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一般的な考えでは、大陸や朝鮮半島から、文化的な物や、様々な風習が伝わったと、
考えるのが、日本人でもあたりまえだろう。

ところが、科学的な観点で説明の付かない話がある


<日本産の翡翠>
『翡翠』(HISUI)製の勾玉(MAGADMA)に関してはとても興味深い。

(新潟原産の翡翠) 原石 



なぜなら、翡翠(hisuii)は、日本では新潟県の、糸魚川・流域でしか産出されない

Aの場所が、糸魚川



翡翠を加工した、(Magadama)は、下記のようになる。
(現代工芸の見本) このタイプのMagadamaは、弥生時代の時点で
日本全国、広範囲の遺跡から発掘されている。つまり国内でも広く流通していた。



アジアにおいては、日本以外では、現在のミャンマーでしか発見されていない。
朝鮮半島や中国大陸では、産出する場所が無い。
従って、朝鮮半島で発見された翡翠(HISUI)製の(Magadama)は、
古代の倭から伝わった物と考えるのが自然だといえる。


百済の王  武寧王陵で、発見された遺物。



<日本の木で出来た木棺>

 武寧王陵で、発見された柩には、日本でしか産出されない木材が使用されていた。


韓国、武寧王陵の展示

『日本の近畿地方南部の Koya-Mountainでとれた槙の木で作られていた。となっている』 
(コウヤマキ)(槙の木)は、日本にしか生育せず、
この柩の材料は日本製ということになる。



この木だ・・・・





日本の高野山周辺に、多く生えていることが、名前の由来だ。 Aの場所が高野山


  また、別の古墳、慶尚南道で発見された 木材は、楠(KUSUNOKI)で出来ており、
 この木も、日本で無いと産出されない木なのである。 朝鮮半島には自生しない木だ。
 『済州島では、生える』 が大きくならないとの事から、日本から運ばれたと考える説が有力だ。
 他の朝鮮半島の古墳からも、日本製の木材と考えられる木棺が出土している。

  木材は、保存性があり、非常に固く、 日本でも古来から使用されていた木であった。

 これらの事から、5−6世紀頃に、新潟や和歌山で産出された物が、

 日本国内だけに、留まらず、朝鮮半島にまで行き渡っていた事が科学的に証明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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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国の正史書・『隋書』には、次のような記載がある。
 
 <隋書・東夷伝・倭国条>
  
 
  (訳)
  新羅・百済は、みな、倭を大国だと考えた。 珍しいものが多かった これらのことで倭を敬い、
  常に使いを通じて往来す
  
  まさに、翡翠(hisui)や、木材(kusunoki、kouyamaki)の事をさし、
  通商の為?に往来していた様子が伺える この時代より前には、日本には鉄が無いので、それの取引に
  利用したと考えると都合がいいかも知れない。なぜ、『鉄器のような重要な物』 を外国に流失したかの
  説明もつ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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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方後円墳>(zenpoukouenfun)

独特の形をを、前方後円墳(zenpoukouenfun)と呼ぶ。

世界的にも特徴のある、この形は日本と朝鮮半島南部でしか見つかっていない。

仁徳天皇陵 (墓の面積では 世界最大)  似たような形が、日本の西日本に沢山ある。



考古学的には、4世紀〜6世紀頃に大量に出来たが、
朝鮮半島で登場するのは、6世紀以降の話になる。

従って、日本に出来た後、同じ習慣を持つものが
5-6世紀に朝鮮半島に移り住んだ?と考えると理屈にあうと思う。


そんな話は、荒唐無稽だ!と誰もが、思うだろう。
僕も子供の時は、そう思った。 ところが、これは、文献から説明がつく。

下記は、朝鮮半島での分布図だ。
赤が、前方後円墳(ZENPOUKOUENFUN)


どういう訳か、旧 百済のエリアに集中している。


一旦、過去の文献をみてみよう。


 朝鮮半島に伝わる・ 三国史記(百済本紀)

<倭と関わる個所の抜粋>
    * 397年 夏五月 王は倭国と友好関係を結び、太子の腆支を人質として倭に送った。
    * 402年 五月 使者を倭国につかわして、大きな珠を求めた。 →これは、翡翠ではないか?
    * 403年 春二月 倭国の使者が来たので、王は彼を迎えて慰労し、特に厚く遇した。
    * 405年 腆支太子は倭国において訃報を聞き、哭泣しながら帰国する事を請うた。
                倭王は、兵士百名を伴わせて、護送した。
    * 418年 夏 使者を倭国につかわし、白綿を十¥反を送った。
    * 428年 倭国からの使者が来たが、随行者が五十¥名であった。
    * 608年 隋が文林郎裴清を倭国へ使者として送ったが、わが国の南路を経由した。
    * 653年 秋八月、王は倭国と修交した。
    * 662年 七月 扶余豊は、高句麗と倭国に使者を派遣して援兵を乞う。
                         唐新羅連合軍は  救援の倭軍の軍船400艘を  白江に焼く。


百済は、滅びてしまったが、

朝鮮半島で、6世紀頃から、前方後円墳が、出現したのは、

白江(白村江)の戦いで、
敗れたあとの

生き残りの日本人がいたからでは??




という仮説も成立つと 考える

あと色々述べると。100%反対する馬鹿がいるから、これまでにしておくw


伝わったのか?教えたのか?支配関係があったのか?属国?朝貢?
ここで、述べた事だけでは、事実は証明出来ないが 

『百済に日本側から伝わった物がある』ことは、科学的にも間違いない。


僕は民族主義者でないので、国力がどうだったか?とか、支配関係がどうだったか?_
などは どうでもいいと思う。  ^-^

韓国人は、イデオロギーでなく、文献や考古学に基づいて
科学的に歴史を語って欲しい。w



일본에서 (쿠다라)백제에 전해진 유물

일반적인 생각에서는, 대륙이나 한반도로부터, 문화적인 물건이나, 여러가지 풍습이 전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인에서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 과학적인 관점에서 설명이 붙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산의 비취>
「비취」(HISUI) 제의 곡옥(MAGADMA)에 관해서는 매우 흥미롭다.

(니가타 원산의 비취) 원석 



왜냐하면, 비취(hisuii)는, 일본에서는 니가타현의, 이토이가와·유역에서 밖에 낳아지지 않다

A의 장소가, 이토이가와



비취를 가공한, (Magadama)는, 아래와 같이 된다.
(현대 공예의 견본) 이 타입의 Magadama는, 야요이 시대의 시점에서
일본 전국, 광범위의 유적으로부터 발굴되고 있다.즉 국내에서도 넓게 유통하고 있었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일본 이외에서는, 현재의 미얀마에서 밖에 발견되어 있지 않다.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서는, 산출하는 장소가 없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발견된 비취(HISUI) 제의 것(Magadama)은,
고대의 야마토로부터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쿠다라)백제의 왕무녕왕릉에서, 발견된 유물.



<일본의 나무로 만든 목관>

 무녕왕릉에서, 발견된 구에는, 일본에서 밖에 낳아지지 않은 목재가 사용되고 있었다.


한국, 무녕왕릉의 전시

「일본의 킨키 지방 남부의 Koya-Mountain로 취할 수 있던 전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되고 있다」 
(코우야마키)(전의 나무)는, 일본 밖에 생육하지 않고,
이 구의 재료는 일본제라는 것이 된다.



이 나무다····





일본의 코노야마 주변에, 많이 나 있는 것이, 이름의 유래다. A의 장소가 코노야마


  또, 다른 고분, 경상남도에서 발견된 목재는,남(KUSUNOKI)으로 되어있어 내려
 이 나무도, 일본에서 없으면 낳아지지 않은 나무인 것이다. 한반도에는 자생하지 않는 나무다.
 「제주도에서는, 난다」가 커지지 않는다는 것으로부터, 일본에서 옮겨졌다고 생각하는 설이 유력하다.
 다른 한반도의 고분으로부터도, 일본제의 목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목관이 출토하고 있다.

  목재는, 보존성이 있어, 매우 단단하고, 일본에서도 고래부터 사용되고 있던 나무였다.

 이러한 일로부터, 5-6 세기무렵에, 니가타나 와카야마에서 낳아진 것이,

 일본내에만, 머물지 않고, 한반도에까지 널리 퍼지고 있던 일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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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마사시서·「수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재가 있다.
 
 <수서·동부지역 무사전·야마토국조>
  
 
  ((뜻)이유)
  신라·쿠타라는,보는거야, 야마토를 대국이라고 생각했다. 희귀한 것이 많았다 이러한 일로 야마토를 존경해,
  항상 사용을 통해서 왕래
  
  확실히,비취(hisui)나, 목재(kusunoki, kouyamaki)의 일을 찔러,
  통상이기 때문에?에 왕래하고 있던 모습이 방문하는 이 시대보다 전에는, 일본에는 철이 없기 때문에, 그것의 거래에
  이용했다고 생각하면 적당할지도 모르다.왜, 「철기와 같이 중요한 것」을 외국에 유실했는지의
  설명도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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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후원분>(zenpoukouenfun)

독특한 형태를을, 전방 후원분(zenpoukouenfun)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도 특징이 있는, 이 형태는일본과 한반도 남부에서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닌토쿠 천황릉 (무덤의 면적에서는 세계 최대) 비슷한 형태가, 일본의 서일본에 많이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4 세기~6 세기무렵에 대량으로 할 수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등장하는 것은, 6 세기 이후의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일본에 할 수 있던 후, 같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
5-6 세기에 한반도로 옮겨 살았어?(이)라고 생각하면 도리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는, 황당 무계다!(와)과 누구나가, 생각할 것이다.
나도 아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 이것은, 문헌으로부터 설명이 대한다.

아래와 같이는, 한반도에서의 분포도다.
빨강이, 전방 후원분(ZENPOUKOUENFUN)


어떤 (뜻)이유인가,구(쿠다라)백제의 에리어에 집중하고 있다.


일단, 과거의 문헌을 보자.


 한반도에 전해진다· 삼국사기((쿠다라)백제본기)

<야마토와 관련되는 곳의 발췌>
    * 397년 여름 사츠키왕은 야마토국과우호 관계를 묶어, 태자의 전지를 인질로서 야마토에 보냈다.
    * 402년 사츠키 사자를 야마토국에 파견하고, 큰 주를 요구했다. →이것은, 비취가 아닌가?
    * 403년 봄 2월야마토국의 사자가 왔으므로, 왕은 그를 맞이해 위로해, 특히 두껍게 대우했다.
    * 405년전지태자는 야마토국에 대하고 부보를 (들)물어, 고 울음 하면서 귀국하는 일청노래.
                야마토왕은,병사 햐쿠나를 수반하게 하고, 호송했다.
    *418년 여름 사자를 야마토국에 파견해, 백면을 10반을 보냈다.
    * 428년 야마토국으로부터의 사자가 왔지만,수행자가 50명이었다.
    * 608년수가 문 하야시낭배청을 야마토국에 사자로서 보냈지만, 우리 나라의 남로를 경유했다.
    * 653년 가을 8월,왕은 야마토국으로 수교 했다.
    * 662년 7월 부여풍은, 고구려와 야마토국에 사자를 파견하고 원군을 청한다.
                         당신라 연합군은  구원의 야마토군의 군선 400소를 시로에에 굽는다.


(쿠다라)백제는, 멸망해 버렸지만,

한반도에서, 6 세기무렵부터,전방 후원분이, 출현한 것은,

시로에(백촌강)의 싸움으로,
진 뒤의

살아 남는 일본인이 있었기 때문에서는?



그렇다고 하는 가설도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말하면.100%반대하는 바보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 두는 w


전해졌는지?가르쳤는지?지배 관계가 있었는지?속국?조공?
여기서, 말한 일만으로는, 사실은 증명 할 수 없지만 

「(쿠다라)백제에 일본측에서 전해진 것이 있다」(일)것은,과학적으로도 틀림없다.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국력이 어떠했는지?라든가, 지배 관계가 어떠했는지?_
등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

한국인은, 이데올로기가 아니고,문헌이나 고고학에 근거해
과학적으로 역사를 말했으면 좋겠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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