思う. しかしこれは兵法が分かる者の論理ではない. 一度に朝鮮を圧したと言っても彼らの民心をどうして一瞬に私たちに回すことができるか. それに朝鮮にいる者は皆敵陣にある体たらくだ. すなわち, 四面皆が的な所でこれよりもっと強い少ない阻もうと思ったらどうしてその目標したところが可能だのか.

 

その三番目言葉によれば, しばらく事件を朝鮮に起こして私たち買うのを振作させようと思う. これは非常に卑怯な仕業だ. 今朝夕で外国の強い少ない相対して悽惨なさげすみを経験しているがよくも我慢して来ている. こんなさげすみは大きく問題視することもできないのに義理を忘れて隣国にむりやりに事件を起こそうと思う. 途方もなく弱小な隣りを馬鹿にして何らの問題なしに静かにいる国を侵略しようと思う. 今人々が批判することは力で押すことができるかも知れなくても後日各国の人々に良い評価を得ることは難しいだろう.

 

その四番目言葉によれば, 開港しながら私たちはもう鎖国の誤れることを見抜いた. したがって朝鮮をしばらく間外国と接するようにしてくれることは私たちの任務だ. 初めてアメリカ伝えることが江戸沖合に侵入した時盟約を持って私たちに開港を要求したのか? イギリス, ロシア, オランダ, フランスも鉄砲を持って侵略して入って来て各自の欲心を現わした. 私たちの手足を縛って私たちの油っこい地を搾取して長い間疲弊されてほとんど使う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した. それなのに今私たちが朝鮮に強要することは彼らに私たちの二の舞を演じなさいと勧めることと同じだ. もし私たちが朝鮮人たちならどうして早い考えないことがあるか.

 

その五番目言葉によれば, 仕事を起こして民心を鼓舞して私たちの文明を大きく起こそうと思う. しかし朝鮮の地を借りてこれを試して見ようと思ったら, 非常に非道徳的な欲心に違いない. 前述したように目の前の強敵は怖くて避けて, 平和な弱小国を脅威することは正義のある事ではない. 伝えて聞いたことによれば朝鮮人たちは義理が深くて気質が美しくてアジアの中にもすぐれる. すべての外国の懇請にも応じていない姿がまるで徳を専らする美人のようだ. 美人はいつも人々に愛される. どころが特に私たちはこの美しい国を大切にしないでどうしてこのように虐待することができるか.

 

 

 

引用文がちょっと長くなったがダヤマの主張することはよく理解されると思う. 正しくこのようなダヤマの主張が盛られた 『ゾングハンピョングでは』は 1875年に出版された. ところでその年は日本政府が朝鮮侵略のために軍事的な挑発を起こした, すぐ江華島事件が起こった咳気もする. その本が出版された後達人その年 4月に外務省が朝鮮に派遣したMoriyamaシゲで(森山茂)は軍艦で朝鮮を脅威するという書信を送った. 5月には日本の軍艦が急に釜山に入港したし, 初秋の 9月に江華島事件を起こしたのだ. もう私は日に台湾に出兵したが, もうまた軍事力を先に立たせて朝鮮侵略に露に炎を繰り上げようと思った. こんな時期にダヤマの主張のような鼎韓論批判が巷間に広がったという事実は, その後近代日本の朝鮮官の変化を考えて見る時驚くべきできわまりない.

 

 

 

 

珍句(神功) 王后の古代朝鮮征伐という話にならない過去から行われた 倭人たちの歴史歪曲も見えるが当時植民地開拓に関心なかったアメリカに開港された以後この間までにしても 先進 朝鮮通信使で 善隣友好につながった義理と友好の 関係を裏切って 捨てて帝国主義視覚で朝鮮を見下しておとし入れて急速に朝鮮に対する態度が変わることを見て再びこれらは信じられないけだものと言う考えを確信するようになった

 

 

 


정한론을 비판 왜인

나카쓰카 아키라의 저서 "근대일본의 한국인식" 中에서

 

 

정한론 비판의 마지막 목소리

 

 

1875년 3월, 츄분기호로(忠芬義芳樓)에서  『정한평론』 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정한론을 열렬히 주장했던 사다 하쿠보(佐田白茅)가 자신의 글을 비롯하여 정한론과 관계된 여덟 편의 글을 모아서 그에 대한 비평을 주석으로 달아 출판한 것이다. 그 속에는 1870년 정부의 비정(秕政)을 호소하는 건백서를 제출하고 스스로 자해한 요코야마 쇼타로(橫山正太郞)가 "오늘날의 급선무는 우선 기강을 세워 정부의 명령이 우선이 되게 하고 믿음을 천하에 나타내어 만민을 안심시키는 것에 있다. (중략) 조선의 죄를 묻는데 지체할 시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고 주장한 글이 있고, 다야마 마사나카(田山正中)가 정한론을 비판하는 긴 문장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요코야마의 주장이 이른바 내정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정한론을 비판하고 있다면, 다야마는 정한론 그 자체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정한론을 주장하는 과격한 글들을 모은 문집 안에 두 사람의 글이 차례로 나와 한층 이채롭다.

 

다야마 마사나카는 "세상 사람들은 진구(神功) 황후의 고대 조선 정벌을 대단한 공적이라 칭하며 국가의 영예로 생각한다. 왜 위대하다고 여길까? 아마도 그 단순한 무위(武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명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아시아 대륙의 문물과 공예를 착취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순한 무위를 떨친다고 하면 명분은 묻지 않고 일을 행하고 뜻을 이루는 업적이라 칭하며 훌륭하다고 하니, 마침내는 좀도둑과 같은 강탈 행위조차 같은 부류로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 문명의 유래를 생각하면 복을 준 자는 그들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은 자다. 이 은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히데요시의 업적을 두고 전혀 이익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옳지 않은 폭행이 신주(神州:일본)라는 정의의 이름을 더럽혔으니 (중략) 그 칭찬 여부는 논할 바가 아니"라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정한론의 주장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차례로 반박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 첫 번째 말에 의하면, 지금 나라의 공신들은 각자 그 소견을 달리하고 있고 장졸들은 모두 공적을 내세우고 있으니 제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건을 조선에 일으켜 잠시 소요 사태의 화를 돌리려 하는 것이다. 아아, 이것은 히데요시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그 의롭지 못하고 무례한 바는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다.

 

그 두 번째 말에 의하면, 조선을 우리 것으로 삼은 다음 이로써 러시아를 막으려 한다. 허나 이는 병법을 아는 자의 논리가 아니다. 한번에 조선을 제압했다고 해도 그들의 민심을 어찌 하루아침에 우리에게로 돌릴 수 있겠는가. 게다가 조선에 있는 자는 모두 적진에 있는 꼴이다. 즉, 사면 모두가 적인 곳에서 이보다 더 강한 적을 막으려고 한다면 어찌 그 목표한 바가 가능하겠는가.

 

그 세 번째 말에 의하면, 잠시 사건을 조선에 일으켜서 우리 사기를 진작시키려 한다. 이는 매우 비겁한 짓이다. 지금 아침저녁으로 외국의 강한 적을 상대하며 처참한 수모를 겪고 있지만 용케 참아오고 있다. 이런 수모는 크게 문제 삼지도 못하면서 의리를 저버리고 이웃나라에 무리하게 사건을 일으키려 한다. 망령되게 약소한 이웃을 업신 여기고 아무런 문제없이 조용히 있는 나라를 침략하려고 한다. 지금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힘으로 누를 수 있을지 몰라도 훗날 각국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네 번째 말에 의하면, 개항하면서 우리는 이미 쇄국의 그릇됨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조선을 잠시 동안 외국과 접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의 임무다. 처음 미국 전함이 에도 앞바다에 침입했을 때 맹약을 가지고 우리에게 개항을 요구했는가?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도 총을 가지고 침략해 들어와 각자의 욕심을 드러냈다. 우리의 손발을 속박하고 우리의 기름진 땅을 착취하여 오랫동안 피폐해져 거의 쓸 수 없게 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가 조선에게 강요하는 바는 그들더러 우리의 전철을 밟으라고 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가 한국인들이라면 어찌 이를 생각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다섯 번째 말에 의하면, 일을 벌여 민심을 고무하고 우리의 문명을 크게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조선의 땅을 빌려 이를 시험해 보려 하니, 매우 비도덕적인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눈앞의 강적은 겁이 나서 피하고, 평화로운 약소국을 위협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의리가 깊고 기질이 아름다워서 아시아 가운데서도 뛰어나다. 모든 외국의 간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마치 덕을 한결같이 하는 미인과 같다. 미인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헌데 유독 우리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소중히 하지 않고 어찌 이처럼 학대할 수 있는가.

 

 

인용문이 좀 길어졌지만 다야마가 주장하는 바는 잘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바로 이와 같은 다야마의 주장이 담긴 『정한평론』은 1875년에 출판되었다. 그런데 그 해는 일본 정부가 조선 침략을 위해 군사적인 도발을 일으켰던, 바로 강화도사건이 일어났던 해기도 하다. 그 책이 출판된 다음 달인 그 해 4월에 외무성이 조선에 파견했던 모리야마 시게루(森山茂)는 군함으로 조선을 위협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5월에는 일본의 군함이 갑자기 부산으로 입항했고, 초가을인 9월에 강화도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미 전 해에 대만으로 출병했는데, 이제 다시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 침략에 공공연히 불길을 당기려 했다. 이런 시기에 다야마의 주장과 같은 정한론 비판이 항간에 퍼졌다는 사실은, 그 후 근대 일본의 조선관의 변화를 생각해 볼 때 놀랍기까지 하다.

 

 

 

진구(神功) 왕후의 고대 조선 정벌이라는 말도 안되는 과거로부터 행해진 왜인들의 역사왜곡도 보이지만 당시 식민지 개척에 관심없었던 미국에게 개항된 이후 얼마전까지만 해도 선진 조선통신사로 선린우호로 이어지던 의리와 우호의 관계를 배신해 버리고 제국주의 시각에서 조선을 멸시하고 모함하고 급속도로 조선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또다시 이것들은 믿을 수 없는 짐승이란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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