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で慰安婦少女を称える慰安婦少女上(平和の少女上)は “韓国従軍慰安婦問題対策協議会”が 2011年 12月 14日
1.000回になる水曜日集会を記念して作った彫像だ
日本軍慰安婦被害者の姿を形象化した慰安婦少女上はソウル鍾路区日本大使館の前に設置された
韓国従軍慰安婦協議会は韓国国内のみならずアメリカ LA 隣近都市ブエナパクとグレンデールに慰安婦少女上を設置することに
推進した
アメリカ一部都市で慰安部少女上建立計画に対して “新実準” 日本総領事は
日本総理名義の, 慰安婦少女上建立を反対するという内容の手紙をブエナパク 市議員たちに発送した
日本総領事はブエナパク 市議員たちにこれから日本政府とブエナパクの協力と紐帯を強化しようと思うと明らかにして
慰安婦少女上建立を露骨的に邪魔した
こんな日本政府次元の邪魔にもかかわらず 2013年アメリカのグレンデール市はグレンデール市立図書館公園前敷地に
慰安婦少女上 (平和の少女上)を設置したし現在まで平和の少女上を守っている
ところで韓国の慰安婦少女上設置以前に
日本でもうアメリカに “原爆子供の上(像)を建立した
アメリカワシントン州 シーアトル平和公園に “原爆子供の 像だと呼ばれる銅像が立てられている
別称でサダコ(Sadako)像と言う
アメリカシーアトル平和公園の. 原爆子供の上(像)
紙鶴を持った右手を上にあげている少女は原爆子供の 像だモデルは佐□木サダコ(Sasaki Sadako)だ
シーアトルのアーティスト (連れるスミス)が 1990年に製作したことだと言う
が銅像は 1945年 8月 6日広島に原爆が投下されて 10年後原爆ふう中に白血病にかかって死亡した 12歳少女サダコを
称えるためのことだ
広島に原爆が投下された時満2歳だったサダコはとても活発で元気によく育っていた
ところで 1954年 12歳になった時首が脹れ上がって足に赤いまだらができるなど原爆後遺症を病み始めた
サダコ(Sadako)は広島赤十字病院で白血病を診断を受けて入院するようになる
サダコ(sadako)は病室でお父さんから種が鶴 1.000匹を折って祈れば願いがかなうという話を聞いて
あの時から紙鶴を折り始めたが 664匹を折って死亡したと言う
彼女の友達が 336個の紙鶴をもっと折って 1.000匹を完成させて彼女の墓に入れてくれたと言う
広島平和公園原爆子供の上(像)
が事情が知られて 1958年広島平和公園に “原爆子供の 像 .一名サダコ 像の銅像が立てられた
サダコ(Sadako)のお父さんによればサダコが 1.400匹の鶴を折ったと言う
広島資料官にはサダコが 1.300匹の鶴を折ったと説明されているなど多くの 説がある
以後サダコの悲しい事情を盛った “サダコ(Sadako)と 1.000匹の種が鶴 “でありなさいという小説が出版されたが
日本のみならず 米英圏にも翻訳されて広く知られた
サダコ(Sadako)の事情を盛った本 (サダコと千マリ鐘が鶴)
その結果アメリカの平和運動団体と日系アメリカ人たちが 1998年にシーアトル平和公園に初めで “原爆子供の 像を立てた
サダコ(Sadako)の事情に感動を受けたアメリカのニューメキシコ州小学校学生約8万名が募金運動を通じて作られた
原爆子供の 像をロスエルロモス国立研究所の前に設置しようと計画を立てたが
ロスエルロモス国立研究所側から断られた
ロスエルロモス国立研究所は世界最初核爆弾を製造した所で
広島長崎に投下されたアトミックボムを製造した所だ
アメリカの小学生たちの募金によって作られた”原爆子供の 像” 一名 “Sadako像はロスエルロモスに設置されることができずに
現在ニューメキシコ州の一博物館に臨時保管されている
が原爆子供の 像の設置はこれ以上拡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が
理由は日本が起こした戦争というアメリカ国内に反発のためだった
原爆子供の 像 頭の上に鶴形象がある
鶴は韓国や中国日本など東洋圏国では選好度が高い動物だ
1.000匹の鶴を折って祈れば願いがかなうという伝説は日本で海向こう韓国にも伝わって
1982年には紙鶴という歌が人気を呼んだ
日本の埼玉県障害者就業サポートセンター会員たちがウクライナにカードを送るからといって
これに対して批判があった 2チェノル創立者ニシムという
良いことをしている私の気持ちが重要だと思うようだ処置困ることを送る時には相手が
本当に望むことか確認した後送ろうと批判した
ところで災害地域に紙鶴を送る事は今度が初めではない
去る 3.11 東日本大震災の時にも日本国民が福島に種が鶴を送ったと言う
...........
当時 3.11 地震経験者は 1.000匹の種が鶴をプレゼントすることは日本の文化だが災難で避難通わ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で
紙鶴を受けることは困ってむしろ荷にならないか? と思う主旨の文を書いたと言います
その上に平和な日本で戦争に家族が死亡する惨めな状況のウクライナ人々に
紙鶴で治癒受けてくださいと言いながら日本の文化を無理やりに強要したら
以後にも紙鶴を受けて激励受けたと記憶され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
ところでウクライナにあって鶴は何に認識されるのか..
国ごとに文化も違って凶兆(凶鳥) 吉兆(吉鳥)を分けることも違いますが ..
日本の原爆子供の 像 ,韓国の平和の少女上(像)
人類の平和を志向するという点で共通されるが日本政府は韓国の平和の少女上を撤去しなさい
と圧迫しています
ところで韓国の平和の少女上設置以前にもう日本の原爆子供の 像がアメリカシーアトル平和公園に先に設置されました
平和の少女上は韓国の民間団体で建立したことで 2015年韓日慰安婦合意でも
合意されたところないです
一部日本人たちが韓国の平和の少女上を毀損しようと思うことは私の気持ちが大事だという利己心のためではないか
と思います
한국에서 위안부 소녀를 기리는 위안부 소녀상(평화의 소녀상)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가 2011년 12월 14일
1.000회가 되는 수요일 집회를 기념하여 만든 조각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위안부 소녀상은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되었다
한국 정신대 협의회는 한국 국내 뿐 아니라 미국 LA 인근 도시 부에나파크와 글렌데일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기로
추진하였다
미국 일부 도시에서 위안부 소녀상 건립 계획에 대해 “니이미 준” 일본 총영사는
일본총리 명의의, 위안부 소녀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부에나파크 市의원들에게 발송하였다
일본 총영사는 부에나파크 市의원들에게 앞으로 일본정부와 부에나파크의 협력과 유대를 강화하려고 한다 라고 밝히며
위안부 소녀상 건립을 노골적으로 방해하였다
이런 일본 정부 차원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2013년 미국의 글렌데일市는 글렌데일 시립 도서관 공원 앞 부지에
위안부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였고 현재까지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위안부 소녀상 설치 이전에
일본에서 이미 미국에 “원폭 아이의 상(像)을 건립하였다
미국 워싱턴州 시애틀 평화 공원에 “원폭 아이의 像이라고 불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별칭으로 사다코(Sadako)像이라고 한다
미국 시애틀 평화 공원의. 원폭 아이의 상(像)
종이 학을 가진 오른손을 위에 올리고 있는 소녀는 원폭 아이의 像이다 모델은 사사키 사다코(Sasaki Sadako)이다
시애틀의 아티스트 (데릴 스미스)가 1990년에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 동상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10년 후 원폭 후유중으로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12세 소녀 사다코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을때 만2세였던 사다코는 아주 활발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1954년 12세가 되었을 때 목이 부풀어 오르고 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등 원폭 후유증을 앓기 시작했다
사다코(Sadako)는 히로시마 적십자 병원에서 백혈병을 진단받아 입원하게 된다
사다코(sadako)는 병실에서 아버지로 부터 종이 학 1.000마리를 접어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부터 종이 학을 접기 시작했는데 664마리를 접고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친구들이 336개의 종이 학을 더 접어 1.000마리를 완성시켜 그녀의 무덤에 넣어 주었다고 한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원폭 아이의 상(像)
이 사연이 알려져 1958년 히로시마 평화 공원에 “원폭 아이의 像 .일명 사다코 像의 동상이 세워졌다
사다코(Sadako)의 아버지에 의하면 사다코가 1.400마리의 학을 접었다고 한다
히로시마 자료관에는 사다코가 1.300마리의 학을 접었다고 설명되어 있는 등 여러 說이 있다
이후 사다코의 슬픈 사연을 담은 “사다코(Sadako)와 1.000마리의 종이 학 “이라는 소설이 출판되었는데
일본 뿐 아니라 米英권에도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다
사다코(Sadako)의 사연을 담은 책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 학)
그 결과 미국의 평화 운동 단체와 일본계 미국인들이 1998년에 시애틀 평화 공원에 처음으로 “원폭 아이의 像을 세웠다
사다코(Sadako)의 사연에 감동을 받은 미국의 뉴멕시코주 초등학교 학생 약8만명이 모금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원폭 아이의 像을 로스엘러모스 국립연구소 앞에 설치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로스엘러모스 국립연구소 측으로 부터 거절당했다
로스엘러모스 국립연구소는 세계 최초 핵폭탄을 제조한 곳이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제조한 곳이다
미국의 초등학생들의 모금에 의해 만들어진 ”원폭 아이의 像” 일명 “Sadako像은 로스엘러모스에 설치되지 못하고
현재 뉴멕시코州의 한 박물관에 임시 보관되고 있다
이 원폭 아이의 像의 설치는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는데
이유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미국 내에 반발 때문이었다
원폭 아이의 像 머리 위에 학 형상이 있다
학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동양권 나라에서는 선호도가 높은 동물이다
1.000마리의 학을 접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은 일본에서 바다 건너 한국에도 전해져
1982년에는 종이 학 이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사이타마현 장애인 취업 지원 센터 회원들이 우크라이나에 종이학을 보낸다고 해서
이것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2체널 창립자 니시무라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나의 기분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처치 곤란한 것을 보낼 때에는 상대방이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 확인한 후에 보내자 라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재해 지역에 종이 학을 보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11 동일본 대지진 때에도 일본 국민들이 후쿠시마에 종이 학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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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11 지진 경험자는 1.000마리의 종이 학을 선물하는 것은 일본의 문화이지만 재난으로 피난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종이 학을 받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취지의 글을 썼다고 합니다
더구나 평화로운 일본에서 전쟁으로 가족이 사망하는 비참한 상황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종이 학으로 치유 받으세요 라고 하면서 일본의 문화를 억지로 강요한다면
이후에도 종이 학을 받고 격려받았다고 기억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있어 학은 무엇으로 인식되는지..
나라마다 문화도 다르고 흉조(凶鳥) 길조(吉鳥)를 나누는 것도 다릅니다만 ..
일본의 원폭 아이의 像 ,한국의 평화의 소녀 상(像)
인류의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일본정부는 한국의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
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평화의 소녀상 설치 이전에 이미 일본의 원폭 아이의 像이 미국 시애틀 평화 공원에 먼저 설치되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한국의 민간 단체에서 건립한 것이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도
합의된 바 없습니다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의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은 나의 기분이 소중하다 라는 이기심 때문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