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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불패의 신화 조선의 명장 정기룡

 

임진왜란 당시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일본인들과 육지에서 60번 싸워 60번 승리한 영웅

 불패의 신화 정기룡 장군 

 

경상우방어사 조경의 별장으로 출전해 첫 금산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거창, 상주, 사천, 김해, 울산, 경주, 함양, 진주, 성주 고령, 합천, 초계 등 무려 60여회의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어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 할 정도의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거창 전투에서 왜군 500여명을 격파, 금산 전투에서 직속상관 조경을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뛰어들어 구출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50명의 기병으로 수천 명의 왜적(倭敵)을 격파한 적도 있으며 뛰어난 지략으로 겨우 400명 뿐인 군사로 가토 가요마사(Kato Kiyomasa)가 이끄는 십만 명의 군사를 꼼짝 못하게 하여 수십 만 백성을 피난시켜 목숨을 구했다 

왜적(倭敵)이 보는 앞에서 倭敵의 배를 갈라서 생간(生肝)을 씹어 먹으며 그대로 돌격해

7일 동안 25개 倭軍부대 9천에 가까운 군사를 고작 7백으로 휩쓸고 다녔다고 한다

 

왜군이 쳐들어오는 관문에 위치한 경상도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은 정기룡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투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서 적진에 돌격했으나 부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명나라 군과의 합동전투에서는 명나라 부총병(副摠兵)이 전사하자 장군의 지략과 용맹함에 감동한 명나라 군사들이 모두 정기룡 장군의 휘하에 소속되기를 원하자 명나라 황제가 이를 허용했을 정도였다. 더구나 장군은 전리품인 수급은 휘하에 소속된 명나라 군사에 나누어 주거나 식량으로 바꿔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등 큰 덕을 베풀어 인근에 흩어졌던 백성들이 장군이 주둔하던 상주로 모여들었고, 장군이 군사를 모집하면 모두 목숨을 던져 싸우겠다고 몰려들었다.

 

 

정기룡 장군의 전장지

한성→거창(우지)→거창→김천→진주→상주(용화동)→상주(화령)→상주 목성→영천→문경(당교)
→상주(대승산)→상주(북장사)→예천→고령(용담천)→성주→고령→합천→합천(초계)→의령→
영동→보은→합천→함양(안음)→거창→경주→도산성→김천→거창→거창(가조)→함양(사근역)→
합천(삼가)→거창→합천(초계)→합천(삼가)→무주→진주→사천→단성→창원→진해→고성→
하동(곤양)→영산→합천→성주→합천(야로)→합천(삼가)→사천→성주→현풍→합천(초계)→
고령→거창(지례)→진주→영성→하동(곤양)→사천→사천 왜성

 

 

 

임진왜란(1592~1598) 개전 첫 해 조선 땅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귀신 같은 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10만이 넘는 왜군 앞에 조선군은 변변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패주에 패주를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백성들이 뿌린 피로 산하는 처절하게 물들었다.

 

국토가 왜군 수중에 떨어지다시피 한 그 해 11월의 칠흑 같은 어느날 밤. 경상감영이 있는 상주성 외곽에 갑작스레 거센 횃불의 물결이 일렁였다. 상주판관(尙州判官) 정기룡(鄭起龍, 1562~1622)이 이끄는 수백여 명의 민ㆍ관군 합동부대가 상주성 탈환을 위한 기습 공격에 나선 것이다.

정기룡은 화공전(火攻戰)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적들이 조총으로 조준 사격을 할 수 없는 야밤을 틈타 성 안의 왜군을 향해 불화살을 뿌려댄 것. 난데없는 불길에 놀란 왜군은 허겁지겁 몸을 피해 횃불이 없는 동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건 바로 정기룡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정기룡의 부대는 셀 수 없이 많은 적군을 베어낸 뒤 마침내 상주성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정기룡은 앞서 5월 거창(居昌) 전투에서는 경상우도 방어사(防禦使) 조경(趙儆)의 휘하 장수로서 왜군 500여 명을 무찌르며 임란의 첫 번째 육전(陸戰) 승전보를 이끌어내는 결정적 공훈을 세운다. 또 금산(錦山) 전투 때는 직속상관 조경이 포로로 붙잡히자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그를 구출하기도 했다. 이런 용맹한 모습 덕에 ‘임진왜란의 조자룡’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기룡의 연전연승은 패망의 짙은 그늘에 휩싸여 있던 조선 조정과 백성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됐다. 그는 당시 옥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해전에서 잇달아 일본 수군을 궤멸시키며 해상권을 장악한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 이순신과 함께 난세의 영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다에 이순신이 있다면, 육지에는 정기룡이 있다’는 말도 그때부터 나왔다. 그의 나이 불과 31세 때였다.

 

 


출중한 무예에 탄복한 선조, 직접 이름 내려

25세 때 무과(武科)에 4등으로 급제한 정기룡의 무예와 기백은 일찍부터 남달랐다. 당시 과거에서 그가 출중한 활쏘기 실력을 선보이자 선조는 크게 탄복하여 친히 기룡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의 부모가 지어준 초명(初名)은 무수(茂壽)였다.

정기룡이 육전에서 거둔 혁혁한 전과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임란 초기 조총을 앞세운 적에게 모든 방어선이 힘없이 무너져내린 바람에 조선 육군 장수들은 지축을 흔드는 왜군의 호각 소리만 들어도 꽁무니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런 터에 정기룡은 언제나 불퇴전의 각오로 전장에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임란 내내 그가 치른 크고 작은 60여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 차례의 전투를 치른 장수 중에 불패 신화를 쓴 이는 사실상 정기룡과 이순신뿐이다.

그는 북쪽으로는 보은과 상주, 동쪽으로는 울산, 서남쪽으로는 하동과 사천에 이르기까지 영호남의 광범위한 땅을 무대로 활약했다. 개전 초기 영남 지방을 초토화했던 왜군은 정기룡의 등장 이후 운신의 폭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개전 이듬해 당시 영의정 유성룡이 선조에게 “경상도 전체에 백성들의 인적이 드문데 정기룡이 버티고 있는 상주성에는 10만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다”며 그를 칭찬하자, 선조는 정3품의 벼슬(상주목사)을 내렸다. 이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정기룡의 앞길은 거침이 없었다. 1597년 왜군이 다시 북상(정유재란)하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종2품)로 임명돼 고령, 성주, 합천, 초계, 의령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낚은 뒤 성주에 경상우도 군영을 구축했다.

 

 

 

정기룡 장군을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임명하는 교지

 

신패: 장군이 총병관 재직시에 왜군 격퇴의 공을 치하하고 기리는 뜻으로 명나라 제독 마귀로부터 받은 공적패

 

  정기룡 장군이 사용하던 칼

 

충의공이 임진왜란 당시 사용하던 칼

 

 

忠義門(충의문)
선조가 일찍이 공을 칭찬하여 起龍(기룡)이 아니면 嶺南(영남)이 없고
영남이 없으면 오늘의 宗社(종사)가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忠烈門(충렬문)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선조 임금의 명에 의해
이름을 戊壽(무수)에서 起龍(기룡)으로 바꾸었던 장군은, 1622년
경남 통영의 진중에서 순직하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사벌면 화달리에
안장하고 사당을 세웠다.임진란으로 인해 사벌은 장군의 새 고향이 된 것이다
.
 
충의사(忠毅祠)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에 오른 정기룡 장군의 사당 (시호는 忠毅)
 

1- 정기룡 장군 영정
2- 정기룡 장군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충의사
3- 상주 충의사 옆에 자리한 정기룡 장군 묘소
4- 정기룡의 일대기를 서술한 매헌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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