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島】韓国が主張する「日本人が独島のアシカ絶滅させた」は捏造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190430_1359663.htmlNEWSポストセブン 2019年4月30日
朝鮮山岳会ナム・ヘンス氏が得意げに日本アシカを持ち上げて記念撮影(1947年8月20日撮影)
「独島(竹島)はわが領土」と主張し、小学校の低学年から領土教育に力を入れる韓国では、「日本人が独島のアシカを絶滅させた」という通説がある。が、それは捏造だという。著書『韓国「反日フェイク」の病理学』が話題の韓国人ノンフィクション・ライター崔碩栄氏が、「竹島のアシカ絶滅の真相」を解説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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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近の韓国の小中高の歴史教科書を見ると、私が学生だった1980年代との大きな違いを感じる。私の中学・高校時代には教科書で一字も見られなかった「独島」(日本名:竹島)、「慰安婦」などについての記述が非常に「充実」しているのだ。私が学んだ頃の教科書では、「独島」は地理の教科書に名前が記されるだけで歴史の教科書には登場していなかった。そして、「慰安婦」は社会的にも話題にさえなっていなかった。
さらに、近年になって新しく追加された内容がもう一つある。独島に生息していた「カンチ(海驢:アシカ)」に関する内容である。カンチは現在、絶滅状態にある。
カンチという名前は、韓国人にはあまり馴染みのあるものではない。私も2000年代以降になって初めてこの名前を聞いたように思う。そんなカンチがなぜ「生物」や「地理」ではなく「歴史」教科書に載るようになったのか?
韓国の新聞記事を調べてみると、2000年代以前に「カンチ」という名前は、ほとんど見当たらない。カンチという名前が急に韓国社会に広がり始めたのは、島根県議会が2005年に2月22日を「竹島の日」とする「竹島の日を定める条例」を賛成多数で可決した時からだ。韓国が島根県の措置に反発し、「独島は韓国の領土」であることを強調する材料として登場させたのだ。
2005年以降「カンチ」という動物は、韓国のテレビと本を通じて繰り返し報道、宣伝されたために、現在では子供たちや若者たちにはかわいい海の動物として馴染み深い存在となった。絵本や漫画はもちろん、教科書にまでカンチは可愛くてキュートな動物として描かれており、全国各地に建てられた独島体験館(子供たちに独島に関する情報を伝える学習館)にはカンチの模型も置かれている。
しかし、ここには深刻な問題が含まれている。カンチという名前が登場したときには必ずセットになって「日本」が登場するからである。このとき、描かれる日本の姿は「加害者」、つまり、かわいい動物を絶滅させた者として描かれているのだ。例えば、次のような形で。
●子供用の童話
〈「カンチだ! あの島にカンチがいる!」
船に乗っていた日本人漁師たちは手を叩きながら喜びました。
「これで私たちもお金持ちになる」
日本人漁師たちは数十頭のカンチを手荒く捕まえました。
そして、血を流し死んでいくカンチたちを船に積んで暗い水平線の向こうへ消えていきました〉(『ごめんね、独島カンチよ』ユン・ムンヨン著、2017年)
●テレビ
〈数万匹のカンチが生息していた独島。しかし、20世紀半ば以降カンチは完全に絶滅した。現在、カンチは写真、剥製、記録の中でしか見られない。では、数万匹のカンチはなぜ姿を消したのか? カンチ絶滅の最大の理由は、日本人漁師たちの無分別な乱獲である〉(KBS「歴史スペシャル独島カンチの証言──1905年日本の独島侵奪秘史」2011年10月27日)
KBSは日本でいえばNHKのような公共放送で、強力な伝達力を持つ。教育放送のEBSは何度もカンチに関する番組を放送したが、内容はいつも単純で大同小異である。かわいい「カンチ」、そしてそれを絶滅させた「日本」である。
当然の話だが、このような教育とメディアに曝さらされた子供たちと青少年は、日本に対して怒り、憎しみ、反感などの否定的な感情を持つしかない。動物を虐待し、韓国の自然を破壊した「加害者」としての日本が頭の中に定着していくのである。
しかし、このような物語と報道は事実ではない。日本人が日本統治時代の韓国でカンチを捕獲したのは事実だが、彼らの乱獲で絶滅したというのは明らかな虚偽である。なぜならば、終戦後も1970年代までカンチが独島に大量に生息していたという証拠が多数存在するからだ。
次は、終戦(1945年)後、〈鬱陵島の学術調査隊独島踏査 意外! 海狗発見〉というタイトルで韓国メディアに報道された事実である。
〈鬱陵島の科学探究をしている朝鮮山岳会学術調査一行は20日、独島踏査隊を組織し、午前5時10分に警備隊の大田号で鬱陵島の道洞港を出てから約4時間半で三峰島を経て、9時50分頃に独島に到着し、生物と地理に関する貴重な収穫を得た。特に(独島の)東島では朝鮮では珍しい海狗(カンチ)をたくさん発見したという〉(朝鮮日報 1947年8月22日)
続いて東亜日報(1956年8月25日)で〈独島の生態〉という見出しで報じられた記事だ。
〈独島周辺には約100匹と推定されるカンチが生息しており、このカンチたちは時々岩石の上に上がって吠えながら遊んだりするが、その鳴き声はまるで子牛が鳴く音にそっくりで、人が近づいてもあまり逃げないという。このカンチは、現在の天然記念物として手厚く保護し、一切狩猟を禁じている。ところで、過去の日本人が独島によく来たのは魚より、このカンチを捕獲するためだったという〉
この記事を見ると、終戦後も独島にカンチが大量に生息していたことがわかる。するとカンチが絶滅したのは日本統治時代ではなく、終戦後の大韓民国の時ということも確かである。しかし、近年ほとんどの本やテレビは「日本人」によってカンチが絶滅したと説明するか、日本人によって絶滅したと思うようにミスリードしている。さらに教科書という「教育」のコースを通じても繰り返し伝えられている。
日本の立場から見れば、腹立たしい話だろう。さらに嘆かわしいことに、終戦後に韓国人が行った「カンチ狩り」についてはちっとも言及せず、隠しているのだ。
【プロフィール】チェ・ソギョン/1972年、韓国ソウル生まれ。高校時代より日本語を勉強し、大学で日本学を専攻。
1999年来日し、関東地方の国立大学大学院で教育学修士号を取得。
【타케시마】한국이 주장하는 「일본인이 독도의 강치 멸종시켰다」는 날조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190430_1359663.htmlNEWS 포스트세븐 2019년 4월 30일
조선 산악회 남·헨스씨가 자랑스럽게 일본 강치를 들어 올려 기념 촬영(1947년 8월 20일 촬영)
「독도(타케시마)는 우리 영토」라고 주장해, 초등학교의 저학년으로부터 영토 교육에 힘을 쓰는 한국에서는, 「일본인이 독도의 강치를 멸종시켰다」라고 하는 통설이 있다.하지만, 그것은 날조라고 한다.저서 「한국 「반일 페이크」의 병리학」이 화제의 한국인 논픽션·라이터최석 사카에씨가, 「타케시마의 강치 멸종의 진상」을 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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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의 초중고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내가 학생이었던 1980년대와의 큰 차이를 느낀다.나의 중학·고교시절에는 교과서로 한 자도 볼 수 없었다 「독도」(일본명:타케시마), 「위안부」등에 대한 기술이 매우 「충실」하고 있다.내가 배웠을 무렵의 교과서에서는, 「독도」는 지리의 교과서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만으로 역사의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았다.그리고, 「위안부」는 사회적으로도 화제에마저 되지 않았었다.
게다가 근년이 되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하나 더 있다.독도에 생식 하고 있던 「칸치(강치:강치)」에 관한 내용이다.칸치는 현재, 멸종 상태에 있다.
칸치라는 이름은, 한국인에게는 별로 익숙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나도 2000년대 이후가 되고 처음으로 이 이름을 (들)물은 것처럼 생각한다.그런 칸치가 왜 「생물」이나 「지리」는 아니고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는지?
한국의 신문 기사를 조사해 보면, 2000년대 이전에 「칸치」라고 하는 이름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칸치라는 이름이 갑자기 한국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시마네현 의회가 2005년에 2월 22일을 「타케시마의 날」이라고 하는 「타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를 찬성 다수로 가결했을 때부터다.한국이 시마네현의 조치에 반발해, 「독도는 한국의 영토」인 것을 강조하는 재료로서 등장시켰던 것이다.
2005년 이후 「칸치」라고 하는 동물은, 한국의 텔레비전과 책을 통해서 반복 보도, 선전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는 귀여운 바다의 동물로서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그림책이나 만화는 물론, 교과서에까지 칸치는 귀엽고 큐트한 동물로서 그려지고 있어 전국 각지에 지어진 독전`≡후험관(아이들에게 독도에 관한 정보를 전하는 학습관)에는 칸치의 모형도 놓여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칸치라는 이름이 등장했을 때에는 반드시 세트가 되어 「일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이 때, 그려지는 일본의 모습은 「가해자」, 즉, 귀여운 동물을 멸종시킨 사람으로서 그려져 있다.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어린이용의 동화
〈「칸치다! 그 섬에 칸치가 있다!」
배를 타고 있던 일본인 어부들은 손뼉을 치면서 기쁨했다.
「이것으로 우리도 부자가 된다」
일본인 어부들은 수십마리의 칸치를 난폭하게 잡았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려 죽어 가는 칸치들을 배에 쌓아 어두운 수평선의 저 편에 사라져서 갔습니다〉( 「미안해요, 독도 칸치야」윤·문욘저, 2017년)
●텔레비전
〈수만마리의 칸치가 생식 하고 있던 독도.그러나, 20 세기 중반 이후 칸치는 완전하게 멸종했다.현재, 칸치는 사진, 박제, 기록 중(안)에서 밖에 볼 수 없다.그럼, 수만마리의 칸치는 왜 자취을 감추었는지? 칸치 멸종의 최대의 이유는, 일본인 어부들의 무분별한 난획이다〉(KBS 「역사 스페샤 르 독도 칸치의 증언──1905년 일본의 독도 침탈 비사」2011년 10월 27일)
KBS는 일본에서 말하면 NHK와 같은 공공 방송에서, 강력한 전달력을 가진다.교육방송의 EBS는 몇번이나 칸치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했지만, 내용은 언제나 단순하고 대동소이이다.귀여운 「칸치」, 그리고 그것을 멸종시킨 「일본」이다.
당연한이야기이지만, 이러한 교육과 미디어에 폭 노출된 아이들과 청소년은, 일본에 대해서 화내, 미움, 반감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동물을 학대해, 한국의 자연을 파괴한 「가해자」로서의 일본이 머릿속에 정착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라고 보도는 사실은 아니다.일본인이 일본 통치 시대의 한국에서 칸치를 포획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난획으로 멸종했다는 것은 분명한 허위이다.왜냐하면, 종전 후도 1970년대까지 칸치가 독도에 대량으로 생식 하고 있었다고 하는 증거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종전(1945년) 후,〈울릉도의 학술 조사대 독도 답사 의외! 해 구발견〉이라고 하는 타이틀로 한국 미디어에 보도된 사실이다.
〈울릉도의 과학 탐구를 하고 있는 조선 산악회 학술 조사 일행은 20일, 독도 답사대를 조직 해, 오전 5시 10분에 경비대의 대전호로 울릉도의 도 동항을 나오고 나서 약 4 시간 반에 산포우섬을 거치고, 9시 50분 무렵에 독도에 도착해, 생물과 지리에 관한 귀중한 수확을 얻었다.특히(독도의) 히가시지마에서는 조선에서는 드문 해 구(칸치)를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조선일보 1947년 8월 22일)
계속 되어 동아일보(1956년 8월 25일)로〈독도의 생태〉라고 하는 표제로 보도된 기사다.
〈독도 주변에는 약 100마리로 추정되는 칸치가 생식 있어, 이 칸치들은 가끔 암석 위에 올라 짖으면서 놀거나 하지만, 그 울음 소리는 마치 송아지가 우는 소리를 꼭 닮고, 사람이 가까워져도 별로 도망치지 않는다고 한다.이 칸치는, 현재의 천연기념물로서 극진하게 보호해, 모두 수렵을 금지하고 있다.그런데, 과거의 일본인이 독도에 잘 온 것은 물고기보다, 이 칸치를 포획 하기 위한(해)였다고 한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난 이야기일 것이다.한층 더 한심스러운 것에, 종전 후에 한국인이 간 「칸치 사냥」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숨기고 있다.
【프로필】최·소골/1972년, 한국 서울 태생.고교시절보다 일본어를 공부해,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
1999년 일본 방문해, 관동지방의 국립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호를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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