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古くは『今昔物語』に塩辛との文字が現れるが、江戸期以降の塩辛と同じものと確認できないことと、時代的に孤立していることから、初出は『日葡辞書』とするのが妥当と考えられる。16世紀から記録が確認できる『なし物』との併用がしばらく続いた後、江戸中期後半以降に塩辛という名称で定着した。文献には、やや訛った『しょうから』(鳥取市)や、『しょから』(志摩市)の事例が掲載されている。
옛날에는今昔物語에 젓갈이라는 문자가 나타나지만, 에도시대부터 젓갈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없는 것으로, 시대적으로 고립되어있는 것으로 처음 소개되는 것은”日葡辞書”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16 세기부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なし物”와 함께  잠시 동안 병용된 후,에도 중기 후반 이후 젓갈이라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문헌에는 다소 그릇된 “しょうから”(돗토리시)나 “しょから”(시마시)의 사례가 나와있다.

朝鮮語でスケトウダラのことを「ミョンテ」(明太)と言ったのが始まりである。17世紀、朝鮮の明川地方で太という漁師が漁獲したことから明太と名づけられた旨の文献が残っている(松南雑識巻十四魚鳥篇より)。
辛子明太子
朝鮮半島で作られたスケトウダラの塩漬けは、17世紀に北部九州・山口地方へ伝わった。このためこの地方では江戸時代から、スケトウダラを「めんたい」と呼んだ。漢字表記「明太」は朝鮮半島でミョンテを「明太魚」、「明太」と書いたことからきている。つまり「明太」とは「タラ」のことであり、「明太子」とは「タラコ」という意味になる。朝鮮半島では辛子明太という食べ物があるが、これは唐辛子で味付けした「タラ」である。
なお、日本では「鱈」の字が文書に現れるのは寛永10年(1670年)であり、そもそもはスケトという呼び名であった。
한국어에서 명태에 대하여 “묜테”(명태)라고 말한 것이 그 시초이다. 17 세기 조선의 명천 지방에서 太라는 어부가 어획한 것을 명태로 명명한 내용의 문헌이 남아있다 (松南雑識巻十四魚鳥篇에서).
명란젓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명태의 소금절임은 17 세기에 북부 큐슈 야마 구치 지역에 전해졌다. 따라서이 지역은 에도시대에서 명태를 “멘타이”라고 불렀다. 한자 표기 “명태”는 한반도에서 묜테을 “명태 물고기”, “명태”라고 쓴 것으로부터 오고있다. 즉 “명태”는 “대구”를위한 것이고, “명란젓”란 “타라코”이라는 의미가된다. 한반도에서는 매운맛 명태라는 음식이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추로 양념한 “대구”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대구”의 글자가 문서에 나타나는 것은간에 10 년 (1670 년)이며, 원래는 스케토하는 통칭 하였다.

 

 

에도시대의 식생활 6 - 두부
江戸時代の食生活 6 - 豆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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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紹介したように、明の王室では、韓国の食べ物に感動して、透けるたびに飮食を要請ていた。
それらの項目を見てみよう

 

世宗 39卷, 10年(1428 戊申 / 명 선덕(善德) 3年) 2月 12日(甲子) 6번째기사
宣諭曰: 「爾殿下至誠進佳海靑, 海靑雖死, 至誠可如。 所進黃鷹亦佳, 雖非海靑, 若有佳鷹, 亦可竝進。 年魚卵醢及係鷹、好鹿皮一千張、鵝靑匹段、兜牟二部, 幷備以進。
宣諭하기를「그대의 전하(殿下)가 정말 좋은 해동청(海東靑)을 보냈는데, 해동청이 죽어서 안타깝다. 보냈던 누른 매도 또한 좋은 것이니, 비록 해동청이 아니더라도 만약 좋은 매가 있다면 보내라. 연어 알젓[年魚卵醢]과 계응(係鷹)·좋은 녹비(鹿皮) 1천 장(張), 아청 필단(鴉靑匹段)과 도모(兜牟) 2부(部)를 보내라.
明王によると, 君の殿下が、本当に良い海東靑を送ったが、海東靑が死んで残念だ。送した黃鷹もいいはずだから、にもかかわらず 海東靑があっても、もしいいタカがある場合は送って下さい。サケ卵塩辛[年鱼卵醢], 係鷹, 良い鹿皮1千枚,鴉靑匹段と兜牟(鉄製の兜)2部を送って下さい。

 

世宗 45卷, 11年(1429 己酉)
宣德四年五月初二日, 欽差太監昌盛、尹鳳等官到國, 欽傳宣諭: “中用的海味等件, 進將來。”
선덕(宣德) 4년 5월 초2일에 흠차 태감(欽差太監) 창성(昌盛)·윤봉(尹鳳) 등의 관원이 우리 나라에 와서 공손히 선유(宣諭)를 전하기를, ‘궁중에서 사용할 해물(海物) 등의 물건을 가져오라. ’
宣徳 4年5月初めに2日欽差太監 昌盛, 鳳などの役人が私たちの国に来て、しゅくはく 宣諭を伝えるため、”宮廷で使用する海鮮(海物)などの物を入手してください。 “

眞魚一千八百三十尾, 民魚五百五十尾, 沙魚九十尾, 芒魚三百八十尾, 洪魚二百尾, 蘆魚一百尾, 年魚五百尾, 大口魚一千尾, 鯉魚二百尾, 秀魚四百四十尾, 文魚二百首, 石首魚一千尾, 靑魚五百觔, 蘇魚五百觔, 鯽魚五百觔, 鰒魚七百觔, 古道魚二百觔, 烏鰂魚二百觔, 大蝦二百觔, 黃魚鮓六桶, 鯉魚鮓一桶, 土花鮓九壜, 石花(酢)〔鮓〕三壜, 生蛤鮓四壜, 蘇魚鮓三壜, 白蝦鮓七壜, 紫蝦鮓四壜, 石首魚子鮓四壜, 紅蛤鮓二壜, 早海菜五百觔, 海菜一千觔, 絲海菜三百觔, 海菜耳三百觔, 昆布四百觔, 海衣一百觔, 甘苔二百觔, 海花二百觔, 黃角三百觔, 松子一千觔, 黃酒五壜, 燒酒五壜。

 

黃魚鮓六桶, 鯉魚鮓一桶, 土花鮓九壜, 石花(酢)〔鮓〕三壜, 生蛤鮓四壜, 蘇魚鮓三壜, 白蝦鮓七壜, 紫蝦鮓四壜, 石首魚子鮓四壜, 紅蛤鮓二壜
ここで言う鲊は塩辛である.

 

エビの塩辛

カキ塩辛

イシモチ塩辛

貝の塩辛  


에도시대의 식생활 13 - 젓갈

古くは『今昔物語』に塩辛との文字が現れるが、江戸期以降の塩辛と同じものと確認できないことと、時代的に孤立していることから、初出は『日葡辞書』とするのが妥当と考えられる。16世紀から記録が確認できる『なし物』との併用がしばらく続いた後、江戸中期後半以降に塩辛という名称で定着した。文献には、やや訛った『しょうから』(鳥取市)や、『しょから』(志摩市)の事例が掲載されている。
옛날에는今昔物語에 젓갈이라는 문자가 나타나지만, 에도시대부터 젓갈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없는 것으로, 시대적으로 고립되어있는 것으로 처음 소개되는 것은"日葡辞書"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16 세기부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なし物"와 함께  잠시 동안 병용된 후,에도 중기 후반 이후 젓갈이라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문헌에는 다소 그릇된 "しょうから"(돗토리시)나 "しょから"(시마시)의 사례가 나와있다.

朝鮮語でスケトウダラのことを「ミョンテ」(明太)と言ったのが始まりである。17世紀、朝鮮の明川地方で太という漁師が漁獲したことから明太と名づけられた旨の文献が残っている(松南雑識巻十四魚鳥篇より)。
辛子明太子
朝鮮半島で作られたスケトウダラの塩漬けは、17世紀に北部九州・山口地方へ伝わった。このためこの地方では江戸時代から、スケトウダラを「めんたい」と呼んだ。漢字表記「明太」は朝鮮半島でミョンテを「明太魚」、「明太」と書いたことからきている。つまり「明太」とは「タラ」のことであり、「明太子」とは「タラコ」という意味になる。朝鮮半島では辛子明太という食べ物があるが、これは唐辛子で味付けした「タラ」である。
なお、日本では「鱈」の字が文書に現れるのは寛永10年(1670年)であり、そもそもはスケトという呼び名であった。
한국어에서 명태에 대하여 "묜테"(명태)라고 말한 것이 그 시초이다. 17 세기 조선의 명천 지방에서 太라는 어부가 어획한 것을 명태로 명명한 내용의 문헌이 남아있다 (松南雑識巻十四魚鳥篇에서).
명란젓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명태의 소금절임은 17 세기에 북부 큐슈 야마 구치 지역에 전해졌다. 따라서이 지역은 에도시대에서 명태를 "멘타이"라고 불렀다. 한자 표기 "명태"는 한반도에서 묜테을 "명태 물고기", "명태"라고 쓴 것으로부터 오고있다. 즉 "명태"는 "대구"를위한 것이고, "명란젓"란 "타라코"이라는 의미가된다. 한반도에서는 매운맛 명태라는 음식이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추로 양념한 "대구"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대구"의 글자가 문서에 나타나는 것은간에 10 년 (1670 년)이며, 원래는 스케토하는 통칭 하였다.

 

 

에도시대의 식생활 6 - 두부
江戸時代の食生活 6 - 豆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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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紹介したように、明の王室では、韓国の食べ物に感動して、透けるたびに飮食を要請ていた。
それらの項目を見てみよう

 

世宗 39卷, 10年(1428 戊申 / 명 선덕(善德) 3年) 2月 12日(甲子) 6번째기사
宣諭曰: 「爾殿下至誠進佳海靑, 海靑雖死, 至誠可如。 所進黃鷹亦佳, 雖非海靑, 若有佳鷹, 亦可竝進。 年魚卵醢及係鷹、好鹿皮一千張、鵝靑匹段、兜牟二部, 幷備以進。
宣諭하기를「그대의 전하(殿下)가 정말 좋은 해동청(海東靑)을 보냈는데, 해동청이 죽어서 안타깝다. 보냈던 누른 매도 또한 좋은 것이니, 비록 해동청이 아니더라도 만약 좋은 매가 있다면 보내라. 연어 알젓[年魚卵醢]과 계응(係鷹)·좋은 녹비(鹿皮) 1천 장(張), 아청 필단(鴉靑匹段)과 도모(兜牟) 2부(部)를 보내라.
明王によると, 君の殿下が、本当に良い海東靑を送ったが、海東靑が死んで残念だ。送した黃鷹もいいはずだから、にもかかわらず 海東靑があっても、もしいいタカがある場合は送って下さい。サケ卵塩辛[年鱼卵醢], 係鷹, 良い鹿皮1千枚,鴉靑匹段と兜牟(鉄製の兜)2部を送って下さい。

 

世宗 45卷, 11年(1429 己酉)
宣德四年五月初二日, 欽差太監昌盛、尹鳳等官到國, 欽傳宣諭: “中用的海味等件, 進將來。”
선덕(宣德) 4년 5월 초2일에 흠차 태감(欽差太監) 창성(昌盛)·윤봉(尹鳳) 등의 관원이 우리 나라에 와서 공손히 선유(宣諭)를 전하기를, ‘궁중에서 사용할 해물(海物) 등의 물건을 가져오라. ’
宣徳 4年5月初めに2日欽差太監 昌盛, 鳳などの役人が私たちの国に来て、しゅくはく 宣諭を伝えるため、"宮廷で使用する海鮮(海物)などの物を入手してください。 "

眞魚一千八百三十尾, 民魚五百五十尾, 沙魚九十尾, 芒魚三百八十尾, 洪魚二百尾, 蘆魚一百尾, 年魚五百尾, 大口魚一千尾, 鯉魚二百尾, 秀魚四百四十尾, 文魚二百首, 石首魚一千尾, 靑魚五百觔, 蘇魚五百觔, 鯽魚五百觔, 鰒魚七百觔, 古道魚二百觔, 烏鰂魚二百觔, 大蝦二百觔, 黃魚鮓六桶, 鯉魚鮓一桶, 土花鮓九壜, 石花(酢)〔鮓〕三壜, 生蛤鮓四壜, 蘇魚鮓三壜, 白蝦鮓七壜, 紫蝦鮓四壜, 石首魚子鮓四壜, 紅蛤鮓二壜, 早海菜五百觔, 海菜一千觔, 絲海菜三百觔, 海菜耳三百觔, 昆布四百觔, 海衣一百觔, 甘苔二百觔, 海花二百觔, 黃角三百觔, 松子一千觔, 黃酒五壜, 燒酒五壜。

 

黃魚鮓六桶, 鯉魚鮓一桶, 土花鮓九壜, 石花(酢)〔鮓〕三壜, 生蛤鮓四壜, 蘇魚鮓三壜, 白蝦鮓七壜, 紫蝦鮓四壜, 石首魚子鮓四壜, 紅蛤鮓二壜
ここで言う鲊は塩辛である.

 

エビの塩辛

カキ塩辛

イシモチ塩辛

貝の塩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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